How a Part-Timer Raises a Half-Elf RAW novel - Chapter (191)
알바생이 하프 엘프를 키우는 법-191화(191/245)
191
“그래서? 일단 병원에 오긴 했는데, 이제부터 뭘 어쩔 생각인데?”
아직도 쓰라림이 가시질 않은 등을 쓰다듬으며 이한성이 물었다.
민정훈을 조사하기 위해 작년에 학교를 자퇴했다던 1학년생을 만나러 병원까지 왔다곤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 넓은 병원에서 잘 알지도 모르는 사람을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어쩌기는. 이럴 땐 인맥을 써먹어야지.”
“너 설마…”
간단하다는 듯이 말하는 화연의 대답에 이한성은 듣기도 전에 그녀의 생각을 알아챌 수 있었다.
마침 인맥이라고 하면, 이 병원에는 그녀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는 의사가 딱 한명 있었기에.
“아, 잘 됐다. 찾을 필요도 없이 바로 저기있네.”
주위를 잠시 두리번 거리던 화연이 때마침 1층의 카페에 내려와 커피를 마시고 있던 박태식 교수의 모습을 보고는 미소를 지었다. 쉬는 시간이 거의 없다시피 한 의사들에게는 아주 귀중한 커피 타임을 즐기고 있는 박 교수였지만, 애석하게도 화연은 그런 박 교수의 휴식시간을 존중해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박 교수님~ 오랜만이에요~”
“푸헠!!?”
기척도 없이 갑자기 뒤에서 다가와 말을 걸어온 화연의 행동에 커피를 만끽하던 박 교수는 그대로 마시던 커피를 뿜으며 뒤를 바라보았다.
“화, 화연 누-”
“아하하! 잘 지내셨어요?”
누나라고 부르면 죽여버리겠다는 의지가 가득 담긴 미소로 박 교수의 말을 잘라버린 화연. 그러자 그런 그녀의 의지를 톡톡히 느낀 박 교수는 살기 위해 헛기침으로 목을 가다듬으며 말을 고쳤다.
“흠흠! 그럼요, 잘 지냈지요. 화연 씨는 그간 어떠셨습니까?”
“저도 평범하게 잘 지내고 있었죠. 근데, 동료 분들이랑 얘기하는 중에 제가 눈치없이 끼어든 건 아니죠?”
“그걸 몰라서- 가 아니라 물론 아닙니다 하하…”
박 교수가 함께 커피를 마시고 있던 레지던트 선생들을 슬쩍 바라보며 말을 고쳤다. 그리고는 이내 동료들에게 양해를 구하며 잠시 자리를 비웠다.
“미안하지만 먼저들 마시고 있어. 일 생기면 콜하고.”
“아, 네 교수님.”
겉보기론 20대 초반 밖에 되지 않은 아가씨에게 어째서 저렇게나 쩔쩔 매는 것일까. 레지던트들은 그런 의문과 함께 황급히 자리를 비우는 박 교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하나같이 다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다들 누가 의심이나 하겠어. 저 50대 교수를 막 다루는 20대 처자가 사실 600대 초중반이라는 사실을…
화연에게 꼼짝도 못하는 박태식 교수의 모습을 바라보며, 이한성은 동정어린 시선과 함께 조용히 묵념했다. 그러자 그렇게 휴식 중이던 박 교수를 반강제로 끌고온 화연은 이내 적당히 조용한 곳으로 자리를 옮기며 얼굴에서 미소를 싹 지웠다.
“야 박 태식이. 넌 그 얼굴로 사람 많은데에서 날 굳이 누나라고 불러야겠니?”
“아, 아니, 그게 말입니다… 이건 말하자면 트라우마 같은거라…”
젊었던 시절, 성격이 날라이었던 박태식은 사실 지금과는 달리 화연에게 누님이라는 호칭을 전혀 붙이지 않으려고 했었다. 그 결과 과거에 그는 누님이라는 호칭을 붙이지 않을 때 마다 화연으로 부터 부조리한 폭력 경험해왔고, 그때 경험했던 폭력이 50대가 넘은 지금이 되어서 까지 무의식에 각인 되다시피 한 것이었다.
물론 정작 그 트라우마의 원인인 화연은 그 사실을 쥐꼬리만큼도 기억하고 있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나저나 누님, 이만 뭐 때문에 절 찾아오신건지 얘기해주시면 좋겠습니다만.”
“뭐 좀 알아볼게 있어서 찾아왔어. 내가 이 병원에 다니는 환자를 좀 찾고 있는 중인데, 협조가 필요해서 말이야.”
“예? 아니, 환자에 대한 정보를 타인에게 알려주는 건 위법입니다! 아무리 누님이라고 하셔도 그건 좀…”
“싫으면 됐고, 내가 사람 기억을 들여다보는 것에 좀 일가견이 있는데 하는 수 없지. 잠깐 자고 일어나면 머리가 좀 아플테니까 좀 참아.”
“….”
누가 봐도 명백한 협박. 이한성 본인조차도 혀를 내두를 정도의 협박 행위에, 그는 대단하다는 듯이 와이프를 바라보며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과연 전직 추노꾼… 실력은 아직도 현역이네.”
요즘 세상은 워낙에 평화로운 탓에 이런 그녀의 면모를 볼 기회가 그닥 없었지만, 역시 600년이라는 세월동안 축적된 경험은 어디 가지 않았다. 누가 뭐라 해도 눈앞의 처자는 한때 조선시대 최고의 추노꾼이었으니.
“알겠습니다 알겠어!! 하여간에… 결혼하시고 성격 좀 바뀌셨나 했더니만은 막무가내인건 그대로구만요…”
“어머? 이정도면 예전보다 꽤 유한 편이라고 생각하는데. 진짜 막무가내가 어떤건지 한번 보여줄까?”
“…진지하게 사양하겠습니다.”
결코 농담으로 흘려들을 수 없는 화연의 말에 박태식은 그대로 꼬리를 내리고 그녀의 부탁이란 협박에 순응하였다. 그러자 그런 가차없는 그녀의 모습에 이한성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지만, 제 아빠와는 달리 세리는 그녀를 존경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며 나지막히 감탄을 내뱉을 뿐이었다.
“멋지다…”
“….”
…또 이상한 걸 배워버린 파멸의 드래곤 후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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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박에, 의료기록 탈취, 그리고 하다하다 이제는…”
이쯤되면 정말로 할 말이 없어진다. 꼭 드라마나 소설 속에서나 있을법한 상황에 끼게 된 이한성은 결국 이런저런 위법적인 방식으로 기어코 집까지 찾아오는데 성공한 화연을 바라보며 그저 경악을 내비칠 수 밖에 없었다.
“…이거 고소 당해도 할 말 없는 짓인거 알지?”
“걱정 마. 들키지만 않으면 범죄가 아니니까.”
“그거 완전 범죄자가 할 법한 소리잖아…”
아니, 아니지. 범죄자가 할 법한 소리가 아니라 이미 훌륭한 범죄자지. 이러다가 들키면 대체 어쩌려고 이러는건지 원…
“너무 투덜대는거 아니니? 예전에 나보고 주거침입 도와달라고 했던 사람이 누구더라?”
“….”
자꾸만 투덜거리는 이한성의 모습에 화연은 자신은 무고하다는 척 하지 말라는 듯이 그렇게 항의했다.
예전의 일이라고 하면 작년에 이한성이 전세 사기로 돈을 뜯길 뻔 했을 때의 일. 그때도 사기범을 쫓기 위해 이번처럼 화연의 힘을 빌려 위법적인 짓에 뛰어들었었다.
다만 그때는 순전히 돈이 걸린 문제였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했던 것이고, 이번에는 다르다.
예전과는 달리 이번 일을 주도하고 있는 건 이한성이 아닌 화연이고, 이한성은 어디까지나 휘말려든 처지에 불과하다. 게다가 심지어 이번 일은 굳이 따지고 본다면 돌아오는 이득은 아무것도 없는, 지극히도 타인을 위한 이타적인 행동 그 자체.
“하아… 그래 뭐, 여기까지 왔는데 이제와서 뭘 어쩌겠어.”
지난번에는 화연이가 날 위해 어울려줬으니 이번에는 내가 화연이를 위해 어울려줘야겠지.
빚을 갚는 셈 치면 그만이다. 그렇게 이한성은 한숨과 함께 상황을 받아들이며 집의 초인종을 눌렀다.
[띵동-]초인종이 눌리자 문 너머로 인기척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끼익-]“…누구시죠?”
현관문이 열리며 한 아주머니가 모습을 드러내셨다. 그러자 이에 화연은 싱긋 미소를 지으며 간단히 인사를 올렸다.
“안녕하세요. 아영이 어머님 되시죠?”
“네… 혹시 아영이 친구…?”
“아뇨. 전 친구는 아니고 대학 선배에요. 혹시 잠깐 아영이랑 얘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
“…들어와요.”
화연의 물음에 아주머니는 현관문을 활짝 여시며 화연을 집안으로 들였다. 그러자 이에 이한성 또한 세리를 안은 채 그녀를 따라 집의 현관에 발을 들였고, 조심히 신발을 벗고는 아주머니의 안내를 따라 방 앞으로 향했다.
“…이 청년은?”
“아, 제 남편이에요.”
“이한성이라고 합니다. 세리, 너도 인사해야지.”
“…안녕.”
친구 대하듯 성의없게 인사한 세리.
“야, 안녕하세요- 라고 제대로 인사해.”
“내가 왜?”
“아오 진짜… 자꾸 그러면 또 옆구리 찔러버린다?”
“!!”
방금 전 까지만 했어도 버르장머리 없는 태도로 일관하던 세리의 반응이 확 바뀌었다. 낮에 당한 옆구리 공격이 그렇게나 싫었는지 잔뜩 겁먹은 표정을 지은 어린 드래곤은 그대로 반쯤 울먹이는 목소리로 다시한번 제대로 아주머니께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그래 그것 봐, 하면 할 수 있잖아.”
협박으로 예의를 가르치는 아빠가 세상에 어딨을까. 그런 생각과 함께 화연은 참 대단하다는 듯이 이한성을 바라보며 아주머니를 따라 방 문 앞에서 그대로 발걸음을 멈췄다.
“…아영아. 손님왔어.”
“….”
굳게 닫힌 방문 너머로 아주머니가 딸을 불렀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대학 선배님이라 하던데, 잠깐이라도 좋으니 나와보렴.”
“…!! 나가!! 나가라고!! 안나가?!”
아무런 대답도 없을 것만 같았던 방 주인이 겁에 질린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러자 이에 아주머니는 당황하신 듯한 눈치를 보이셨고, 화연과 이한성은 서로 무언가를 깨달은 듯 굳은 표정을 지었다.
…역시나. 아니기를 바랬는데 선배라는 말에 저렇게 반응을 하는 걸 보니까 거의 확실하구만.
보통 심리치료를 받을 정도로 정신적으로 큰 트라우마를 지닌 사람이 방에 틀어박힌다고 하면, 제아무리 부모님이 말을 건다고 한들 반응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방금 방 너머에 있는 아영이라는 이름의 여자는 대학 선배라는 단어에 소리를 지를 정도로 격하게 반응했다.
겉으로는 신경질을 부리는 것 처럼 들릴지도 모르지만 실상은 그런 것이 전혀 아니다. 대학 선배라는 존재에 대해 공포를 느끼고 있기 때문에 저렇게 필사적으로 반응을 하는 것이다.
“…미안해요. 기껏 찾아오셨는데 애가 저런 상태라…”
“아니에요. 아주머니가 사과하실 일이 아닌걸요.”
아주머니의 사과에 화연은 아주머니를 말리며 그렇게 대답했다. 그리고는 이내 잠시 이한성과 시선을 주고받았고, 이내 문 너머로 방 주인에게 말을 걸었다.
“아영아, 잠깐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
“…?”
화연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걸자 잠깐이지만 방 안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대학 선배라는 사람이 예상했던 인물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라는 사실에 살짝 당황한 모양이었다.
[끼익-]경첩이 쓸리는 소리와 함께 굳게 닫혀있던 방 문이 살짝 열렸다. 그리고 그렇게 열린 틈새 사이로, 무척이나 안색이 좋아보이지 않는 여자가 경계심 가득한 표정으로 얼굴을 드러냈다.
“…화연 선배?”
“? 혹시 우리… 아는 사이였던가…?”
예상치도 못하게 이름을 불린 화연이 당황하며 얼굴을 비춘 송아영에게 물었다. 그러자 이에 송아영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고, 대신 화연을 추궁했다.
“…무슨 일로 오신거죠?”
“그냥 물어보고 싶은게 생겨서 찾아온 것 뿐입니다.”
“…!!”
송아영의 물음에 이한성이 끼어들며 화연을 대신해 대답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이한성의 모습을 본 그녀는 화들짝 놀라며 뒤로 넘어졌고, 이내 겁먹은 듯 벌벌 떨기 시작했다.
“괘, 괜찮아! 이쪽은 내 남편! 그러니까 겁 먹을 것 없어!”
“나, 남편…?”
화연이 필사적으로 설명하며 패닉에 빠질 뻔한 송아영을 진정시켰다. 동시에 방해된다는 듯이 이한성을 옆으로 치워버린 것은 덤이었다.
“그… 괜찮다면 안에 들어가서 얘기할 수 있을까…?”
“….”
말짱 도루묵이 될 뻔한 걸 간신히 수습해낸 화연이 아주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러자 잠시 침묵하던 송아영은 이윽고 떨리는 손으로 조용히 문을 열어주었고, 그와 동시에 이한성과 화연은 방 내부의 모습을 보고야 말았다.
이 방의 주인이 얼마나 심적으로 몰려있는지를 잘 알려주는 것만 같은, 그런 모습을.
…그리고 깨달았다.
본인들의 우려가 점점 더 사실이 되어가고있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