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Part-Timer Raises a Half-Elf RAW novel - Chapter (196)
알바생이 하프 엘프를 키우는 법-196화(196/245)
196
5월 5일은 어린이날. 어렸을 시절에, 다들 크리스마스 다음으로 기대하며 좋아했던 공휴일이다.
왜냐하면 무슨 어린이날이 뜻깊은 역사적 의미가 담겨진 날이라서가 아니라, 아이들에게 있어선 선물을 받는 날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일명 크리스마스 v2.0. 다른 점이 있다면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을 주는 것이 아니라, 부모님이 직접 선물을 사주는 날. 어린이들에게 있어 차이점이라곤 오직 그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아이들은 어린이날이 찾아오기 1주일 전 쯤 부터 부모님에게 온갖 밑밥들을 깔기 바쁘다. 혹여나 넌텐도 스위치 같은게 아니라 왠 미니 포크레인 같은 장난감을 선물로 받아버린다면 그 실망감은 장난이 아니기에.
물론 이한성 같은 경우에는 다른 아이들과는 사정이 달랐었다. 애초에 아버지란 인간이 선물을 사줄만한 인간도 아니었으며, 7살 때 부터 꿈과 희망을 버리고 현실을 자각해버렸기 때문에 딱히 가지고 싶었던 장난감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랬기에 이한성에게 있어서 어린이날은 무척이나 존재감이 옅은 날이었다.
챙겨주는 사람도 없고, 그렇다고 또 크리스마스 처럼 뭔가 본격적인 것도 아니고 해서일까, 중학생 즈음 부터 이한성은 아예 어린이날이라는 공휴일을 거의 잊고 살아왔다. 아니, 거의 잊은 수준이 아니라 아예 어린이날이라는 날의 존재 자체를 망각해버린 수준이었다.
때문에 이한성이 어린이날을 깜빡하고 5월 중순이 되기까지도 수정이와 세리에게 선물을 챙겨주지 않았던 것은 변명같은 느낌이 없잖아 들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해도 거짓말은 아니다.
그런데 왜 갑자기 5월 중순이나 되가지고 이미 진작에 지나가버린 어린이날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냐…
그 이유는 간단하다.
“아빠! 나 어린이날 선물로 넌텐도 갖고 시퍼!!”
…결국 기어코 이 귀여움의 탈을 쓴 몬스터가 어린이날의 존재를 알아버리고 말았기 때문이다.
“…저기, 수정아. 오늘이 며칠이더라?”
“음… 5월 15일!”
“그래. 15일이지. 그럼 어린이날은 며칠이지?”
“25일!”
“아니거든!”
당당하게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모를 25일을 외친 수정이. 그런 수정이의 모습에 이한성은 황당하다는 듯이 반사적으로 그렇게 외쳤다.
“…수정이 너 설마 크리스마스가 25일이라서 어린이날도 25일이라고 착각한 건 아니지?”
“!!”
…반응 보니까 맞구만. 그래, 갑자기 25일이 어디서 튀어나왔나 했다.
“어린이날은 25일이 아니라 5월 5일이다 이것아. 이미 한참 지났다고.”
“….”
수정이의 얼굴이 마치 동심을 철저하게 짓밟힌 아이마냥 꿈도 희망도 없는 표정으로 물들었다.
언제나 필요 이상으로 반짝였던 에메랄드같은 눈동자가 무슨 무광 이펙트라도 입힌 비취색으로 바뀌었다. 소위 사람들이 말하는 죽은 눈이 되어버린 수정이의 눈동자를 본 이한성은 어째서인지 따끔따끔한 시선이 뒤통수를 찌르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조용히 뒤를 돌아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뒤를 돌아보자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를 세리가 살기등등한 시선으로 이한성을 금방이라도 잡아먹을 듯이 째려보고 있었다.
…아니 내가 뭘 했다고 째려보는건데? 그냥 팩트를 말했을 뿐이잖아. 뭐 무서워서 말을 못하겠네 진짜.
옆구리만 조금 찔러도 울먹이며 도망칠 애가 제 언니의 동심 하나 깨뜨렸다고 제 아빠한테 막 살기를 뿜어대는 모습이 참으로 어이가 없다. 그런 생각과 함께 이한성은 조용히 한숨을 내쉬며 동심이 깨져버린 수정이에게 나지막히 말을 걸었다.
“뭐… 굳이 어린이날이 아니라도 넌텐도 사주는 건 문제가 없는데, 갑자기 왠 어린이날 타령이야?”
돈이 궁한 것도 아니고 게임기 정도야 쉽게 사줄 수 있다. 애초에 따지고 보면 지금까지 번 돈은 전부 다 수정이의 양육비로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이니.
“그치만 아빠를 꼭 노예로 부려보고 싶었단 말이야…”
“…예?”
수정이의 대답에 이한성은 잠시 삐걱이며 둔해진 반응을 내보였다. 마치 이한성.exe의 작동이 중지되었습니다- 라는 알림창이 뜰 것만 같은 어질어질한 기분을 느낀 이한성은 혹시나 싶어 다시 한번 수정이에게 물어보았다.
“날 노예로 부리고 싶어서 어린이날을 기다린거라고…?”
“응.”
“…수정이 너 어린이날이 뭐하는 날인지는 알고나 있는거야?”
“응. 아이들이 어른들을 노예로 부리는 날 아니야?”
“….”
어린이날의 창시자이신 방정환 선생님이 들으시면 관뚜껑을 열고 무덤에서 일어나셔서 극대노를 해도 이상하지 않은 발언이다.
뭐… 아이들을 그렇게 좋아하셔서 어린이날이라는 걸 만드신 분이니 반대로 너그럽게 봐주실지도 모르지만… 암튼 중요한건 그런게 아니라 이런 비유를 할 정도로 수정이의 발언이 터무니 없는 소리라는거지.
“해영이가 그러던?”
“어, 어떠케 알았써?”
“어떻게 알기는… 걔 말고 니 주변에 그런 말도안되는 헛소리를 해줄 사람이 또 어딨겠냐.”
역시나 이번에도 잘못되도 무척이나 잘못된 지식의 출처는 해영이었다. 안그래도 점점 더 감당하기가 힘들어져가는 애한테 아예 폭주하랍시고 부채질을 하는 그녀의 행보에, 이한성은 혈압수치가 순간적으로 상승하는 것을 느끼며 한숨을 내쉬었다.
“무슨 일이지? 아까부터 소란스러워서 운동하는데 집중이 안된다만.”
아까부터 거실 구석에서 어디서났는지 모를 덤벨로 고중량을 때리고 있던 한스가 방해하지 말라고 말하며 끼어들었다.
“…너 그건 또 어디서 났냐?”
“헬스장에서 받았다. 주인장이 여분으로 남는 걸 주더군.”
한스가 80kg 남짓 되어보이는 걸 한손으로 가볍게 쥐고 들었다 놨다 하며 대답했다. 그렇게 대화에 끼어든 와중에서도 덤벨을 놓지 않는 전직 소드마스터였다.
“그나저나 무슨 일인지 물었다만. 대충 듣자하니 오늘이 무슨 날인 듯 한데…”
“날이기는 무슨. 어린이날은 한참 전에 지나갔거든?”
“어린이날?”
“그런게 있어.”
근육 덩어리에 운동밖에 모르는 놈한테 굳이 어린이날이 뭔지에 대해 설명해주기가 귀찮았던 이한성은 그렇게 말을 넘기려고 했다.
하지만 그 순간, 수정이가 불쑥 끼어들며 이한성을 대신해 엉터리 설명을 늘어놓아버렸다.
“어른들이 애들의 노예가 되어주는 날이야!”
“…호오, 그것 참 듣도보도 못한 풍습이로군. 귀족들이 좋아하겠어.”
실제로 노예제도가 존재했던 나라에서 살다온 한스조차도 뭐 그딴게 다 있냐고 말할 정도로 엉터리인 설명. 갑자기 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을 왠 멋대로 노예를 찍어내는 막장 국가로 만들어버린 수정이의 설명에, 이한성은 가벼운 딱밤을 날리며 빠르게 설명을 정정하였다.
“노예는 무슨, 그냥 애들한테 선물 주는 날이야.”
“선물? 무슨 성인식 같은 건가?”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거창한건 아니고 대충 애들 좋으라고 만든거지.”
본래 어린이날이 만들어진 이유는 뭔가 더 애국적이고 깊은 뜻이 담겨있었던 것으로 기억하지만, 본래 이유가 어쨌든 간에 지금은 그냥 크리스마스 v2.0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장난감 회사들은 웃고 부모들은 우는 그런 날이라는거지.
“…그래서? 수정이 넌 대체 뭐 때문에 날 노예로 삼고 싶어서 난리인건데?”
“재밌써보이니까!”
제 아빠를 노예로 삼는게 재밌을 것 같다는 이수정 씨. 참고로 쟤 올해로 7살이다.
“하아… 넌 진짜 내가 아빠라서 다행인 줄 알아라.”
만약 본인이 어린시절에 아버지에게 저런 말을 했었다면 그 자리에서 바로 술병으로 대가리가 깨지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렇게 이한성은 본인과는 다르게 참으로 훌륭하고 자상한 아버지(?)를 둔 수정이를 내심 부러워하며 대충 수정이의 장단에 어울려주기로 하였다.
“오냐. 어린이날을 깜빡하고 못챙긴 내 책임도 어느정도 있으니까 오늘은 니가 원하는 걸 다 들어주마.”
“정말?!?! 앗싸아~!! 세리야 들었찌!? 아빠가 뭐든 다 들어준대!”
“…난 별로.”
장단에 맞춰주겠다는 이한성의 말에 신나서 진짜 말 그대로 날고 있는 수정이와는 다르게 영 관심이 없어보이는 듯한 세리. 하지만 그건 겉모습만 아닌 척을 하고 있을 뿐, 사실 속으로는 제 언니와 동급으로 기대만빵이라는 사실을 이한성은 확신할 수 있었다.
무관심한 표정을 짓고 있으면서도 뿔과 꼬리가 툭 튀어나와 있었기에.
…세리 저거 백퍼 복수하고 싶은 마음 만땅이구만.
그간 당해왔던 옆구리 공격에 대한 복수로 가득한 눈빛이다. 이한성은 그렇게 복수의 칼을 갈고 있는 둘째를 바라보며 쎄한 기분을 감지했다.
그때의 이한성은 알지 못했다.
그날 하루가 지옥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
언제나와 같은 점심시간의 대학 식당에서, 화연은 조용히 자판기 옆에 선 채 캔커피를 마시며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평소에 기계에 영 익숙치가 않아서 전화하거나 메시지 보낼 일이 없으면 손도 안대던 그녀가 핸드폰을 붙잡은 채 미소를 지었다.
그녀가 핸드폰으로 들여다 보고 있던 것은 다름이 아닌 며칠 전에 핸드폰으로 찍어두었던, 세리가 직접 그려서 건네준 가족 사진이었다.
“후훗.”
“뭘 보고 있길래 그렇게 실실 웃고 있어?”
마침 화연을 찾아온 임수아가 평소와는 어딘가 다른 그녀의 모습에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이거 봐봐. 우리 세리가 그린 그림인데, 잘 그렸지?”
“어… 세리라면 둘째?”
“그래. 어쩜 이리 잘 그렸을까. 날 막 엄마라고 부르면서 이걸 직접 나한테 그려서 줬다니까? 얼마나 귀여웠는데.”
“….”
친구 앞에서 딸 자랑을 하는 화연의 모습에 임수아는 저도 모르게 황당하다는 듯이 입을 다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눈앞에서 딸자랑을 하는 그녀의 모습이 영 눈꼴시렸기 때문이었다.
“그래그래 너 잘났어. 일찍 결혼한거 티내니까 좋냐?”
가뜩이나 남자 복이 없는 임수아의 귀에는 화연의 딸 자랑이 그저 기만 행위로 비춰질 뿐.
그래서 그렇게 비꼬듯이 대꾸한 임수아였지만, 애석하게도 완전히 팔불출 그 자체가 되어버렸던 화연은 곧이곧대로 그녀의 비꼼을 받아들어버렸다.
“응. 엄청 좋아. 이런 귀여운 딸이 생겼는데, 진작에 할 걸 그랬어 진짜.”
“…그래, 너 잘났어요.”
너무 꼴뵈기 싫은 화연의 결혼 자랑에 임수아는 거의 반사적으로 욕이 튀어나올 뻔한 것을 간신히 참으며 오만상을 찌푸렸다.
“표정이 왜 그래? 너도 저번에 우리 애들이 귀엽다고 했으면서.”
“애들은 귀엽지만 너가 자랑하는 건 진짜 꼴뵈기 싫거든? 굳이 솔로인 내 앞에서 그런 걸 자랑해야겠어??”
마지막으로 연애를 했던 것이 고등학생 때의 일. 졸업 이후로는 단 한번도 남자를 만나 본 적이 없었던 임수아에게 있어 결혼한 걸 막 자랑하는 화연의 모습은 도저히 눈 뜨고 봐줄 수가 없는 기만질과 다를 게 없다.
“아, 미안. 내가 너무 주책이었나…?”
“그래 이년아. 그런 거 자랑하고 싶으면 교수님한테 가서 하던가. 아마 좋아라 들어주실 걸.”
“그, 그건 좀…”
나이가 많으신 교수님들은 대체적으로 학생들의 연애사에 아주 관심이 많은 편이다. 더군다나 그 연애의 골까지 들어간 결혼 이야기라고 한다면, 아마 환장하시면서 점심시간 내내 붙잡아둔 채 끊임없는 토크를 하려들 것이 뻔하다.
물론 나이가 나이인지라 원한다면 교수님들과도 무리없이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던 화연이었지만 말이다.
문제는 그랬다가는 학기가 끝날 때 까지 교수님들의 말친구가 반강제적으로 되어줘야 한다는 것. 당연히 그런 귀찮은 직책을 떠안게 되는 것은 화연에게도 절대 사양이었다.
“뭐, 애가 그린 것 치고는 잘 그렸네.”
본인의 일침에 그제서야 조용해졌다는 걸 확인한 임수아가 뒤늦게 그림에 대한 감상평을 남기며 피식 웃었다. 그러자 이에 화연 또한 그녀를 따라 웃으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고, 다시 한번 화면 속 그림을 바라보았다.
다시보고 또 다시 봐도 질리지가 않는 그림이다. 그 어떠한 유명 화가의 명작도, 이 그림에는 비할 바가 못된다고 생각할 정도로 세리의 그림에 푹 빠져버린 화연은 다시 저도 모르게 실실 웃으면서 그림 속에 그려진 본인의 모습을 확인했다.
…분명 엄마라고 인정받은거겠지. 수아의 말대로 좀 주책이긴 하지만, 그래도 자꾸 입꼬리가 올라가는 건 어쩔수가 없-
[띠링-]화연이 실실 웃으며 입꼬리를 광대뼈에다 걸치려던 그 순간, 핸드폰의 화면 상단에 잠시 알림이 뜨기 시작했다.
[긴급속보- 이상기후, 어디까지 가는가. 하와이에 전례없는 첫눈-]“….”
광대뼈까지 올라갈 기세이던 화연의 입꼬리가 일순간에 ㅡ자로 추락하며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그렇게 그녀의 영혼이 미소와 함께 순간 증발했던 것은, 분명 기분 탓 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