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Part-Timer Raises a Half-Elf RAW novel - Chapter (198)
알바생이 하프 엘프를 키우는 법-198화(198/245)
198
사건이 일어나기 불과 15분 전.
아직 하와이가 따뜻한 열대기후였던 그 시간에, 한스는 가만히 백사장 위에 앉은 채 혼자 멍을 때리고 있었다.
“…할 게 없군.”
이런 와중에도 모래사장에서 모래성을 지으면서 신나게 놀고 있던 수정이와 세리와는 다르게 애초에 덤으로 딸려와버린 한스. 그런 그에게 있어서 이런 외딴 무인도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일광욕에 몸을 맡기는 것 뿐이었다.
‘…이럴 시간에 헬스장에 갔으면 하체나 집중적으로 때릴 수 있었을텐데 말이지.’
이런 외딴 섬에 딸려오는 바람에 하루 일과인 운동도 제대로 못하게 되어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노예 신세나 다름없는 그에게 발언권이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그는 그저 한숨만을 내쉴 뿐이었다.
“…바다라, 확실히 직접 보는 건 처음인가.”
계속 멍을 때리다 지친 한스는 이윽고 주변의 경치나 즐기기로 하며 본인이 이렇게 직접 바다에 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가 살던 고향은 대륙 한가운데에 위치해 있었다. 그 덕에 바다와는 일절 연이 없었던 한스에게 있어 이런 아열대 지방의 섬은 무척이나 낯선 풍경이었다.
…뭐, 와보니까 나쁘지만은 않군.
그래도 경치는 좋은 게 눈은 지루하지가 않다. 그나마 그게 위안이라고 생각하며, 한스 마이어는 저 멀리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놀고 있는 애들을 바라보았다.
“세리야, 더 크게 만들까?”
“언니가 하고 싶은대로 다 해. 난 상관없어.”
“오케이~! 그럼 더 크게 만들어야지~”
…신났군 신났어.
아까부터 꽤나 그럴싸한 모래성을 차근차근 완공시켜 나가고 있언 수정이와 세리의 모습들에 한스가 나지막히 속으로 중얼거렸다.
작은 모래삽으로 새하얀 모래를 퍼다가 적당히 바닷물에 적시고, 조금씩 성의 형태를 중축해 나간다. 하도 태어날 때 부터 받은 축복이 많은지라 미술에 관한 축복도 가지고 있는지, 모래성의 형태는 어린애가 만든 것 치고는 아주 그럴싸 한 편이었다.
“재주도 좋지, 필요한 건 마법으로 뭐든지 다 만들어내는구만.”
한스는 수정이가 사용하고 있는 특제 얼음 모래삽을 바라보며 살짝 부럽다는 듯이 그렇게 중얼거렸다. 왜냐하면 소드 마스터인 그의 눈에는 수정이의 마법 만큼이나 편리한 능력이 따로 없었기 때문이었다.
얼음 마법으로 필요할 때 검을 만들어 사용할 수도 있고, 여차하면 얼음벽을 세워 임시로 진지를 구축할 수도 있는 아주 유용한 능력이다. 게다가 마법 그 자체의 위력도 최상위급.
진짜로, 시대를 잘못 타고 태어난 영혼이 아닐 수가 없다.
…아니다. 시대를 잘못 타고 태어난 것이 아니라 능력을 잘못 타고 태어난 것이라 해야 보다 정확하겠지.
저 하프엘프 꼬마에게 있어선 이 시대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 분명한 행운일 것이다. 이 지구라는 곳은 테라리움 대륙에 비해 참으로 평화로운 곳이었으니.
어린 시절 세상을 덮치기 시작한 재앙으로 인해 가족을 잃고, 그 복수심에 몸을 맡기며 스스로를 전장에 내몰으려고 했던 본인과는 전혀 다른 삶을, 저 아이는 이곳에서 마음껏 누리고 있다.
절반은 인간이며, 나머지 절반은 엘프인 아이. 엉뚱하고 말도 안되는 짓만 골라다가 사고를 치는게 일상이지만, 그렇다고 또 증오할 수는 없는 아이.
…지난 전쟁에서 저런 아이들이 엘프들 중에 몇이나 있었을까.
그리고 그중 또 몇 명이 목숨을 잃었을까.
엘프들이 세상에 멸망을 몰고 왔다고 모두가 말했었다. 그들이 평화로운 척 위선을 내세운 채, 탐욕에 눈이 멀어 세계수에 손을 대었다고.
모두가 엘프들을 증오하며 저주했다. 인간도, 오크도, 드워프도, 수인들도. 터전과 가족, 그리고 소중한 이들을 앗아갔다며, 그들은 정의라는 이름 하에 엘프들을 짓밟았다.
하지만 그렇게 되서 무엇이 해결되었는가.
엘프들을 멸족시킴으로써 소중한 이들이 되돌아왔는가?
그들이 역사에서 자취를 감춤으로써 부서진 고향땅이 본래의 모습을 되찾았는가?
세상을 멸망으로 치닫게 만들었던 재앙은 과연 멈췄는가?
대체 무엇을 위한 전쟁이었단 말인가. 그 무엇도 해결되지 않았는데.
복수하고자 하는 엘프들은 변변찮은 저항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 채 파국을 맞이했다. 제 자식들만은 살리고자 아이들을 차원 너머의 세계로 보냈으나, 그조차도 대부분이 살아남지 못했다.
그리고 그렇게 한 종족을 파멸의 끝자락까지 밀어붙이고 난 후에도 테라리움은 여전히 천천히 죽어가고 있다.
“위선의 탈을 쓴 배신자들, 이라…”
모두가 엘프들을 그런 멸칭으로 불렀었다. 한스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를 포함한 모두가 그 멸칭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철푸덕-]“으아아아?! 파, 파도 멈춰어!! 성이 다 무너지자나!!”
“그냥 확 다 증발시켜버릴까 언니?”
“….”
파도소리와 함께 수정이의 다급한 외침이 한스의 귓가를 찔렀다.
“…저런 덜떨어진 꼬마들에겐 너무 거창한 호칭이로군.”
이제와서 다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이미 전쟁은 지나갔고, 다른 편의 세계는 여전히 죽어가고 있으며, 지금의 나는 그토록 증오했던 엘프들과 한 지붕 아래에서 잘도 살아가고 있는데.
“아잇! 또 파도 때문에 무너졌자나!!”
해결할 수 없는 일을 고민한다고 해서 불가능한 것이 가능해지는 것도 아니다. 그저 당장 할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일을 행동으로 옮길 뿐.
“그러니까 언니, 그냥 바닷물을 싹 다 증발시켜버리면…”
지난 몇 년 간의 수행과 경험을 통해 그런 깨달음을 가지고 있던 한스 마이어는 그런 식으로 잡생각을 비우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근육 덩어리인 덩치와는 다르게 어딘가 홀가분해진 듯한 모습…
“더는 못참아!! 내가 가만 있쓸 거 같아?? 흥이다 흥!!”
[쩌저적-]…모습-
“그래에!! 확 다 얼어버려!!”
-모습…
“으디일 감히 파도 주제에 내 성을 뿌셔?! 콱 그냥!!”
…우라질 젠장할, 정신 사나워 죽겠군.
가뜩이나 생각을 정리하며 오랜 응어리를 덜어내는 중이었는데 소란스러워서 그럴 분위기가 다 깨져버렸다. 그 탓에 짜증이 제대로 난 한스 마이어는 좀 조용히 좀 놀라고 경고를 주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이봐 꼬맹이들, 놀거면 좀 조용-”
하지만 고개를 돌린 그 순간, 그는 경고 따위가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왜냐하면 열대지방의 바닷가에, 왠 극지방에서나 볼 수 있을법한 거대한 빙산이 난데없이 우뚝 솟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 맙소사. 이게 뭔…”
대형 선박 크기의 빙산을 봐버린 한스는 그대로 어이가 털려버린 채 그저 경악만을 내뱉었다. 그러자 이내 신나하는 수정이와 세리의 목소리가 그런 그의 귓가에 들려왔다.
“훗, 내 승리다 이 치사한 파도야!!”
“언니 최고. 나이스.”
빙산 가지고 파도가 못오게 막았다고 자랑하는 수정이와, 그런 수정이의 자랑을 따봉과 함께 받아주는 세리.
아무리 주변에 보는 사람들이 없다지만 그래도 너무 막 나가는 두 꼬마의 행태를 목격해버린 한스는 그대로 골머리를 앓으며 두 꼬마에게 다가갔다.
“이 꼬맹이들이 진짜… 너희들, 적당히라는 단어가 뭔지 알고나 있는거냐?”
“후훗! 적당히라는 단어 따윈 패배자들이나 쓰는 단어라고 해영이 언니가 그랬찌!”
“…그래. 그 여자도 정상이 아니라는 건 확실히 알겠군.”
본인부터가 제일 정상인에서 거리가 먼 주제임에도 뻔뻔하게 그 말을 입에 담는 한스. 하지만 한스가 그런 깨달음을 얻었던 말았던 아무 관심이 없었던 수정이는 다시 모래성 보수작업에 착수하기 위해 밑을 내려다보았다.
“….”
수정이가 내려다 본 그곳에는 이미 처참하게 파도에 의해 쓸려버린 모래성… 이었던 것 만이 남아있었다. 건 1시간 동안의 노력이 이렇게 허망하게도 단숨에 무너져버렸다는 걸 봐버린 수정이는 그대로 가만히 모래성의 잔해를 지켜보았고, 이내 단호히 말했다.
“귀차나. 딴 거 하고 놀래.”
참고로 애들은 금방 하던 것에 싫증을 느끼는, 그야말로 변덕쟁이의 표본이다. 그리고 수정이는 그중에서도 쉽게 빠져들고 쉽게 싫증을 느끼는 쉽사빠 중의 쉽사빠였다.
“한스 삼촌! 나 엄청 멋진 필살기 배우고 시퍼!”
“…이렇게 갑자기??”
갑자기 예고도 없이 훅 들어봐버린 수정이의 부탁에 한스는 황당하기 그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렇게 되물었다.
“응! 막 이러케 저러케 얍! 해서 악당을 한번에 무찌르는 필살기!”
“갑자기 그런 걸 배우고 싶다고 해도 곤란하다만…”
“아 왜에~!! 오늘 어린이날이자나! 내가 하고싶다는 거 다 들어줘야지!”
“미안하지만 난 그런 희안한 풍습에 동참하고 싶은 생각 없다. 애당초 이방인인 내가 왜 그런 걸…”
“가르쳐주면 아빠한테 월세 올리지 말라고 부탁할께!!”
“….”
…솔깃한데?
이한성이 겉으로는 막 아닌 척을 하긴 해도 그가 애들한테 약하다는 건 집안식구 모두가 다 알고있는 사실이다. 오늘처럼 그냥 애들의 억지를 무시할 수도 있었을 것을, 이렇게 굳이 들어주기 까지 하면서 하와이에서 노는 걸 허락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러니 만약에 수정이가 이한성에게 한스의 월세를 올리지 말라고 뗑깡을 부린다면, 분명 이한성은 겉으로는 억지 부리지 말라며 투덜대겠지만 결국 수정이의 말을 결국 들어줄 확률이 높다.
“…진짜겠지?”
“그럼! 삼촌 나 못 믿어?”
“….”
나 못 믿냐고 말하는 사람 중에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없는게 원칙이다만… 뭐, 확실이 요 꼬맹이 성격에 대놓고 거짓말을 하지는 않겠지. 그럴 이유도 없을테고.
수정이의 말에 잠시 머뭇했던 한스였지만, 그럼에도 그는 충분히 들어줄 가치가 있는 거래라고 판단을 내렸다.
“좋아, 그럼 거래 성립이다. 필살기를 가르쳐주지.”
“앗싸아~!! 뭔데뭔데?? 빨리 가르쳐 줘!!”
“재촉하지 말고 잠깐 멀리 떨어져봐라. 시범을 보여줄테니.”
한스가 말하기 무섭게 수정이는 잔뜩 기대하는 표정과 함께 바로 거리를 벌렸다. 그러자 충분히 안전한 거리만큼 아이들이 멀어졌다는 사실을 확인한 한스 마이어는, 곧바로 오러를 손에 집중해 검의 형태를 만들어냈다.
‘검이 있었으면 더 편했겠지만… 뭐, 집에 놓고왔으니 별 수가 없군.’
오러 블레이드. 본래는 검에 둘러 날을 보다 예리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사용하는 기술이지만, 검이 없는 지금은 순전히 오러만으로 검 그 자체를 만들어내는 것과 다름이 없어 효율이 극악인 처지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실전이 아닌, 그저 보여주기 위한 것 뿐이니 효율은 한스에게 있어서 문제가 되지 않았다.
“흡!!”
한스가 기합과 함께 더욱 많은 양의 오러를 불어넣기 시작했다. 그러자 오러 블레이드의 형태와 실루엣은 점점 더 짙어지면서 거대해졌고, 만반의 준비를 마친 한스 마이어는 이내 전방의 거대한 빙산을 바라보며 나지막히 호흡을 가다듬었다.
노리는 것은 파도를 가로막은 저 거대한 빙산. 행하는 것은 그저 전력을 다한 수평베기.
“베어져라!!”
[스릉-]우렁찬 기합소리와 함께 한스는 그대로 오러 블레이드를 휘둘렀다. 그러자 엄청난 위력의 풍압이 주변을 난장판으로 만들었고, 그와 동시에 눈앞에 서있던 선박만한 크기의 빙산은 단 일격에 정확하기 반으로 양단되었다.
약간 비스듬하게 절단된 빙산. 하지만 얼마나 깔끔하게 절단되었는지 주변에는 그 어떠한 소음도 울려퍼지지 않았다.
“우와앙!! 삼촌 대박!! 방금 그거 무슨 필살기야??”
멀리서 지켜보던 수정이가 막 흥분하며 달려와 한스를 닥달했다. 그러자 이에 한스는 오러 블레이드를 거두며 대답했다.
“기술에 이름 같은 건 없다. 그냥 수평베기일 뿐이지.”
“에에엥?! 그러면 안돼! 필살기에는 반드시 꼬옥 멋진 이름이 붙어야 한다구!!”
“그것 참 상상만 해도 오그라드는 생각이군.”
기술에 이름을 붙이는 건 괴짜들이나 하는 짓이다. 애초에 기술 같은 것에 이름 따윌 붙여봤자 실전에는 아무런 도움도 안되고, 기술을 사용하면서 기술명을 외치는 것도 상식적으로 매우 쪽팔린 일이니.
하지만 매직큐어에 푹 빠져있는 수정이에게 있어선 필살기에 기술명이 없다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는 사실이었다.
“그럼 삼촌 대신에 내가 붙여줄께! [하이퍼 빅토리 슬래시], 어때??”
“사양하겠다.”
유치하고 멋없는 이름인 것은 둘째치고 너무 길고 거추장스럽다. 만일 꼭 기술에다 이름을 붙여야 한다 해도, 저 이름은 절대로 아니다.
“[루나 임팩트 크로스]는?”
“여전히 길잖냐.”
왜 자꾸 굳이 단어를 3개 씩이나 이어붙이려고 드는 건지 모르겠다.
“으음… 그러면 [슈퍼슬래시]…?”
“…아무래도 넌 작명에는 소질이 없는 모양이로군.”
누가 이한성 딸 아니랄까봐 작명 센스가 완전히 바닥을 기는 수정이의 실력에, 한스는 포기하란 듯이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이에 수정이는 발끈하며 지금까지 매직큐어를 시청하며 얻은 기술명에 대한 총지식을 동원해 마지막으로 이름을 다시 한번 제안해보았다.
“[이클립스]!!”
“….”
…괜찮은데?
[이클립스]. 이세계인인지라 영어에 무지한 탓에 그 뜻이 뭔지는 전혀 아는 것이 없었던 한스였지만, 어감이 딱 취향에 들어맞은 모양이었다.“이클립스라… 마음에는 드는군. 무슨 뜻이지?”
“매직큐어의 최종 악당, 나이트메어 로드가 사용하는 필살기야! 이렇게 슉- 하면 콰광! 하고 막 지구고 뭐고 다 뿌셔버려!”
“….”
단어의 뜻을 물었는데 갑자기 왠 묻지도 않은 매직큐어 최종보스의 필살기를 우스꽝스럽게 재현하려 드는 수정이의 모습에 한스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수정이를 쳐다보았다.
…역시 기술에다 이름을 붙이는 건 좋은 생각이 아니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달은 한스 마이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