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Part-Timer Raises a Half-Elf RAW novel - Chapter (20)
알바생이 하프 엘프를 키우는 법-20화(20/245)
20
아기의 성장은 크게 3단계로 분류할 수 있다.
몸을 뒤집는 초급 단계, 바닥을 기어 다니는 중급 단계,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두 발로 땅을 디디고 걸음마를 떼는 고급 단계까지, 이렇게 총 3단계가 존재한다.
태어나자마자 걸어 댕기고 뛰어 댕기는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인간들은 태어나서 걷기 시작할 때 까지 걸리는 시간이 자그나마치 1년에 가깝게 걸린다. 다른 동물들에 비해 성장이 느려도 너무 느리다는 뜻이다.
그런데, 어째서 이한성의 아이는 태어난 지 달랑 2개월도 채 안된 주제에 어떻게 잘만 기어 다니고 할 수가 있는 걸까.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지…?’
이한성은 주변이 캄캄해진 가운데 집으로 향하는 길을 걸으며 곰곰히 오늘 깨달은 이상 현상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생후 2개월도 안 된 아기가 벌써부터 기어 다니고 물건을 부숴먹으려고 든다. 평범한 아기라면 절대로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현실적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 하지만…
“…현실적으로 생각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잖아.”
수정이와 만난 그날부터, 이한성의 일상은 더 이상 현실적인 사고방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이 되어버렸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키우기 시작한 아기는 인간이 아닌 하프엘프라는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줄 알았던 종족이고, 그것과 더불어 마법이니 시스템이니 하는 현실과는 영 동 떨어져 있는 개념들에 의해 이한성의 사고방식은 이미 평범함에서 멀어져 버린지 오래였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역시 짐작 가는 건 그것 밖에 없는데…’
며칠 전에 실수로 아기에게 사용했었던 [성장의 축복] 마법. 그때는 별 다른 변화가 없었기에 마법이 전혀 통하지 않았다고 생각했었지만, 아무래도 마법의 효과는 상상 외로 굉장했던 모양이다.
‘하긴… 스킬 설명에서 성장을 [가속] 시킨다고 했었지, 단번에 성장시킨다고 하지는 않았으니까.’
즉 마법을 사용하고 며칠 정도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수정이의 성장이 눈에 띌 정도로 진행되었다는 뜻이다.
“이게 좋은 소식이냐 나쁜 소식이냐…”
좀처럼 받아들이기 힘든 사실에, 이한성은 그렇게 홀로 한탄을 내뱉었다.
애가 벌써부터 기어 다닌다는 소리는 곧 있으면 걸어 다니기도 할 거고, 분유 대신 이유식을 먹거나 혼자 화장실에 가거나 하기 시작할 것이라는 소리다. 물론 그렇게 된다면 이한성의 일상이 조금 편해지기는 하겠지만, 마냥 좋은 점만 있는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아이의 성장은, 곧 집안 살림의 초토화로 이어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릇 부터 시작해서 핸드폰, 유리, 두루마리 휴지, 당장 집에 비싼 물건이 없기는 하지만 박살나고 깨지기 쉬운 물건은 수두룩하게 존재한다.
자칫해서 그릇이 깨진다고 하면 날카로운 파편들이 사방에 튀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애가 위험해진다. 덩달아 그걸 다 치워야 하는 건 이한성 본인의 몫이고 말이다.
‘뭐, 지금 당장은 아주머니가 돌봐주시고 계시니까 큰 문제는 없겠지.’
한참동안이나 근심을 속으로 늘어놓던 이한성은 결국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며 문제를 뒤로 미뤘다. 아니, 정확하게는 뒤로 미루려고 했다.
“…잠깐. 아주머니…?”
지금 수정이는 아주머니가 대신 돌봐주고 계신다. 그 말은 즉…
…아주머니는 고작 며칠 만에 기어 다닐 정도로 성장한 수정이의 모습을 실시간으로 지켜보고 계신다는 뜻.
“큰일났다.”
수정이의 정체나 시스템의 존재, 그리고 마법의 유무에 대해서 알고 있는 이한성과는 달리 집주인 아주머니는 방세를 받으며 사시는 아주 평범한 대한민국의 50대 어르신이다.
당연하게도 마법이니 뭐니 하는 것들 과는 일절 연이 없으신 분이라는 소리다.
너무 당연한 사실을 그제서야 깨달은 이한성은 곧바로 집을 향해 전력 질주를 하기 시작했다.
‘야 이한성 이 미친놈아. 깜빡할게 따로 있지, 이런 당연한 걸 깜빡하냐? 아주 그냥 우리 애 인간 아니에요~ 하고 광고를 하지 그래?’
속으로 자기 자신을 거하게 까내리고 욕해보는 이한성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본인의 실책이 없었던 일로 될 리는 만무했다.
그랬기에 이한성은 미친 듯이 달려서 금방 집 앞까지 도착하였다. 평소에 걸어서는 20분 가까이 걸리지만, 조금 과장을 보태서 10보다도 빠르게 집에 도착한 그는 곧바로 계단을 올라가 자신의 원룸 현관문 앞까지 달려갔고, 그대로 다급하게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가 마치 범죄 스릴러 드라마에서 나오는 한 장면처럼 외쳤다.
“아주머니!!”
당장 어떤 식으로 변명을 해야하는 걸까. 아직 변명거리도 생각해놓지 않았던 이한성이었지만 마음이 너무 급했던 나머지 그는 신발을 벗는 것도 잊은 채 그대로 집 안에 들이닥쳤다.
“갑자기 왜 소리를 지르고 x랄이야 인석아.”
“….”
이한성이 집에 발을 들인 그 순간, 어디선가 맛있게 풍겨오는 김치찌개 냄새와 함께 시큰둥한 집주인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별로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에 이한성은 당황하며 멍하니 아주머니를 바라보았다.
뭐지…? 되게 침착해 보이시는데…? 혹시 눈치 못 채신 건가?
분명 오늘 하루 동안 수정이를 돌보시면서 애가 벌써부터 기어 다니는 모습을 보셨을 텐데, 그런 불가사의한 광경을 목격하신 것 치고는 너무나도 태평해 보이신다.
“뭐해? 멀뚱히 서있지 말고 빨리 손 씻고 밥 먹어. 바닥 더러워지니까 신발도 벗고.”
“아, 넵.”
…얼떨결에 대답해버렸네.
왠지 모르게 거역 할 수가 없는 아주머니의 잔소리에 이한성은 조용히 신발을 벗고는 화장실로 향해 손을 씻었고, 그리고 곧바로 식탁에 앉아 따끈따끈하게 차려진 밥과 김치찌개를 바라보았다.
“…근데, 아주머니.”
“왜.”
“오늘 수정이 돌보시면서… 뭔가 이상한 일은 없었나요…?”
“이상한 일이라면 뭐 어떤 거?”
“예를 들면 애가 기어 다녔다던가…”
“그럼 애가 기어 다니지, 날아댕기냐? 쓸데없는 소리 말고 빨리 밥이나 먹어. 다 식겠다.”
“….”
달리 반박할 수가 없는 아주머니의 말에 이한성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맛있게 차려진 밥상을 조금씩 퍼먹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모르시는 것 같지?’
아주머니의 저 태평한 반응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뭔가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깨달으시지 못하신 모양이다. 이한성은 그리 짐작하며 김치찌개 안에 들어간 참치조각을 골라다 밥 위에 올려놓고 입에 집어넣었다.
‘그런데… 왜 모르시는 거지?’
반응으로 보아선 모르시는 게 맞는 것 같은데, 하루 종일 애를 돌보시고도 위화감을 느끼지 못했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이거 답답하네… 확 그냥 돌직구로 물어볼 수도 없고.’
마음 같아서는 바로 스트레이트로 물어보고 싶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괜히 일만 더 복잡해질 것 같다는 걸 직감한 이한성은 그냥 말을 꺼내지 않기로 하며 차려져 있던 식사를 금방 먹어치웠다.
“잘 먹었습니다.”
“설거지는 총각이 알아서 해. 난 이만 가볼 테니까.”
“아, 네. 감사합니다 아주머니.”
“감사는 집어 치우고 애나 잘 돌봐. 또 밤새도록 울리지 말고.”
집주인 아주머니는 그렇게 이한성의 감사인사를 생 까고는 그대로 떠나버리셨다.
‘친절하신건지, 아니면 까칠하신 건지 감이 안 잡히네.’
애도 자진해서 돌봐주시고, 밥도 차려주시는 걸 보면 확실히 나쁜 분은 아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저 까탈스러운 말투와 무뚝뚝한 표정, 그리고 깐깐한 성격을 보아하니 또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기에도 뭣 한 것이다.
“뭐… 영 찝찝하긴 하지만 들킨 것 같지는 않으니까 다행인가.”
어찌되었든 간에 아주머니가 수정이의 정체를 의심하거나 하지는 않으셔서 천만 다행이다. 이한성은 그렇게 속으로 안도하며 설거지거리들을 싱크대로 하나씩 옮기기 시작했다.
“응?”
순간 무언가가 이한성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았다. 그러자 그런 잡아 댕기는 듯한 감촉을 느낀 이한성은 조심스럽게 발밑을 내려다보았다.
그렇게 밑을 내려다보자 보인 것은 역시나 수정이었다. 기어 다니기 시작한 뒤로 집안 곳곳을 탐방하는데 재미를 들여 버린 깜찍한 아기 하프엘프는 마치 안아달라는 듯이 이한성의 바짓가랑이를 계속해서 툭툭 끌어당겼고, 이에 이한성은 들고 있던 설거지 거리를 사뿐하게 내려놓으며 수정이를 안아들었다.
“나 설거지해야 하니까 저기 거실에 가 있어.”
[절래절래-]수정이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러나 이한성은 아기의 거절 의사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수정이를 거실까지 데리고 갔고, 이내 다시 바닥에 내려주고는 설거지를 하기 위해 부엌으로 돌아왔다.
“수세미가 어딨더라…”
“아부으!”
“….?”
왠지 힘을 잔뜩 주고 있는 듯한 옹알이 소리가 이한성의 귓가에 들려왔다. 이에 반사적으로 거실을 향해 고개를 돌린 이한성은, 곧 이어서 충격적이고도 가슴이 철렁이는 순간을 목격 하였다.
수정이가 소파를 붙잡고 두발로 힘겹게 일어서는 순간을.
“으부부아…!”
금방이라도 중심을 잃고 쓰러질 것만 같은 위태로움. 저러다가 바닥에 쿵 소리 나게 넘어지는 건 아닐지, 걱정이 절로 드는 모습을 본 이한성은 곧바로 설거지를 까마득하게 잊어버린 채 반사적으로 거실까지 뛰어갔다.
“야야야야야야!! 너 위험하게 지금 뭐-”
“아부?”
[미끄덩-]순간 위태위태하던 수정이의 작디작은 두 발이 바닥에서 미끄러졌다.
생각 할 틈은 없었다. 이한성은 본능적으로 넘어지려는 수정이를 구하기 위해 몸을 던졌다. 그러나 제시간에 닿기에는 시간이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원래대로라면 이한성의 습득한 스킬, [위기감지] 가 발동해 주변의 시간이 느리게 흘러갔을 테지만 이미 낮에 핸드폰을 구하기 위해 한번 사용했기 때문에 스킬은 발동하지 않았다.
시간에 맞춰서 구할 수는 없다. 이대로라면 수정이는 손이 닿기도 전에 바닥에 넘어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민방위 훈련과도 같은 울음소리가 온 집안을 메울 것이다.
그 찰나의 순간 동안 그런 사실을 직감한 이한성은 무의식적으로 눈을 질근 감았다. 그리고 그렇게 쿵 소리와 함께 사이렌 같은 울음소리가…
…
….
…..?
……왜 안 들리는 거지?
1초가 지나고 2초가 지나고, 그렇게 5초가 지나고도 주변은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무언가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이한성은 이윽고 감고 있던 눈을 떠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설마 [위기감지] 스킬이 뒤늦게 발동한 것일까? 아니, 그건 아니다. 아직 재사용 대기 시간이 1시간 정도 남아있으니 스킬이 발동한 것은 아니다.
그럼 대체 어째서 주위가 이렇게나 조용한 것일까.
그런 질문에 대한 이한성의 대답은 간단했다.
수정이가 넘어지는 일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
넘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두발로 걷고 있는 것도 아니다.
“….날고 있네?”
날고 있다. 중력을 거부하고 공중에 붕 뜬 채 좋아라 웃으며 둥둥 떠다니고 있다.
“꺄르르르륵!!”
“….”
너무 황당해서 말이 안 나온다. 하도 말도 안 되는 일을 많이 겪어서 더는 황당해 할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이 정도로 황당한 광경을 눈에 담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내가 대체 뭘 키우고 있는 거지?”
이한성이 걷는 법 보다 빠르게 나는 법을 터득한 수정이의 모습을 바라보며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그때 까지만 해도 이한성은 알지 못했다.
앞으로 계속해서 다가올 비교조차 할 수 없는 황당하고도 험난한 고생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