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Part-Timer Raises a Half-Elf RAW novel - Chapter (200)
알바생이 하프 엘프를 키우는 법-200화(200/245)
200
하와이에서의 소동이 일어난지 불과 이틀 째.
결국 그날 서로에게 누명을 씌우며 위기를 모면하려 했던 이한성과 한스, 그리고 세리는 집으로 돌아와서 화연에게 호되게 잔소리를 들은 바람에 그 이후로 최대한 사고치지 않게 몸을 사리고 있는 중이었다.
그렇게 모두가 당분간 사고치지 않으려고 최대한 조심하기 위해 노력을 들여서 일까. 실제로 지난 이틀동안 집안은 눈에 띌 정도로 평화로움을 유지할 수 있었다.
물건이 박살나는 일도 없었고, 마당이 엉망이 되는 일도 없었으며, 집안이 냉동고가 되어버리는 일 또한 일어나지 않았다. 그것도 이틀 연속으로.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 하루에 건 네다섯 번 꼴로 사고가 일어나는 것이 일상이었다는 것을 감안했을 때 지난 이틀은 말 그대로 기적이 일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누가 알았겠는가.
그 지난 이틀 동안의 평화가, 그저 폭풍전야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아빠! 우리 다음주에 운동회한대!”
“….”
평소보다 더할나위 없이 아주 평화로웠던 저녁 시간에, 난데없이 던져진 수정이의 사고 예고장에 이한성은 그대로 얼어붙고 말았다.
“…뭘 한다고?”
“운동회!”
“….”
혹시나 잘못 들은건가 싶어 다시 한번 물어본 이한성이었지만, 애석하게도 되돌아온 대답은 똑같았다.
운동회. 초등학교 부터 고등학교 까지 빠질래야 빠질 수가 없는 학교의 빅 이벤트 중 하나.
학생들을 청팀과 백팀으로 나눠 보통 릴레이 달리기 시합이나 단체 줄넘기, 그외 이것저것 간단한 종목들로 경쟁을 하게 만들어 스포츠맨쉽을 기르게 하는… 건 아니고 그냥 애들이 마음껏 뛰어노는 날이라고 보면 편하다.
하지만 문제는 수정이가 참가하는 운동회가 결코 정상적이지가 않을거라는 것.
“…벌써부터 머리가 아파오네.”
대형사고를 친지 얼마나 됐다고 바로 다음주에 또 사고가 일어나게 생겼다. 부모로서 아이의 운동회 소식에 기뻐해야 하는 것이 정상이었지만, 그럼에도 이한성은 도저히 기뻐할 수가 없었다.
“모야~! 반응이 왜 그래애!!”
“수정이 넌 말해줘도 모를 걸…”
이 아이가 알까요? 본인의 전과들을…
지금까지 수정이가 저질러온 사고들을 일일히 나열하자면 여백이 부족할 정도다. 그럼에도 그걸 아직까지도 자각하지 못하는 수정이의 모습에 이한성은 허탈한 미소를 지었다.
“운동회? 그건 또 뭐지?”
2시간째 거실에서 스쿼트 자세를 유지하고 있던 한스가 불쑥 끼어들며 물었다. 이세계인인 그에게 있어 운동회는 어린이날과 마찬가지로 아주 생소한 개념이었다.
“말 그대로 학교에 모여서 운동으로 시합하는거야.”
“호오… 그거 참 흥미롭군. 이른바 누가 더 강한지 우열을 가리는 대회라는건가.”
운동이라는 단어가 들어가서 흥미가 생긴건지, 한스는 그대로 스쿼트 자세를 풀고 일어났다.
“좋아. 그 대회, 나도 참전하도록 하지.”
“뭔 개소리야… 니가 거길 왜 나가 멍청아.”
다짜고짜 애들끼리 하는 운동회에 직접 나가겠다고 선언하는 한스의 모습에 이한성은 진짜 좀 모자란 놈을 쳐다보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슬슬 몸을 풀 일이 필요했던 참이다. 이렇게 된 거 내가 직접 나서서 활약하면 되는 거 아닌가?”
“미친놈… 운동회가 무슨 너네 세계에 있는 검술대회인 줄 알아? 그리고 학교 운동회는 애들만 참가할 수 있거든??”
운동회라는 걸 착각해도 단단히 착각하고 있는 한스에게 한소리 하자, 그는 김이 샌다는 표정을 지으며 다시 스쿼트 자세로 되돌아갔다.
그러자 이에 이한성은 다시 본론으로 되돌아가 수정이를 바라보며 나지막히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수정아. 아빠가 지금부터 너한테 질문을 할거야. 예스 아니면 노로 대답해야된다. 알겠지?”
“훗! 얼마든지 해바!”
수정이가 자신 있다는 웃음과 함께 팔짱을 끼며 거들먹거렸다. 하지만 이한성은 그런 수정이의 태도를 일채 무시한채 곧바로 첫번째 질문을 던졌다.
“운동회는 전쟁이 아니다. 예스 올 노?”
“Yeeeeeeeeees!! 전쟁이다!!”
“….”
하… 내 이럴 줄 알았지.
어떻게 첫 문제부터 이렇게 예상을 빗나가지 않을 수가 있을까.
“틀렸어 이것아. 대체 뭘 어떡해야 운동회가 전쟁이 되는건데???”
“운동회는 승부! 그리고 승부는 곧 전쟁! 그러니까 이건 전쟁이야!”
“아오 진짜…”
혈압 높아지는 소리가 다 들리는 듯한 걸 느끼며 이한성은 뒷목을 붙잡았다.
“잘 들어라. 운동회는 전쟁 같은게 아니야. 부모들끼리 누구 애가 더 잘났냐를 겨루는 경쟁전이지.”
“? 그런거야??”
“그런거야.”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이 난단 말이지. 초등학교 2학년 때였나… 애들이랑 부모랑 같이 팀을 짜서 하는 경기가 있었는데, 아주 부모들끼리 신경전이 대단하더구만. 애들보다 부모들이 더 적극적이야.
그때 당연하게 혼자만 부모가 안와서 경기에서 빠져야 했던 이한성은 그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며 자조가 섞인 웃음을 지었다.
“암튼, 중요한건 전쟁 같은건 절대 아니니까 살살 해라 이거야.”
“살살이라는게 어느정도야?”
“일단 당연히 마법 사용은 안되지.
“…!”
마법 사용은 금지라는 말에 순간 흠칫한 수정이. 하지만 그것도 잠시, 수정이는 그래도 상관 없다는 듯이 어설프게 웃으며 처음부터 그렇게 생각했다는 척 대답했다.
“그, 그러엄~! 당연하지! 아빤 내가 그것도 모를 것 같아?”
“참고로 오러 사용도 금지다.”
“!!!”
마법에 이은 2차 제한에 수정이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급속도로 사라져갔다. 필시 마법 대신 오러로 깽판을 칠 생각이었던 모양이다.
“그, 그런게 어딨써! 운동회는 항상 최선을 다해 임해야 한다고 선생님이 그랬단 말야!!”
“다른 애들은 몰라도 넌 최선을 다하면 안돼 이것아… 누구 하나 병원에 실려가는 꼴 보고 싶어??”
“그치마안…”
“그치만이고 뭐고 마법이랑 오러는 무슨 일이 있어도 사용 금지다. 오케이?”
“….”
“대답.”
“…네에.”
수정이가 풀이 잔뜩 죽은 목소리로 마지못해 알아들었다는 듯이 대답했다. 하지만 그런 수정이의 대답을 들었음에도, 이한성은 결코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저러고 또 방심하면 사고치겠지.
지금까지 수정이가 알겠다고 해놓고 하지 말라는 걸 기어코 했던 경우가 몇번이었던가. 아마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삑- 삑- 삑- 삐비빅-]“다녀왔습니다.”
갑작스럽게 현관문쪽에서 도어락을 푸는 소리와 함께 화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래도 방금 막 대학에서 돌아온 모양이었다.
“? 다들 거실에서 뭐 하고 있었어?”
집에 발을 들이기 무섭게 다같이 거실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모습들을 본 화연이 뭔가 있다는 낌새를 눈치채고는 물었다.
“얘 다음주에 운동회래.”
“운동회? 아~ 난 또 뭐라고.”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서 물어봤더니 그냥 운동회 때문이라는 이한성의 대답에 화연은 괜히 걱정했다는 말투와 함께 방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녀가 곧장 방에 들어가는 일은 없었다.
“뭐라고??? 다시 한번 말해봐.”
마치 ‘내일 지구가 멸망한대’ 라는 말이라도 들은 듯한 표정. 방으로 가던 도중에 갑자기 유턴을 꺾고는 거실로 되돌아온 화연이 그렇게 묻자, 이에 이한성은 피곤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잘 들었으면서 뭘 또 물어보고 그래.”
“수, 수정아… 운동회가 다음주라는거… 사실이니…?”
대답을 들어놓고도 어지간히 현실도피를 하고 싶었는지 수정이에게 물어보는 화연.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런 그녀의 물음에 수정이는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응! 엄마도 올꺼지??”
“아하, 아하하, 아하하하… 그럼… 당연히 가야지… 하하…”
와… 참 대단하다 대단해. 저 소식을 듣고도 그 와중에 수정이가 상처받을까봐 웃으면서 대답하는 거 보소… 역시, 600년 산 경험은 어디 안간다는건가.
감탄할 수 밖에 없는 화연의 행동에 이한성은 속으로 박수를 치며 존경스럽다는 듯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저기 그런데 수정아…”
“응?”
화연이 뭔가 꼭 확인해야 할 게 있다는 듯이 수정이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리고는 이내 무척이나 진지한 표정과 함께 아이에게 물어보았다.
“…운동회는 전쟁이 아니라는 거, 알지?”
“그거 아까 내가 물어봤어.”
부부는 서로 닮는다고. 아까 자신이 수정이에게 물어봤던 것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같은 질문을 하는 화연의 모습에, 이한성은 헛수고라고 말하듯 수정이를 대신해 그리 대답했다.
“뭐라고 대답했었는데…?”
“뭐라고 대답했었을 것 같아?”
“….”
[털썩-]믿고 싶지 않았던 현실을 직시하고 만 화연은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러자 이에 수정이는 당황하며 우왕좌왕 그녀를 살폈다.
“엄마 어디 아파?? 혹시 배고파서 그러는거야??”
“ㅎㅎㅎ…”
본인이 원인이라는 건 전혀 알지 못한 채 걱정해주는 수정이의 반응에 화연은 그저 울면서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아! 알겠따! 아빠가 밤마다 괴롭혀서 그러는거지!”
“쿨럭!!”
쟤, 쟤가 갑자기 뭐래는거여…??
가만히 있다가 난데없이 뼈를 맞아버린 이한성. 피를 토할 기세로 기침을 내뱉어버린 그는 어이가 안드로메다까지 날아가버린 표정과 함께 수정이를 쳐다보았다.
“괴, 괴롭히다니, 그게 무슨 소리니 수정아…?”
화연이 오해의 소지가 다분한 수정이의 말에 얼굴을 토마토처럼 붉히며 당황한 목소리로 물었다.
“난 알아! 어제 밤에 엄마가 하지 말랬는대도 아빠가 자꾸 장난치는 소리가 문 밖으로 다~ 들렸는걸?”
“고만해! 거기까지!!”
듣다 못한 이한성이 결국 필사적으로 수정이의 입을 막아 나섰다. 그러자 이에 수정이는 갑자기 왜 이러냐는 듯이 항의하는 얼굴로 제 아빠를 쳐다보았다.
“얌마! 넌 대체 니 부모님의 사생활을 어디까지 까발리고 싶은거야?!”
“그러게 엄마를 괴롭히지 말았어야지!”
“내가 괴롭히긴 뭘 괴롭혀 임마!! 어제 그건 그냥…!”
이한성은 그 이상 말을 이어갈 수가 없었다. 그 어떤 부모가 애 앞에서 뜨밤에 대한 썰을 풀 수가 있단 말인가.
“…그냥 다 내 잘못인 걸로 하자…”
수정이에게 그렇고 저런 이야기에 대한 설명을 하느냐니 차라리 그냥 누명을 쓴 채로 이 이야기를 여기서 덮어버리는게 최선이라고 판단한 이한성.
“것 봐! 맞자나!!”
“….”
자신의 생각이 맞았다는 듯이 항의하는 수정이었지만 이한성은 그런 딸아이에게 대꾸할 기력이 전혀 없었다.
아니… 왜 하필 어젯밤에 그걸(?) 엿들어가지고… 대체 어디까지 엿들었던거야?? 어제 한 새벽 3시까지 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아놔 진짜…
좀 격하게(?) 했다는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그걸 후회하지는 않는다. 그렇게 반성의 기미가 일절 보이지 않는 생각과 함께, 이한성은 힘없이 안방으로 빤스런을 쳐버렸다.
“엄마! 다음에도 아빠가 또 괴롭히면 언제든지 말해! 내가 꼭 혼내줄께!”
“아하하… 우리 수정이, 참 든든하구나… 아하하…”
도망쳐버린 이한성을 보곤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수정이의 모습에, 화연은 이미 완전 빨갛게 익어버린 얼굴로 애써 웃으며 수정이를 칭찬하였다.
웃는게 웃는게 아니다. 누가봐도 그런 얼굴이었지만 당연히도 이럴때만 눈치가 없는 수정이가 그 사실을 알아챌 리가 없었다.
결국 그렇게 수정이에게 완전히 넉다운을 당해버린 이한성과 화연.
운동회에 대한 걱정은 진작에 잊혀지고 그렇게 두 사람이 수치심만 가득한 패배를 맞이해버린 와중, 혀를 차며 조용히 궁시렁거리는 이가 한명 있었다.
“써글 놈들…”
…결혼을 못해 서러운 전직 소드 마스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