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Part-Timer Raises a Half-Elf RAW novel - Chapter (203)
알바생이 하프 엘프를 키우는 법-203화(203/245)
203
수정이가 대형 사고를 치기 불과 5분 전.
맨 앞에 일렬로 선 채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거니와 지루하기만 하던 교장 선생님의 훈화 말씀을 한쪽 귀로 듣고 흘리고 있던 수정이는 문득 교장 선생님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궁금증에 휩싸일 수 밖에 없었다.
“….”
훈화 말씀은 귀담아 듣지도 않으면서 교장 선생님을 빤히 쳐다보고 있던 이유는 단 하나.
햇빛에 의해 반사되어 매우 반짝이는 교장 선생님의 정수리가, 수정이의 시선을 자꾸만 사로잡았기 때문이었다.
“우와, 신기하다.”
“…뭐가?”
수정이의 혼잣말을 들은 하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선생님들에게 들키지 않게 속삭이는 목소리로 물었다.
“저 아저씨 머리 말이야, 되게 반짝반짝해.”
“….”
뭐가 신기한가 싶어서 물어봤더니 갑자기 교장 선생님의 치부를 걸고 넘어지는 수정이. 그런 얼탱이가 없는 친구의 궁금증에, 하나는 무척이나 황당해 하며 수정이에게 충고했다.
“아빠가 그랬는데, 저런 사람들을 보면 모른 척 해주는게 예의랬어.”
“그치만 모른 척 할 수가 없는걸?”
모른 할래야 모른 척 할 수가 없다. 자꾸만 시선을 강탈하는 교장 선생님의 빛나는 정수리로 부터 시선을 뗄 수가 없었던 수정이는 이윽고 한술 더 뜨는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저 아저씨 머리는 왜 반짝거리는걸까?”
“그거야 머리카락이 많이 없으셔서 그렇겠지…”
“머리카락이 왜 없는데? 누가 다 뽑은걸까?”
“저런 걸 탈모라고 한대. 힘든 일을 많이 하시면 그렇게 된다고 아빠가 그랬어.”
정작 하나는 알지 못하지만 사실 하나의 아버지는 탈모 초기 환자이시다. 그렇기 때문에 아빠로 부터 그런 지식들을 들은 적이 있었던 하나는 사뭇 존경스러운 눈빛으로 교장 선생님을 바라보고 있었다.
“분명 훌륭하신 어른이라서 힘든 일을 많이 하신걸꺼야.”
“으음… 우리 아빠는 훌륭한 어른 일 수록 글러먹은 사람이라고 그랬는데…”
자고로 어른이란 거짓말 잘 하고 치사하고 더럽고 배은망덕 한 법.
그런 염세적인 가르침을 이한성 으로부터 전수받은 수정이가 영 못 믿겠다는 얼굴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런 생각 하면 못써. 그리고 곧 있으면 말씀 끝나니까 들키지 않게 조용히 해.”
이 이상 몰래 소곤거리며 떠들어댔다가는 선생님들에게 들켜서 혼날 수도 있다. 항상 모범적인 모습을 보이려고 애썼던 하나는 그렇게 되지 않게 그 이상 아무말도 하지 않으며 얌전히 교장 선생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다.
“-이상으로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해주신 모든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교장 선생님의 한마디와 함께 길고 길었던 훈화 말씀이 막을 내렸다. 그러자 이에 하나는 다른 학생들과 같이 박수를 치기 시작했고, 선생님들한테 떠드는 모습을 들키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한시름을 놓았다.
하지만 옆자리 친구의 말 한마디는, 그런 하나의 마음을 철저하게 깨부셔버렸다.
“아저씨! 저 궁금한 거 있어요!”
“???”
갑자기 무슨 수업 시간도 아니고 번쩍 손을 들어 질문을 올린 수정이. 바로 옆에 서있던 친구가 그런 어처구니 없는 짓을 하자, 하나의 얼굴은 그대로 충격과 공포로 물들어버렸다.
“그… 호기심이 강한 학생인가 보군요? 궁금한게 뭔가요?”
“아저씨는 왜 머리에서 빛이 나요?”
하지만 이어지는 수정이의 질문은 이미 충격과 공포로 가득했던 하나의 얼굴을 혼돈의 카오스로 물들여 버릴 뿐이었다.
“수, 수정아아! 너 뭐하는거야 지금?!”
“그치만 궁금하단 말야!”
“아무리 궁금해도 그렇지! 그런 걸 대놓고 물어보면 어떠케!!”
세상에는 아무리 궁금해도 몰라야 할 것들이 있다. 교장 선생님의 탈모 원인또한 그런 몰라야 할 것들 중 하나다.
“풉, 푸흐… 아흡…”
주변 선생님들이 하나같이 수정이의 질문에 이를 악 물며 웃음을 참기 시작했다. 금방이라도 폭소가 터질 것만 같은데 웃음을 참아야 한다니, 아주 예상치도 못했던 곤혹이었다.
“그… 학생은 이름이 뭔가요?”
“이수정인데요?”
“아… 그, 이수정 학생? 원래 사람 머리는 나이가 들 수록 빠지는 법이에요.”
“? 왜요?”
다행히도 수정이의 질문에 인자한 미소를 지으시며 친절하게 대답해주신 교장 선생님이었지만, 수정이의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며 멈출 생각이 없었다.
“그만! 그마안!!”
그칠 줄을 모르는 폭주 기관차, 수정이의 만행에 실직 위기까지 느껴버린 양혜미 교사가 다급하게 나서며 수정이의 입을 막았다.
“죄송합니다 교장 선생님! 전부 다 제 책임입니다!”
“? 선생님이 저 아저씨 머리카락을 뽑은거에요?”
자기 책임이라는 양혜미 교사의 말을 교장의 탈모에 책임이 있다는 식으로 잘못 오해 해버린 수정이.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어도 일이 수습될까 말까 하는 판에 그런 식으로 더 불을 질러버린 탓에 양혜미 교사는 거의 울며불다 싶이 하며 수정이에게 메달렸다.
“제발 그만하자 수정아… 응? 부탁이니까 제발… 계속하면 선생님 큰일나요 진짜…”
…인생 살기가 참 힘들다는 사실을 20대 후반에서야 다시 한번 깨우친 양혜미 교사였다.
——————————-
“뉘집 앤지 모르겠지만, 거 되게 당돌한 애네 그려.”
“저런 애들이 나중에 커서 크게 성공하더라.”
“저런 애가 진짜 세상에 있긴 있나보구나…”
수정이로 인해 벌어진 한바탕 소동으로 주위 사람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내뱉으며 떠들어댔다.
“그렇다는데요? 수정이 아버님 어머님.”
“….”
“….”
주변 사람들의 말을 듣고있던 해영이가 피식 웃으며 아직도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이한성과 화연을 놀렸다.
“쟨 대체 뭔 생각을 하고 저런 질문을 한거야…”
건드릴 게 따로 있지, 탈모인을 건드려? 탈모인이 얼마나 무서운지 몰라서 저러는건가??
세상에서 잃을 것이 없는 사람보다 무서운 사람이 따로 없다고 하지 않는가. 실제로도 더 이상 잃을 머리가 없는 그들은 절대로 적으로 돌려선 안되는 이들이다.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
“그래도 교장 선생님이 온화하신 분이라서 다행이야… 화도 한내고 그냥 넘어가셨잖아.”
화연이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안심하기는 아직 이르지 않나? 아직 그 운동회라는 거, 시작도 안 한 모양이다만.”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한스가 진짜 위기는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며 겨우 긍정 회로를 돌리고 있던 화연에게 찬물을 끼얹었다.
“…세리야, 잠깐 주먹 좀 쥐어볼래?”
“? 이렇게?”
“응 그래. 그리고 그대로 주먹을 한번 앞으로 뻗어봐.”
[빠각-]화연의 지시대로 세리는 주먹을 인정사정없이 앞으로 뻗었다. 그러자 그렇게 어린 드래곤 소녀가 내지른 주먹은 한스 마이어의 뒤통수를 후려쳐 전직 소드 마스터를 한방에 넉다운시켜 버렸다.
“고마워 세리야. 덕분에 좀 조용해졌어.”
“….”
애한테 사람의 뚝배기를 깨버리게 만들어놓고는 고맙다고 하는 화연.
…어째 가면 갈 수록 다들 서서히 미쳐가고 있는 듯한 기분이… 이것이 광기?
이한성이 바닥에 엎어져 움찔거리는 한스를 바라보며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렸다. 애초에 처음부터 주변에 정상인 따윈 없었던 것이 팩트였지만, 그렇다고 정상인이 아니었던 인간들이 더더욱 정상인이 아니게 되는 것이 불가능한 것도 아니었다.
“아빠! 엄마!!”
모두가 다 함께 광기로 물들어가던 그 순간, 저 멀리서 이 모든 광기의 원인인 수정이가 백팀의 셔츠를 입은 채 활짝 웃으며 달려왔다.
“봤지?? 아까 그 아저씨 머리에서 빛나는거!”
“…그래, 봤지. 그러니까 너 어디가서 내 딸이라는 말 하지 마라.”
“?! 왜, 왜?! 나 뭐 잘못했써??”
“그걸 몰라서 묻냐?!”
이 무슨 순수악이란 말인가. 천벌 받을 짓을 해놓고도 자각이 없다니.
“탈모 온 사람 건드리면 삼대가 대머리라는거 몰라?! 대체 교장 선생님한테 무슨 원한이 있어서 그런거야???”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건데…”
“그게 더 나쁜거야 임마! 모르고 했다는게 제일 악질이잖아!”
의도적으로 했다면 어른한테 무슨 말버릇이냐고 막 항의하면서 화를 내기라도 할 수 있지. 하지만 그런 것도 아니라 그냥 순수하게 궁금해서 물어본 것이라면 화를 낼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한마디로 본인은 상대방의 뼈를 때리고, 자신은 아무런 피해도 받지 않고 안전하게 숨는 아주 악질적인 방식이라는 뜻.
“암튼 수정이 너, 앞으로 탈모 온 사람들은 절대로 건드리지 마. 고소당하기 싫으면. 알겠어?”
“치이… 네~”
수정이가 볼을 뾰루퉁 부풀리며 대충 알겠다는 듯이 건성으로 대답했다.
…백퍼 내가 한 말을 잊고 나중에 또 이러겠구만. 저러다가 진짜 한번 된통 데여봐야 정신을 차리지.
“하아… 그래, 뭐 알았으면 됐어.”
이렇게 말을 해봤자 어차피 나중에 잊어버리라는 것을 알았던 이한성은 괜히 진 빠지기 전에 이쯤에서 그냥 넘어가기로 하였다.
“그나저나 운동회 시작한 것 같은데, 왜 경기하러 안가고 여기에 온거야?”
“아! 맞다!! 깜빡하고 있었다!!”
이한성의 물음에 수정이가 손뼉을 딱 치더니, 이내 다짜고짜 이한성과 화연의 손을 잡고 같이 가자는 듯이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 왜 그래 갑자기?”
“선생님들이 엄마랑 아빠 데리고 오랬어!”
“…? 왜??”
“나두 몰라!”
…보아하니까 선생님들 설명을 제대로 안들었구만.
뭐, 대충 뭐 때문인지는 짐작이 가지만 말이야.
선생님들이 애들보고 부모님을 데려오라 했다는 건 십중팔구 운동회 경기 중에 부모님과 함께 뛰는 활동이 있다는 뜻이다.
어렸을 적에도 같이 뛸 부모님이 없어 운동회 때 마다 항상 선생님과 함께였던 기억이 선명했던 이한성은 어렵지 않게 상황을 파악하고는 화연과 함께 수정이의 뒤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보통은 부모님 한분만 부르지 않나? 대체 무슨 경기를 하려는거길래 부모님을 둘 다 부르라는거지?
부모님과 함께 하는 경기라고 해봐야 2인 3각, 혹은 릴레이 경주 같은, 아주 제한적인 경기들 뿐이다. 애초에 애들 놀라고 만든 경기에 어른이 참가해봤자 밸런스만 붕괴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니.
“…부모님 안오신 애들만 놀림받게 생겼구만.”
이한성이 어릴 적의 쓰라린 기억을 떠올리며 참 씁쓸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그러자 이에 화연이 동감이라는 듯이 그의 혼잣말에 대답하였다.
“사람은 자신들과 다른 점이 있는 사람을 이상하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니까. 어린 아이라면 더더욱 그렇고.”
어린 아이들은 본인의 행동이 잘못 되었다는 다른 누군가가 알려주기 전 까지는 알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본인과 타인의 다름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상하다고만 생각하는 것이다.
“아냐!! 하나는 이상한 애 아니야!!”
순간 수정이가 걷다가 말고 뒤를 돌아 이한성과 화연에게 항의했다.
“…? 갑자기 뭔 소리야??”
“하나는 이상한 애 아니라구!”
“아니, 그러니까 갑자기 하나 얘기가 왜 나오는데??”
갑자기 이게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인가 싶어하며 이한성이 묻자, 수정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
“…하나가 이상한 애라구 말하던거 아니었써?”
“우리가 언제??”
“아빠랑 엄마가 방금 부모님이 안오신 애들은 이상한 애들이라고 했잖아…”
“그런 말 한 적 없거든? 이상한 애 취급 받는댔지, 우리가 언제 이상한 애라고 했냐?”
“…그랬었나?”
“그래 이것아. 사람 말을 들을거면 제대로 좀 들어라.”
당장 이한성 본인 부터가 어렸을 적에 이상한 애 취급을 받아왔던 쪽인데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아이들을 뭣 때문에 이상한 애들이라고 험담하겠는가.
“…잠깐만, 그럼 혹시 하나네 부모님도 안 오셨냐?”
“응. 바빠서 아마 점심 때 잠깐 올거래.”
“….”
맞벌이 부모가 대다수인 요즘 사회에 반차나 월차를 써서 운동회에 제때 참석할 수 있는 부모가 몇이나 될까. 아마 많이 없을 것이다. 다들 가족을 먹여 살리느랴 바쁠테니.
하지만 그렇게 바쁜 사람들에게, 꼭 한번 묻고 싶은게 있다.
본인의 자식들이 그렇게 부모님이 안오신 운동회를 어떤 식으로 느끼는지, 혹시 알고 있느냐고.
‘본인들이 없어도 아이들끼리 잘 놀겠지.’ 혹은 ‘분명 아이도 이해해 줄거야.’ 라는 변명으로 스스로를 속이려는 것이 아니냐고, 꼭 한번 그렇게 물어보고 싶다.
부모가 아이를 이해해야지, 아이가 부모를 이해해줘야 한다는게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완전 본말전도가 따로 없지.
“…그럼 하나는 부모님 대신 선생님이랑 같이 참가하겠네?”
“응. 그럴 거 가타.”
수정이가 조금 시무룩해진 얼굴로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이내 나지막히 중얼거리며 하나의 부모님을 나무랬다.
“하나네 부모님은 바보인가봐. 하나가 얼마나 속상해 하고 있는데…”
“그러게 말이다. 확실히 좀 너무하네.”
듣자하니까 그집 애는 외동딸인 것 같던데, 하나 뿐인 딸 운동회에도 참석을 못할 정도로 바쁜거면 평소에는 애랑 제대로 놀아주기나 하는 지 모르겠네.
“…안되겠다 수정아. 가서 노예랑 해영이 좀 데려와라.”
“응?? 삼촌이랑 이모는 왜??”
“그것들 뒀다 뭐하게. 이럴 때 친구를 위해 써먹어야지.”
“!!”
순간 수정이의 얼굴에 밝은 화색이 확 돌았다. 아빠가 한 말의 의도를 바로 캐치한 수정이는 곧장 냅다 한스와 해영이를 끌고오기 위해 되돌아갔고, 이한성은 그런 수정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
…자신의 호의 넘치는 행동으로 인해 전직 소드 마스터가 운동회에 참전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전혀 깨닫지 못한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