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Part-Timer Raises a Half-Elf RAW novel - Chapter (208)
알바생이 하프 엘프를 키우는 법-208화(208/245)
208
“하나야!!”
타이밍 안좋게 들려온 목소리에 이한성은 황급히 하려던 것을 멈추며 화연으로 부터 얼굴을 떨어뜨렸다.
…아빠가 드디어 오셨나보네. 조금만 더 늦게 오셨으면 좋았을 것을.
딱 더도 덜도 말고 1분만 늦게 오지. 그런 사심 넘치는 속마음과 함께 딱 봐도 하나의 아버지로 보이는 남자를 바라본 이한성은 민망함을 감추며 나지막히 부녀의 상봉을 지켜보았다.
“아빠가 정말 미안해! 점심 때 까진 온다고 했는데 갑자기 환자들이 밀려들어와가지고…”
얼마나 바쁜 사람이길래 딸아이 운동회도 못오나 싶었더니만, 의사셨구만.
새하얀 의사 가운을 걸친 채 방금 막 병원에서 달려온 듯이 보이는 하나의 아버지의 모습에 이한성은 이제야 조금 이해가 간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도 일 때문에 아이를 방치하는 타입의 부모는 아닌 모양이다. 정말로 딸아이의 운동회를 보러오고 싶었지만, 진짜로 바빠서 오기가 힘들었던 것 뿐.
오자마자 하나를 끌어안고 폭풍처럼 사과하는 오현우를 바라보며, 이한성은 잘 됐다는 듯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
하나가 그토록 기다리던 아빠도 오셨으니 이제는 부녀끼리 사이좋게 운동회를 즐기는 일만 남았다. 그야말로 해피엔딩이다.
그런 생각과 함께 미소를 지었던 이한성이었지만, 이어지는 하나의 외침이 아주 좋고 화목하던 분위기를 순식간에 박살내버렸다.
“아빤 내가 호구인 줄 알아?!”
“…으, 으응?”
…일 났네.
아까 이한성이 충고한대로 아주 착실하게 따지기 시작한 하나.
아이답게 따져도 된다는 건 사실이었지만 그렇다고 내가 말했던 그대로 복붙해서 따지라는 건 아니었는데 말이지…
“거짓말쟁이! 바보! 지각쟁이! 일중독자!”
[푸욱-]기관총처럼 이어진 하나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오현우의 가슴을 가차없이 관통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에 눈치없는 수정이와 세리는 그런 하나를 거들며 끼어들었다.
“옳쏘! 그대로 전쟁을 선포해버리는거야! 하나야!”
“부모님하고는 협상 같은 거 하는거 아니랬어.”
친구로서 말려도 모자를 판에 아예 부추기며 극단적인 상황을 고르게 만드려는 이씨 가문의 전쟁광 자매들. 그렇게 문제만 일으키려 드는 둘을 본 이한성은 황당함에 어이가 없다는 시선으로 둘을 쳐다보며 다급히 둘의 입을 틀어막았다.
“야야야 이것들아! 뭐하는 거야 지금?!”
“읍으으읍! 읍읍!!
입을 막기 무섭게 갈갈히 날뛰며 저항하기 시작한 수정이와 세리. 그러자 이한성은 필사적으로 둘을 간신히 하나로 부터 떨어뜨려 놓으며 멋쩍은 웃음과 함께 하나의 아버지에게 나지막히 사과했다.
“그, 죄송합니다. 저희 애들이 아직 어려서…”
“….”
“…?”
혹시나 몰라 하나의 아버지가 언짢아 하기 전에 미리 사과를 해둔 이한성이었지만 어째서인지 오현우에게는 그의 목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는 듯 했다.
오현우가 이한성을 무시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오현우에게 아무런 반응이 없었던 이유는 하나였다.
바로 딸한테서 들은 거짓말쟁이를 비롯한 각종 단어들이 오현우에게 있어선 그 무엇보다도 충격이었기 때문이었다.
[털썩-]오현우는 갑작스럽게 다리가 풀린 듯 하나의 앞에서 무릎을 꿇은 채 쓰러졌다. 그리고는 이내 멍한 표정으로 눈가에 그렁그렁 맺힌 눈물과 함께 그대로 이마를 바닥에 찍어버리듯 처박았다.
“아빠가 정말 미안하다!!!”
[쿵!!]어, 어우… 이 사람도 좀 정상이 아닌 것 같은…
대역죄인이라도 된 듯 마냥 연달아 이마를 바닥에다가 찍기 시작한 오현우의 행동에 이한성은 순간 기겁을 하며 뒤로 물러났다.
“제발 용서해주렴!”
[쿵! 쿵쿵!!]“히, 히익…”
거의 광기에 사로잡히다 싶이 한 채 자신의 앞에서 연달아 이마를 찍는 아빠의 모습에 기겁을 해버린 하나. 어른이 봐도 무서울 정도인데 7살 짜리 애가 제 아빠가 그러는 걸 보고 있으니 겁을 잔뜩 먹은 것도 당연하다.
“그만! 그만 좀 하세요!! 애가 겁 먹었잖아!!”
“아뇨! 이대론 그만 못 합니다! 저희 애가 용서해 줄 때까지는 안돼요!!”
“아니 그러니까 공갈 협박도 아니고 왜 이마를 바닥에다 찍냐고요?!”
역시 이 사람도 정상인은 아니다. 대체 그 어느 부모가 애한테 용서를 받겠답시고 이마가 시뻘개질 때 까지 이마를 바닥에다 찍는다는 말인가.
주변인 중에 정상인이 또 한명 더 줄었다는 사실과 함께 이한성은 필사적으로 오현우를 말렸다. 그러자 중증의 딸바보 병에 걸려있던 그는 참으로 애원복걸하는 눈빛으로 제 딸을 바라보며 다시 한번 용서를 구했다.
“하나야… 아빠가 진짜 미안해… 난 쓰레기야 쓰레기… 하나 뿐인 딸 운동회도 제때 못오는 쓰레기…”
“….”
“….”
눈치없이 끼어들었던 수정이와 세리도 자기애라고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오현우의 자아비판에 겁을 먹고는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전쟁광인 하프엘프와 자존심만 높은 드래곤 조차 기겁을 할 정도의 광기였다.
“그, 아빠…”
“응…?”
“요, 용서, 해, 해줄테니까 그, 그만해요…”
“정말이니…? 정말로 이 아빠를 용서해 주는거니…?”
무척이나 감동한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딸아이에 되물은 오현우. 그런 아빠의 물음에 하나는 달달 떨리고 있는 시선과 함께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여, 역시 우리 하나는 천사야!”
용서해주겠다는 딸아이의 말에 오현우는 눈물을 왈칵 쏟으며 하나를 덥석 끌어안았다. 그러자 하나는 바들바들 떨고 있는 몸으로 나지막히 미소를 지어보았고, 이를 본 이한성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속으로 말했다.
…딱 봐도 겁먹어서 그만하라는 거잖아.
저러니까 평소에 애가 떼를 못 썼지. 이한성은 그런 혼잣말과 함께 공갈 협박이나 다름 없는 방법으로 딸아이에게 용서를 받은 오현우를 바라보았다.
“아, 아빠… 저 아저씨 무서워…”
“제정신이 아닌가봐…”
찐광기라고 할 수 있는 오현우에게 겁을 먹어버린 수정이와 세리가 슬금슬금 이한성에게 다가와 진짜 겁 먹은 목소리로 제 아빠의 양 쪽 팔에 한명씩 매달렸다.
세리가 겁 먹는 거야 종종 있는 일이니 이해가 가지만 어지간한 공포영화도 하하호호 웃으면서 잘만 보는 수정이까지 이정도로 겁을 먹을 정도라니… 대체 저 사람은 얼마나 광기에 물들어 있는 사람인걸까.
어지간해서는 피해 다녀야 할 사람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겁먹은 수정이와 세리를 토닥토닥 달래는 이한성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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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죄송합니다, 못 볼 꼴을 보여드렸네요.”
시간이 좀 지나고 겨우 진정한 오현우가 뒤늦게 사과를 올리며 이한성과 화연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아뇨 뭐…”
“따님 분이랑 화해 하셨다니 다행이죠. 아하하…”
마음 같아서는 아까 본 그 광기어린 오현우의 행동에 뭐라고 한마디라도 하고 싶었던 이한성과 화연이었지만 역시나 초면인 사람에게 그렇게 대놓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특히나 상대가 딸아이 절친의 아버지라면 더더욱.
“이한성 씨 맞으시죠? 딸아이 한테서 얘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빙수가게 사장님인데 그렇게 빙수를 잘 만드신다고.”
“애들 입맛에는 뭐든 다 맛있게 느껴지는 것 뿐일텐데요 뭐. 칭찬해주시니 감사합니다.”
본인의 실력이 좋아서라기 보다는 재료빨이기 때문에 빙수맛을 칭찬받아도 딱히 감흥은 없었다. 그렇게 이한성이 별 것 아니라는 듯이 칭찬을 받아넘기자, 이에 오현우는 웃으며 화연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아, 그리고 와이프 분도 듣던대로 아주 미인이시네요~ 참 부럽네요 부러워.”
“과찬이세요. 말 뿐이라도 감사하네요.”
오현우의 칭찬에 살짝 쑥쓰러워 하며 미소지은 화연. 딱 한마디 대화를 나누자 마자 오현우가 말이 많고 붙임성이 좋은 스타일이라는 사실을 알아챌 수 있었던 그녀는 나지막히 속으로 한마디를 내뱉을 수 밖에 없었다.
‘의사에 성격도 좋고 사회성도 좋은 사람이 어쩌다가 대체…’
대체 무엇이 그를 저렇게 까지 딸아이에게 광기어린 사랑을 품게 만들었을까. 세상에 별별 사람들이 다 있다지만 이것 만큼은 600년을 살아온 그녀에게 있어서도 선뜻 풀리기가 힘든 미스테리였다.
“그나저나 바쁘신 와중에 겨우 오신 것 같은데, 금방 또 돌아가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이한성이 점심시간이 끝난지 얼마나 됐다고 다시 잔뜩 과열된 채 경기를 뛰고 있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오현우에게 물었다.
그러자 오현우는 저 멀리서 단체 줄넘기를 열심히 뛰고 있는 하나의 모습을 바라보며 웃음과 함께 대답했다.
“아뇨, 늦게 왔는데 벌써 돌아갈 수는 없죠. 끝날 때 까지 여기 있을겁니다.”
“…일은 괜찮으시고요?”
“몰론이죠. 나중에 동료랑 후배들한테 욕 좀 얻어먹겠지만, 하나의 웃는 얼굴만 볼 수 있다면 그런 것 쯤은 아무래도 좋습니다.”
“….”
헤벌레 웃으며 언제 꺼내들었는지 모를 핸드폰으로 저 멀리에서 뛰고 있는 하나의 모습을 초단위로 일일히 기록하고 고 있는 오현우의 모습에 이한성은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
…생각했던 것과는 좀 많이 다른데?
처음에는 바빠서 점심 때나 올까 말까 한다는 하나의 말을 듣고는 어디에나 있는, 일에 치여 살아 딸아이도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그런 타입의 부모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막상 아까도 그렇고 지금도 이렇게 보고 있자니 오현우가 그런 유형의 부모라고는 전혀 생각되지가 않는다. 누가봐도 오현우는 딸바보 이상의 광적인 무언가였으니.
“…평소에도 이렇게 바쁘십니까?”
좀처럼 잘 풀리지 않는 의문이 생긴 이한성은 조심스럽게 직접 당사자에게 물어보았다. 그러자 이에 오현우는 살짝 쓴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바쁘기야 하죠. 일이 일이다 보니까 그건 어쩔 수가 없더라고요.”
“…그럼 평소에는 따님이랑 시간을 잘 못 보내시겠군요.”
“그렇죠… 일하고 돌아오면 보통 밤이나 새벽인데, 그때 쯤이면 하나는 이미 자고 있을 시간이니까요. 그래도 일찍 돌아오는 날에는 최대한 같이 놀아주려고 합니다. 요즘은 하나가 절 거부하는 것 같아서 그것도 잘 못하고 있긴 하지만…”
“거부를 한다고요?”
아빠가 운동회에 안왔다고 저렇게 크게 실망하는 애가 유일하게 아빠랑 같이 놀 수 있는 시간을 거부해? 뭐 때문에??
이야기를 듣던 이한성이 뭔가 선뜻 이해가 가질 않는다는 듯이 미간에 주름을 놓으며 물었다.
“예… 저한테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싫다더군요… 그 말이 어찌나 충격적이였는지…”
오현우가 깊은 한숨을 내뱉으며 공허한 목소리로 그렇게 대답하였다.
“이상한 냄새라면…”
“아, 제가 응급의학과라서 말입니다. 응급실에서 환자를 봐야 하는데, 거기에 오는 환자들이 진짜 천차만별에 별의 별 사람들이 다 있거든요. 하루에 술 마시고 뻗어가지고 와서는 진찰 중에 구토를 하는 사람이 진짜 널리고 널렸어요.”
“….”
환자 구토를 뒤집어 쓰고 집에 왔다가 그 냄새 때문에 하나가 기겁을 했었나보구만…
“그래서 그 뒤로는 또 하나한테 그런 말을 들을까봐 무서워서 제대로 놀아주지도 못해요…”
“뭐 그게 무서우실 것 까지야… 그냥 제대로 씻고 놀아주시면 되잖습니까?”
“토 냄새가 그렇게 쉽게 안 빠지더라구요… 진짜 빡빡 씻어도 냄새가 난다길래…”
원래 그런 냄새들은 선뜻 빠지질 않는 법이다. 특히 사람으로 부터 나온 냄새 만큼 오래가는 냄새가 따로 없으니.
“하나한테서 냄새난다는 소리를 한번만 더 듣는다면 아마 평범하게 죽고 싶어질겁니다. 하하.”
“….”
농담으로 들려야 할 소리가 전혀 농담으로 안 들린다. 이 인간이라면 충분히 그거 때문에 죽고도 남을 수 있다는 생각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었던 이한성은 굳은 표정으로 오현우를 조용히 바라보았다.
“그래서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서 의사 일을 관둬야겠다고 제 와이프랑 상의하기도 했었죠. 토냄새 나는 의사 아빠가 되느냐니, 차라리 냄새 안나는 백수 아빠가 되겠다고 대놓고 선언까지 했었습니다.
“…그래서요?”
“등짝에 손바닥 모양의 피멍자국 하나 생기고 끝났죠. 하하.”
“….”
활짝 웃으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오현우. 이쯤되면 저런 머리로 대체 어떻게 의사가 되었는지 의문이 슬슬 들기 시작할 정도다.
“그래도 전 포기하지 않고 아내 몰래 사직서를 써서 병원에다 제출 했었습니다.”
“아… 그렇- 네!?”
그러려니 하고 자연스럽게 넘기기 직전에 경악을 내뱉어버린 이한성. 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알아준다는 최상위 엘리트 직업을 무슨 핸드폰 껐다 키듯 마냥 가볍게 내던지려 했다는 것도 모자라 아예 사직서까지 제출했었다는데,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물론 그것도 잘 안됐지만 말입니다. 사직서 내는 이유를 말하니까 동료랑 후배들이 노발대발 하면서 주사기로 제 목을 찌르려고 하더군요. 그래서 실패했습니다.”
“….”
안그래도 인력이 부족한 응급의학과에서 갑자기 그만둔다는데, 그 이유가 다른 것도 아니고 딸아이가 토냄새 난다고 했기 때문이라고 하니 그렇게 다들 반응하는 것도 당연하다.
“미친놈이신가…”
“네?”
“아뇨,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주 제대로 된 미친놈을 만났다는 생각에 그만 본심이 튀어나와버렸던 이한성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