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Part-Timer Raises a Half-Elf RAW novel - Chapter (209)
알바생이 하프 엘프를 키우는 법-209화(209/245)
209
운동회의 결과는 역시나 누구나 다 예상했듯이 백팀의 압도적인 승리였다.
“앗싸아!! 이겼따!!”
“….”
…저 생태계 교란종이 기어코 먹이사슬을 완전히 뒤엎어버렸구나.
점심시간 이후에 치뤄진 경기에서도 마찬가지로 폭주하는 기관차마냥 날뛰며 상대팀을 아예 박살내버린 수정이.
어찌나 마음껏 날뛰었는지 운동장은 아주 쑥대밭이 되다 싶이 한 몰골이었다. 군데군데 박격포라도 맞은 듯 운동장 바닥은 움푹 패이지 않은 곳이 없었고, 상대팀 아이들 또한 어딘가 다 하나같이 얼이 빠진 상태로 멀쩡한 아이가 없었다.
“저 1학년은 대체 뭐야…”
“인간이 아닌게 분명해…”
“외계인 아냐…?”
제대로 된 게임도 하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당해버린 탓에 사기가 말이 아닐 정도로 떨어져버린 청팀의 아이들. 그런 청팀 아이들의 모습을 바라본 이한성은 살짝 미안함을 느끼며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다음부터는 그냥 운동회에 못나가게 해야하나…”
“…그건 아마 힘들지 않을까?”
이한성의 혼잣말을 들은 화연이 쓴웃음을 지으며 그렇게 대꾸했다. 수정이의 고집도 고집이거니와, 애가 운동회를 저렇게나 좋아하는데 다음번이라고 못 나가게 막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아빠~!! 우리가 전쟁에서 이겼써!!”
운동회가 끝나기 무섭게 달려온 수정이가 이한성에게 와락 안겨들며 승전보를 알렸다. 그러자 이에 이한성은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수정이에게 한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얌마, 내가 적당히 하랬지.”
“응. 그래서 마법 안썻자나.”
“마법만 안쓰면 다냐?! 너 때문에 절망에 빠진 저 애들 좀 봐봐! 저게 초등학생들이 지을 표정이냐고?!”
흡사 전쟁에서 처참하게 패배하고 포로신세가 된 채 집으로 돌아가는 패잔병의 몰골과 다를 게 없는 청팀 아이들을 가리키며, 이한성은 수정이에게 따끔하게 한마디를 내뱉었다.
“그치만 쟤네들이 너무 약한걸?”
“아이고 두야… 그러니까 적당히 힘조절을 하라고 했잖냐…”
“아빠가 뭘 모르네~ 전쟁에선 항상 최선을 다해야 하는 법이라구!”
“….”
난 대체 이 아이에게 운동회는 전쟁이 아니라는 사실을 몇번이나 알려줘야 하는 것일까. 벌써 한 다섯 번은 말한 것 같은데도 여전히 쥐똥만큼도 안 듣네…
이쯤 되면은 운동회가 전쟁이 아니라는 사실을 일일히 상기시켜주는 것을 포기하는게 상책이다. 말해봤자 입만 아픈걸 구구절절 계속해서 늘어놓는다고 뭐가 달라진단 말인가. 암만 말한들 수정이는 서당개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할 것 같은데.
“…에휴.”
“모야아~!! 왜 한숨 셔?! 칭찬부터 해줘야지!”
“그래그래, 너 잘났다 이것아. 아예 너 혼자 다 해먹어라 그냥.”
“헤헤, 확시리 내가 쫌 잘나기는 했지이~”
“….”
반어법으로 베베 비꼬아서 말한 걸 칭찬으로 착각하고 코를 슥 하며 아주 재수없게 잘난 척을 하기 시작한 수정이. 그런 장녀의 모습에 말문이 막혀버린 이한성은 확 그냥 저 사람 속 썩게 만드는 은발머리를 한대 쥐어박고 싶은 마음을 꾹 참아내는데 급급했다.
“너어는… 진짜 나중에 꼭 두번 세번 결혼해서 너 같은 딸내미 가져야 된다. 알아?”
딱 지같은 자식 얻어서 나처럼 스트레스 팍팍 받아봐야 나중에 정신을 차리지.
너무 울컥했던 나머지 말넘심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의 저주를 내뱉은 이한성. 하지만 이에 수정이는 그저 웃으며 당당하게 대꾸할 뿐이었다.
“후후후! 아빠가 말 안해도 꼭 그럴거거든? 나 처럼 아~주 착한 딸이 얼마나 드문데~”
“….”
딱 한대, 딱 한대만 때릴까? 아니 진짜 딱 한대만 쥐어박으면 안되나?? 이걸 참아야 한다고??? 나 이러다 진짜 홧병 걸려서 제명에 못살 것 같은데, 딱 한대만…
세상에 뻔뻔하기 그지 없는 수정이의 말에 이한성은 이미 진작에 임계치를 넘긴 스트레스 지수를 가까스로 붙들으며 가만히 수정이를 내려다보았다. 그러자 눈치없는 수정이와는 달리 눈치가 비교적 빠른 세리는 곧바로 위험을 감지하고는 제 언니를 말리려 들었다.
“어, 언니… 그만하는게 좋지 않을까…?”
“? 뭐를??”
무슨 소리냐고 묻는 수정이의 물음에 세리는 필사적으로 이한성을 가리켰다. 그러자 그제서야 이한성의 무섭기 그지 없는 시선을 알아 챈 수정이는 반사적으로 우스꽝스러운 자세를 취하며 뒤로 물러났다.
“…내가 요즘 들어 너희들한테 너무 친절했지?”
“아, 아닌데?! 아빤 한번도 친절했던 적 없었…”
이한성이 한걸음 앞으로 다가온 것과 동시에 수정이는 하던 말을 재빠르게 끊으며 입을 다물었다. 본능적으로 끝까지 말했다가는 되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너리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어, 언니… 지금이라도 전략적 사과를 하는게…”
“으으… 그럴 순 없어! 먼저 사과 하는 쪽이 지는거란 말이야!”
“그, 그치만 이대로 있다간 끔찍한(?) 짓을 당할거라구!”
이씨 가문의 자녀들에게 있어 만인에게 평등한 필살 옆구리 찌르기. 옆구리 간지러움을 잘 타는 건 세리 뿐만이 아니라 수정이도 마찬가지였다.
“이, 이러케 된 이상 지원을 요청하는 수 밖에…!”
세리와 함께 슬금슬금 이한성과 거리를 벌리던 수정이는 결국 하는 수 없다는 듯이 최후의 수단을 사용하기로 마음 먹었다.
바로 화연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거였다.
“엄마아!! 도와-”
그러나 수정이는 끝까지 도움을 요청할 수 없었다. 도움을 요청하려고 화연의 얼굴을 바라본 순간 본능적으로 알아버리고 말았기 때문이었다.
엄마가 도와주지 않을거라는 사실을.
“미안. 이번에는 안돼.”
“그, 그럴쑤가…”
최후의 수단도 막혀버린 수정이는 서서히 다가오는 이한성의 그림자에 잔뜩 겁을 먹은 채 천재적인 머리를 마구 굴리며 살아나갈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천재가 모색한 방법은 결국 싹싹 비는 것이었다.
“아바마마! 통촉하여주시옵쏘서!!”
냅다 그랜절을 박으며 왠 사극 말투로 석고대죄를 하기 시작한 수정이. 그러자 그런 언니의 행동에 어리둥절해 하던 세리도 일단 제 언니를 따라 그랜절을 박았다.
“가, 갑자기 뭐하는 거야 언니…?”
“모, 몰라…! 그냥 TV에서 이러케 하면 용서해주던데…”
그랜절을 박은 채로 서로 그렇게 속삭인 수정이와 세리. 아무래도 최근에 TV에서 보았던 사극 때문에 이런 생각을 했던 모양이었다.
“네가 네 죄를 알렷다.”
“통촉하여 주시옵쏘써!!”
통촉이라는게 무슨 뜻인지도 모르지만 일단 내뱉고 본 수정이.
뭐 한마디만 해도 왕의 앞을 막아서는 신하들이 내뱉을만한 단어를 외치며, 수정이는 흡사 영화 속의 사도세자가 된 듯 마냥 계속해서 석고대죄를 올렸다.
“뭐야?”
“아동학대인가?”
“평소에 저 어린 애를 얼마나 혼냈길래…”
그러자 그런 수정이의 쇼맨쉽을 본 주변 사람들은 하나같이 다 쑥떡이며 아주 깊은 오해를 하기 시작했다.
…돌아버리겠네 진짜.
이 상황에서 애를 혼냈다가는 진짜로 아동학대범으로 몰릴 판이다. 그러한 분위기 때문에 곤란해진 이한성은 당장은 이쯤에서 끝내야겠다고 생각하며 수정이와 세리를 말렸다.
“야야, 니들 그만해라.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보잖아.”
“…그만하면 화 안낼꼬야?”
“이 상황에서 화를 내면 나만 나쁜 놈 되는거거든?”
나는 정당하게 부모로서 자식들의 잘못된 행동에 화를 내려는 것 뿐인데 어째서 내가 빌런으로 취급받아야 하는건지 원…
의도하고 한 건 아니였지만 그래도 그저 기가 막힌다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 수정이의 언론 플레이에 이한성은 혀를 내두를 수 밖에 없었다.
…쟤 나중에 커서 정치인 되는 거 아니겠지? 벌써부터 언론 플레이에 재능이있는데, 확실히 가능성이 아주 없는 이야기는 아닐지도…
“…당장은 화 안 낼테니까 그만해.”
“저, 정말이지…?”
“그래 이것들아.”
“다행이다~! 세리야, 우리 살았써!”
화를 내지 않겠다는 이한성의 선언에 수정이는 눈에 띄게 기뻐하며 세리와 함께 부둥켜 안고는 재난 앞에서 겨우 살아남은 생존자들의 미소를 지었다.
…그래. 당장은 그렇게 웃고 떠들거라. 집에 가서도 그렇게 기뻐할 수 있는지 어디 한번 보자.
“참으로 대단한 아이들이라니까.”
수정이와 세리를 지켜보고 있던 화연이 귀엽기 그지 없는 두 아이의 모습에 미소를 감추지 못하며 혼잣말을 내뱉었다.
“난 진짜 저것들이 나중에 커서 뭐가 될련지 아주 그냥 궁금해 죽겠어.”
“아하하, 아마 뭘 하든 분명 잘 할거야.”
“그렇겠지.”
반항기가 와가지고 지구에 빙하기를 몰고 오거나, 음악의 가호인가 뭔가 하는 치트키로 음악계를 날로 먹던가, 아님 언론 플레이를 오지게 해서 잘 먹고 잘 사는 부패 정치인이 되거나, 뭐가 됐든 잘 하기야 잘 하겠지.
저 아이들이 나중에 뭐가 되든 간에 지구에게나 인간들에게나 별로 좋은 일은 아닐 것이다. 이한성은 그렇게 확신하며 나지막히 속으로 포기를 선언했다.
…아 몰라. 쟤들이 지구를 얼리든 지지고 볶든 나랑 뭔 상관이래. 그때 쯤이면 난 아마 무덤 속에서 잘 쉬고 있을텐데.
감당하지도 못하는 문제를 가지고 고민을 해봤자 머리카락들만 일찍 빠져나갈 뿐이다.
그런 생각과 함께 머리 속을 비운 이한성은 잠깐이라도 저 골칫덩이들을 잊기 위해 주위로 시선을 돌렸다.
주위에는 자식들과 함께 웃으며 가족끼리 사진을 찍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렇게 웃으면서 사진을 찍고 있던 아이들 중에는 점심 때 까지만 했어도 울상이었던 하나 또한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이한성은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으며 조용히 카메라를 꺼내들었다.
“우리도 사진이나 찍을까?”
마침 이럴 때 써먹으려고 데리고 온 노예도 있으니 지금이 가족사진을 찍기에 더할 나위 없이 딱 좋은 순간이다.
“야 노예, 잠깐 와서 이것 좀…”
…라고 생각한 이한성이였지만 애석하게도 한스는 그 자리에 없었다.
“…이 자식 대체 어디간거야?”
그러고 보니까 점심 이후로 한번도 보질 못한 것 같은데…
한스만 안보이는게 아니라 해영이도 마찬가지로 아까 점심 때 이후로 본 적이 없다.
무슨 점심을 먹겠답시고 제주도까지 가기라도 했는지 아직까지도 돌아오지 않은 둘을 그제서야 떠올린 이한성은 하여간에 도움이 안되는 것들이라고 혀를 차며 주위를 계속해서 두리번거렸다.
“괜찮다면 사진 좀 찍어드릴까요?”
카메라를 든 채로 서성이고 있던 이한성을 본 오현우가 친근한 미소와 함께 말을 걸어왔다.
“아, 네.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어쩔 수 없나… 하여간에, 그 새끼는 꼭 이럴 때 없어가지고는… 하등 도움 안되는 놈이라니까.
속으로 한스에게 욕지거리를 퍼부으며 오현우의 호의를 빌리기로 한 이한성. 그렇게 그는 오현우에게 카메라를 넘겨주고는 바로 눈 뗀지 얼마나 됐다고 또 정신사납게 뛰어놀고 있던 수정이와 세리를 불렀다.
“이수정! 이세리! 사진 찍을 거니까 빨리 와!”
“사진!!”
사진이라는 단어를 듣기 무섭게, 수정이는 눈을 번뜩이며 쏜살같이 달려왔다. 그러자 그런 언니를 따라 세리도 같이 달려왔고, 이에 이한성은 화연과 아이들이랑 함께 적당히 좋은 풍경을 찾아 카메라 앞에 섰다.
“헤헤헤~”
“…넌 뭐가 그렇게 좋다고 웃고있냐?”
“그치만 가족끼리 모여서 사진 찍는 건 처음인거얼~”
이해를 못하겠다는 이한성의 물음에 수정이는 바보같이 아주 해맑게 웃으며 그렇게 대답했다.
…그러고 보니까 그동안 가족 사진을 찍은 적이 딱히 없었네.
이유가 있어 사진을 찍지 않았던 것이 아니다. 그저 가족 사진이라는 것을 경험해 본 적이 없었기에 미처 찍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어서였을 뿐이다.
“…그러게, 생각해 보니까 아빠도 처음이네.”
“엄마도 처음이야.”
생각해 보니 그렇다는 이한성의 말에 화연 또한 자신도 마찬가지라며 미소지었다. 그러자 이에 수정이는 세리를 인형마냥 꼭 끌어안으며 환하게 웃었다.
“헤헤, 그럼 우리 가족 모두 처음인거네?”
“어, 언니, 숨막혀…”
세리가 탭을 치며 괴롭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수정이는 너무 기쁜 나머지 동생의 기브업 신호를 전혀 듣지 못한 채 가만히 사진을 찍기를 기다리며 카메라를 바라보았다.
“그럼 찍습니다! 하나, 둘- 김치!”
“킴치!!”
[찰칵-]오현우가 세기 시작한 카운트다운이 끝난 것과 동시에 셔터음이 주변에 울려퍼졌다.
해맑게 웃고 있는 수정이와 괴로운 표정을 하고 있는 세리를 센터로, 그 뒤에 옅은 미소를 지은 채 함께 나란히 선 이한성과 화연의 모습을 렌즈에다 새긴 카메라.
평범하지 못한 가족의 평범한 모습은 눈에 띄는 빈자리와 함께 그렇게 잊지 못할 추억이 되어 사진 속에 고스란히 남았다.
마치, 그날 찍히지 못했던 또 한명의 가족을 위해 자리를 남겨두기라도 한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