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Part-Timer Raises a Half-Elf RAW novel - Chapter (215)
알바생이 하프 엘프를 키우는 법-215화(215/245)
215
“백만 스물 하나! 백만 스물 둘!!”
땀내나는 기합 소리가 앞마당에서 우렁차게 울려퍼졌다.
벌써 5월 말. 초여름이 목전으로 다가왔다는 사실을 직접 말해주기라도 하듯, 쨍쨍한 햇살이 조금 덥게 느껴지는 가운데 난데없이 울려퍼진 남정네의 기합 소리에 거실에서 TV를 시청하고 있던 이한성은 아주 불쾌하기 그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에라이, 드라마에 집중이 안되네.”
가뜩이나 중요한 장면인데 저 땀내나는 기합 소리 때문에 대사가 하나도 안읽힌다. 드라마든 영화든 잔뜩 몰입해서 보는 것이 취미였던 이한성에게 있어 그것 만큼 거슬리는 일이 따로 없었다.
[사실은 나-]“백만 스물 셋!!!”
드라마 속의 주인공이 이제 막 여주인공에게 고백을 하려던 그 순간, 한스의 거슬리는 기합 소리가 주연들의 대사를 덧씌우며 지워버렸다.
“아 닥쳐봐 쫌!! 뭐라는지 하나도 안들리잖아!!”
결국 거듭된 한스의 방해에 참다 못해 폭발해버린 이한성. 너무 짜증난 나머지 소파를 박차고 일어나 앞마당까지 직접 행차한 그는 허공에다 대고 검을 휘두르고 있던 한스를 향해 온갖 항의란 항의들을 전부 퍼붓기 시작했다.
“운동 할 거면 공원에 나가서 해라 이 새끼야!! 시끄럽게 앞마당에서 뭐하는거야 대체?!”
“운동이 아니라 수련 중이다.”
“그러니까 수련이든 뭐든 밖에 나가서 하라고!! 왜 앞마당에서 이 x랄인데?!”
“방해도 받지 않고 수련하기 딱 좋은 장소가 이곳 뿐이다만.”
“내가 방해를 받잖아 내가!!”
“그건 내 알 바가 아니다.”
“아오 저 새끼가 진짜…!”
요즘들어 좀 잠잠해졌나 싶었더니만 또 저 난리다. 헬스장을 다니기 시작한 이후로 조금은 나아졌다고 생각했던 한스의 수련병이 다시 도지기 시작했다는 사실에 이한성은 머리를 박박 긁으며 묵묵히 수련에 임하고 있는 전직 소드 마스터를 노려보았다.
“아니, 물어나 보자. 요즘들어 왜 마당에서 칼질을 하고 자빠진건데??”
“근래들어 나의 나약함을 느꼈기 때문이지.”
“뭬야?”
한스의 대답에 이한성은 황당하기 그지 없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내가 강하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었지. 최연소의 나이에 소드 마스터가 되었다고 자만하고 있었던 거다.”
“….”
…그러니까 쟤 지금, 동네북 신세에 질렸다고 말하고 있는거지? 하긴 뭐 쟤가 요즘 들어서 워낙에 많이 얻어맞고 살긴 했었지.
지구에 온 후로 전기에 지져지고 냉기로 얼려지고 브레스로 태워지고 온갖 수모란 수모는 전부 겪게 된 한스 마이어. 아무래도 그렇게 계속해서 동네북 마냥 얻어맞고만 있다 보니 소드 마스터인지 뭐니 하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와장창 깨져버린 모양이었다.
“뭐, 그래서. 그렇게 허공에다 칼질만 하다 보면 강해진대냐?”
“수련은 배신하지 않는다. 노력한 만큼 보상이 주어지지.”
“…글쎄다. 아무리 생각해도 니가 똥줄 빠지게 노력을 해도 뭐가 달라질 것 같진 않은데.”
한스도 사실 따지고 본다면 충분히 강하다. 소드 마스터니 뭐니 하는 것을 제쳐두더라도 일단 힘 부터가 인간의 범주를 진작에 뛰어넘었고, 그 오러니 뭐시기니 하는 것도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지라 인간 중에는 한스와 대적할 수 있는 자는 아마 없을 것이다.
적어도 지구인 중에는 말이다.
하지만 문제라면 한스가 거주하고 있는 이 집에는 이한성을 제외하곤 현재 인간이 단 한명도 없다는 것.
대마법사 급 엘프 한명과 2차 빙하기의 유력한 잠재범인 하프엘프 한명, 거기에다가 종말급의 드래곤까지, 정상의 범주에 든 존재는 이곳에 없다.
“훗, 역시 네놈은 멍청하군. 인간이라고 해서 괴물이 될 수 없다고 누가 그러지?“
“남의 가족 함부로 괴물이라 부르지 마 새꺄.”
갑자기 멍청하다고 욕하는 한스에게 욱한 이한성은 그 이상 열받게 하면 방세를 더 올리겠다는 의지가 아주 선명히 담긴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이에 한스는 순발력 빠르게 입을 다물고는 다시 수련에 매진하기 시작했고, 이한성은 그런 한스를 못마땅한 시선으로 지켜보았다.
“…?”
그렇게 한스의 뻘짓을 감시하기 시작한지 몇 분이 지났을까.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수련이라는 이름의 뻘짓을 지켜보고 있던 이한성은 어느새부턴가 한스가 휘두르고 있던 검을 뚫어져라 쳐다볼 수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그가 들고 있던 검이, 왠지 모르게 어딘가 익숙하게 비춰졌기 때문이었다.
“야 잠깐만. 너 그 칼… 어디서 난거냐?”
“?”
굉장히 뜬금없는 이한성의 질문에 한스는 눈가를 찌푸렸다. 하지만 딱히 대답하지 못할 질문도 아니었기에 그는 잠시 칼을 바닥에 꽂아넣은 채 대답해주었다.
“기사단에서 지급 받은 검이다만.”
“…잠깐만 기다려봐.”
이한성은 잠시 그대로 있으라는 듯이 말하곤 급하게 집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그러자 이에 한스는 어리둥절한 눈치와 함께 영문도 모른 채 가만히 대기하기 시작했고, 이내 금방 무언가를 챙겨가지고 되돌아온 이한성에게 불만을 늘어놓으려고 했다.
하지만 이한성의 손에 들려있던 그 무언가를 본 그 순간, 한스 마이어는 아무런 불만도 내뱉을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이한성이 가지고 나온 그 무언가는 다른 것이 아닌, 한스의 것과 아주 똑같이 생긴 부러진 검이었기 때문이었다.
“너… 이건 대체…?”
“똑같지?”
이한성이 부러진 검과 한스의 검을 대조해 보며 물었다. 그러자 한스는 이한성이 가져온 부러진 검을 묵묵히 쳐다보더니, 이내 조심스레 손에 들며 나지막히 입을 열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똑같은 검은 아니다.”
“아니, 이게 똑같은 칼이 아니라고?? 색깔이고 문양이고 거의 다 똑같이 생겼는데??”
“재질이 다르지. 이건 그랜드 소드 마스터에게만 주어지는 순금 미스릴로 제작된 검이니.”
그랜드 소드 마스터? 그건 또 뭐야?? 딱 들어보니까 뭐 되게 대단해 보이기는 한데…
이세계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는 이한성은 한스의 감탄에 그다지 동감하지 못한 채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그런 이한성의 반응에 한스는 한숨을 내쉬곤 간단히 설명해주었다.
“소드 마스터들에게도 급이 있다는 소리다. 그랜드는 그중에서 가장 괴물같은 자들만이 달 수 있는 칭호지.”
“…넌 급이 어느정돈데?”
“그랜드보다 한 급 아래인 마스터지.”
“그렇게 말해도 별로 감이 안잡히거든…?”
일단 그랜드니 뭐니 하는 등급이 대단하다는 건 알겠는데 어느정도 대단하다는 것지는 영 감이 잡히질 않는다.
“…쉽게 말하자면 그랜드 급의 소드 마스터는 단신으로 성 한채를 흔적도 없이 무너뜨리는 것 조차 가능하다.”
“….”
…사람이냐 그거?
무슨 삼국지나 무협물도 아니고 개개인이 성 한채를 함락시킬 수 있다는 한스의 말에 이한성은 얼탱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지난 엘프들과의 전쟁으로 현재 살아남은 그랜드 마스터는 몇 되지 않지. 그마저도 일선에서 물러났고 말이다.”
“허…”
성 한채를 단신으로 함락시킬 수 있는 인간들이 대부분 전쟁에서 죽었다라…
“니들, 대체 전쟁에서 어떻게 이긴거냐?”
말만 들어도 인간의 범주에서 한참을 벗어난 존재들이 대다수 사망했다는 것은 그만큼 엘프들의 강함 또한 만만치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전쟁에서 개인의 강함은 무의미하기 때문이지.”
“….”
한스의 대답에 이한성은 잠시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한스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엘프들이 아무리 마법에 능숙하다 한들 잘 훈련된 군대를 상대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라는거다.”
실제로 전쟁 당시 수많은 고위급 엘프들은 치열한 소모전 끝에 결국 죽음을 맞이했었다. 아무리 대마법사라 한들 계속되는 물량공세 앞에 개인은 언젠가 무너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 검, 어디에서 난거지?”
검의 주인이 기사단에 악의를 품기라도 했는 듯, 검의 손잡이에 새겨진 기사단의 문양이 처참하게 훼손되어 있는 모습을 본 한스가 이한성에게 물었다.
“그냥 착한 일 좀 많이 하니까 주던데.”
“….”
재미없는 농담으로 밖에 들리지 않는 이한성의 대답에 한스는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가 그렇게 반응한다 한들 사실대로 말한 것 뿐이었던 이한성에게는 별 달리 대답해 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아니 근데 내가 이걸 어떻게 얻었는지가 왜 중요한데?”
“그거야 간단하지. 이 검은 본래 주인과 함께 세상에서 잊혀졌어야 했을 검이기 때문이다.”
되려 질문에 질문으로 답한 이한성의 물음에 한스는 반으로 부러져 버린 검의 칠흑색 도신을 바라보며 그렇게 대답했다.
“…이 칼 주인이 누군지 알아?”
“알고말고. 기사단에 속한 자들 중 이 검을 모르는 인간은 없을거다.”
순수 미스릴 중에서도 보기 드문 칠흑색으로 만들어진 장검. 일찍히 기사단에서 이름을 떨쳤던 그랜드 마스터들 중에서 그러한 검을 지닌 자는 단 한명 뿐이었다.
“녹스터 아스토니아. 세계를 배신했다고 알려진 남자의 이름이다.”
수백년 마다 나올까 말까 한 천재. 오러를 선천적으로 타고 났으며, 평민의 신분으로 다른 귀족가문의 기사들을 제치고 그랜드 마스터의 작위를 거머쥐었으며 인류를, 나아가서는 세계를 배신했던 남자.
전쟁이 끝난 지금, 그 남자에 대해 알려진 것은 거의 없다. 배신자라는 낙인에 의해 그에 관한 모든 기록들은 말소되었고 왕실은 그의 존재 자체를 아예 역사에서 지워버렸으니.
알려진 것이라곤 그저 그가 인류 최강의 소드 마스터였으며, 인간을 배신하고 엘프들의 편에 서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는 것 뿐.
‘하지만… 지금에 와선 그것이 사실인지 조차 의문이 드는군.’
애초에 엘프들에 의해 세계수가 오염되고 세상이 멸망의 길을 걷고 있다던 이그니스 왕국의 주장이 거짓이라는 것을 알게 된 지금, 한스에게 있어선 어떤 것이 진실이고 어떤 것이 거짓인지 알 방법이 없었다.
단지 의문점만으로 가득했을 뿐.
“…그래서 이름이 [추방당한 검사의 부러진 검] 인가.”
검의 주인이 배신자라고 불렸다는 한스의 말에 이한성은 시스템 창에 뜬 칠흑색 검의 이름을 떠올리며 그렇게 홀로 중얼거렸다.
…그럼 결국 시스템은 대체 무슨 이유로 이런 걸 나한테 보상이랍시고 줬던거지?
지금까지 시스템이 퀘스트 보상으로 줬던 아이템들은 어떤 식으로든 쓸모가 있던 것들 뿐이었다.
하지만 이 부러진 검은 어디까지나 이세계에서 인간들과 엘프들 사이에 어떠한 일이 있었는지 단편적으로 알려주는 단서에 불과하다. 그리고 과거의 진실 따윈 21세기의 대한민국에서 거주하고 있는 이한성에겐 아무래도 좋은 사실이었다.
“뭐, 궁금하지 않다고 하면 그건 또 아니지만…”
몰라도 상관은 없지만 막상 또 생각해보면 궁금하긴 하다.
대체 엘프들과 인간들 사이에서 구체적으로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에 대해 호기심은 있었던 이한성은 그렇게 홀로 중얼거리며 한스로 부터 부러진 검을 돌려받고는 나지막히 쳐다보았다.
“아빠! 그거 뭐야??”
“?”
그렇게 잠시 침묵하며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있던 그 순간, 갑작스럽게 뒤에서 수정이의 목소리가 기운차게 들려왔다.
“아 이거? 그냥 잡동사니야 잡동사니.”
틀린 말은 아니다. 아무리 그랜드 마스터의 검이니 뭐니 한들 이렇게 부러진대다가 쓸데도 없으니 잡동사니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
괜히 수정이에게 복잡한 얘기를 설명하기가 귀찮았던 이한성은 그렇게 별 것 아니라는 듯이 말을 얼버무렸다. 하지만 그런다고 수정이의 관심이 물러가는 것은 아니었다.
“그럼 나 그거 가져도 돼??”
“…이걸?”
“응! 먼가 되게 멋져보여!!”
“….”
남자애라면 모를까, 여자애가 저렇게 칼을 보고 멋져보인다고 하니 이한성은 이렇게 부러진데다가 날까지 빠져서 볼품이 없어진 칼의 어디가 멋있다는 건지 선뜻 이해할 수가 없었다.
…뭐, 별로 위험한 것도 아니니까 가지고 놀라고 줘도 별 문제는 없겠지.
말했듯이 부러진데다가 날까지 빠졌기 때문에 가지고 놀다가 다칠 일도 없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이한성은 아무렴 됐다는 듯이 순순히 부러진 검을 수정이에게 넘겨주었다.
“그래. 대신 사람한테 휘두르지는 말고.”
“응!”
부러진 검을 쉽게 넘겨받은 수정이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잔뜩 신난 미소를 얼굴에 머금었다. 그리고는 이내 사람한테 휘두르면 안된다는 아빠의 말을 왠일로 제대로 따르며 허공에다 대고 검을 만화 주인공 마냥 힘껏 휘둘렀다.
[휘청-]“앗…”
너무 오바해서 휘두른 탓인지 그만 중심을 잃고 그대로 마당의 풀밭 위에 넘어져버린 수정이. 그런 몸개그가 따로 없는 수정이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본 이한성과 한스는 저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하지만 그런 둘의 미소는 채 1초도 가지 않아 한때의 먼지처럼 파스스 부스러지고 말았다.
왜냐하면 수정이가 검을 휘두른 궤적을 따라 그대로 지붕의 일부분이 깔끔하게 잘려나가 마당 바닥에 요란하게 떨어져버렸기 때문이었다.
[쿵!!]“….”
“….”
“….”
무슨 레이저로 절단된 것 마냥 아주 깔끔하게 잘려나간 지붕의 일부분을 본 셋의 표정에 짙은 그림자가 일제히 드리워졌다.
…오러를 타고난 하프엘프 소녀에게 미스릴 검을 장난감으로 주는 것이 얼마나 멍청한 행동인지 깨우칠 수 있었던 이한성과 한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