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Part-Timer Raises a Half-Elf RAW novel - Chapter (216)
알바생이 하프 엘프를 키우는 법-216화(216/245)
216
“세리야. 이모가 부탁이 하나 있는데, 좀 들어줄 수 있을까?”
“?”
대낮의 일요일 부터 다짜고짜 연락도 없이 찾아온 해영이의 물음에, 아이스크림을 우물거리고 있던 세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부탁?”
“그게 혹시 내 몸에 걸려있는 마법 좀 풀어줄 수 없을까 해서 말이야.”
운동회 날 이후로 줄곧 해영이의 연애를 방해하고 있었던 방호마법. 화연의 과보호 때문에 사람 하나 잘못 건드리면 고압전류로 골로 보내버릴 수도 있는 몸이 되어버린 그녀에게 있어 한시라도 빨리 마법을 해제하는 건 무엇보다도 최우선 사항이었다.
그리고 마법을 건 장본인인 화연이 비협조적인 이상, 현재로서 해영이가 기대를 걸 수 있는 유일한 인물… 아니, 드래곤은 오직 세리 뿐이었다.
“한성이 오빠가 그랬는데 세리 너, 한번 본 마법은 바로 따라할 수 있을만큼 대단하다며? 그러니까 너라면 화연이 언니가 걸어놓은 마법도 손쉽게 풀 수 있을거야. 맞지?”
해영이가 최대한 세리를 치켜세워주며 아첨을 떨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에 세리는 멀뚱멀뚱한 시선으로 그녀를 쳐다보더니, 이내 일말의 흥미조차 없다는 듯이 무미건조한 말투로 대답했다.
“싫은데.”
할 수 있냐 없냐는 물음에 철벽같이 싫다고 대답한 세리. 당연히 드래곤인 세리에게 있어 방호 마법 하나 푸는 것 쯤은 일도 아니었지만, 수정이와 달리 세리는 그닥 제 가족 이외의 인간에게 호의적인 성격이 아니었다.
“아 세리야 제발~ 이모가 이렇게 부탁할게, 응?”
“싫어. 귀찮아.”
“아 귀찮아도 그냥 해줄 수 있잖아~ 이모를 봐서라도 딱 한번만 도와주면 안돼?”
“안돼요. 싫어요. 꺼져요.”
아이스크림을 입에 문 채로 단호박보다도 더욱 단호하게 거절의 의사를 내비친 세리. 이한성의 방범 교육을 해영이에게 써먹은 세리는 그렇게 무미건조한 얼굴로 아이스크림을 까드득 까드득 먹어치웠다.
“세리 너어…! 이모가 너한테 얼마나 잘해줬는데 이러기야??”
“잘해 준 적 없잖아. 거짓말만 했으면서.”
세리가 지난번의 다크 초콜릿 사건을 들먹이며 뻥치지 말라는 시선으로 해영이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이에 해영이는 양심이 찔렸는지 헛기침을 몇번 하더니, 이내 변론을 늘어놓았다.
“흠흠! 그땐 그냥 장난 좀 치려고 그랬던 것 뿐이잖아. 그리고, 이모한테 제대로 복수까지 했으면서 아직도 마음에 담아두고 있는거야?”
“한번 거짓말쟁이는 영원한 거짓말쟁이라고 아빠가 그랬어.”
“…한성이 오빠가?”
누구보다도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할 것 같은 인간이 그런 말을 했다는 사실에 해영이는 얼탱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빠는 거짓말 안해.”
해영이의 표정을 읽은 세리가 놀랄만한 것도 아니라는 듯이 그렇게 대꾸했다. 확실히 세리의 말대로 이한성은 속이 검은 인간이었지만, 적어도 거짓말은 안하는 부류의 인간이었다.
…그렇다. 거짓말만 안하는 인간이다.
“? 니들 둘이서 뭐하냐?”
호랑이도 제말하면 온다고, 참 적절한 타이밍에 거실로 내려온 이한성이 좀처럼 보기 드문 해영이와 세리의 조합에 무언가 신기하다는 시선을 보내며 말을 걸어왔다.
“세리한테 부탁할게 좀 있어서 얘기하고 있었어.”
“…부탁? 무슨 부탁?”
“마법 좀 풀어달라는 부탁.”
“그거 아직도 유지되고 있었던 거냐…”
해영이의 대답에 바로 상황을 파악해낸 이한성은 말을 길게 늘어뜨리며 참 딱하다는 듯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운동회가 지나간지 벌써 2주가 다 됐으니 지금쯤이면 슬슬 풀렸을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세리한테 풀어달라고 부탁했던겨?”
“그렇지.”
지난번에 세리의 마법 실력에 대해 물어보길래 왜 그런 걸 물어보나 싶었더니만, 이것 때문에 물어봤던 거였구만.
“…세리 저게 니 부탁을 들어줄리가 없을텐데.”
“맞아. 바로 거절당했어.”
…내 그럴 줄 알았다.
세리 저게 남의 부탁을 순순히 들어줄리가 없다. 그런 세리의 성격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던 이한성은 예상했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얘기에는 관심도 없고 그저 아이스크림에 정신이 팔려있던 세리를 바라보았다.
“뇌물이라도 바쳐야 하나… 오빠, 세리는 뭐 좋아해?”
“관 둬. 얘는 뇌물만 쏙 빼먹고 입 싹 씻을 애야.”
“…누가 오빠 애 아니랄까봐, 성격 참 닮았네.”
“싸우자는거냐?”
해영이의 불평에 난데없이 얻어맞은 이한성이 미간을 찌푸리며 항의했다. 그러나 해영이는 그런 이한성을 일절 무시한 채 계속해서 세리와의 접선을 시도했다.
“세리야, 그럼 이모랑 거래 하나 해보지 않을래?”
“…거래?”
“그래. 거래. 만약 세리 네가 이모에게 걸린 마법을 풀어준다면, 이모는 이걸 너한테 줄게.”
“?”
갑자기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더니 이것저것 누르고는 세리에게 화면을 보여준 해영이. 그런 해영이의 행동에 어리둥절해 한 세리였지만, 이내 핸드폰의 화면 속 사진을 본 드래곤 소녀는 금방이라도 핸드폰 속으로 들어갈 기세로 관심을 내비치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해영이의 핸드폰에는 다름이 아닌 수정이의 애기 때 사진이 저장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 이, 이, 이거…”
“응. 수정이 애기 때 사진. 엄~청 귀엽지?”
제 언니의 갓난아기 시절 사진을 보고 잔뜩 흥분하며 완전히 홀려버린 세리. 그런 세리의 모습을 본 해영이는 비장의 카드가 제대로 먹혀들었다는 사실에 계획대로라는 미소를 지으며 기습적으로 핸드폰의 화면을 꺼버렸다.
“앗! 뭐하는거야!! 다시 켜!!”
“그건 안되지~ 이모가 말했잖아? 거래를 하자고.”
“….”
오는 것이 있어야 가는 것이 있다. 종말급 드래곤을 상대로 거래를 하려드는, 간댕이가 크다 못해 탱탱 부어버린 인간이었던 해영이는 장사치의 미소를 지으며 미끼인 핸드폰을 살랑살랑 흔들기 시작했다.
“…원하는게 뭔데?”
세리가 매우 비장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이에 해영이는 씨익 웃으며 단도직입적으로 대답했다.
“마법을 풀어줘. 지금 당장.”
“…알았어. 그럼 아까 그 사진, 나한테 주는거지?”
“물론이지~”
“…좋아. 그럼 거래 성립이야.”
제 언니의 어릴 적 사진에 홀딱 넘어가버린 세리는 해영이가 내민 손을 단단히 붙들며 거래에 응했다. 그러자 그렇게 쉽게 상대방의 술수에 넘어가버린 제 딸내미를 지켜보던 이한성은 나지막히 한숨을 내쉬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니… 제 언니 사진 한장 때문에 이걸 이렇게 수락해준다고?? 에라이, 그럼 나도 진작에 사진을 써먹을 걸 그랬네.
수정이의 애기 때 사진이라면 당연히 이한성이 해영이보다 훨씬 더 많이 보유하고 있다. 현재도 이한성의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는 사진들 중 절반은 수정이의 애기 때 사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진작부터 세리를 다룰 때 써먹을 수 있었던 것을 이제야 알았다는 사실에 이한성은 낙담하다 못해 억울함까지 느끼며 해영이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해영이는 그런 이한성의 시선에 그저 얄밉게 웃을 뿐이었다.
…킹받네?
순간 욱 할 뻔한 이한성은 목구멍 끝까지 올라온 억울함을 간신히 억눌렀다. 그러자 이에 해영이는 승리의 미소를 지으며 이한성을 약올렸고, 세리는 그런 아빠와 이모의 모습은 안중에도 없는 채 오로지 사진에 대한 생각만 집중하며 거래를 이행하기 위해 해영이의 어깨에다 손을 가져다댔다.
“어때? 풀 수 있겠어?”
“….”
해영이의 물음에 세리는 무척이나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해영이가 그런 세리의 표정을 목격하기도 전에, 세리는 곧바로 마법의 해주를 개시하기 시작했다.
“[디스펠].”
며칠 전 치킨집에서 화연이 사용했던 마법을 그대로 갖다가 시전하기 시작한 세리. 이름 그대로 무슨 마법이든 간에 해주할 수 있는 효과를 지닌 [디스펠] 마법을 단 한번만에 카피해낸 세리는 그대로 마법의 효과를 해영이에게 걸려있던 방호 마법에다가 적용하였다.
[파지직-] [디스펠] 마법의 효과가 적용되기 시작하자 해영이의 주변에서 용접할 때나 볼 수 있는 스파크들이 요란하게 튀기 시작했다.“오, 생각보다 잘…”
“아 실수했다.”
미묘한 표정치고는 마법이 제대로 먹혀들고 있는 것 같단 생각에 이한성이 한마디를 내뱉었던 그 순간, 세리의 미묘했던 표정이 한층 더 미묘해진 것과 동시에 나지막한 한마디가 주변에 울려퍼졌다.
그리고 그렇게, 주변은 새파란 스파크들로 가득 물들었다.
[쾅!!]폭음이 사방으로 울려퍼지며 집안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갑작스런 이변에 당황한 이한성은 무언가 살짝 타는 듯한 냄새를 맡고는 반사적으로 감았던 눈을 천천히 떴다.
“….”
“….”
눈을 뜬 이한성과 세리는 서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스파크에 휘말렸던 해영이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런 둘의 반응에 해영이는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직감하고는 조용히 핸드폰을 거울 삼아 본인의 얼굴을 확인하였다.
“….”
본인의 몰골을 확인한 그녀는 이한성과 세리와 똑같이 할 말을 잃어버렸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그녀의 모습은 왠지 그림 그리는게 참 쉽다고 말할 것만 같은 화가 아저씨의 헤어 스타일을 아주 완벽하게 재현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저기, 세리야. 설명 좀 해줄래?”
“….”
따질게 무척이나 많아 보이는 해영이의 물음에 세리는 고개를 돌리며 딴청을 피우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별 것 아니라는 듯이 변명거리를 늘어놓았다.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쬐끔. 아아아주 쬐끔…”
“쬐끔 뭐.”
“…실수했어.”
방금 터져나온 폭음과 엄청난 빛의 스파크를 따지고 본다면 결코 아주 쬐끔 실수한 정도가 아니었지만, 그래도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한 것이 어디인가.
“하아… 뭐, 그래. 그러면 마법은? 제대로 푼거지?”
“아마도…?”
해영이의 물음에 수정이는 매우 애매하게 대답했다. 그러자 그런 세리의 대답에 울컥한 해영이는 결국 참지 못하고 마구잡이로 항의하기 시작했다.
“아마도라니! 세리 너 무슨 마법이든 완벽하게 쓸 수 있다며!”
“내, 내 마법은 완벽했어!”
“그럼 실수했다는 건 무슨 뜻인데?!”
“나도 몰라! 원래 이게 이렇게 되면 안되는건데 이렇게 되버린거란 말야!”
드래곤인 본인이 모르면 대체 누가 안다는 것일까. 실력이 대단하다길래 믿어봤더니 결국 발등을 찍혀버린 해영이는 황당함을 금치 못한 채 제 조카를 바라보았다.
[드르륵-]“방금 무슨 소리냐! 적습인가?!”
“아빠!! 방금 그거 나 아냐!! 나 똥 싸고 있었써!”
폭음을 듣고 뒤늦게 달려온 한스와 수정이가 각각 앞마당과 화장실에서 나오며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런 둘에 이어 세탁실에서 빨래를 돌리고 있던 화연 또한 모습을 드러내며 무슨 일이냐는 듯 이한성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이에 이한성은 바로 내빼며 세리의 탓이라고 고자질을 올렸다.
“쟤가 한거야. 난 아무것도 안했어.”
“배, 배신자! 아빠가 그러고도 아빠야?!”
“배신은 뭐가 배신이야 이것아. 난 진짜로 구경만 하고 있었거든?”
“방관죄도 죄잖아!”
순 억지를 부리며 물귀신마냥 이한성을 물고 늘어진 세리. 그런 세리의 억지에 이한성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대꾸하기 시작했다.
“방관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너가 실수한 걸 가지고 남탓을 하면 안되지.”
“따, 따지고 보면 아빠 때문에 실수 한거야!”
“딸아, 억까가 좀 심하다.”
생뚱맞은 사람 탓을 하려드는 세리의 행동에 이한성은 가소롭다는 듯이 웃으며 그렇게 반박했다. 그러자 할 말을 잃어버린 세리는 볼을 잔뜩 부풀리며 울먹이기 시작했고, 그런 세리와 이한성간의 실랑이를 지켜보고 있던 화연은 이내 나지막히 한숨을 내쉬며 다시 한번 자초지종을 물었다.
“…그래서, 뭐가 어떻게 된건데?”
“세리가 네 마법을 풀려다가 실수한거지 뭐.”
화연의 물음에 이한성은 길게 말할 것도 없다는 듯이 그렇게 대답하였다. 그러자 이에 화연은 대충 상황을 이해했다는 얼굴과 함께 세리를 바라보았다.
“[디스펠] 마법을 쓴거구나?”
“….”
침묵은 긍정이었다. 안절부절 못해 하며 손가락을 꼼지락 거리던 세리의 모습을 본 화연은 자신의 예상이 들어맞았다는 사실에 그저 아무도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라며 안도를 내뱉을 수 밖에 없었다.
[디스펠] 마법은 마법의 종류이지, 특정한 마법이 아니다. 열쇠가 있다고 해서 모든 구멍에 들어가지는 않는 것 처럼, [디스펠] 마법 또한 해주하고자 하는 마법의 종류에 따라 수십에서 수백가지의 변형식이 존재한다.세리가 따라한 화연의 [디스펠] 마법은 정령 소환을 무효화 하는 [디스펠]. 하지만 해영이에게 걸려있는 마법은 정령 소환과는 완전히 다른 형식인 능동 방어 마법이다.
그 말은 즉슨 맞지 않는 열쇠를 구멍에다 억지로 쑤셔넣었다는 것.
‘…그나마 세리가 드래곤이라서 이정도로 끝난건가.’
굳이 마법을 이해하지 않아도 숨 쉬듯 자연스럽게 깨우칠 수 있는 드래곤이었기에 그다지 큰 거부반응이 없었던 것이다.
만일 시선자가 세리가 아니었더라면 올바르지 못한 [디스펠] 마법은 어마어마한 거부반응을 일으켰을 것이고, 그렇게 발생한 거부반응은 주변에 있던 모두를 크게 다치게 만들었을 것이 분명했다.
“세리야, 다친데는 없지?”
“응…”
아이가 잘못 한번 했다고 불같이 닥달할 성격은 못 되었던 화연은 부드러운 말투로 세리를 달래기 시작했다.
“[디스펠] 마법은 잘못 사용하면 큰일날 수도 있으니까, 다음 부터는 함부로 사용하면 안된다? 알겠지?”
“알겠어요…”
“그래. 약속이다?”
화연이 미소지으며 엄지 도장을 내밀자, 이에 세리는 작디 작은 새끼손가락을 걸고 도장을 찍었다.
하여간에… 지 언니나 엄마 말은 잘만 듣는다니까.
그렇게 훈훈하게 잘 마무리 되어가는 사건을 지켜보고 있던 이한성이 살짝 불만이라는 듯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속으로는 그렇게 중얼거리면서도, 그의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소동은 일단락 되어-
“와, 개쩐다.”
“…?”
훈훈하게 마무리 짓고 끝날 것만 같았던 그 순간, 아주 불경한 생각이 가득한 목소리가 거실 내에 울려퍼졌다.
울려퍼진 것은 다름이 아닌 해영이의 목소리. 갑자기 난데없이 뭘 봤길래 저렇게 감탄하는 걸까.
눈치없는 해영이의 감탄에 반사적으로 신경을 써버린 이한성은 조용히 그녀의 시선이 향하고 있던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그곳에는 아주 부담스럽고 불쾌하기 짝이 없는 초콜릿 복근이 그 추태를 뽐내고 있었다.
“뭐냐, 왜 다들 그렇게 쳐다보는거냐.”
“….”
…혼자서 바바리안 마냥 웃통을 깐 채로 아무렇지도 않아하고 있던 한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