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Part-Timer Raises a Half-Elf RAW novel - Chapter (218)
알바생이 하프 엘프를 키우는 법-218화(218/245)
218
최근들어 이한성의 집에는 어떤 유행이 돌기 시작했다.
“여봐라 수정아, 물 좀 가져오너라.”
“예이~ 아밥마마~ 들었느냐 세리야? 가서 물 좀 가져오너라~”
“….”
그건 바로 일상 생활에서 사극말투 사용하기. 그것도, 화연이 보고 있을 때만 보란 듯이.
“…너희들, 지금 일부러 그러는거지.”
화연이 떫은 표정을 지으며 이한성과 세리를 추궁했다. 그러나 이에 부녀는 그저 능글맞게 웃으며 아니라고 대답할 뿐이었다.
“아이고 마님, 무슨 말이십니까? 그냥 요즘 사극 드라마가 유행이라 말투 좀 따라하고 있을 뿐인데. 그치 수정아?”
“그러치요 아밥마마~”
“….”
누가 부녀지간 아니랄까와 아주 그냥 쿵짝이 척척 맞아 떨어지는 이한성과 수정이. 그런 둘의 모습을 본 화연은 부끄러움에 얼굴이 점점 더워지는 기분을 느끼며 최대한 아무렇지도 않은 척 말했다.
“…그, 그래? 그런데 왜 자꾸 내 앞에서만 그런 말투를 쓰고 있는거야…?”
“그야 사극 말투 전문가이신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산 증인이 여기 계셔서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틀린 점이 있는지 평가를 받고 싶어서 그랬습니다요.”
“…날 놀리려고 그러는게 아니라?”
“아유~ 무슨 섭섭한 말씀을. 마님이 뭐 분위기 잡고 진지하게 고지식한 말투로 어디 집 돌쇠한테 내 동생하고 사귈 정도의 자격은 있다고 큰소리 치신 것도 아니신데, 저희가 마님을 놀릴 이유가 뭐가 있겠습니까요?”
“…쿨럭!!”
순간 타들어가는 속을 식히려고 물을 한모금 마시다가 그만 사레가 들리고 만 화연.
“드, 듣고 있었어…?”
기침을 연달아 내뱉던 그녀가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모습으로 설마 하며 물었다. 그러자 이에 이한성은 평소에는 전혀 보여준 적 없는 환한 미소로 대답하였고, 그런 이한성의 대답에 화연은 완전히 빨갛게 익어버린 얼굴을 감싸며 무언의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이야, 말투가 아주 그냥 대단하던데? 나 살면서 드라마 외에서 그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 진짜로 처음봤어.”
“으아아아아!! 그만!! 그만해 제발!!”
이한성이 얄밉게 놀려대자 화연은 부끄러워서 어쩔 줄을 몰라하며 금방이라도 울 것만 같은 얼굴로 그를 제지하려 들었다.
“그걸 대체 왜 듣고 있었던 거야!”
“다 들리는 걸 뭐 어떡해? 정 그랬으면 방음 마법이라도 쳐놓지 그러셨어.”
“아아아악!!”
히스테리를 부리며 머리를 산발시켜 얼굴을 감춰버린 화연. 남편에게 자신의 흑역사를 들켜버린 그녀는 그렇게 식탁 위에 축 늘어진 채 나지막히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래. 기억을 지우면 돼. 그냥 지워버리면 되는거야.”
“…?”
오우 심상치 않은데? 뭐지? 왜 갑자기 살기가 느껴지지?
[위협이 감지되었습니다.]시스템 창이 반응할 정도로 쎄함을 느낀 이한성은 이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화연으로 부터 한걸음 멀찍이 떨어졌다. 그러자 이에 그녀는 마치 망해버린 나라의 마지막 국모마냥 실성한 미소를 내지으며 이한성을 향해 한발짝 다가갔다.
“한성아, 잠깐만 가까이 와볼래?”
“…왜죠?”
“아니 그냥. 기억만 조금 지울려고.”
“!!”
기습적으로 자신의 머리에 손을 대려 한 화연을 가까스로 피해낸 이한성. 그렇게 구사일생으로 치매 환자가 될 뻔한 위기를 모면한 그는 새빨개진 얼굴로 정상적인 사고를 하지 못한 채 점점 더 다가오는 화연을 어떻게든 말리기 시작했다.
“워워워!! 진정해 진정! 그거 잘못하면 치매 오잖아!”
“확률이 그렇다는거지, 항상 그런 건 아니야.”
“확률이 몇펀데…?”
“대충 49%?”
“반반이구만!!”
확률이 반반이면서 그걸 또 굳이 49%라고 말해주는 화연의 대답에 이한성은 기겁하며 그녀와 거리를 벌렸다. 그러나 그녀는 이에 그저 한발짝 더 가까이 다가가며 말할 뿐이었다.
“반반이 아니라 49%라니까? 반보다 적은 확률이니까 괜찮아. 내가 노력해서 최대한 치매 안오게 해볼게.”
“진정!! 일단 진정하시죠 어르신!!”
후퇴하다 보니 어느새 거실 끝자락까지 밀려나게 된 이한성은 그렇게 필사적으로 외쳤다. 그러나 이미 흑역사 때문에 정신줄을 반쯤 놓고 있던 화연에게 그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야야 수정아! 니 엄마 좀 말려봐라!! 빨리!!”
결국 최후의 수단으로 수정이까지 내세우게 된 이한성. 자신의 말은 안 들려도 수정이의 말은 들을거라고 생각했던 그는 급박하게 수정이의 지원을 요청했다.
“예써!”
이한성의 부탁에 자신만만하게 나선 수정이. 그렇게 제 엄마 앞에 선 수정이는 주저없이 마법을 사용해 거대한 얼음벽을 세워놓았다.
[와장창!]“이러케 하면 되는거야?”
“아, 아니… “
두텁게 세워진 얼음벽은 만들어진 것과 동시에 벽과 천장을 뚫어버렸다. 그러자 그 광경을 본 이한성은 반쯤 영혼이 빠져나간 듯한 얼굴로 수정이를 쳐다보았다.
“말로… 말로 할 수도 있었잖냐…”
“?”
말로 말릴 수도 있는 것을 굳이 마법으로 집안을 와장창 깨뜨려가면서 막아세운 수정이는 이한성의 말에 그저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됐다. 얘한테 도움을 요청한 내가 등신이지.
세상에 나쁜 애는 없다. 머저리같은 어른만 있을 뿐. 그렇게 이한성은 스스로를 타이르며 한숨을 내쉬었다.
“뭐… 그래도 이렇게 까지 해놨으니 괜찮긴 하겠네.”
그나마 수정이가 도움을 준 것이 어디인가. 비록 집이 또 상하기는 했지만 그런 일이야 일상이니 별로 신경쓸 필요는 없다. 어차피 [리커버리] 스킬로 금방 고칠 수도 있고.
거기에다가 수정이의 얼음은 화연의 마법으로도 파괴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우니 당장 그녀가 이 얼음벽을 뚫고 들어오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런 생각과 함께 이한성은 숨을 돌리며 이대로 어떻게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화연이 진정할 때 까지 잠시 집 밖으로 피신하는 것도 방법이라면 방법이었지만, 어차피 그녀의 흥분이 그렇게 오래 갈 것도 아니었으니 이대로 기다리는 것도 하나의 방법-
[치이익-]“?”
갑자기 왠 물 끓는 소리가…?
갑작스럽게 들려온 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그 어떠한 대마법에도 끄떡없던 수정이의 비x라늄 얼음벽이 반대편 부터 붉게 달궈지며 녹고 있었다.
“와 씨… 이건 또 뭐여.”
공포영화에서 흔히 등장하는 연출. 이제 막 안전한 곳으로 대피했다고 생각했을 때, 살인마가 도끼로 문을 내리찍고 얼굴을 드러내는 그런 연출과 맞먹는 실제 상황을 맞닥뜨린 이한성은 얼탱이가 빠진 얼굴로 큼지막하게 녹아내린 얼음벽 그 너머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 너머에는 다름이 아닌 세리가 불 붙은 손을 가볍게 탈탈 털어내며 밋밋한 표정으로 서있었다.
“도와줘서 고마워 세리야.”
“헤헤…”
종말급 드래곤이라 그런지 수정이의 비x라늄 얼음도 간단히 녹여버린 세리. 방금 전 까지만 했어도 무미건조한 얼굴을 하고 있던 세리는 화연이 머리를 쓰다듬어주기 무섭게 베시시 웃으며 전혀 안어울리는 애교를 부렸다.
“자, 그럼 이제 우리 하던 것 좀 마저 해볼까요 나으리?”
화연이 섬뜩하게 웃으면서 이한성에게 말했다. 그러자 이에 이한성은 살기를 느끼고는 어떻게든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대화를 시도했다.
“잠깐만요. 우리 이러지 말고 문명인답게 대화로 풀어봅시다.”
“아~ 대화로 풀자고요?”
“네네.”
…먹혀든건가?
“그런데 어쩌죠? 전 아시다시피 고려시대 엘프라 대화를 별로 선호하지 않는데.”
“….”
…먹혀들기는 개뿔이. x됐네.
말투 하나 가지고 놀려댔다고 굳이 이렇게까지 나와야하는걸까. 지금 본인의 상황이 상당히 x됐다는 사실을 감지한 이한성은 본인의 비범한 짱구를 굴리며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띵동-]하지만 그렇게 절체절명이던 그 순간, 느닷없는 초인종소리가 집 안에 울려퍼지며 하늘이 내린 동앗줄마냥 이한성에게 떨어졌다.
“손님이 왔는데…?”
“….”
가족끼리 얼마나 심하게 다퉜던 간에 집에 손님이 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싸우기 전의 상태로 되돌아가는 것은 세상 모든 가족들의 공통점이다. 물론 이 가족은 전혀 평범하지 못한 가족이었지만, 그런 비정상적인 가족에게도 그 국룰은 똑같이 적용되기 마련이었다.
[띵동-]“네~ 지금 가요~”
방금 전까지의 살벌한 살기는 어디가고 아주 친절한 미소로 돌변한 채 현관으로 달려나간 화연. 그렇게 화연이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먼저 달려나가자, 이한성은 손님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큰 빚을 졌다고 생각하며 속으로 감사를 표했다.
거 뉘신지는 모르겠지만은 대단히 감사합니다… 하마터면 청년치매에 걸려서 인생이 쫑날 뻔 했는데 덕분에 살았습니다.
그렇게 속으로 감사를 표하며 한발 늦게 화연을 따라 현관으로 나온 이한성. 찰나의 위기 속에서 자신을 구해주신 위인이 과연 누구실지 궁금했던 그는 주저없이 현관문을 열어 정체불명의 손님을 반겨주었다.
아니, 정확히는 반겨주려고 하였다.
“안녕하세-”
반갑게 웃으며 손님을 환영하려던 그 순간, 이한성은 문 밖에 서있던 사람을 보고는 반사적으로 놀라서 말을 하다가 끊어버리고 말았다.
현관문 바로 앞에는, 갑자기 무슨 약장수인가- 싶을 정도로 잡다한 물건들을 잔뜩 몸에 걸친 채 뭐가 잔뜩 담긴 종이봉투들을 들고 있던 누군가가 떡하니 서있었기 때문이었다.
“…누구세요?”
넓쩍한 챙모자에 몸에 걸친 온갖 다양한 장식품들. 거기에다가 어디서 난 건지 모를 괴악한 디자인의 선글라스까지 해서 얼굴이 보이지 않았던 탓에 대체 눈앞의 저 사람이 뭐하는 사람인지 짐작조차 할 수가 없었던 이한성은 의문이 가득한 얼굴과 함께 약장수에게 그렇게 물었다.
그러자 그런 이한성의 물음에 약장수는 매우 익숙한 목소리로 대답하며 괴악한 선글라스를 벗어제꼈다.
“누구기는 누구겠냐 이놈아.”
“어, 엄마??”
약장수로 밖에 보이지 않던 분의 정체는 다름이 아닌 이한성의 어머니. 몇 주 전에 유럽 여행을 가셨다가 영 소식이 없어 잠시 잊혀지셨던 비운의 어머니셨다.
“아니, 오늘 돌아오신거예요?? 분명 다음주에 돌아오신다고…”
“그럴려고 했는데 손주들 보고 싶어서 참을 수가 있었어야지.”
이한성의 어머니가 꽤나 쓸쓸하셨다는 얼굴을 지으시며 대답하셨다. 그러자 이한성은 그럴 줄은 몰랐다는 듯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멋쩍은 모습을 보였다.
“어? 할머니이!!”
현관 쪽이 소란스럽다는 것을 느끼곤 다가온 수정이가 몇 주 만에 다시 본 할머니와 마주치기 무섭게 쏜살같이 달려들었다. 그러자 이에 이한성의 어머니는 들고 있던 짐을 내려놓으시고는 살갑게 반겨드는 손녀딸을 안으셨고, 이내 많이 그리우셨다는 듯이 이뻐해주기 시작하셨다.
“아이구 그래, 우리 손녀 잘 있었어?”
“응! 운동회 나가서 상도 타고 엄~청 활약했었써여!”
“아이구 장하다~ 운동회도 나갔었어? 이것 참, 할머니도 그걸 봤어야 했는데 참 아쉽구나.”
[뜨끔-]어째 어머니의 운동회 참석을 방해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 순간 양심이 찔린 이한성.
…유럽 여행은 나중에 보내드릴 걸 그랬나.
제 딴에는 어머니 호강하시라고 보내드린 거였지만 본의 아니게 손녀딸 운동회에도 못 나가게 만들어버린 불효자가 된 이한성은 속으로 그렇게 후회해며 조용히 반성하는 태도로 짐을 나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게 다 뭐예요?”
“뭐긴 뭐겠어, 우리 며느리랑 손주들 주려고 사온 기념품들이지.”
이한성의 어머니가 보고도 모르겠냐는 듯이 틱틱거리시며 종이봉투들에 들어 있던 각종 잡다한 기념품들을 보여주셨다. 그러자 이에 이한성은 참 대단하다는 듯이 질색하며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참 많이도 사오셨네… 아니, 이렇게 많이 사오시면 어떡해요?”
“맞아요 어머니. 들고오시느라 힘드셨을텐데…”
화연도 이한성과 같은 생각이라는 듯이 거들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런 아들내미와 며느리의 말을 귓등으로 흘려버리신 어머니는 손주들 선물 줄 생각해 신나셔서 들은 척도 안하시고 곧장 거실로 향하실 뿐이었다.
“에구머니나.”
하지만 거실에 들어서기 무섭게, 어머니는 그대로 돌 처럼 굳어버리시고 말았다.
왜냐하면 거실에는 아까 전 상황의 여파가 아직도 그대로 남아있었기 때문에.
“…나 없는 사이에 강도라도 들었었어?”
“아, 아뇨…”
“그런 건 아니고 저건…”
어머니의 물음에 이한성과 화연은 서로 눈치를 살피며 어떻게든 변명거리를 궁색하기 시작했다. 아니, 정확히는 변명거리를 궁색하던 건 이한성 뿐이었다.
“…애들이 놀다가 사고친겁니다만. 문제라도?”
“???”
이한성의 말에 수정이와 세리가 어리둥절한 시선으로 그를 빤히 쳐다보기 시작했다. 기껏 도와달래서 도와줬더니 이렇게 누명을 씌우려드는 아빠를 본 두 소녀는 세상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렇게 다시 한번, 아이들의 민심을 모조리 잃어버린 이한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