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Part-Timer Raises a Half-Elf RAW novel - Chapter (224)
알바생이 하프 엘프를 키우는 법-224화(224/245)
224
내로남불.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지극히도 사자성어스러운 줄임말.
흔히들 이중잣대를 늘어놓는 사람들을 일컫는 이 줄임말은 대게 스스로에게 자각이 없는 사람들에게 사용되곤 한다.
해영이와 한스의 미묘한 썸타기를 보며 열이 받은 이한성과 화연 또한 그런 사람에 속한 이들이었다.
“이것들이??”
“상스럽게 지금 뭐하는거야??”
본인들이 그동안 다른사람 앞에서 애정행각을 보여온 건 기억 못하고, 내로남불을 시전하며 아주 짜증스런 기분을 분출하기 시작한 이한성과 화연. 그렇게 두 남녀의 눈꼴시림을 도저히 지켜만 보고 있을 수가 없었던 둘은 기어코 수정이와 세리의 도움을 빌려가면서 까지 두 남녀의 사이를 훼방놓으려고 하였다.
“야 수정아, 가서 쟤들 등에 얼음 좀 넣고와라.”
“세리야, 혹시 저것 좀 태워줄 수 있겠니?”
정상적인 부모는 아이들에게 살인청부를 위탁하지 않는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이한성과 화연은 정상과는 매우 거리가 먼 부모들이였다.
물론 그렇게 부모가 부탁한다고 해서 순순히 말을 들을 아이들이 아니었지만 말이다.
“시른데? 귀차나.”
“[끄덕끄덕-]”
귀찮다는 이유로 부모님의 부탁을 거절한 아이들. 그러자 그렇게 나온 아이들의 태도에 이한성은 로비를 시도하며 아이들을 꿰어내려고 하였다.
“핫도그 사줄게.”
“!!”
핫도그를 사주겠다는 제안이 떨어지기 무섭게 수정이의 입에서 군침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하지만 수정이는 거기에서 넘어가지 않은 채 손가락 2개를 세우는 것으로 딜을 세웠다.
“2개씩.”
“…콜.”
“앗싸아~!!”
이한성이 핫도그 2개씩이라는 딜을 받아들이자 수정이는 그대로 세리를 꼬옥 껴안으며 환호성을 질렀다. 그리고는 이내 곧바로 거래를 충실히 이행하기 위해 한스와 해영이의 뒤에 슬그머니 접근하였다.
둘의 사각지대로 접근한 수정이는 그대로 양손에 얼음큐브들을 각각 다섯 개 씩 생성하였다.
노리는 것은 두 남녀의 무방비한 등짝. 제 아빠를 똑 닮은 사악한 미소를 지은 수정이는 그렇게 마법으로 생성한 절대 녹지 않는 얼음들을 잽싸게 한스와 해영이의 등에다가 넣어버렸다.
“우오오오?!”
“꺄악?!”
갑자기 등을 강타한 차가운 없는 감촉에 반응해 난리 법석을 떨기 시작한 한스와 해영이.
그리고 그렇게 마구잡이로 날뛰던 둘은 마치 서로 의도하기라도 한 듯 마냥 엉킨 채 바닥으로 넘어진 두사람의 구도는 이한성이 의도했던 것 과는 정반대의 결과를 불러일으켰다.
왜냐하면 두 사람의 구도가 꼭 오글거리는 2000년대 로맨스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모습이였기 때문이었다.
넘어지면서 입술과 입술이 맞닿는.
“…다친데는 없나?”
“아… 네, 뭐…”
한스가 해영이를 반사적으로 감싼 포즈를 한 채 묻자, 이에 그녀는 살짝 홍조가 올라온 얼굴과 함께 시선을 피하며 그렇게 대답하였다.
“….”
“….”
아주 그냥 슬로우 모션이 연출되면서 OST가 흘러나오기 시작할 것만 같은 분위기. 그런 분위기에 이를 지켜보고 있던 이한성과 화연의 표정은 삭은 계란마냥 썩어들어가버렸다.
저것들이 지금 장난하나… 아니, 대체 뭘 어떻게 하면 저런 식으로 엉켜서 넘어질 수가 있는건데??
저런 식으로 넘어지면 입술이 맞닿는 것이 아니라 아예 앞니가 죄다 부러지고 피가 철철 흘러야 정상이다. 하지만 저 둘은 물리법칙을 위배하기라도 했는지 아주 말짱한 상태였다.
“…안되겠다. 세리야, 가서 저것 좀 태워버리렴.”
말 같지도 않은 상황에 보다 못한 화연이 맛탱이가 가버린 눈빛으로 한스를 바라보며 세리에게 말했다. 그러자 그런 화연의 모습에 잔뜩 겁을 먹어버린 세리는 덜덜 떨면서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이, 이얍-!”
세리가 잔뜩 위축된 목소리와 함께 한스를 향해 최상위까진 아니지만 상위 화염 마법을 시전한 세리.
그러자 위축된 상태로 시전한 마법은 소드 마스터인 한스에게 한방을 먹이기에는 조금 부족했다.
“…! 위험하다!!”
“?!”
갑작스럽게 날아온 화염 마법을 목격한 한스가 놀라운 반사신경과 함께 손에 오러를 두른 채 해영이를 감싸며 화염구를 옆으로 쳐내버린 것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한스의 대응으로 튕겨나가버린 화염 마법은 그대로 길가 옆에 쌓여있던 상자들을 직격하고 말았다.
[화르륵-]불이 붙은 상자들은 금새 새빨갛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나무재질이었던지라 손쓸 틈도 없이 불길에 휩싸여버린 상자들을 본 이한성과 화연의 표정은 순식간에 굳어버렸고, 그렇게 불타오르기 시작한 상자들은 이윽고 밝은 섬광들과 함께 사방으로 터져나가기 시작했다.
[퍼엉! 펑! 퍼벙!!]상자들의 안에 들어있던 것은 다름이 아닌 야간에 있는 이벤트에 사용될 예정이었던 폭죽들. 원래대로라면 아주 알록달록한 색깔들로 밤하늘을 꾸며야 할 폭죽들이었지만, 이미 한번 불이 붙어버린 폭죽들은 그저 사방으로 날뛰며 사람들을 패닉에 빠뜨릴 뿐이었다.
“뭐, 뭐야?!”
“꺄아악!!”
“도, 도망쳐!!”
갑작스럽게 사방으로 터져나가기 시작한 폭죽에 의해 혼란 속에 빠져버린 사람들. 그렇게 혼비백산 도망가는 인파 속에서, 이 사단의 원인인 이한성과 화연은 할 말을 잃어버린 채 멍하니 폭죽들을 바라보았다.
“….”
“….”
…ㅅㅂ.
속으로 나지막히 욕을 내뱉으며.
———————————
결국 거하게 사고를 치는 바람에 책임을 지기로 하곤 해영이와 한스에게 둘만 있을 시간을 주기로 한 이한성과 화연.
그렇게 계속해서 방해하지 못해 안달이었던 부부와 아이들이 사라지자, 드디어 해영이는 한시름 마음을 놓고 다시 한스와의 데이트를 즐길 수 있었다.
“와~ 방금 그거 진짜 재밌었다, 그죠?”
“….”
…정확하게는 데이트가 아니라 머슴 하나를 데리고 혼자만 실컷 놀이공원을 즐기는 것에 가까웠지만 말이다.
자이로드롭에 이어 롤러코스터, 그리고 그 다음은 탑스핀까지. 해영이의 취향 때문에 온갖 하드코어한 놀이기구만 주구장창 체험해야 했던 한스.
때문에 자이로드롭 하나 만으로도 죽을라고 했던 그가 졸도하기 직전의 상태가 된 것은 지극히도 당연한 일이었다.
‘…태양신 솔레이스이시여, 곧 만나뵈겠습니다.’
얼굴은 창백하고 속은 뒤집어진지 오래. 서있는 것 조차 겨우 버티는 지경까지 이르게 된 한스는 그렇게 속으로 신께 기도를 드리며 지금까지 살아왔던 주마등을 엿보았다.
하지만 아직도 기운이 넘치는 해영이는 그것을 허락할 생각이 없었다.
“이번에는 저거 한번 타보러 가요!”
“엌-”
해영이가 손목을 홱 하고 채가자 엌 하고 힘없이 끌려가버린 한스. 저항할 힘은 진작에 죄다 고갈되었던 그는 그렇게 모든 것을 체념한 채 그녀의 뒤를 따를 수 밖에 없었다.
‘이번에는 또 어떤 고문기구에 날 올릴 생각인거냐 이 여자는…’
차라리 죽이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로 녹초가 되어있었던 한스는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리며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가 예상했었던 것과는 다르게, 이번에 그녀가 타자고 한 놀이기구는 지금까지처럼 그렇게 무서워보이는 기구가 아니었다.
“…뭐지 저건?”
“관람차에요.”
“관람차…?”
또 처음 들어보는 단어에 한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설마… 저기에다 사람을 태우고 고속으로 회전시키는 고문기구인가…?’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다. 지금까지 타왔던 놀이기구가 죄다 그런 식이였으니 이것 또한 그럴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그런 그의 우려와는 다르게, 잠시 지켜본 관람차라는 것은 전혀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기구가 아니었다.
아주 천천히 한바퀴를 빙 돌았다가 다시 내려오는 기구. 몸과 영혼이 분리될 정도로 빠르게 도는 것도 아니고, 미칠도록 높이 올라갔다가 뚝 떨어지는 것도 아니며, 공중에다가 사람을 던져버릴 정도로 과격해 보이지도 않는다.
“…정말로 저걸 탈건가?”
“그럼요. 안되나요?”
“아, 아니. 안될 건 없다만은…”
“그럼 잘 됐네요. 타요 어서.”
영 못 믿겠다는 한스의 물음에 해영이는 속고만 살았냐는 듯이 그의 등을 관람차 안으로 떠밀었다.
모양새 빠지게 떠밀리듯 관람차에 올라탄 한스는 머쓱이는 얼굴과 함께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해영이는 그렇게 그의 마주편에 앉으며 미소를 지어보였고, 그렇게 둘이 탑승한 관람차는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하며 덜컹였다.
“…?!”
아주 조금 흔들렸을 뿐임에도 깜짝 놀라며 아무거나 꽉 붙잡은 한스. 그렇게 덩치에 안맞게 겁이 많은 그의 모습을 본 해영이는 저도 모르게 살짝 웃음을 터뜨려버렸다.
“푸흡! 정말이지, 떨어질 일 없으니까 힘 좀 풀어요.”
“…만약의 사태에 대비했을 뿐이다.”
해영이가 놀리듯 말하자 한스는 헛기침과 함께 긴장을 억지로 진정시키며 그렇게 대꾸했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영이의 장난스런 미소가 얼굴에서 사라지는 일은 없었다.
“겁이 많다면 겁이 많다고 하지.”
“….”
“그러지 말고 한번 밖에 좀 봐봐요.”
관람차에 타서 잔뜩 겁만 먹은 채 바닥만 내려다 보고 있으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런 생각으로 한 해영이의 말에 한스는 마지못해 고개를 들어 창 밖을 내다보았다.
그 와중에 또 겁을 먹어서 한 눈만 가늘게 떠다 밖을 내다본 한스 마이어.
“…!!”
하지만 그렇게 밖을 내다본 그는 이윽고 두 눈을 활짝 뜰 수 밖에 없었다.
그가 내다본 그곳에는, 지금까지 그가 살면서 단 한번도 보지 못했던 풍경이 펼쳐져 있었기 때문에.
“어때요? 예쁘죠?”
“….”
지평선 저 너머로 지고 있는 노을,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초승달, 하나 둘 씩 켜지며 주변을 밝히기 시작한 공원 곳곳의 조명들.
마치 동화 속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풍경이었다. 죽어가는 세계에서 이곳으로 넘어온 한스는, 그러한 바깥의 풍경에 그 어떠한 말 한마디도 내뱉을 수가 없었다.
말 한마디로는 이 풍경의 아름다움을 전부 표현할 수 있을리가 없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았기에.
“사실 저, 어렸을 때 부터 이곳에 여러번 왔었어요.”
풍경의 아름다움에 말을 잃어버린 한스를 바라보며, 해영이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올 때 마다 항상 마지막은 이 풍경으로 장식하게 되더라고요. 뭐라고 해야하나, 이 풍경이 아니면 그날 하루가 끝난 것 같지 않다고… 그냥 그런 기분이 들어서요.”
“….”
“…좀 이상하죠? 그래, 이렇게 말하니까 진짜 이상하네. 아하하…”
“아니.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군.”
괜한 말을 했다며 웃어넘기려던 해영이였지만, 한스는 그렇지도 않다는 듯이 그녀의 말에 공감하며 그렇게 대답하였다.
“…예전에, 가족과 함께 마을의 축제를 본 적이 있었지.”
한스는 나지막히 말을 이어갔다. 잘 기억나지도 않는 빛 바랜 과거를 조금씩 되감은 그는 지금까지 그 누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었던 본인의 이야기를 타인과 나눴다.
“너무 어렸을 적의 일인지라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만… 그날 아버지께서 보여주셨던 마을의 야경만은 똑똑히 기억이 난다.”
웃음으로 떠들썩한 노래소리, 밤하늘 아래의 마을을 자수놓은 수많은 랜턴들과, 거리 곳곳에서 풍겨오는 축제의 향기들.
“그 이후론 축제에 가볼 시간이 없었나봐요?”
“….”
해영이의 물음에 한스는 바깥의 풍경보다 먼 곳을 바라보며 잠시 입을 다물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셨다. 축제가 있던 다음날에.”
“….”
갑작스럽게 찾아왔던 대지진. 모두의 웃음으로 가득했던 고향마을은, 단 하루아침에 아무것도 남지 않은 폐허가 되었다.
“내가 살던 세계는 죽어가고 있는 중이지.”
서서히, 아주 천천히, 인간들이 자초한대로.
“난 부모님의 죽음에 반드시 이유가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지 복수라는 이름으로 슬픔을 포장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결국 그건 내 어리석음에 지나지 않았군.”
그것은 재앙이었고, 인간이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고작 8살에 불과했던 소년이 죽어가는 부모의 앞에서 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는 그저 살아남는 것 뿐이었다.
단지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기에 복수라는 것의 힘을 빌려 지금까지 악착같이 외길을 걸어왔고, 그렇게 한참이 지나고서야 걸어왔던 외길이 막다른 길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뿐인 이야기.
그냥 그런 볼품없는 이야기다.
[턱-]순간 작은 온기 하나가 한스의 손에 맞닿았다. 바깥의 풍경 너머에 있는 과거의 기억을 내다보고 있던 그의 손을 잡은 해영이는 그저 말 없이 한스의 얼굴을 끌어당겨 자신의 어깨로 품었다.
“쉬어요. 오늘은 그래도 되는 날이니까.”
“….”
해영이의 속삭임에 한스는 아무런 대답도, 저항도 하지 않았다. 덩치에 맞지 않게 자신보다 한참이나 작은 타인의 어깨에다 이마를 맞댄 그는, 몰려오는 피곤함과 함께 조용히 눈을 감았다.
‘…오늘은 못하겠다, 고백.’
쓴웃음과 함께 울려퍼진 해영이의 속마음을, 그는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