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Part-Timer Raises a Half-Elf RAW novel - Chapter (226)
알바생이 하프 엘프를 키우는 법-226화(226/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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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고백을 못 했다고??”
이한성의 집에서 불과 10분 거리인 빙수 카페 안에서, 늘 존재감 없이 무시당하던 윤재혁의 목소리가 한가득 울려 퍼졌다.
“그러면, 너 같으면 그 상황에서 고백을 하겠어?”
윤재혁의 물음에 잠시 휴식시간 겸 테이블에 앉아있던 해영이가 약간 언짢아진 목소리로 되물었다. 그러자 이에 윤재혁은 자신감이 넘치는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아니 야, 나 같았으면 밀어붙혔지!”
“그러니까 오빠가 지금껏 연애를 못한거겠죠.”
양예은이 혀를 차며 이상하리만큼 자신감이 넘치는 윤재혁을 나무랐다. 그러자 그런 예은이의 팩트를 얻어맞은 윤재혁은 순간 저도 모르게 발끈하며 항의하였다.
“야, 야! 내가 연애를 못 해보긴 뭘 못해! 나 여러번 했었거든?”
“그랬다는 사람이 그 상황에 고백을 밀어붙인다고 당당하게 말해요?”
눈치가 없어도 정도껏 없어야 가능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윤재혁의 항의에 그렇게 대꾸한 양예은. 자신보다 2.5살 쯤 많은 오빠를 상대로도 아무렇지도 않게 할 말을 전부 내뱉던 그녀가 기특했던 해영이는 피식 웃으며 그녀의 곁에 붙었다.
“맞아. 윤재훈 너 그러다가 평생동안 연애 한번 못하고 무덤에 눕는다?”
“제가 볼 땐 이미 늦었는걸요 뭘. 저 오빠는 이미 글러먹었어요.”
해영이의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그렇게 덧붙인 양예은의 말에 윤재혁은 아무말도 내뱉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홱 돌리며 뭐라는지 모를 소리로 궁시렁거릴 뿐이었다.
“야, 너 삐졌어?”
“몰라. 말 걸지 마.”
존재감도 없으면서 그거 한마디 했다고 유치하게 삐져버린 윤재혁. 정녕 저게 자신보다 2.5살이나 많은 어른인지 의문이 들었던 예은이는 그저 한심하단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며 혀를 찰 뿐이었다.
“별걸 다 가지고 삐지네 진짜… 야, 이 상황에선 데이트 하러 가서 고백도 못하고 돌아온 내가 우울해져야지, 왜 니가 우울해지고 난리인데??”
“넌 그 데이트라도 하러 갔잖아! 난 아예 내 인생에서 그런 걸 해본적이 1도 없걸랑?!”
존재감이 없어 평생을 솔로로 살아온 윤재혁. 그에게 있어 이성과의 데이트라는 것은 다른 세계에서나 존재할 법한 미지의 영역이었다.
“사람이 저렇게 눈치가 없는데 같이 갈 여자가 어딨겠어요.”
하지만 이를 듣고있던 예은이는 그저 팩트폭격으로 말을 되돌려 줄 뿐이었다.
“…예은이 너 은근히 애가 가차없구나?”
“그냥 현실적으로 말하는 것 뿐이에요.”
좀 너무한 것 아니냐고 묻는 해영이의 말에 이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대답한 양예은. 그렇게 윤재혁을 팩트로 압살해버린 그녀는 조용히 행주를 짜다가 테이블을 닦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언니는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
“응?”
갑작스런 예은이의 질문에 해영이는 순간 당황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스 씨 한테 고백 못했다면서요. 그럼 다음 계획을 미리 세워둬야하지 않나요?”
“아니 뭐… 계획이라고 할 거야 없긴 한데…”
딱히 이 이후의 일은 생각해두지 않았다. 애초에 해영이는 그렇게까지 주도면밀한 인간이 아니었다.
“…그래도 뭐 당분간은 이대로 관계를 유지해야되지 않을까?”
일주일 전 관람차에서 고백이 물건너간 이후로 아직 일주일 밖에 되지 않았다. 원하기야 한다면 이런저런 핑계를 대서 한스를 꾀어낼 방법이야 여러가지가 있었으나, 그녀는 굳이 고민이 많은 듯 보였던 한스의 머리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 사람도 본인 나름대로 생각할 게 많아보였고 말이야.’
지금까지야 별 생각이 없었지만 일주일 전 그날, 한스와 나란히 관람차에 마주앉았던 그 날에 해영은 그동안 마주보지 못했던 한스 마이어라는 인간의 내면을 아주 조금이지만 엿볼 수 있었다.
지구가 아닌 다른 세상에서 온 남자. 어린 시절 부모님을 잃어버린 남자. 복수만을 쫒아 다른 세상까지 왔지만, 결국에는 그 복수하나 마저 전부 헛되었다는 걸 깨달은 사람.
오직 하나만을 바라보고 달려왔던 사람이, 그 하나가 헛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인간은 무엇을 생각하게 될까.
“내 인생도 나름대로 스펙타클하다고 생각했었는데 말이지…”
어릴 때 부모님을 여의고 고아원에 들어와 온갖 궂은 일들을 겪어봤었던 해영이였지만, 아무리 그녀라고 해도 역시 현대인의 틀에서 고생했었던 것 뿐.
하지만 그런 그녀와는 달리 한스가 살던 세계는 이 각박한 현대 보다도 살기가 어려운 세계. 오늘 하루 끼니를 어떻게 때워야 하는 것을 걱정해야하는 세계가 아닌,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살아남아야 걱정해야 하는 세계.
죽어가는 세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심정 같은 것을 겪어보지 못한 그녀가 알 방법 따윈 없다. 너무나도 먼 곳의 이야기고, 너무 현실성이 없게 느껴지는 탓에 상상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다만 아무리 그녀에게 있어 현실성이 없고 먼 곳의 이야기라 하더라도, 그 이야기는 실제로 이 순간에도 이곳이 아닌 다른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또 다른 현실의 이야기였다.
“…어렵네 진짜.”
연애 좀 하고 싶다는데 이런 거창한 문제를 왜 고민해야하는걸까. 연애 문제 하나 만으로도 벅찼던 해영이는 복잡해진 생각을 뒤로 한 채 조용히 예은이를 거들어주기 위해 테이블을 닦기 시작했다.
과연 지금 이 순간에, 한스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질문을 던지며.
—————————-
“….”
나는 아무런 생각이 없다. 머릿속을 비우기 위해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는 생각을 하고 있다.
거실의 소파에 앉은 채 멍하니 넋이 나간 면상으로 그렇게 마음 속에 중얼거리던 한스는, 지난 몇 시간 동안 줄곧 그런 상태에 빠져있었다.
“야. 니들 땜에 쟤 멘탈 와장창 됐잖아. 어떡할거야 저거.”
멘탈이 가루가 되다 못해 아예 원자 단위로 부스러져버린 듯한 한스의 몰골을 본 이한성이 수정이와 세리를 바라보며 어떻게 좀 해결해보라는 듯이 항의하였다. 그러나 이에 아이들은 들은 채도 하지 않은 채 거실 바닥 위에서 스케이트를 타며 놀 뿐이었다.
“아하하하! 미끄러진다~!!”
“어, 언니… 조금만 천천히…”
“….”
저질러 놓은 건 안중에도 없고 신나게 놀고 있구만.
이제는 집안에서 스케이트를 타도 그냥 그러려니 넘기게 되는 지경까지 오게 된 이한성. 이미 오래 전 부터 포기했었던 그는 아주 좋아라 미끄러지면서 노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그저 마른세수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위이이잉-]“?”
누구지? 이 시간에 전화할 만한 사람은 딱히 없을텐데.
현재 시각은 이른 오후. 아는 지인이라고는 다섯 손가락도 넘지 못하는 이한성에게 이런 시간에 전화가 올 일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여보세요?”
이한성은 화면을 보지도 않고 그대로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받았다. 그러자 핸드폰 너머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다름이 아닌 화연이었다.
[아, 저기 난데 혹시 잠깐 이쪽으로 와 줄 수 있을까?]“갑자기?? 무슨 일인데.”
[아니… 별 건 아니고 그냥 오랜만에 점심이나 같이 먹을까 해서.]이한성은 가게 때문에 바쁘고, 화연은 학교 때문에 바쁜지라 부부가 된 이후로도 둘은 좀처럼 점심을 함께 할 시간이 여태껏 없었다.
“점심? 뭐… 나야 상관없긴 한데, 어디서 먹을거야?”
[여기 학교 주변에 맛있는데 한곳 있거든? 거기에서 먹는 건 어때?]“학교 주변이라… 알았어. 일단 문자로 주소 보내주면 거기로 갈게.”
[응. 서두르지 않아도 되니까 천천히 와.]상관없다는 이한성의 대답에 화연은 부드러운 말투로 그렇게 대답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그러고보니까 요즘들어 단 둘이 있을 시간이 그닥 없었지.
지금와서 생각해 보니 결혼 한 이후로 서로 함께하는 시간이 많이 줄어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애들 돌보느랴, 일하느랴 바빠 그 사실을 잠시 잊고 있었던 이한성은 약간 미안하단 기분을 느끼며 말없이 머리를 긁적였다.
“뭐… 가게는 해영이네한테 맡겨놓으면 되니까 괜찮겠지.”
이제는 다들 가게 일이 익숙해진 덕에 굳이 사장이 나가지 않아도 가게가 잘만 돌아간다. 그렇게 분명 별 일 없을거라 생각하며 걱정을 덜은 그는 그대로 식탁 위에 놓여져 있던 차 키를 챙기고는 현관문을 나서려고 하였다.
“아빠 어디가?”
“니 엄마랑 점심 먹으러.”
“나두 같이 갈래!!”
이제 막 신발을 신고 현관문을 열려던 그 순간, 쫄래쫄래 따라온 수정이가 달려와 말을 듣지 않겠다는 의지가 충만한 눈빛으로 외쳤다.
“언니가 가면 나도 갈꺼야.”
그러자 1+1 마냥 덩달아 딸려온 세리. 제 언니와 마찬가지로 아빠 따위의 말은 듣지 않겠다는 게 아주 잘 느껴지는 얼굴을 하고 있던 이씨 가문 차녀의 모습에 이한성은 나지막히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너희들 말이야, 제발 니 아빠랑 엄마 좀 가만히 내버려 둘 수는 없는거냐?”
어딜 나가려고만하면 항상 따라붙어 사람 진을 빼놓는 리틀 몬스터들의 행보에 이미 지칠대로 지쳐있던 이한성.
하지만 그런 그의 지친 호소에 순수히 말을 듣는다면, 그건 이씨 가문의 자녀들이 아니었다.
“아빠가 가는 곳은 우리도 간다!”
“그리고 언니가 가면 나도 간다.”
“삼촌보다는 아빠 괴롭히는게 젤 재밌써!”
“맞아. 복수할 게 잔뜩 있어.”
무슨 롸켓단 마냥 아주 집요하게 지들 아빠 하나 잡겠다고 단단히 선언을 하는 수정이와 세리.
…저것들, 적어도 나중에 커서 먹고 살 걱정은 안해도 되겠구만. 저 정도 집념이면 뭘 해도 잘 하겠어.
부디 저 집요하기 그지 없는 집념을 다른 데 썼으면 좋겠다고 한탄해보는 이한성이였지만 애석하게도 저 하프엘프와 드래곤 소녀는 순수하게 제 부모의 기운을 빼놓는 것 이외에는 관심을 둘 아이들이 아니었다.
“돌겠네 진짜…”
이한성은 지금까지 저 아이들을 상대로 단 한번도 고집을 꺾는데 성공한 적이 없다. 그리고 아마 그건 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됐다, 니들을 설득해봐야 입만 아프고 시간만 날아가지.”
결국 제대로 뭐라 반발하기도 전에 포기해버린 이한성. 이미 아이들에게 져주는 것에 지극히도 익숙해져있었던 그는 따라오든 말든 마음대로 하라는 듯이 아이들을 뒤로 한 채 현관문을 나섰다.
…간만에 단 둘이서 오붓하게 시간 좀 보내려고 했더니만, 오늘도 영락없이 요것들한테 시달리게 생겼네.
포기하면 편하다. 말은 쉽지만 막상 포기한다 해서 또 편한 것도 아니다. 그렇게 이한성은 이번에는 아이들이 또 무슨 뒷목잡을 대형사고를 칠까 걱정하며 바깥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날씨는 드럽게 좋네.”
이제 곧 여름이라고 하늘은 구름한 점 없이 화창하다. 다만, 부부끼리의 점심식사에 아이들을 데려가야만 하는 이한성의 심정은 오로지 먹구름만으로 가득했다.
“아주 진짜 그냥… 니들은 진짜 징글징글 하다 징글징글 해.”
이한성이 아주 대단히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아이들에게 불평을 늘어놓았다. 날이 가면 갈 수록 스트레스 수치가 상한가를 치고 천장을 치고 대기권을 탈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주 잘 자각하고 있던 그는 혹시나 빠질지 모르는 자신의 모발들을 어루만지며 아이들을 째려보았다.
“징글징글? 징글벨??”
“바보인가봐. 지금 여름인데.”
“….”
…하지만 그런다고 이미 예정된 그의 모발들의 운명이 달라지는 일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