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Part-Timer Raises a Half-Elf RAW novel - Chapter (228)
알바생이 하프 엘프를 키우는 법-228화(228/245)
228
밥을 같이 먹자는 화연의 전화에 학교 근처 식당에 나온지도 어느덧 한시간째.
어우… 밖에 나온지 얼마나 됐다고 이렇게 피곤하냐…
한참 전 부터 줄곧 계속되던 여자들의 수다에 기운이 완전히 바닥나기 직전인 상태가 되어버린 이한성은 퀭해진 눈빛과 함께 자고 있는 수정이를 등에 업은 채 길거리를 걸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미안… 그냥 부르지 말 걸 그랬나…”
이한성과 똑같이 세리를 팔에 안고 있던 화연이 잔뜩 피곤해 보이던 그의 모습을 보곤 사과를 내뱉었다. 하지만 이에 이한성은 됐다는 듯이 손을 훠이훠이 저으며 대답했다.
“됐어 뭐. 어차피 집에만 있었어도 애들 사고치는 거 수습하느라 피곤했을테니까.”
밖에서나 집에서나 어떻게 하든간에 피곤해지는 것은 매한가지다. 다만 무엇 때문에 피곤해지는가 가 달라질 뿐.
이번 같은 경우에는 밖에 불려나와서 한시간 동안이나 계속된 여자들의 수다에 휘말린 것이 주된 원인. 물론 다행히도 겨우(?) 한시간 만에 여자들의 대화가 끝난 덕에 수정이와 세리가 평소에 치고 다니는 사고들을 수습하는 것 보다는 훨씬 나은 편이었다.
“그나저나 친구 분 쪽은 학교 다니느라 고생인 것 같던데, 너는 왠지 여유인가봐?”
“여유라고 해야할까… 솔직히 말하자면 나한테는 학교생활이 그닥 어렵지도 않아서 그런가봐.”
의외라는 이한성의 물음에 화연은 옅은 미소와 함께 그렇게 대답하였다.
학교 생활이 그렇게 어렵지 않다고…? 아니, 암만 머리가 좋아도 세대 차이 같은 것들 때문에 생활이 쉽지는 않을텐데…
화연의 나이는 600대 초반. 고려시대 때 부터 현대까지 줄곧 살아왔던 그녀가 요즘 젊은 학생들과 어울리는 것은 여간 쉬운일이 아닐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당장 5년 10년만 나이 차이가 나도 서로 잘 어울리지 못하는 것이 바로 인간이라는 존재이니.
하지만 그런 이한성의 생각과는 다르게 화연은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듯이 말을 이어갔다.
“사실 사회 생활이라는게 대부분이 그 어느 시대든 비슷비슷 하잖아? 윗사람들한테 부려먹히고, 그러면서 부조리도 한번씩 겪어보고, 그러다가 지쳐서 잠깐 쉬고 싶어지기도 하고.”
시대가 바뀌어도 바뀌지 않는 것들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것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간에.
“그런데 나는 남들보다 그런 경험이 많으니까… 대학이라는게 꼭 그렇게 힘들다고 느껴지지는 않더라.”
“…그렇다면 다행이네.”
적어도 고생하는 것 같지는 않으니 다행이다. 화연의 말을 듣고 그렇게 생각한 이한성은 피식 웃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다니는 과가 사회복지학과라고 했었나?”
“응. 그런데?”
이한성의 물음에 화연은 맞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이에 이한성은 무슨 문제라도 있냐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던 그녀에게 나지막히 물었다.
“…문득 궁금해져서 그런건데 말이야, 대학은 어쩌다가 다니기 시작한거야?”
예전부터 종종 궁금했던 거다.
화연의 정체는 엘프. 전지전능 까지는 아니지만 그에 준하는 정도의 능력은 지니고 있는 초월자다.
그녀의 마법이라면 현대에서도 충분히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가능할터. 굳이 학교를 다니면서 공부를 할 필요가 없다.
“이유라… 사실 별로 거창한 건 아니야.”
화연이 이한성의 의문을 충분히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냥 남들처럼 평범하게 산다면 어떤 느낌이였을까… 해서 다니기 시작한거지.”
“…? 평범??”
평범하게 살겠다는 거 하나 때문에 굳이 고생하면서 알바도 하고 대학도 다니고 그랬다고??
이한성은 전혀 이해할 수가 없는 논리였다. 만약 그가 화연처럼 엘프에다가 마법에 능한 존재였다면 그 마법을 써서 잘 먹고 잘 사는 생각만 했을 것이지, 그녀처럼 대한민국의 20대 젊은이들의 삶을 체험한다는 생각은 절대로 하지 않았을 게 분명했기 때문에.
“역시 그런 표정을 짓는구나?”
전혀 동감하지 못하겠다는 이한성의 반응에 화연은 예상했다는 듯이 쓸쓸한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는 이윽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을 이어갔다.
“인간은 하늘을 나는 새를 동경해서 비행기를 만들었지. 나도 똑같은거야.”
단지, 영원을 사는 엘프로서 평범하게 사는 인간을 동경했을 뿐.
100년, 300년, 600년, 그 아무리 긴 세월을 인간들 사이에서 살아왔다고 해도 결국에 엘프는 엘프다. 인간처럼 행동하고 인간처럼 생각한다고 해서 엘프인 화연이 인간이 되는 일은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인간처럼 살아가고 싶었다. 그저 그 뿐인 이야기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는 옛날 이야기지.”
화연이 잠시 무거워진 이야기 속에서 분위기를 전환하며 미소와 함께 덧붙였다.
“…옛날 이야기라는 건 지금은 아니라는 거야?”
“응. 한성이 너 덕분에 깨달았거든.”
초여름의 산들바람이 잠시 불어와 그녀의 금빛 머리칼을 물결치게 만들었다. 마치 투명한 호숫가를 연상키게 하는 그녀의 푸른 벽안은 따스한 시선과 함께 이한성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인간처럼 살아가기 위해서… 인간이 될 필요는 없다는 걸.”
“….”
인간에게 고향을 잃고, 동족을 잃고, 가족을 잃은 엘프는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그런 엘프인 그녀와 함께하기를 선택한 인간은…
“…와 씨, 이거 위험한데.”
…머릿속이 음란마귀로만 가득했다.
“위험하다니? 뭐가…”
갑자기 얼굴을 잔뜩 붉히며 위험하다고 말하는 이한성의 반응에 화연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렇게 물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질문을 채 끝내기도 전에, 그의 얼굴 밖으로 한가득 드러난 음란마구니를 엿볼 수 있었다.
“무, 무, 무, 무슨!!”
“워워워워! 조용조용! 이러다 애 깬다!?”
“너, 너, 너, 너는 사람이 진지한 얘기를 하고 있는데 머릿속에 든 게 그런 것(?) 밖에 없는거니?!”
“아니, 나보고 뭘 어쩌라고! 그럼 내 앞에서 그런 표정 짓지 말던가!!”
저 외모를 가지고 그런 표정을 지으면 바로 마구니가 가득하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 그렇게 속으로 어쩔 수 없는 생리현상이라고 변명을 내뱉은 이한성은 헛기침과 함께 머릿속의 마구니들을 때려 죽이며 흥분을 가라앉혔다.
“하여간에 진짜… 음흉하다니까.”
못 말린다는 듯이 고개를 저으며 이한성을 째려보기 시작한 화연. 하지만 그것도 아주 잠시, 이내 금방 화를 푼 그녀는 이한성의 등에 업혀있던 수정이의 곤히 자는 얼굴을 보고는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으며 아랫배에 손을 가져다댔다.
“…언젠가는 이 아이들에게도 방황할 시기가 찾아올거야.”
지금은 수정이도 세리도, 그리고 아직 이름을 붙여주지 못한 뱃속의 아이도, 모두 어려서 깨닫지 못했지만 저 아이들 또한 자신이 겪었던 것을 그대로 겪게 될 것이다.
잠든 수정이와 세리의 얼굴을 바라본 화연은 그 사실에 살짝 걱정이 서린 미소를 지으며 안고 있던 세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나와는 달리 이 아이들은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겠지.”
“….”
화연의 말에 이한성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녀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깨달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이야 어려서 마냥 웃고 떠들고 장난치며 즐겁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지만 크면 클 수록, 이 아이들은 본인들의 정체와 인간들의 사회 사이에서 점점 더 괴리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리고 때가 되면 이 아이들은 선택해야 할 것이다.
화연이 그러했듯 인간들의 사회 속에서 그들과 같이 살아갈 것인지, 아니면 인간들의 사회 밖에서 정처없이 떠돌며 살아갈 건지.
“…벌써 그런 얘기를 하기에는 한참이나 남은 것 같은데.”
이한성이 잠든 수정이를 고쳐 업으며 나지막히 대꾸했다. 그러자 이에 화연은 옅은 미소와 함께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듯이 대답했다.
“아이들은 눈 깜빡할 사이에 자라. 어쩌면, 그렇게 멀지 않은 미래에 선택을 해야 될 수도 있어.”
“….”
이한성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말문이 막혀서가 아니었다. 상상이 안되서 그런 것도 아니었다.
그저 본능적으로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싶지가 않아서였을 뿐.
아이들은 자란다. 시간이 흐를 수록 커가면서 점차 부모의 손길을 떠나게 되고, 결국에는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어른이 된다.
그리고 부모는 그렇게 자녀가 성장하는 모습을 계속해서 곁에서 지켜볼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결국 자녀의 인생은 자녀가 결정하는 것이고, 부모는 어디까지나 등대의 역할 밖에 하지 못하기 때문에.
물론 억지로라도 자식의 인생을 원하는 방식으로 흘러가게 할 수는 있을 것이다. 실제로도 세상에 그런 부모들은 널려있기도 하고, 방법이 어려운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러한 부모들의 손을 거친 자녀들이 어떠한 결말에 다다르는지, 이한성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양예은네 부모가 왜 그렇게까지 자식들의 인생에 참견하려 들었는지, 지금은 아주 쥐꼬리만큼 정돈 이해가 될 듯 하네. 정말로 쥐꼬리 만큼이지만.
이한성은 그렇게 지난 날 양예은과 그녀의 부모 사이에서 있었던 갈등을 떠올리며 나지막히 한숨을 내쉬었다.
이한성이라는 인간으로서는 아이들의 인생은 아이들이 스스로 선택해야만 한다고 생각이 들었지만, 이한성이라는 부모로서는 아이들이 자신이 원하는대로의 행복한 삶을 살았으면 한다고 자꾸만 욕심이 생겼기에.
“…그래도 아직은 먼 미래의 얘기지.”
이한성은 복잡한 생각을 뒤로 미뤄두며 그렇게 혼잣말을 내뱉었다. 그러자 화연은 잠시 그를 말없이 바라보았고, 그가 듣지 못할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먼 미래라…”
그녀는 감히 그 이상을 입 밖으로 낼 수가 없었다.
먼 미래. 아이들이 어른이 될 때 까지 남은 시간은 기껏해야 10년에서 15년 정도. 인간에게 있어서는 인생의 2할 정도 되는 긴 시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에게 있어서는… 더할나위 없이 찰나인 순간에 불과했다.
‘…이 순간 또한 덧없이 지나가 버리겠지.’
시간이란 흘러가는 바람과도 같아서 늘 붙잡으려고 해도 놓쳐버리게 된다.
그래서 그녀는 언제부턴가 붙잡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게 되었다. 무엇하나 부질없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에.
드라마나 소설 속에서 아주 흔하게 등장하는, 서로 다른 시간을 살아가는 존재들의 이야기. 너무 진부하고 클리셰적이며 뻔하디 뻔한, 그런 이야기.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듣는다면 너무 많이 써먹는다고 관심조차 제대로 가지지 않을 이야기지만, 만약 그런 이야기 속의 등장인물이 본인이라면… 과연 사람들은 그것을 진부하다고 얘기 할 수 있을까.
‘…이래서 사람들이 클리셰라는 걸 싫어하는 걸지도.’
너무 뻔한 결말이 예상되니까. 보지 않아도, 어떻게 이야기가 끝을 맞이할지 알고 있으니까.
클리셰 범벅이며 진부하고 또 뻔한 그녀의 이야기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녀는 엘프. 그는 인간. 그녀는 한 나라가 생겨나고 멸망하는 순간 까지도 살아서 지켜볼 수 있지만, 그는 그 역사 속의 찰나같은 순간 밖에 지켜보지 못한다.
그녀보다 그가 먼저 떠나갈 것이고, 그렇게 되면 그녀는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다시 홀로 흘러가는 시간 속에 몸을 맡기게 될 것이다.
“…너무 진부한 이야기구나.”
화연은 그 누구도 듣지 못할 혼잣말을 그렇게 스스로에게 되뇌였다.
부질없는 것을 다시 붙잡고 싶어지는 마음을 억지로 외면한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