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Part-Timer Raises a Half-Elf RAW novel - Chapter (229)
알바생이 하프 엘프를 키우는 법-229화(229/245)
229
축축한 하늘과 흙에서 올라오는 비냄새.
봄의 마지막이자 초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5월 말의 봄비 아래에서, 아이들은 우산을 쓴 채 친구들과 어울리며 집을 향해 걷고 있었다.
“우왕! 비온다~!”
“수, 수정아! 같이 가~!”
뭐가 그리 신나는지 우산도 없이 막 내달리는 수정이와, 그런 수정이의 뒤를 따르던 하나.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향하던 두 소녀는 그렇게 둘도 없는 절친이라는 말이 따로 필요 없을 정도로 친하게 어울리며 차갑기도 하고 시원하기도 한 봄비를 맞았다.
“우산도 없는데 먼저 뛰쳐나가면 어떡해…”
“괜차나! 시원해서 기분 조아!”
“그러다 감기 걸리면 어쩌려고 그래?”
“난 감기에 안 걸려~!”
수정이가 걱정 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듯이 기운차게 대답했다. 사막 한가운데에서 폭설을 내리게 할 수도 있는 장본인이 비 좀 맞는다고 감기에 걸릴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
“그래도 요즘 비는 전부 산성비라고 우리 아빠가 그랬어.”
“산성비?”
하나의 말에 수정이는 그게 뭐냐는 듯이 물었다. 그러자 하나는 잠시 골똘히 생각하더니, 이내 잘 모르겠다는 말투로 대답했다.
“음… 산성으로 만들어진 비를 말하는 걸꺼야. 맞으면 머리카락이 다 빠져버린대.”
“!!!”
머리카락이 빠져버린다는 말을 듣기 무섭게 화들짝 놀라며 재빠르게 하나의 우산 밑으로 피신한 수정이. 물론 하프엘프인 수정이가 산성비 좀 맞는다고 탈모가 올 일은 없었겠지만, 아직 7살에 불과한 아이가 그 사실을 자각하고 있을리가 없었다.
“으으… 나 이러다가 교장 아저씨 처럼 대는거 아니겠찌…?”
“…아마 그건 아닐거라고 봐.”
교장 선생님 처럼 머리에서 빛이 나려면 산성비 가지고는 턱도 없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하나는 잔뜩 겁먹은 수정이를 진정시키며 우산을 조금 더 수정이 쪽으로 씌워주었다.
“치이, 산성? 비 만 아니었어도 마음껏 놀 수 있는건데에~”
“어쩔 수 없지 뭐. 머리카락이 빠지는 것 보다는 낫자나.”
“그러키는 한데… 아!!”
하나의 말이 맞다며 맞장구를 치려던 그 순간, 수정이가 갑작스레 손뼉을 탁 치며 무언가 대단한 방법을 떠올렸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비 말고 눈을 내리게 하면 괜찬지 않을까??”
“아니. 그건 아니야.”
또 대형사고를 치려드는 친구를 칼같이 제지한 하나.
가뜩이나 수정이의 부모님들도 딱히 수정이의 정체를 숨기는 것에 적극적이지 않아보였는데, 자신마저도 적극적이지 않았다가는 둘도 없는 친구가 어느 악당들에게 잡혀가 나쁜일에 이용당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 하나는 자신만이라도 제대로 수정이를 말려야 한다고 되뇌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수정이 너 진짜 그러다가 다크 사이언스들한테 잡혀간다?”
다크 사이언스. 매직큐어에서 등장하는 악의 조직. 수정이와 같이 매직큐어 애청자인 하나가 그렇게 경고하자, 이에 수정이는 문제 없다는 듯이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훗! 문제업써! 다크 사이언스들 따위, 울 엄마한테 한주먹거리도 안돼~”
“…그럼 만약에 다크 사이언스 간부들이 찾아오면?”
“그래도 우리 세리만 있으면 다 날려버릴 수 있어!”
대마법사 엘프가 엄마고 지상 최강의 생물 드래곤이 제 동생인데 무엇인들 두려울까. 그렇게 아주 자신이 넘치다 못해 안전불감증으로 보이기까지 하는 수정이의 모습에 하나는 떨떠름 한 표정을 지으며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아저씨는 아예 언급도 안하는구나…”
수정이네 가족들 중 최약체인 이한성에게 초등학생임에도 불구하고 잠시나마 동정심을 느낀 하나. 물론, 그렇다고 해도 수정이네 엄마와 동생의 강함에 대해 아주 잘 알고있었던 하나였기에 수정이의 태도가 허세로 느껴지는 일은 없었다.
“휴우… 나 없는동안 대체 어쩌려고 그래애…”
“? 그게 무슨 말이야?”
하나가 한숨과 함께 내뱉은 한마디에 수정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 내일 아빠 고향에 놀러가.”
“고… 향??”
또 모르는 단어가 튀어나왔다는 사실에 얼굴에 물음표를 한가득 띄운 수정이.
“태어난 땅을 말하는거래. 거기 가서 할아버지도 보고 고모들도 보고 할꺼야.”
“태어난 땅…”
수정이는 잠시 곰곰히 단어를 되뇌이며 무언가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럼 고향이라는 건 아빠들한테만 있는거야?”
“아마 아닐껄? 아빠 엄마 상관없이 모두에게는 저마다 고향이 있다고 울 아빠가 그랬거든.”
“….”
하나의 대답에 수정이는 평소답지 않게 입을 다물며 조용히 비오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는, 이내 조용조용한 목소리로 궁금하다는 말투와 함께 하나에게 물었다.
“그럼 하나 너한테도 고향이라는게 있써?”
“응. 당연하지. 이 동네가 내 고향이야. 난 태어날 때 부터 여기서 자랐거든.”
“그러쿠나…”
수정이가 나지막히 고개를 끄덕이며 신기하다는 듯이 대답하였다. 그러자 평소와는 어딘가 다르게 이상한 친구의 반응에, 하나는 살짝 조심스러워진 목소리로 수정이에게 물었다.
“수정이 너는? 넌 고향이 어디야?”
“내 고향?”
갑작스런 질문에 만화 속에서 본 탐정 흉내를 내며 골똘히 생각하기 시작한 수정이.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모르는 답이 저절로 머릿속에서 튀어나오는 일은 없었다.
“모르겠써.”
딱히 물어본 적이 없다. 자신이 어디서 태어났는지, 어디서 왔는지, 어떻게 왔는지에 대해서는 한번도 의문을 가져본 적이 없었던 수정이였기에 소녀는 그저 그렇게 밖에 대답 할 수가 없었다.
“괘, 괜차나. 어차피 중요한 것도 아니고 나중에 아저씨한테 물어보면 되지.”
“….”
어딘가 조금 침울해 보이는 듯한 수정이의 모습에 하나는 재빠르게 대응하며 수정이의 기운을 복돋아주려 하였지만, 그럼에도 수정이는 여전히 평소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조용해진 채였다.
그저, 하늘에서 떨어져 길바닥 위로 흩어지는 빗소리 만이 주변에 가득할 정도로.
—————————–
“아빠! 내 고향은 어딨써??”
집에 돌아오기 무섭게 수정이의 호기심 가득한 외침이 집안 곳곳에 울려퍼졌다.
“…고향? 갑자기 그건 왜?”
다짜고짜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고향에 대해 묻는 수정이의 모습에 이한성은 조금 당황한 눈치를 보이며 이유를 물었다.
“그냥 갑자기 궁금해졌써!”
진짜로 이유도 없이 갑자기 궁금해진 것은 아니고 실제로는 하굣길에서 들었던 하나의 말을 듣고는 궁금해진 것이었지만, 이한성을 닮아 귀찮음을 꽤나 많이 타는 수정이는 굳이 거기까지 설명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
이걸 대체 뭘 어떻게 설명해줘야 하는걸까.
갑작스런 고향 질문에 이한성은 뭐라고 대답해줘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사실 말해주는 것은 쉬웠다. 너의 고향은 이 세계가 아니고, 저 차원 너머의 완전히 다른 세상이라고 말해주는 것 자체는 어려울 것이 없었으니.
“…나도 잘 모르겠는데.”
하지만 이한성은 어째서인지 그렇게 대답해줄 수가 없었다.
어째서일까. 그냥 말만 하면 되는 것을, 숨길 이유도 필요도 없는 것을 어째서 입 밖으로 선뜻 내뱉을 수가 없었을까.
“거짓말.”
“!!”
무의식적으로 대답을 얼버무리려던 그 순간, 언제부터 옆에 있었는지 모를 세리가 뚱한 표정과 함께 이한성을 바라보며 그렇게 말했다.
“거짓말이라니… 아니, 대체 뭘 근거로 갑자기 그런 소리를-”
“아빤 거짓말을 할 때 마다 시선을 내리니까 알 수 있어.”
갑자기 끼어든 세리의 날카로운 눈썰미에 이한성은 순간 할 말을 잃어버렸다. 사실 거짓말이 아니라고 잡아 떼려면 얼마든지 잡아뗄 수 있었지만, 이한성은 그러지 조차 못했다.
왜냐하면 거짓말이라는 소리를 들은 수정이의 얼굴에서 깊은 실망감을 보아버리고 말았기 때문에.
“…왜 거짓말 해?”
“….”
수정이의 서운한 물음에 이한성은 순간적으로 입을 다물어버렸다. 머릿속으로는 이제라도 제대로 대답해줘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던 이한성이였지만, 정작 그의 입은 마비되기라도 한 듯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왜 알고싶은 건데?”
움직이려 들지 않는 입을 억지로 열어 짜낸 말은 그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나가 그랬써. 모든 사람들한테는 고향이 있다구.”
“…그렇지.”
“그럼 내 고향은 어디야?”
수정이가 심퉁한 얼굴로 다시 한번 이한성에게 물었다. 그러자 아까와는 달리, 이한성은 제대로 된 변명거리를 내뱉을 수 있었다.
“어디기는. 이 동네가 네 고향이지.”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맞는 말도 아닌 대답. 분명 이 동네가 수정이의 고향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법한 곳이기는 하나, 단어 그대로의 고향이냐고 묻는다면 틀린 대답이었다.
그리고 수정이는 그런 이도저도 아닌 이한성의 대답을 궤뚫어보기라도 한 듯 되물었다.
“그럼 나도 여기서 태어난거야?”
“….”
맞아. 그래. 라고 그렇게만 대답하면 된다. 거짓말이라도 우기면 그만이다. 실제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이 거짓이든 진실이든 무엇이 상관이라는 말인가.
수정이의 고향이 어디건 간에 수정이가 자신의 딸이고, 본인이 수정이의 하나뿐인 아빠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런 사실 쯤이야 이한성 본인도, 수정이 본인도 잘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한성은 거짓으로 대답을 우길 수가 없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평소에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해오던 그가, 뻔뻔하게 우기며 나름대로 이기적이게 살아왔던 그가 제아무리 자신의 딸이라고는 하나 7살 밖에 되지 않은 여자아이 하나 속이려는 시도조차 하지 못한다니, 그 스르로가 생각해도 참 어이가 없었다.
“…아빤 거짓말쟁이.”
결국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는 제 아빠의 모습에 수정이는 고개를 홱 돌리며 방금 막 들어왔던 현관으로 다시 나가버렸다. 그러자 이윽고 세리 또한 걱정스런 얼굴과 함께 제 언니를 따라나섰고, 그렇게 거실에 홀로 남은 이한성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소파에 쓰러지듯 드러누웠다.
“…등신 같은 새끼.”
소파에 드러누운 이한성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스스로를 비난했다. 본인의 행동이 부모로서 아주 잘못 되었고, 어른으로서도 자격 미달이라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이해하고 있었기에.
아깐 어째서인지 모르겠다고 뭐라뭐라 지껄였지만 사실은 알고 있었다. 본인이 어째서 수정이의 대답에 사실대로 대답하지 못했던 것인지, 그렇다고 또 거짓말도 제대로 못했던 것인지.
…나는 저 아이가 어느날 갑자기 떠나버릴까 무서운거다.
언젠가 저 아이가 자신의 정체를 알게되고, 자신의 고향을 알게되고, 자신이 이 세계로 오게 된 이유를 알게된다면… 과연 그때도 저 아이는 자신의 딸로 남아 있을 것인가.
안다. 아주 잘 알고있다. 수정이가 누가 뭐라해도 자신을 진짜 아빠라고 여기고 있는 사실 쯤이야, 이한성 본인은 이미 수정이가 걸음마를 뗐을 시절 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안이란 쉽게 지울 수가 없는 법이었다. 아무리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어도, 감정이란 것은 멍청하기 짝이 없어서 제멋대로 굴며 괜한 오해와 불안감을 만들어낸다.
물론 좀 더 나은 부모라면 이렇게 행동하지 않았을 것이다. 제대로, 사실대로, 차분하고 부드럽게 대답하여 아이를 다독여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한성은 그럴 수 있는 위인이 못되었다.
자신의 아버지 같은 부모가 되지 말자고, 적어도 그 인간보다는 나은 부모가 되자고. 그렇게 노력하기라도 하자고.
그렇게 하면 적어도 이한성이라는 이름의 인간이 될 수 부모 중에서 그나마 가장 나은 부모가 될 수 있었을테니까.
지금 이대로가 속좁고 거짓말로 가득 차있고 이기적이기 그지 없는 자신이 될 수 있는 최선이었으니까.
“네녀석이 이렇게까지 침울해 보이는 건 처음이군.”
“…지금 골 아프니까 말 걸지 마.”
언제부터 지켜보고 있었는지 모를 한스가 말을 걸어오자, 이에 이한성은 피곤함으로 가득한 목소리와 함께 그렇게 대꾸했다.
“보아하니 지금까지 저 반푼이 꼬맹이에게 숨겨오고 있었던 모양인데.”
“딱히 숨겼던 건 아니거든?”
그렇다. 그동안은 서로 무의식적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에 말하지 않았던 것 뿐. 그러다가 어쩌다 오늘 이렇게 된 것 뿐이다.
“…야, 노예야. 뭐 하나만 물어보자.”
“뭐냐.”
“너희가 태어난 세상으로… 돌아갈 방법은 있는거냐?”
“글쎼다. 그게 가능했다면 내가 이렇게 너 같은 악덕 고용주에게 노예로 부려먹히고 있었을 것 같지는 않다만.”
“…하긴, 그렇겠지.”
반어법으로 삐딱하게 말하는 한스의 대답에 이한성은 괜한 걸 물어봤다는 듯이 그렇게 말하였다.
“그런 걸 물어보고 싶다면 그 엘프한테나 물어보지 그러나. 애당초 차원이동 마법을 만들었던 것은 녀석들이었으니.”
“….”
한스의 충고 아닌 충고에 이한성은 담담히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는 이내 매우 비꼬는 목소리로 그에게 되물었다.
“여기서 가정사를 더 복잡하게 만들어서 뭐하게.”
“…하긴, 그것도 그렇군.”
이한성의 말에 한스는 픽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조용히 자리에서 벗어나려던 그였지만, 이한성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를 멈춰세웠다.
“야 노예. 너 나가서 애들 좀 봐주고 와라.”
“싫다. 네가 해라.”
“니가 해. 내가 나가봤자 괜히 또 도망친다고 사고만 칠거야.”
“…이번 만이다.”
평소 같았으면 운동 할 시간 줄어든다고 경을 치며 거절했었을 한스였지만 오늘의 그는 평소처럼 이한성의 부탁을 거절하지 않았다.
다른 것이 아닌, 아이들과 관련된 부탁이였기 때문이었다.
‘나도 글러먹었군. 그 꼬맹이들이 뭐라고…’
항상 삼촌 삼촌 거리며 사람을 장난감 샌드백으로 취급하는 아이들이었지만 언제부턴가 그런 취급을 받는 것도 그렇게 나쁘지 않게 되었다.
평생동안 검만 휘둘러온 사람이 그 아이들과 같이 지낸지 얼마나 됐다고 이렇게 물러졌을까. 가족의 원수를 갚겠다고 분노만을 바라보던 남자가 어쩌다가 있지도 않는 조카들의 삼촌이 되어버린 걸까.
한스는 그런 생각과 함께 실없는 미소를 참지 못하며 조용히 현관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