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Part-Timer Raises a Half-Elf RAW novel - Chapter (230)
알바생이 하프 엘프를 키우는 법-230화(230/245)
230
“아빠는 거짓말쟁이. 치사빤쓰. 쫌생이.”
놀이터에서 그네가 삐그덕 거리는 소리와 함께 수정이의 볼멘 목소리가 나지막히 울려퍼졌다.
비가 그친지 얼마 되지 않은 놀이터에는 아직도 비냄새가 서려 있었다. 당연히 이제 막 비가 그쳤기에 놀이터에 있는 아이라곤 수정이 본인과 제 언니를 따라나온 세리가 전부였고, 그렇게 두 자매는 그네에 앉아 조용히 놀이터 바닥에 고인 물웅덩이를 바라볼 뿐이었다.
“언니…”
계속해서 이어지던 수정이의 볼멘 소리를 가만히 듣고만 있던 세리가 나지막히 입을 열었다.
세리의 부름에 수정이는 별 대답을 하지 않은 채 무슨 일이냐는 듯이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이에 세리는 조심스러운 말투로 제 언니에게 물었다.
“언니는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고 싶은거야?”
“….”
세리의 질문에 수정이는 놀이터 밑바닥을 바닥으로 차기 시작했다. 그렇게 잠시 질문에 고민하던 은발머리 소녀는 이윽고 고민 끝에 잘 모르겠다는 듯이 대답하였다.
“글쎄에…? 가보고 싶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고오…”
이쪽도 저쪽도 아닌 듯한 수정이의 대답에 세리는 그렇다면 왜 삐져서 이렇게 놀이터로 뛰쳐나온거냐고 묻는 시선으로 제 언니를 바라보았다.
“그치만 궁금하기는 하는 걸. 아빠는 제대로 말해준 적이 없으니까아…”
세리의 시선에 수정이가 살짝 변명하듯 그렇게 말을 덧붙였다. 그러자 세리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어느정도는 알겠다는 듯이 제 언니를 바라보았고, 수정이는 그런 세리를 향해 나지막히 물었다.
“세리 너는? 너는 고향이란 곳에 가보고시퍼?”
“나는 별로. 고향 같은 건 관심없어. 여기가 좋아.”
태어나서 본 적도 없는 고향 같은 것 보다는 언니도 있고 엄마도 있고 못미덥긴 하지만 그래도 아빠도 있는 이곳이 훨씬 좋다. 평소에 무뚝뚝하게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았던 것과는 달리 내심 지금의 집이 마음에 들었던 세리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그렇게 대답했다.
보통 아이였다면 아무리 어른스럽다고 해도 친부모라던가 출생의 비밀 같은 것이 궁금하기 마련이었겠지만 세리는 아이이기 이전에 드래곤, 그것도 고대룡의 하나뿐인 후예였다.
그리고 드래곤은 대게로 혈연이라는 것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 종족. 덕분에 세리가 고향이나 친부모에 관한 것에 별 관심이 없는 것은 그렇게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언니는 지금 집이 싫어?”
“아니 조아!!”
세리의 물음에 수정이가 그네에서 벌떡 일어나 외쳤다. 하지만 그렇게 벌떡 일어나 외친 것과는 다르게, 이어지는 수정이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하지만… 난 아빠가 나한테 뭘 숨기는게 싫단 말이야.”
아빠가 좋다. 비록 친아빠가 아닐지라도, 항상 뭐만 하면 잔소리를 하고 퉁명스럽게 자신을 대할지라도, 수정이는 그런 아빠를 단 한번도 아빠가 아니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것과는 별개로 수정이는 아빠가 이렇게 궁금한 것에 제대로 대답해주지 않는 것이 무척이나 싫었다.
자신이 아빠를 단 하나뿐인 아빠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과는 다르게, 아빠는 자신을 딸이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는 것은 아닐까- 하는 무섭고 슬픈 생각이 자꾸만 들었기에.
“언니…”
평소의 수정이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침울해져버린 은발머리 소녀의 모습에 세리는 어쩔 줄을 몰라하며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만약 세리가 좀 더 귀여운 성격에 붙임성이 많았더라면 제 언니에게 위로의 말을 건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솔직하지 못한 점이 아주 철썩같이 이한성을 닮은 세리에게는 그럴 정도의 말주변이 없었다.
“에, 에잇…!”
그랬기에 그런 세리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제 언니의 옆구리를 다짜고짜 냅다 손가락으로 콕 찌르는 것 뿐이었다.
“으갹!?”
기습적으로 옆구리를 찔린 수정이가 요상한 비명을 내지르며 깜짝 놀란 표정으로 세리를 바라보았다.
“모, 모야아! 갑자기 왜 찔러?!”
“이, 이런 건 언니 답지 않아!”
무슨 짓이냐고 항의하려는 수정이의 말을 단번에 자르고는 잔소리하듯 외치기 시작한 세리.
평소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을 절대 공격하지 않는 세리에게 기습을 당한 것도 모자라 잔소리 비스무리한 말을 들은 수정이는 매우 어리둥절한 표정과 함께 저도 모르게 이어지는 세리의 잔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평소처럼 막 떼를 쓰고 억지를 부리고 끝까지 물고 늘어져야지! 이렇게 침울해 하는 건 언니랑 안 어울려!!”
위로하고자 한 말 치고는 어째 전혀 위로처럼 들리지 않은 기분이 들었지만, 그럼에도 세리의 말에는 진심으로 수정이를 기운차리게 하고자 하는 마음이 담겨져 있었다.
그리고 당연히 친언니 보다 더 언니 같은 수정이는 그런 세리의 속마음을 단번에 알아-
“우씨이! 세리 너 왜 갑자기 아빠처럼 잔소리야~?!”
…듣는 일은 없었다. 이래나 저래나 천재라고 해도 수정이는 7살짜리 아이. 아직 남의 말에서 속마음을 엿보기에는 어린 나이였다.
“자, 잔소리가 아니라 그러니까… 그, 그냥 이런 건 언니 답지 않다구!”
“그게 잔소리자나! 아빠랑 말투가 똑같아!!”
[푸욱-]순간 무언가가 세리의 심장을 궤뚫은 것 같은 건 기분 탓일까.
“아, 아빠랑 닮았다니… 내, 내가…?”
자신이 아빠랑 닮았다는 수정이의 말에 상당히 충격을 먹은 듯한 세리. 무슨 페드립을 들은 것 보다 더 충격을 먹은 것 같은 세리는 도저히 믿기지가 않는다는 듯한 얼굴로 멍한 표정을 지었다.
“어… 어라?”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내뱉은 말에 상당히 충격을 먹어버린 세리의 모습을 보곤 내심 당황해버린 수정이. 급기야 울려고 까지 하는 동생의 모습에 언니인 수정이는 어쩔 줄을 몰라하며 어리버리하게 고개를 두리번 거리기 시작했다.
“? 애들아, 무슨 일이니?”
순간 익숙한 목소리가 수정이와 세리에게 말을 걸어왔다.
뒤를 돌아보니 보인 것은 타이밍 좋게 근처를 지나가고 있었던 해영이였다. 동네가 그렇게 좁은 것도 아닌데 이렇게 마주칠 수가 있나 의문이 들 법도 했지만, 수정이는 그런 사실을 신경쓸 겨를도 없이 다급히 해영이에게 도움을 요청하였다.
“해영이 이모! 나, 나좀 도와죠!”
“도와달라니 갑자기 무슨 일이길래…”
다짜고짜 도와달라는 수정이의 부탁에 가던 길 가다 말고 놀이터에 들어와 상황을 살피기 시작한 해영이.
상황을 살피고 뭐고 하기도 전에 보자마자 세리가 울기 일보 직전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그녀는 이내 수정이 만큼이나 당황스런 눈치를 보이며 이게 대체 어떻게 된거냐고 묻듯이 수정이를 바라보았다.
“그, 그게에… 아빠 닮았다고 했을 뿐인데 세리가 갑자기 울려고 해서…”
“뭐어?? 아니, 수정아… 세상에 해야 될 말이 있고 하지 말아야 될 말이 있지! 동생한테 그렇게 심한 말을 하면 어떡하니??”
…아빠 닮았다고 하는 게 심한 말인건가?
해영이의 꾸중에 수정이는 자신이 이상한건지, 아니면 세리와 해영이가 이상한건지 모르겠다며 멍한 표정을 지었다.
“자~ 세리야, 뚝 해. 넌 한성이 오빠랑 전혀- 까지는 아니지만 그렇게 막 닮지도 않았으니까 괜찮아.”
빈 말로도 세리가 이한성을 완전히 닮지 않았다고는 말하지 못하는 해영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리는 그정도의 위로로도 울상이었던 표정을 풀 수 있었다.
“…정말로?”
“그럼~! 한성이 오빠는 양심이란게 없는 인간이지만 그래도 넌 양심도 있고 착하잖니~”
맞는 말이다. 성격이야 비슷할지 몰라도 근본적으로 따져보면 세리와 이한성은 성향이 완전히 다르다. 오히려 이한성의 성향을 닮은 쪽은 세리가 아니라 수정이였으니.
그렇게 해영이의 위로아닌 위로에 세리는 흐를랑 말랑 하던 눈물을 훔치며 코를 훌쩍였다. 그러자 해영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핸드백에서 휴지를 꺼내 세리의 코를 닦아주었고, 이내 주위를 두리번 거리며 아이들에게 물었다.
“그런데 너희들만 밖에 놀러나온거야? 오빠는 어쩌고?”
평소 같았더라면 이한성이나 한스, 둘 중 한명은 보호자로 아이들과 함께 나왔을텐데 어째서인지 오늘은 어른들은 안보이고 수정이와 세리 둘 밖에 보이지 않는다.
‘은근히 과보호인 그 오빠가 애들끼리만 놀러 나가라고 보냈을리는 없을텐데…’
이한성이 맨날 겉으로는 애들 돌보는 것을 대충대충 넘기는 것 처럼 보이지만 아마 화연 이상으로 아이들을 걱정하는 사람은 세상에 이한성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아이들이 이렇게 어른 하나 없이 밖에 나와있다? 가능성은 딱 두가지 뿐이다.
다퉈서 뛰쳐나왔거나, 아니면 말 안듣고 사고치러 나왔거나.
그리고 수정이의 반응으로 봐선 십중팔구 전자일 가능성이 다분했다.
“흥!”
“오빠랑 싸웠나보구나…”
이한성에 대해 물어보자마자 고개를 홱 돌리며 볼을 빵빵하게 부풀리는 수정이의 모습에 단번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깨달은 해영이.
‘그나저나 드문 일이네? 평소엔 서로 티격태격 거리긴 해도 막 이렇게 집에서 뛰쳐나올 정도로 서로 다툰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대체 뭐 때문에 다툰거지?’
평소의 이한성과 수정이는 자주 티격태격 거리는 만큼이나 사이가 아주 좋은 부녀 관계였다.
대게 이한성이 잔소리를 하면 수정이는 흘려듣고 사고를 치고, 그럼 이한성이 다시 화를 내며 잔소리를 시작하다가 수정이의 뻔뻔함과 능청스러움에 두손을 들고 지쳐서 항복하는 그런 패턴들 뿐. 그 과정에서 둘이 크게 다퉜던 경우는 지금까지 단 한번도 없다시피 했다.
그런데 대체 뭣 때문에 다퉜길래 평소 집 지붕이 날아가도 별 개의치 않게 잔소리와 항의 몇 번으로 넘어가던 이한성과, 아무리 잔소리를 들어도 조금도 침울해지지 않았던 수정이가 다투게 된 것일까.
“혹시 무슨 일 때문에 다퉜는지 물어봐도 돼?”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했던 해영이가 사뭇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수정이에게 물었다. 그러자 이에 수정이는 평소에는 전혀 볼 수 없었던 침울한 표정과 함께 조용히 대답하였다.
“아빠가 내 고향이 어딘지 안 알려줘서…”
“아…”
수정이의 대답에 해영이는 순간 뭐라 말해줘야 할 지를 잊어버린 채 대강 무슨 대화가 오갔었는지 곧바로 짐작 할 수 있었다.
‘…다툴 만 했었네.’
분명 이한성이 제대로 대답해주지 못해 서로 다투게 된 것이리랴. 이한성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했던 해영이는 바로 납득하며 수정이를 다독여주기 시작했다.
“그래서 삐져서 나온 거구나?’
“….”
수정이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이에 해영이는 쓴웃음과 함께 잠시 수정이와 눈높이를 맞추느라 숙이고 있던 몸을 일으키더니, 나지막히 기지개를 펴며 말했다.
“좋아~! 그럼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이모가 사줄게.”
“??”
갑자게 뜬끔없이 맛있는 걸 먹으러 가자는 해영이의 말에 당황하며 고개를 갸웃거린 수정이. 하지만 그런 수정이의 반응에 해영이는 그저 깊게 생각할 것 없다는 듯이 설득할 뿐이었다.
“원래 가족이랑 다퉈서 기분이 우중충 할 때는 맛있는거 먹고 싹~ 잊어버리는거야.”
“…그런고야?”
“그럼~ 이모도 어렸을 때 너네 엄마하고 다퉜을 때 마다 밖에 나가서 이것저것 다 집어먹고 그랬어~”
언니 저금통을 깨다가 사먹었던 거지만.
수정이의 물음에 해영이는 그렇게 속으로 필요없는 한마디를 덧붙이며 옛날 기억을 살짝살짝 떠올렸다.
“…그럼 나 빙수 먹으러 갈래.”
해영이의 말에 넘어간 수정이가 잠깐의 고민 끝에 벌써 뭘 먹었는지 정했다며 그렇게 대답하였다. 그러자 이에 해영이는 문제 없다는 듯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이내 세리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그래도 괜찮겠냐고 시선을 보냈다.
“난 언니가 좋으면 아무데나 상관없어.”
“좋아, 그럼 빙수 먹으러 가자~”
역시나 예상은 했지만 언니가 좋다면 다 좋다는 세리의 대답에 곧바로 아이들을 데리고 빙수집으로 향하기 시작한 해영이.
본인의 지갑에서 돈이 또 나가게 생겼는데도 불구하고 무척 신나있던 그녀의 모습을 본 수정이는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제 이모를 바라보았고, 이내 다소 뜬끔없는 질문을 물었다.
“근데 해영이 이모, 한스 삼촌도 같이 가는거야??”
“? 한스 씨가 갑자기 왜 나와??”
갑자기 왠 한스 얘기를 꺼내는 걸까. 뜬끔없는 것도 뜬끔이 없었지만 그것보다도 최근들어 있었던 일 때문에 살짝 복잡미묘한 관계가 되어버린 사람의 이름이 튀어나온 탓에 조금 많이 당황한 해영이는 그게 무슨 소리냐며 수정이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이에 수정이는 조용히 뒤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것으로 대답하였다.
아까부터 줄곧 이쪽을 엿보고 있던 한스가 숨어있던 나무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