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Part-Timer Raises a Half-Elf RAW novel - Chapter (239)
알바생이 하프 엘프를 키우는 법-239화(239/245)
239
조사단이 엘븐가르드에 머무른지도 벌써 10개월 째.
이러다가 진짜 1년이 넘도록 이곳에 머무르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슬슬 들기 시작할 즈음에, 녹스터에게는 한가지 고민이 생겼다.
“이걸 어떻게 전해준다냐…”
고민으로 가득해 보이던 녹스터는 손바닥에 들려았던 한쌍의 반지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며칠 전 엘븐가르드에 방문했던 드워프 장인들에게 거액을 주고 구매한 한 쌍의 결혼반지. 루나에게 이걸 주면서 청혼을 하면 정말 딱이겠다 싶어 충동구매를 했던 녹스터였지만, 막상 사고 나니까 선뜻 그녀의 앞에서 반지 얘기를 꺼낼 수가 없었다.
“…이런 걸 받아줄려나? 내가 엘프들이 어떤 반지를 좋아하는지 뭘 알아야 말이지.”
녹스터가 알기로는 엘프들은 결코 사치를 부리지 않는 종족이다. 아무리 황금 덩어리와 온갖 귀금속들을 그들에게 내민다고 해도 그들은 길거리의 돌멩이 취급 할 뿐이고, 아마 그건 여성이기 이전에 엘프인 루나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차라리 엘프들은 식물을 좋아하니까 나무로 만들 걸 그랬나…?”
아니. 만약 반지를 나무를 깎아다가 만들어서 건네줬다가는 산 채로 얼려질지도 모르는 법이다. 엘프들은 절대로 무슨 일이 있어도 나무를 해치지 않는 종족이니.
아무리 고민해 봐도 선뜻 어떤 식으로 프러포즈를 하면서 건네줘야 할지 영 감이 안잡힌다. 그도 그럴 것이 루나는 엘프들 중에서도 참 별난 여자였으니.
지난 10개월 동안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며 한가지 확실하게 깨달은 것이 있다면, 그건 바로 그녀가 본인의 마음을 말할 때 절대로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는 것.
그녀는 좋고 싫음이 매우 확고하다. 때문에 그녀가 반지를 받고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다면, 그녀는 분명히 딱 잘라서 마음에 안든다고 돌직구를 던질 것이다.
“…뭐, 싫다고 하면 어쩔 수 없는거겠지.”
“뭐가 어쩔 수 없다는거지?”
“우왁?!”
갑작스럽게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놀란 녹스터는 그만 반지를 던질 뻔 하며 꼴사납게 뒤로 자빠졌다.
“얌마! 실내에서 기척 지우고 다니는 거 그만 두랬지?! 심장 떨어진다고!!”
“네놈이 방심하고 있어서 그런 것이지, 내 탓이 아니다.”
녹스터의 항의에 파울루스는 걸치고 있던 갑옷을 탈착하며 고지식한 말투로 그렇게 대꾸하였다.
“하여간에… 저놈 저거, 성격이 저 모양이니까 친구가 없지.”
“친구타령 할 시간에 조금이라도 더 검을 휘둘러 단련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비아냥 거리며 파울루스를 비꼬려고 했던 녹스터였지만 워낙에 그의 성격이 고지식했기 때문에 파울루스에게는 아무런 타격도 줄 수가 없었다.
“그래그래, 너 잘났다 잘났어.”
바위를 상대로 아무리 말을 비꼬아봤자 통할리가 없다. 그렇게 그 이상 뭐라고 하는 것을 바로 포기해버린 녹스터는 주섬주섬 반지를 주머니 속에 넣으며 숨겼다.
“그래서.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고 있었던 거지?”
“아니 뭐… 그냥. 삶에서 한번쯤은 거쳐야 하는 아주 중요한 단계에 대해 고민하던 중이었지.”
그냥 어물쩡 넘어갈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더니 어째서인지 평소와는 다르게 굳이 캐물어보는 파울루스의 질문에 녹스터는 그렇게 애둘러 대답했다.
“네놈이 고민할 법한 중요한 문제라고 해봐야 분명 실없는 것 밖에 없을텐데.”
“야, 내가 이래뵈도 참 고민거리가 많은 사람이거든? 겉으로 티를 잘 안 낼 수록 생각이 깊은 사람이라는 말 못들어봤어?”
“하.”
녹스터의 항변에 파울루스는 더도 덜도 안하고 딱 단마디 소리와 함께 그를 비웃었다.
“아오 진짜 저런 놈도 친구라고…”
확 한대 치고 싶은 마음을 꾹 참으며, 녹스터는 괜히 화를 내봤자 기운이 빠지는 건 본인일 뿐이라고 스스로를 진정시켰다.
“그래, 뭐라 말해봤자 내 입만 아프지.”
[풀썩-]항변하는 것을 깔끔하게 포기한 녹스터는 그대로 피곤하다는 듯이 침대 위에 몸을 던져 드러누웠다. 그러자 잠시 숙소 안이 조용해지는 듯 했지만, 그렇게 조용해진지 채 5초도 되지 않아 누군가가 방문을 두드리며 평온함을 깨뜨렸다.
[똑똑똑-]“?”
갑작스런 노크소리에 녹스터는 반사적으로 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이내 방문이 열리며, 기사 한명이 편지를 손에 든 채 방 안으로 들어왔다.
“단장님. 왕국으로 부터 전달된 서신입니다.”
“어 그래. 거기 놔두고 가.”
“왕실의 인장에 찍혀있는 것으로 보아 상당히 중요한 내용인 것 같은데 당장 읽어보시는 편이…”
“당장 안읽는다고 안죽으니까 걱정 끄고 가라.”
안그래도 반지니 청혼이니 하는 문제 때문에 머리가 복잡해 죽겠는데 아무리 왕실로 부터 전달된 서신이라고 해도 당장 확인할 여유는 없다. 이 이상 머리가 복잡해지는 것은 사양이었기에.
“편지는 내가 받도록 하지. 자네는 이만 가보게.”
당장 서신을 읽을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이는 녹스터를 대신해 나선 파울루스가 부단장으로서 서신을 받고는 젊은 기사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이에 서신을 전달한 기사는 간단히 경례를 올리고는 빠르게 물러갔고, 그렇게 부하가 가자 파울루스는 한심하단 시선으로 녹스터를 바라보았다.
“단장으로서의 직책에 조금은 충실한 척이라도 하는 것이 어떠냐.”
“이제와서? 됐네요.”
녹스터는 조금도 관심이 없다는 듯이 귀를 후비적 거리며 손을 저었다.
단장직에 오른 이후로 줄곧, 이렇게 임무 중에 중요한 서신이 전달 될 때 마다 녹스터는 부단장인 파울루스에게 서신을 떠넘겨왔었다. 오늘이라고 해서 특별하게 다를 건 없었다.
그랬기에 파울루스는 늘 그래왔듯이 게을러먹은 단장을 대신하여 서신을 뜯어보았다. 이대로 놔뒀다가는 친구 놈이 또 잊어먹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
편지를 뜯은 파울루스는 생각했던 것 보다 내용이 길다는 것을 깨닫고는 나지막히 읽어내리기 시작했다. 무표정으로 그렇게 한참동안이나 편지를 읽어내리던 그는, 어째 편지를 다 읽은 것 처럼 보임에도 불구하고 한동안 멍하니 편지를 바라본 채 멍을 때리기 시작했다.
“다 읽었어? 왕실에서 뭐래?”
“….”
녹스터의 물음에 파울루스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고 잠시 아무런 말도 없이 침묵을 지켰다.
“…왕실에서 온 것이 아니라 로렌스 경으로 부터 온 서신이다. 일이 생겼으니 바로 복귀하라는군.”
“? 이렇게 갑자기?? 아니, 갑자기 이렇게 복귀하라고 하면 조사단 놈들 호위는 어떡하고?”
“그건… 걱정하지 마라. 서신에는 너 혼자만 복귀하라고 적혀있으니.”
파울루스가 오러로 편지를 태워버리며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이런 갑작스러운 통보에 녹스터는 무척이나 당혹스러워 하며 잠시 할 말을 잃은 채 멍하니 바닥을 내려다 보았다.
‘갑작스럽게 복귀하라니, 한달 일정을 1년 가까이 미뤘을 때는 언제고…’
보통 파병을 나왔으면 집으로 돌아오라는 소리가 기쁘게 들려야 정상이다. 하지만 녹스터는 결코 기뻐할 수가 없었다.
좀 더 이곳에 있고싶다. 이곳에 남아 그녀에게 마음을 전하고, 곧 태어날 아이도 보고 싶다.
평생 동안 칼만 휘두르고 살아오면서 이런 감정을 느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늘 항상 떠돌아다니기 바빴던 녹스터는, 살면서 이번에 처음으로 한 곳에 머무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해가 지기 전에 출발해야 할테니 미리 준비해 두는 것이 좋을거다.”
말이 없어진 녹스터의 모습에 파울루스는 조용히 자리를 비켜주며 그렇게 말하곤 방을 나왔다.
그러자 그렇게 방에 홀로 남게된 녹스터는 주머니 속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감촉을 손으로 어루만지며 나지막히 혼잣말을 내뱉었다.
“…오늘 전해줘야겠네.”
—————————
엘프들의 영역, 엘븐가르드의 동쪽 외곽에는 나무가 울창한 주변과는 달리 나무가 한그루도 자라지 않은 빈 공터가 있다.
나무들을 베어서 공터가 생긴 것은 아니다. 애초에 이곳은 엘프들의 영역. 나무를 헤친 자를 엄벌로 다스릴 정도로 식물을 아끼는 그들이 나무를 벴을리가 없다.
그럼에도 주변과는 달리 그 공터에 나무가 자라지 않는 이유는 엘프들도 알지 못한다. 그들이 말하기를 그곳은 수천년 전 부터 그렇게 계속 나무들이 자라지 않는 장소라고 했고, 다들 그 공터에는 딱히 관심이 없었다.
그녀를 제외하고는.
-나무는 없어도 꽃은 있잖아.
처음 자신을 이 장소로 데리고 왔던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이유따윈 아무래도 좋다고. 피어있는 꽃이 예쁘면 그만이라고.
“확실히 예쁘기는 하네.”
주변에 한가득 피어있는 가지각색의 꽃들을 바라보며, 녹스터는 그렇게 홀로 공터 한가운데에 선 채로 중얼거렸다.
[바스락-]새소리와 풀벌레 소리 밖에 들려오지 않던 근처에서 인기척이 녹스터의 귀를 간질였다.
10개월 전의 그였더라면 분명 인기척에 과민반응을 하며 바로 검을 꺼내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그는 검은 커녕 일말의 경계심도 내비칠 생각이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들려오는 발소리 만으로도 그녀라는 걸 알 수가 있었기 때문에.
“기다렸어?”
만삭의 몸으로 기어코 마을 외곽에 위치한 공터까지 홀로 걸어온 루나가 평소와 같은 감정이 옅은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다.
“아니, 전혀요. 저도 방금 왔습니다.”
루나의 물음에 녹스터는 그렇게 대답하고는 빠르게 다가가 그녀를 부축하였다.
“…이제 곧 있으면 태어나겠군요.”
그녀가 아이를 벤지도 벌써 10개월 째. 슬슬 아이가 태어날 때가 아주 가깝다.
“들어볼래?”
자신의 배를 가만히 바라보는 녹스터의 모습에 루나는 그의 머리를 잡아다가 배 쪽으로 끌어당겼다. 그러자 그렇게 대답하기도 전에 태아의 고동을 듣게 된 그는 덩달아 자신의 심장도 덜렁거리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자신의 아이가 이 안에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실감할 수 밖에 없었다.
“어때?”
“신기합니다.”
“나도 그래.”
루나는 만삭으로 불러오른 자신의 배를 조용히 쓰다듬으며 그렇게 말했다. 평소와 같이 감정이 옅었던 그녀였지만, 그럼에도 그녀의 표정과 말 한마디 한마디에는 모성애가 눈에 띄게 서려있었다.
“….”
“할 말 있어?”
평소보다 말이 없는 녹스터의 낌새를 눈치 챈 루나가 은발을 뒤로 넘기며 왜 그러냐는 듯이 물었다.
“…왕국에서 서신이 왔습니다. 저보고 당장 복귀하라고 하더군요.”
“….”
이야기를 오래 끌어봐야 좋을 것이 하나도 없다. 자신에게도, 그녀에게도.
“…언제 가는데?”
“해가 지기 전에는 출발할 생각입니다.”
“가서 언제 와?”
“…모르겠습니다.”
평소에는 늘 녹스터가 말을 걸고, 루나가 짧게 대답을 하는 형식으로 대화가 이루어졌지만 오늘만큼은 달랐다.
“왜?”
무엇을 이야기 해도 항상 크게 반응을 내보이지 않았던 루나가 녹스터를 향해 바짝 얼굴을 들이대며 물었다.
그녀의 얼굴에 서려있었던 것은 슬픔. 지금까지 그녀가 단 한번도 겉으로 내비치지 않았던 감정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모습을 처음으로 본 녹스터는, 망설이기만 하던 본인의 결심을 굳힐 수 있었다.
‘…바보 같은 놈. 이런 사람… 아니, 엘프를 곁에 두고 망설이고 있었다니.’
본인이 생각해도 지난날의 스스로가 너무나 멍청하게만 느껴진다. 그렇게 본인 스스로를 욕하며, 녹스터 아스토니아는 그녀의 앞에서 한쪽 무릎을 꿇었다.
“저와 결혼해 주시겠습니까?”
“….”
녹스터가 갑작스럽게 건넨 청혼에 루나의 표정은 당혹스러움으로 가득 물들었다. 조금 바보 같아 보여 귀엽게만 그껴지는 그녀의 얼굴을 본 녹스터는 미소를 참지 못한 채, 그대로 주머니에서 반지를 꺼내 그녀의 앞에 내밀었다.
“반지…?”
“인간들의 풍습입니다. 청혼을 할 때 상대방에게 반지를 선물하는 거죠.”
“….”
“어떠십니까, 받아주시겠습니까?”
사실 물어볼 필요도 없는 질문이었다. 그도, 그녀도, 이미 진작부터 서로의 마음에 대해 알고 있었으니.
그러나 알고 있는 것과, 그것을 말로 빚어내 꺼내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었다.
“…응.”
루나는 속삭이는 듯한 작은 목소리와 함께 고개를 끄덕이며 녹스터가 건넨 반지를 수락했다. 그녀의 얼굴에는 마치 아이와도 같은 밝은 미소가 서려있었다.
“당장은 이것밖에 드리지 못하지만… 다시 돌아오는 날에는 당신이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 들어드리겠습니다.”
“….”
녹스터의 맹세에 루나는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으로 그를 가리켰다. 마치 다른 것은 일절 필요 없고, 녹스터만 있으면 된다는 듯이.
그러자 그런 그녀의 대답에 녹스터는 그녀를 끌어안으며 입을 맞출 수 밖에 없었다.
아내가 된 여자가 너무나도 아름다워보였기 때문에.
그녀만 있어준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에.
그랬기에 두 남녀는 서로를 끌어안으며 가볍게 이마를 맞대었다.
노을이 드리워지고 있는 하늘 아래에서, 만개한 이름모를 꽃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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챙길 것들을 전부 챙기고 복귀할 준비를 끝마치는데 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갑옷과 검 한자루, 약간의 식량과 여비, 그리고 말 한필이면 충분했다. 애초에 복귀하는 건 녹스터 혼자였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떠나기 전 루나와 시간을 보내느라고 해가 거의 지평선에 닿아서야 출발하게 된 것을 빼면 큰 문제는 없었다. 굳이 문제가 있다고 하면 당분간은 그녀와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것이 문제. 하지만 떨어지기 싫다고 해서 복귀명령을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으니 어쩔 수가 없었다.
“후후후후.”
어쩔 수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그렇게 생각하며 무탈하게 말에 올라탄 채 밤길을 달리던 녹스터의 웃음소리가 바람을 타고 주변에 울려퍼졌다.
필시 파울루스가 곁에 있었더라면 기분나쁜 웃음소리라며 질색을 했었을 것이다. 하지만 혼자 말을 타고 달리고 있던 그는 아무런 방해 없이 계속해서 실실 웃을 뿐이었다.
‘빨리 갔다가 빨리 돌아와야지. 돌아가면 결혼식도 올리고, 선물도 잔뜩 주고, 태어날 아이와 함께 평온하게…’
[다그닥-]순간 땅이 울린 듯한 기분과 함께 말발굽 소리가 겹쳐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뭐지?”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느낀 녹스터는 왠지 모르겠는 불안감에 바로 앞에 있는 언덕을 향해 말을 몰았고, 이내 언덕 위에서 멈춰서 소리가 들려오고 있는 방향을 향해 바라보았다.
“!!”
언덕 너머의 풍경을 바라본 녹스터는 소리없이 경악을 내뱉었다.
왜냐하면 그가 바라본 그것에는, 대지를 새빨갛게 뒤덮은 병사들이 이쪽 방향을 향해 진격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그니스 왕국의 깃발을 내세운 채로.
“무슨…”
왕국의 병사들이 어째서 이곳에 있는 것일까.
어림잡아 수를 세어봐도 족히 만 명. 토벌이나 침공에 대응하는 방어가 목적이 아닌 이상 절대로 움직일 만한 수의 병력이 아니다.
“이랴!!”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광경을 목격한 녹스터는 서둘러 병사들을 향해 말을 몰았다. 그러자 적습에 대비하고 있던 몇몇 병사들이 그를 향해 검을 겨누며 경계하였지만, 다행히도 그를 알아보는 이가 있었다.
“검을 거둬라. 아군이다.”
“로렌스 경…?”
진군 중이던 군대의 선두에는 다름이 아닌 녹스터의 상관이자 현 이그니스 왕국 기사단의 최고 책임자인 로렌스 장군이 병사들을 이끌고 있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입니까? 경이 어째서 이곳에…”
“나야말로 자네에게 묻고 싶군. 어째서 이곳까지 마중을 나온 것이지?”
…마중을 나왔다고? 내가?
[쿵-]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제게 왕국으로 복귀하라는 서신을 보내셨던 것 아닙니까?”
“그게 무슨 소리인가. 그런 서신을 보낸 적은 없다만은.”
[쿵- 쿵-]심장이 터질 것만 같이 뛰기 시작했다. 시끄러울 정도로 뛰는 심장 소리 때문에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지만, 이어지는 로렌스 장군의 목소리 만큼은 너무나도 선명하게 귓가에 울렸다.
“내가 보낸 서신은 엘븐가르드를 토벌하라는 내용이였지, 복귀하라는 내용이 아니었을텐데.”
“예…?”
미치도록 뛰던 심장 소리가 순식간에 무너지듯 가라앉았다.
…토벌? 어디를?
귀를 거쳐 머릿속에 들어온 로렌스 장군의 말들이 이해로 이어지지 않은 채 계속해서 맴돌았다. 달빛과도 같은 은발과 함께 옅은 미소를 지어주던 그녀의 모습이 눈가를 스치고 지나갔다.
먼저 움직인 것은 머리가 아니라 몸. 생각이 굳어버린 머리를 뒤로 한 채, 녹스터는 지금까지 쭉 달려왔던 방향으로 말을 돌려 왔던 길을 미친듯이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안일했던 본인의 어리석음을 저주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