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Part-Timer Raises a Half-Elf RAW novel - Chapter (24)
알바생이 하프 엘프를 키우는 법-24화(24/245)
24
[해영아 미안. 언니 또 길 잃었다. 좀 찾으러 와주라.]“….”
마트의 안내방송에서 아주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 것 같은 건 기분 탓일까.
“….방금 그거 화연 씨 목소리 맞죠?”
“….네.”
잘못들은건가 긴가민가 했는데 아무래도 잘못 들은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살다살다 다 큰 사람이 마트에서 길을 잃어버리는 헤프닝을 경험하게 될 줄이야…’
애라면 또 모를까, 대학생이나 되가지고 길을 잃어버린다는 건 상식적으로 생각하기가 힘든 일이다.
이한성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조금 당혹스러운 기색과 함께 해영에게 물었다.
“그… 이런 일이 자주 있습니까?”
아까 분명 화연 씨가 방송으로 또 길을 잃어버렸다고 했었다. 즉, 이런 일이 예전에도 적어도 한번 쯤은 있었다는 뜻이다.
“글쎄요. 자주라고 하기에는 좀 그렇고… 이젠 거의 일상생활 이라고 받아들여서요.”
아니나 다를까, 이한성의 물음에 해영은 조금 난처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짐작했던 그대로의 대답을 돌려주었다.
“화연 언니가 겉보기에는 막 똑 부러지고 깔끔하긴 해도 말이죠, 사실 저 없으면 진작에 굶어 죽었을 사람이에요.”
“혹시 둘이 동거하세요?”
“네. 정확히는 제가 언니네 집에 얹혀 살고 있는 입장이긴 하지만요.”
“아…”
생각했던 것 보다 복잡해 보이는 둘의 관계에 이한성은 말끝을 늘어뜨리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왠지 점점 내 안의 화연 씨의 인상이 무너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데…’
처음에는 그저 알바하면서 대학도 다니고, 성격도 좋은 참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어째 알면 알 수록 의외로 허당적이고 조금 모자란 면모가 드러나는 것 같다.
이한성은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무의식적으로 해영을 따라가며 카트를 몰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아까 화연 씨가 해영 씨 없이는 굶어 죽었을 거라고 하셨는데… 그건 무슨 소립니까?”
“아 그거요? 말한 그대로에요. 언니는 밥하기 귀찮다고 막 3일이나 굶고 다니는 사람이거든요.”
“네…?”
세상에 그 어떤 인간이 밥하기 귀찮다고 3일이나 굶고 다닐까. 꽤나 노련한 귀차니스트라고 자신할 수 있는 이한성 본인조차도 아침 점심은 밥하기가 귀찮아서 굶어도 저녁은 확실하게 챙겨먹는데.
해영의 말에 이한성은 무척이나 황당해 하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이한성의 반응을 당연하다고 여겼는지 아무렇지도 않아 하며 조용히 믿기 힘든 이야기를 계속해서 이어나갔다.
“그것뿐만이 아니에요. 또 막 청소도 안하고 다녀서 하루만 내버려둬도 집이 완전 개판이 된다니까요.”
“가게에선 정리를 잘만 하던데요…?”
물건 같은 거 정리 잘 한다고 사장님한테 칭찬 받은 게 한 두 번이 아닌데…
‘이쯤되면 해영 씨가 말하는 화연 씨랑 내가 알고 있는 화연 씨가 그냥 동명이인인거 아냐…?’
믿기 힘은 해영의 말에 있을 수도 있을 법한 가설을 속으로 내세워 본 이한성이었지만 이어지는 해영의 말이 그런 그의 생각을 전면으로 부정하였다.
“돈 받고 하는 일이나 남의 일이면 확실하게 해요. 문제는 자기 일이면 무조건 귀찮다고 안하려고 한다는 거지.”
….보통은 반대 아닌가?
자기애가 넘쳐나서 자기 일이 아니면 신경도 안 쓰는 사람은 수두룩하게 봐왔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여태껏 본 적이 없는 이한성은 도저히 이해를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아무튼, 화연 언니는 그런 사람이에요. 그래서 전 항상 나중에 화연 언니랑 사귈 사람을 생각하면 막 측은지심이 절로 들고 그런단 말이죠.”
“…누군진 몰라도 확실히 불쌍하긴 하겠네요.”
해영의 말에 이한성은 동감이라고 생각하며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뭐, 역시 독신주의인 나랑은 아무런 상관도 없는 얘기지만 말이야.’
괜히 연애하고 결혼하면서 스트레스 받을 바에는 그냥 편하게 혼자 잘 먹고 잘 사는게 제일이다. 비록 예기치 못한 일로 결혼도 연애도 안하고 애가 생기긴 했지만, 이한성의 뇌리 깊숙히에 각인된 독신주의는 여전히 건재했다.
“아, 저기 있네. 화연 언니!”
이한성이 홀로 흔들릴 일 없는 독신주의를 굳건하게 다지고 있던 그 순간, 해영이 고객센터의 의자에 앉은 채 가만히 기다리고 있던 화연을 보고는 바로 달려나가며 그녀를 불렀다.
“아, 해영아.”
“전화 좀 받아야 할 거 아냐 언니. 내가 몇 번이나 전화를 했는데.”
“전화? 아 그게 말이지… 아무래도 핸드폰이 고장난 모양이더라.”
해영이 추궁하자 화연은 우물쭈물한 말투와 함께 주머니에서 핸드폰… 정확히는 한때 핸드폰이었던 것을 꺼냈다.
“…..”
이곳저곳 깨져버린 액정. 고압전류로 구워지기라도 한 듯한 까무잡잡한 실루엣. 누가 IED(급조폭발물)로 사용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처참하게 박살나버린 핸드폰에 해영과 이한성은 할 말을 잃어버렸다.
“배터리가 나가서 충전을 하려고 했는데… 그게 잘 안 됐나봐.”
아니 무슨 예전에 유명했던 모 S사의 핸드폰도 아니고, 뭘 어떻게 충전하려고 했길래 핸드폰이 이 꼴이 된 답니까…? 막 토스트 기계에다가 집어넣기라도 한 건가?
“에휴… 왠지 그런 이유일 것 같았어. 이젠 놀랍지도 않아.”
아니, 이보세요 해영 씨. 이런 걸 보면 놀라야지.
핸드폰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놓은 화연도 그렇지만 이걸 보고도 별로 놀라하지도 않는 해영씨도 만만치 않게 정상인이 아니다.
“그런데 해영아. 이한성 씨는 어쩌다가 데리고 온 거야?”
“쇼핑하다가 우연히 만나서. 근데 언니가 막 요란하게 안내방송을 틀어서 어쩌다 보니까 같이 왔지 뭐.”
[퍽-]“앜…”
해영이 간략하게 자초지종을 설명하며 이한성의 어깨를 툭 쳤다. 그러자 이한성은 의외로 쎄게 맞은 바람에 욱신거리는 어깨를 손으로 문지르며 고통을 삭혔다.
그러자 그런 이한성의 모습이 우스깡스러웠는지, 가만히 카트 안에 앉아있던 수정이가 이내 막 웃으며 재밌다는 듯이 팔다리를 막 허우적대기 시작했다.
“꺄르르륵! 아바바!”
“얌마, 넌 내가 방금 주먹으로 맞았는데도 뭘 그렇게 웃고 그러냐?”
아파하는 자신의 모습에 무척이나 재밌어하는 수정이를 보고는 항의해본 이한성이었지만, 역시나 수정이는 들은 척도 하지 않은 채 계속해서 웃을 뿐이었다.
“그래… 우는 것 보다야 낫지 뭐. 맘껏 웃어라.”
애한테 항의를 해봤자 씨알도 안 먹힌다는 건 이미 진즉에 학습한지 오래다. 그랬기에 이한성은 그저 웃어대는 수정이를 무시하기로 하며 조용히 시선을 돌렸다.
“애가… 많이 컸네요?”
“….!”
그러자 그 순간, 갑작스럽게 들려온 화연의 목소리가 이한성의 심장을 철렁이게 만들었다.
“크기는 무슨, 이제 막 이유식 먹기 시작한 애가 크기는 뭐가 커.”
“그런가…?”
하지만 그것도 아주 잠시, 이어지는 해영의 말에 화연은 의심을 거두며 조용히 그녀의 말을 납득했다.
‘휴우… 들키는 줄 알았네.’
화연이 의심을 거두자 이한성은 속으로 나지막히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저나 화연 씨는 어떻게 위화감을 눈치 챈 거지? 해영 씨나 집주인 아줌마는 아예 자각을 못하던 눈치던데…’
이한성이 알고 있는 한, 화연을 제외한 그 누구도 비정상적으로 빠른 아기의 성장속도에 대해 위화감을 느끼지 못했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는 건가? 눈치 빠른 사람은 위화감을 더 잘 느낀다거나…’
아마 그럴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다른 모두가 자각하지 못한 걸 화연 혼자만이 알아챘을 리가 없다.
‘아무튼 앞으로는 조심해야겠다.’
화연 말고도 위화감을 쉽게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또 있을지도 모르는 법이다. 그런 생각과 함께 이한성은 살짝 안이했던 자신의 생각을 고쳐먹었다.
“그런데 이한성 씨는 마트에 무슨 일이세요?”
“이유식을 만들려는데 재료가 없어서요.”
“직접 만드시게요?”
“뭐… 그렇죠.”
이젠 화연의 저 무척이나 의외라고 말하는 듯한 눈빛도 익숙하다.
사실 이한성이 굳이 이유식을 직접 만들려는 이유는 퀘스트의 추가 보상이 뭔지 확인하기 위해서지만 이한성은 그걸 굳이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다.
“힘들지 않으시겠어요?”
“인터넷 보고 만들면 되죠.”
계속해서 이어지는 화연의 물음에 이한성은 슬슬 드러나는 귀찮음이 묻어난 목소리로 그렇게 대답했다.
사람이랑 오랫동안 대화를 나누는 건 지치는 일이다. 그것도 상대가 그렇게 친한 사람이 아닌데다가 이성이라고 까지 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제가 도와드릴까요?”
“아뇨. 됐습니다.”
굳이 남에게 도움을 받을 만한 일도 아니고, 무엇보다도 남에게 도움을 받았다가는 피 같은 퀘스트 보상이 절반으로 줄어들어버린다. 그리고 그건 돈 한 푼이 아까운 이한성에게 있어선 무엇보다도 피하고 싶은 일이다.
“….이한성 씨. 모르죠? 애한테 이유식을 먹인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힘들긴 뭐가 힘듭니까. 그냥 식재료를 적당히 사서 삶고 갈고 해서 주면 끝인데.”
애들한테 먹여선 안 되는 재료들만 조심해서 만든다면 결코 어려운 일도 아니다. 평소에 피곤하고 귀찮아서 배달 음식만 시켜 먹어서 그렇지, 이한성은 꽤나 요리를 잘하는 편이었다.
게다가 설령 이유식을 망친다고 해도 가공품 이유식을 먹이면 그만이다. 물론 그렇게 된다면 추가 보상은 포기해야 되겠지만 말이다.
그랬기에 이한성은 별 다른 걱정을 하지 않았다.
“….”
“뭐, 왜요.”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갑자기 왜 저런 측은한 눈으로 쳐다보는 거지?
화연은 그렇다 쳐도 왜 해영까지 자신을 그런 눈으로 쳐다보는 걸까. 영문을 모르겠는 둘의 반응에 이한성은 뭔가 찝찝함을 느끼며 미간을 찌푸렸다.
“저기요, 왜 다들 그런 눈으로 절-”
[빠각!]…빠각?
순간 무언가가 깨지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지며 이한성의 말을 가로막았다.
“꺄하하하! 아우바!”
“….”
깨지는 소리의 근원은 다름 아닌 잠시 방치되어 있던 이한성의 카트,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카트 안에서 처참하게 휜 자와 노른자가 분리되어 있던 계란 한판이었다.
“애, 애가 참 기운이 넘치네요. 하하…”
“….”
해영이 신나라 계란판을 학살하고 있는 수정이를 바라보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그렇게 어색한 미소라도 짓고 있던 그녀와는 다르게, 이한성의 표정은 살해당한 계란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이 어둡기 그지없었다.
역시, 애를 돌볼 때는 한눈을 팔아서는 안 되는 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