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Part-Timer Raises a Half-Elf RAW novel - Chapter (240)
알바생이 하프 엘프를 키우는 법-240화(240/245)
240
그날 밤은 달이 없는 밤이었다.
새카만 하늘과 구름이 껴 별 조차도 보이지 않는 어두운 밤.
그러나 그런 어두운 밤하늘 아래에서도, 저 멀리 새빨갛게 피어오르는 불길만은 너무나도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이랴!!”
제발…
점점 더 가까워져가는 불길과 연기들, 그리고 열기를 느끼며 녹스터는 그저 또 빌고 또 빌었다.
부디 자신이 늦지 않았기를. 부디 저 불길이 아직 누구도 집어삼키지 않았기를.
…부디 그녀의 미소를 볼 수 있기를.
[화르륵!]“큭!?”
숲에 다다르자 거센 화염이 녹스터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맨몸으로는 도저히 지나갈 수 없을 정도로 뜨거운 열기가 그의 전신을 휘감았지만, 녹스터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저리 꺼져!!”
거센 불길을 상대로, 녹스터는 검을 꺼내들어 분노어린 포효와 함께 휘둘렀다. 그러자 불길을 향해 휘둘러진 그의 검은 성난 화염을 단숨에 양단하여 길을 만들어냈고, 그렇게 길을 만들어 낸 그는 숲속으로 달리고 또 달렸다.
이미 불길이 숲의 대부분을 집어삼키고 있었기에 길을 분간하는 방법 따윈 없었다. 새빨간 화염과 연기 속에서, 그는 자신이 맞는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건지 조차 알지 못한 채 그저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갈 뿐이었다.
공기가 뜨거워 숨조차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저 멀리서 들려오는 것이 나무가 타들어가는 소리인지, 아니면 누군가의 비명소리인지 조차 구분이 되지 않았다.
시야에 보이는 것은 오로지 모든 것을 불태워 재로 만들고 있는 새빨간 화염 뿐.
지옥이 있다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런 녹스터의 생각은 완전히 틀려 있었다.
왜냐하면 진정한 지옥은 그 불길 너머에서 도사리고 있었기 때문에.
“….”
영원히 계속될 것만 같았던 화염이 눈앞에서 사라지고, 뜨겁기만 하던 공기가 조금은 숨 쉬기 편하게 느껴질 정도로 가라앉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한치의 눈앞도 보이지 않던 시야에는 엘븐가르드의 모습이 들어와 있었다.
예전의 모습은 조금도 찾아볼 수가 없는 엘븐가르드가.
[티딕- 틱-]녹스터의 눈에 들어온 그곳은 더 이상 엘븐가르드가 아니었다.
불타는 지옥.
그렇다. 그곳은 지옥이었다.
검게 그을린 채 쓰러져 있는 엘프들의 시체들. 그리고 그 사이로 풍겨져 오는 시체가 타는 냄새들.
누군가는 산 채로 불에 타며 비명을 지르고 있었고, 누군가는 멍하니 타오르는 불길을 바라보며 미동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루나.”
그렇게 그런 지옥 속에서 한참 동안이나 가만히 서있는 채로 망연자실하게 있던 녹스터는 그녀의 이름을 입에 담으며 떨리는 발걸음과 함께 몸을 움직였다.
-나, 녹스터 아스토니아는 맹세하겠다.
타들어가는 재의 내음이 더욱 짙어졌다. 하지만 녹스터는 무언가에 홀린 듯이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갈 뿐이었다.
-그대와 그대의 품 속에 살아있는 생명을 이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지키겠노라고.
지난 날에 했던 맹약이 타들어가는 불똥소리에 깃들 듯 속삭여왔다.
-저와 결혼해 주시겠습니까?
바로 오늘 저녁 노을 아래에서 그녀와 나눴던 이야기가 머릿속에 아른거렸다.
-…응.
미소지으며 수줍게 고개를 끄덕이던 그녀의 모습이 눈가에 아른거렸다.
하지만 그가 다다른 발걸음의 끝자락에서, 너무나도 선명했던 그녀의 미소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저, 잿더미가 된 나무 아래에서 등을 기댄 채 보자기를 감싼 아기를 안고 있던 그녀가 있었을 뿐이었다.
온기도, 생기도 느껴지지않는 텅 비어버린 눈동자와 함께.
“….”
[툭- 투둑-]빗방울이 뜨거운 열기 사이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하나 둘씩 떨어지던 빗방울은 어느샌가 거센 소나기가 되어 떨어졌고, 모든 것이 불타오르던 엘프들의 고향을, 그녀의 고향을 차갑게 식혔다.
“….”
빗줄기 아래에서 차가워져 가는 그녀를 앞에 둔 녹스터는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어째서 이렇게 된 것일까. 마음 속으로 추궁하고 또 추궁하였지만 되돌아 온 것은 결국 그녀를 지키지 못했던 본인 스스로의 추잡한 안일함으로 부터 비롯된 죄책감 뿐이었다.
그렇게 그는 아무런 말도 전하지 못한 채, 내뱉지도 못한 채 떨리는 손길로 그녀의 눈을 감겨주었다.
[저벅-]세차게 떨어지는 빗줄기 사이로 천천히 다가오고 있는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다가오던 발소리가 자신의 바로 뒤에서 멈춰서자, 이에 녹스터는 차가운 슬픔으로 내리앉은 목소리로 나지막히 입을 열었다.
“…왜 거짓말을 한거지?”
“….”
녹스터의 물음에 파울루스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단 한번도 보지 못했던 모습을 본 파울루스는 침묵 끝에 조용히 대답했다.
“네놈이 엘프에게 마음을 내주었기 때문이다.”
만일 서신의 내용을 사실대로 전했더라면 분명 녹스터는 왕국의 명을 어기고 반역자가 되어가면서 까지 엘프를 지키려고 했을 것이다.
친구로서, 그리고 동료로서 그가 그렇게 되는 것을 보고 있을 수 많은 없었다는 듯이 파울루스는 그렇게 말했다.
“…얼마나 많은 죄없는 목숨들을 앗아간건지 알긴 하나?”
“명령에 따랐을 뿐이다.”
“…명령이라.”
그래. 저 녀석은 저런 놈이었지.
무슨 일이 있어도 명령에 충실히 이행하는, 자신을 한자루의 검으로 밖에 여기지 않는 인간. 그게 바로 파울루스 반 빌헬름이다. 그와 지난 몇 년간을 함께 동료로서 싸워왔던 녹스터는 그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쿵!]푸른 색의 오러가 압도적인 기운을 내뿜으며 녹스터의 주변으로 터져나왔다. 일순간 일대의 빗방울들이 전부 날아가버릴 정도로 오러를 방출한 그는 말과 감정 대신 오러로 본인의 마음을 표현할 뿐이었다.
…그냥 다 죽여버릴까.
남은 것은 없다. 지키고자 맹세한 것을 지키지 못했다. 이제는 뭐가 어떻게 되는 아무래도 좋았다.
다행스럽게도 녹스터에게는 그럴 만한 힘이 있었다.
누구도 지키지 못한 이 힘으로 모든 것을 없애버리리라. 그리고 끝내 스스로까지도 이 세상에서 지워버리리라.
그렇게 녹스터는 손에 검을 쥐어잡은 채 조용히 몸을 일으키려고 하였다.
“응아앙!!”
“…?”
가까운 곳에서 들려온 아기의 울음소리가 차갑게 식어있던 녹스터의 마음을 흔들었다.
울음소리가 들려온 곳은 루나가 마지막까지 품에 안고 있던 보자기 속이었다.
“….”
비에 젖어 차갑게 떨리는 손과 함께, 녹스터는 조용히 그녀가 품에 안고있던 보자기를 들춰보았다.
“으아아앙!!”
그곳에는 생명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작은, 그럼에도 살아 숨쉬며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고 있는 아이가 있었다.
녹스터와 같은 녹색 눈을 지닌, 그의 딸이었다.
[덥썩-]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은 그 작은 생명은 손가락보다도 작은 손으로 녹스터의 차가운 손을 붙잡았다.
-아이를 부탁해.
다시는 듣지 못할 그녀의 목소리가 귓가에 속삭이는 듯 했다.
녹스터는 말없이 조심스럽게 아기를 보자기로 감싸 품에 안았다. 그리고는 이내 천천히 몸을 일으켜 뒤를 돌아 어디론가 향하기 시작했다.
“녹스터!!”
떠나려던 녹스터를 파울루스의 외침이 붙잡아 세웠다. 친구… 아니, 한때 친구였던 이의 부름에 녹스터는 잠시 발걸음을 멈춰 그의 말을 들어주었다.
“현명하게 생각해라. 이대로 떠난다면 왕국은 네놈을 끝까지 추적해 반역자로 처형할 것이다.”
“….”
녹스터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파울루스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그는 다시 발걸음을 내딛을 뿐이었다.
[스릉-]이대로 친우를 떠나게 놔둘 수가 없었던 파울루스는 급기야 검까지 뽑아들어 그에게 겨누면서까지 그를 멈춰세우려고 하였다.
“네놈이 그 아이를 지키면서 언제까지 버틸 수 있다고 생각하지?”
“….”
“죽을 것이다, 네놈은.”
“…파울루스 반 빌헬름.”
녹스터의 냉기어린 목소리가 나지막히 울려퍼졌다. 처음으로 그의 이름을 풀네임으로 입에 담은 그는 차갑게 드리워진 살기와 함께 나지막히 경고했다.
“비키지 않는다면 죽는 건 내가 아니라 네가 될거야.”
이것은 한때나마 가장 가까웠던 친우이자 동료였던 그에게 베푸는 마지막 자비.
“….”
녹스터의 경고에 파울루스는 저도 모르게 검을 내렸다. 항상 게을르고 바보스럽던 면모 뒤에 숨겨져 있던 맹수의 송곳니를 엿본 파울루스는 멀어져 가는 녹스터를 막지 못한 채 놓아줄 수 밖에 없었다.
비에 젖은 재 밖에 남지 않은 폐허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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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었어? 엘프들이 세계수를 악용해서 재앙이 일어나기 시작했다는 소문.”
“들었지 들었어. 그것 때문에 왕국이 엘프들에게 전쟁을 선포했다며?”
“쯔읏, 그 죽일 놈들의 귀쟁이들. 수명도 긴 놈들이 욕심부릴 게 뭐가 있다고 세계수를 건들여?”
엘븐가르드가 불타 사라진 이후로 소문은 테라리움 전체에 빠르게 퍼져나갔다.
세계수를 관리해야 할 엘프들이 탐욕에 빠져 세계수에 손을 댔다. 잇따라 대륙 전체에서 발생하기 시작한 자연재해도, 조사단을 먼저 공격했던 것도 전부 엘프들이다.
이미 오래 전 부터 발생하기 시작한 대재앙에 지쳐있었던 사람들은 소문에 쉽게 빠져들어 엘프들을 향해 분노를 표출하기 시작했다. 민심은 엘프들로 부터 등을 돌려버렸고, 그렇게 전쟁은 시작되어 시시각각 엘프들의 영역을 불태워나갔다.
엘프들은 저항했지만 전쟁에 대한 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았던 그들은 속수무책으로 밀려났다. 남부 끝자락에 위치한, 이드그라실이 뿌리를 내린 태초의 땅까지 밀려나게 된 그들이 3종족 연합군에 의해 하나도 남김없이 토벌되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하여간에 엘프 놈들, 평소에 온갖 고귀한 척은 다하더니만. 싹 다 죽여버려야지.”
“….”
길거리를 지나가는 사람 하나 하나가 모두 다 엘프들을 비난하며 욕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녹스터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아이와 함께 엘븐가르드를 빠져나온 이후로 그는 후작의 지위와 모든 것을 박탈당한 채 도망자의 신분이 되었고, 하루가 멀다하고 추격해오는 기사단을 뿌리치는데 전념해야만 했다.
인적이 드문 마을을 위주로 도망다니며 어떻게든 아이가 마실만한 동냥젖을 얻고, 밤에는 언제 추격자가 달라붙을지 몰라 경계를 서며 잠도 설쳐야만 했다.
다행히도 용병 생활의 경험이 있었던 그는 그 모든 고난들을 어떻게든 견뎌낼 정신이 있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아이 만큼은 지켜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목숨이 다하는 날에 그녀의 얼굴을 볼 낯이 없다.
안일하게 맹세를 늘어놓고도 지키지 못하지 않았던가. 남편으로서 아내조차 지키지 못했는데, 딸아이 조차 지켜내지 못한다면 녹스터 아스토니아라는 인간은 세상에 존재할 가치조차 없는 인간이다.
그런 식으로 그는 스스로를 깎아내리며 마을을 벗어나 저 멀리 북쪽을 향해 계속해서 걷고 또 걸었다.
목적지 따윈 없었다. 일단은 최대한 멀리, 왕국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으로, 그리고 전쟁으로 부터 가장 먼 곳으로 도망가는 것 외에는 생각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렇게 북부를 향해 험난한 여정을 시작한지도 한달이 조금 못 되었을 어느날, 예상치도 못했던 인물이 그를 찾아오기 전 까지는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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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닥- 타닥-]“….”
타들어가는 모닥불 소리가 녹스터의 귓가를 자극했다.
북부에 다다를 수록 날은 추워졌다. 한낱 아기가 도저히 버티지 못할 정도로.
“…자, 불 좀 쐬려무나.”
혹시나 아이가 추울까 걱정이었던 녹스터는 변변찮지 못한 자신의 외투 하나 마저도 아이에게 덮어주고는 모닥불의 열기를 쬐게 해주었다.
아이는 곤히 잠들어 있었다. 마치 온 세상이 아무런 문제 없이 평화로운 것 처럼.
하지만 녹스터는 달랐다. 불침번을 서야 하는 그에게 잘 시간 따윈 없었다. 그는 그러할 사치를 누릴 자격조차 없는 죄인이었으니.
곤히 잠든 아이를 어렵사리 구한 바구니 안에다가 푹신하도록 천을 깔고 그 위에다 눕힌 녹스터는 이내 조용히 검을 검집에서 뽑아들어 바라보기 시작했다.
흑철색 도신에는 지금까지 베어온 추격자들의 피가 한가득 묻어 있었다.
“…손질 좀 해야겠군.”
이러다가 검이 녹슬어 나중에 추격자들의 공격에 대비하지 못하게 된다면 큰일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녹스터는 피로 얼룩진 검의 도신을 모닥불에다 갖다대 눌러붙은 피들을 태워 없앴다.
“….”
그렇게 검을 손질하다가 문득 흑철색 도신에 반사되어 비춰진 본인의 모습에, 녹스터는 말없이 입을 다물었다.
참으로 꼴이 말이 아닐 정도로 엉망이었다. 예전의 그였더라면 그렇게 엉망이 된 스스로의 모습을 도저히 참지 못하고 바로 정돈을 하러 갔겠지만 지금의 그는 조금도 그러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렇게 녹스터는 아무 말 없이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이내 도신에 비춰지던 본인 스스로의 모습 대신에, 검자루에 새겨져 있던 이그니스 왕국의 문장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
예전에는 말은 안해도 참으로 명예와 긍지를 느낄 수 있었던 왕국의 문장은 더 이상 그에게 증오와 원한 이외에는 그 무엇도 느끼게 할 수 없었다.
한참동안이나 검에 새겨진 문장을 바라보던 그는 이윽고 손끝에 오러를 둘러 검과 마찬가지로 순수 미스릴로 제작된 왕국의 문장을 그어버렸다.
[치이익-]“…나오시죠.”
그렇게 검에 새겨져 있던 왕국의 흔적을 거칠게 지워버린 녹스터는 이윽고 나지막히 입을 열어 말했다.
주변에는 그 누구도 없는 듯 했지만 그는 아까 전 부터 누군가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는 사실을 진작에 눈치 채고 있던 상태였다.
[바스락-]일절 느껴지지 않던 인기척이 갑자기 모습을 드러내며 녹스터의 눈앞에 나타났다. 그러나 녹스터는 조금도 놀라지 않은 채 담담한 시선으로 모습을 드러낸 감시자를 바라볼 뿐이었다.
“놀라운 감이로구만. 내 은신마법을 간파하다니.”
“…한번 느낀 마력은 쉽게 잊어버리지 않는 체질인지라 말입니다.”
모습을 드러낸 자는 다름이 아닌 엘프들의 최고위 장로이자 대마법사인 엘레인이었다.
지금쯤 멸족의 직전에 놓이게 된 동족들을 구하기 위해 최전선에서 고분고투하고 있어야 할 그가 어째서 본인을 찾아 북부까지 온 것인지, 녹스터는 알지 못했다. 그저 검자루에 손을 가져다 댄 채로 허튼 짓 하면 바로 베어버리겠다는 듯이 경계 할 뿐이었다.
“그렇게 경계할 것 없다네 녹스터 경. 난 자네와 자네의 아이를 도우러 온 것 뿐이니.”
“당신이 당장 저희를 도울 여유가 있는 줄은 몰랐군요. 동족의 멸망을 눈앞에 둔 상황일텐데.”
“허허허… 그것에 대해선 뭐라 반박 할 말이 없구려.”
녹스터의 뼈아픈 지적에 엘레인은 하얀 수염을 쓰다듬으며 인자하게 웃었다.
“긴 말 하지 않겠습니다. 마음은 감사하나 도움을 받을 필요는 없으니 이만 가보시죠.”
“….”
뭐라고 말을 꺼내기도 전에 돌아가라는 녹스터의 말에 엘레인은 잠시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곤히 자고 있던 그의 딸아이를 잠시 부드러운 시선으로 살펴볼 뿐이었다.
“자네는 이 아이의 행복을 바라는가?”
“…그러지 않는 부모가 있습니까?”
아이의 행복을 바라지 않는 부모는 부모라고 불릴 자격이 없다.
“글쎄… 내 눈에는 자네가 아이의 행복과 안전을 조금 착각하고 있는 것 같아서 말이네.”
“…그게 무슨 소리죠?”
“아이를 안전하게 지킨다고만 해서 아이가 행복해진다는 것이 아니라는 뜻일세.”
엘레인은 그런 대답과 함께 주름진 손으로 잠들은 아이의 뺨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과연, 루나의 아이로구나. 제 어미를 똑 닮은 마력을 지녔어. 분명 성장하면 그 아이처럼 뛰어난 얼음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겠지.”
“….”
“이 녹색 눈은 자네를 닮았군. 루나의 은발과 자네의 녹안이라… 참으로 어여쁜 아이지 않은가.”
“하시던 말 부터 계속 하시죠.”
녹스터가 엘레인의 손을 가로막으며 그의 대답을 재촉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 아이는 이 세상 어디에서도 앞으로 평탄한 삶을 살 수 없을 거라는 거네.”
“….”
“일단은 하프엘프이니 인간들 사이에 어떻게든 녹아들 수는 있겠지. 하지만 과연 엘프들이 배척받는 이 세상에서, 저 아이가 언제까지고 정체를 숨긴 채로 살아갈 수 있을까?”
“….”
“정체야 어떻게든 숨기기만 하면 살기야 살겠지만 그렇게 평생을 살아가는 것이, 정녕 자네가 이 아이에게 주고 싶은 미래인겐가?”
“그건…”
녹스터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가 없었다. 그는 아이의 행복을 바라고 있었지만, 자신으로서는 이 아이에게 행복을 줄 수 있는 방법이 그 무엇도 없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지난 몇십 년 동안 차원이동 마법을 연구해왔다네. 그리고 고된 연구 끝에, 이 아이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찾아냈지.”
“….”
“비록 어린 아이들 밖에 보내지 못하지만… 살아남은 엘프 아이들만은 이 마법으로 어떻게든 전부 살릴 생각이라네. 그 아이들 중에는 자네의 아이도 포함되어 있고 말이야.”
“….”
엘레인의 말에 녹스터는 조용히 잠든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게 최선입니까?”
“최선일세.”
“….”
다른 방법은 없다. 아이의 살기만을 바랄지, 아니면 살아서 행복하게 되는 것을 바랄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밖에 없다.
“선택이라…”
녹스터는 조용히 손을 뻗어 혹시나 아이가 깰라 손등으로 조심스럽게 아이의 뺨을 쓰다듬었다.
…그리고 그렇게 아버지로서 아이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었던 남자는 선택을 내렸다.
오로지 하나 뿐인 딸아이를 위한 선택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