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Part-Timer Raises a Half-Elf RAW novel - Chapter (241)
알바생이 하프 엘프를 키우는 법-241화(241/245)
241
비릿한 피냄새와 사방에 널려진 시체들.
인간과 엘프 할 것 없이 수많은 이들이 죽어나간 채 바닥에 널브려졌고, 푸른 나무들로 가득하던 주변이 오직 잿더미 밖에 남아있지 않은 광경으로 변모한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파울루스는 말없이 시신들을 바라보았다.
“….”
전쟁은 인간들의 편이었지만 엘프들은 저항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앞도적인 전력차에도 불구하고 그들 중 그 누구도 항복하는 이는 없었고, 그 결과 연합군은 엘프들의 거센 저항에 큰 피해를 입을 수 밖에 없었다.
“단장님.”
“….”
멍하니 서서 전투가 막을 내린 전장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파울루스에게 기사 한명이 다가와 보고를 올리기 위해 말을 걸었다. 그러나 무슨 일인지 파울루스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단장님?”
“…?”
누군가가 자신을 부르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듯 했던 상관의 모습에 다시 한번 기사가 말을 걸자, 그제서야 파울루스는 고개를 돌리며 무슨 일이냐는 듯이 그를 바라보았다.
“…상황은 어떻지?”
“방금 막 엘프들의 방어선이 뚫린 것을 확인했습니다.”
“아군 사상자는?”
“부상자가 3천명, 전사자가 4천명 정도 되는 것으로 확인됩니다.”
“…과연. 최후의 저항이였다는 건가.”
부하의 보고에 파울루스는 싸늘하게 주검이 되어 쓰러져있는 아군의 수 만큼 똑같이 바닥에 널브려져 있던 셀 수도 없이 많은 엘프들의 시신들을 바라보며 그렇게 말했다.
이번 전투로 인해 이제 연합군의 진격을 막아서는 장애물은 깔끔하게 사라졌다. 후퇴한 엘프 저항군의 잔당들도 머지않아 소탕 될 것이고, 남은 것은 병력을 이끌고 이드그라실을 점령하는 것 뿐이다.
“전선을 가다듬고 진격을 준비해라.”
“알겠습니다 단장님.”
파울루스의 명령에 기사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서둘러 자리를 벗어났다.
“…오늘부로 엘프들도 끝이로군.”
개전 이후로 엘프들에 의해 수많은 부하들을 잃어왔던 파울루스는 저 멀리 우뚝 서있는 이드그라실을 바라보며 그렇게 홀로 중얼거리고는 조용히 말 위에 올라탔다.
이 전쟁에 종지부를 찍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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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그라실을 방어하기 위해 목숨을 바쳤던 엘프들의 수는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대부분의 이들은 항복없이 항전을 계속하다 목숨을 잃었고, 그렇게 더 이상 그들은 이드그라실로 향하는 길목을 막아설 수 없을 정도로 패퇴하였다.
이따금 숲 속에 숨어있다가 지나가는 왕국의 병사들을 급습하는 것이 전부. 그조차도 이미 기습에 대비가 되어 있던 왕국 기사단을 막아서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너무 쉽군요. 좀 더 의미있는 저항을 할 줄 알았는데 말입니다.”
파울루스의 부사관이 저항이라고 조차 부를 수 없는 엘프 패잔병들의 마지막 발악을 지켜보며 김이 샌다는 듯이 말했다.
“…놈들도 그동안의 전쟁에서 잃은 것이 컸던거겠지.”
부사관의 말에 파울루스는 당연하다는 듯이 그렇게 말하며 점점 더 가깝게 다가오는 거목의 자태를 바라보았다.
“이드그라실이 가깝다. 엘프 놈들이 함정을 파놨을지도 모르니 긴장을 늦추지 말도록.”
“예!”
앞으로 이드그라실까지 불과 5분거리. 저곳만 점령한다면 이제 이 전쟁은 끝난다.
서둘러 전쟁을 끝내야지 병사들의 죽음에 조금이라도 더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그렇게 믿으며 파울루스는 병사들을 이끌며 진격하기 시작했다.
이미 지난 전투들로 대부분의 전력을 소모했던 엘프들은 그들에게 있어서 장애물 조차 되지 못했다. 파울루스와 그의 기사들은 막아서는 엘프들을 모조리 베어버리며 거침없는 진격을 계속했고, 끝내 이드그라실의 거대한 줄기가 하늘을 덮을 정도로 가깝게 느껴질 정도로 다가가갈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이드그라실의 함락이 바로 눈 앞이었던 그 순간, 선두에 선 파울루스는 가만히 말을 멈춰세우며 진격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그의 눈 앞에는 한 남자가 바위에 앉은 채로 마치 그들을 기다렸다는 듯, 길을 막아서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단장님? 무슨 일이십니까, 갑자기 멈춰서시고-”
“….”
이드그라실이 코앞인데 갑자기 멈춰선 파울루스의 모습에 무슨 문제라도 있냐고 물으려던 부사관은 이내 길목을 막고 있던 한 남자의 모습을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왜냐하면 그곳에 서있던 남자는,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모를 수가 없는 남자였기 때문에.
기사단의 전 단장이자 왕국에서 가장 강한 무력을 지닌 남자. 그리고, 이젠 반역자가 되어 종적을 감춰버렸던 남자.
“…녹스터 아스토니아.”
다시는 마주칠 일이 없을거라 생각했던 친우였던 자의 모습에 파울루스는 무의식적으로 그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그러자 이에 반응한 듯, 녹스터는 앉아있던 바위에서 일어나 병사들의 앞을 막아섰다.
“파울루스, 미안하지만 나랑 좀 어울려줘야겠다.”
검을 뽑아든 그는 이내 오러를 실어 자신의 뒤쪽으로 이어지던 땅을 그어버렸다.
[콰과광!!!]대지가 갈리는 소리와 함께 그의 검은 길 한가운데에 그 누구도 지나가지 못하도록 거대한 협곡을 만들어냈다.
“…꼭 이렇게 까지 해야겠나?”
파울루스는 물었다. 한때 친우였던 자에게.
“내가 할 수 있는 게 이것 밖에 없어서 말이야.”
녹스터는 대답했다. 더는 친우가 아니게 된 자에게.
“죽을거다.”
“글쎄, 그건 어떨까.”
갑옷 하나 걸치고 있지 않았던 그는 오직 검 한자루만을 든 채로 그렇게 말했다.
“…어리석은 놈.”
허세로 밖에 보이지 않는 그의 행동에 파울루스는 저도 모르게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그리고는 더는 봐 줄 것도 없다는 듯이 한쪽 손을 들어올려 후방에 위치해 있던 마법사들에게 공격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그 순간, 족히 수백 개에 달하는 파이어 볼트 마법이 하늘을 새빨갛게 메우며 녹스터를 향해 날아들었다.
“….”
녹스터는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죽음의 화염구들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아무런 공포도 없이, 그렇게 바라보기만 하던 그는 이내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은 채 폭발에 휩싸였다.
[퍼버벙!!]굉음과 함께 자욱한 먼지가 주변을 한가득 뒤덮었다.
그러나 그랜드 소드 마스터를 쓰러뜨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쉬익-]바람을 가르는 듯한 소리가 울려퍼짐과 동시에 푸른 검기가 먼지를 반으로 양단하며 선두에 서있던 병사들을 여럿 양단하였다.
“끄아악!!”
비명소리가 가득 들려오며 사방에 피를 흩뿌렸다. 그리고 그렇게 반으로 갈라진 먼지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녹스터는, 이윽고 수천에 달하는 대군을 향해 단신으로 달려들었다.
그는 아무말도 없이 그저 묵묵히 검을 휘둘렀다.
한번 벨 때 마다 엿댓명에 달하는 이들의 목숨이 날아갔다. 두번 벴을 때는 수십 명의 이들의 생명을 잃었다.
개개인의 힘이라고는 전혀 믿겨지지 않는 압도적인 무력. 그랜드 소드 마스터란 그러한 존재였다.
검에 오러를 둘러 휘두르면 주변의 모든 것들이 베어져나갔고, 오러를 익히지 못한 일반 병사들은 그러한 공격 앞에서 추풍낙엽처럼 쓰러져나갈 뿐이었다.
“죽어라 반역자!!”
선두에서 죽어나가는 병사들의 모습을 지켜보다 못한 소드 마스터들이 일제히 그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반역자라.”
자신을 반역자라 부르며 달려드는, 한때 동료였던 자들의 검을 막아내며 녹스터는 자조스런 미소를 지었다.
[서걱-]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휘둘러진 그의 검은 소드 마스터들의 미스릴 갑옷과 오러 방어 조차 일격으로 뚫어버리며 그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자신의 부하들이었던 이들이 자신의 검에 의해 죽어나가는 모습을 담담히 지켜보던 그는 아무런 변명도 내뱉지 않으며 계속해서 검을 휘둘렀다.
마스터 급의 기사들은 그를 막아설 수 없지만 그들은 숫적으로 우세했다. 제아무리 그랜드 마스터가 상대라고 해도 그들은 절대로 물러서지 않았고, 이따금 녹스터의 방어를 뚫고 그의 몸에 상처를 낼 수 있었다.
“….”
하지만 상처를 입어도 녹스터는 신음소리 하나 내지 않았다. 그저 자신에게 상처를 낸 적을 그대로 베어버리고 다음 상대를 향해 검을 휘두를 뿐이었다.
그렇게 수도 없이 많은 상처들을 입어가며 끈임없이 눈앞의 적들을 베어버리던 그의 모습은 가히 한마리의 맹수. 죽을 때 까지 죽이는 것을 반복하겠다는 의지 하나만으로 몸을 움직이는 악귀였다.
[투둑- 뚝-]새빨간 피가 온 몸에서 난 상처들로 부터 떨어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서있었다.
몇몇은 별 것 아닌 상처들. 하지만 대부분은 언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은 치명상.
단신으로 수백에 달하는 병사들을 베어버리고, 수십에 달하는 소드 마스터들을 홀로 쓰러뜨린 그는 그런 상처들을 몸에 안은 채 쓰러지기를 거부했다.
“네가 직접 오는 게 어때? 파울루스.”
“….”
다 죽어가는 몸으로 녹스터는 파울루스에게 검을 겨누며 도발하듯이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이에 파울루스는 조용히 말에서 내렸고, 검을 뽑아들며 녹스터를 마주하였다.
“네놈은 절대로 승리할 수 없다. 이만 포기하는 것이 좋을텐데.”
“포기라…”
녹스터가 자조스런 웃음과 함께 반쯤 풀린 눈으로 파울루스를 쳐다보았다.
“…못할 것 같은데.”
“그렇다면 죽어라. 반역자로서.”
파울루스의 붉은 오러가 검에 감기며 녹스터를 향해 날아들었다.
녹스터는 날아드는 그의 검격을 전부 쳐내며 버텼다.
두 남자의 결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예전에 함께 기사단에 있었을 적에도, 둘은 늘 서로 검격을 나누며 훈련을 하곤 했었다.
결투의 승리자는 늘 언제나 녹스터였다. 파울루스는 언제나 2인자였고, 그럼에도 그는 항상 불만이 없었다. 끈임없이 수련하며 언젠가는 녹스터를 뛰어넘으리라 굳게 다짐할 뿐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이 될 이 결투에서, 파울루스는 그렇게 고대하고 또 고대하던 자신의 승리를 목전에 둘 수 있었다.
[챙!!]“그런 꼴로 날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니, 오만도 유분수다.”
누가봐도 지쳐보이는 녹스터를 바라보며 파울루스는 검을 맞댄 채 그렇게 말했다.
“….”
녹스터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입을 열지 않은 그는 그저 옅은 미소와 함께 파울루스의 검을 밀어내곤 거리를 벌렸다.
그러자 그 순간, 한줄기의 빛이 녹스터의 등 뒤로 솟구치며 주변을 환하게 밝히기 시작했다.
“무슨…?”
빛줄기의 근원은 다름이 아닌 저 멀리에서 우뚝 서있던 세계수, 이드그라실이었다. 그 자리에 있던 모두는 그 모습을 보고 저마다 경악을 내뱉었지만, 유일하게 녹스터만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안다는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시작된건가.”
“네놈, 무슨 꿍꿍이를 세운거냐…!”
“별 거 아니야. 그냥 내 딸아이를 위한 송별식이라고나 할까.”
파울루스의 외침에 녹스터는 너스레를 떨며 검을 고쳐잡곤 그대로 맹렬히 돌진했다.
[키잉!]줄곧 방어적이다가 갑자기 공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한 녹스터의 태세에 파울루스는 금속이 진동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공격을 막아내며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녹스터는 그런 그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계속해서 달려들었고, 본인의 부상은 조금도 신경쓰지 않은 채 상처가 심하게 벌어질 정도로 맹렬한 검격을 연이어 날렸다.
…아가. 난 네게 이름을 지어주지 않았단다.
내겐 그럴 자격이 없으니까. 난 내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으니까.
그래서 난 네게 이름을 지어주지 않았어.
하지만 분명, 저 차원 너머 어딘가에는 네게 이름을 붙여줄 사람이 있겠지.
그러니 부디 행복하게만 살아다오.
좋은 부모를 만나, 좋은 친구를 사귀고, 그리고 언젠가… 좋은 사랑을 하는, 그런 삶을 살려무나.
괴로운 일도, 좋은 일도 있겠지만 부디 좋았던 일만 추억하려무나.
아비였지만 아버지가 될 수는 없었던 나는 잊은 채, 부디 행복하려무나.
그것이 내가 바라는 전부란다.
[틱-]주인과 마찬가지로 함께 한계에 달해있던 검에 불길한 소리와 함께 금이 났다.
“…너의 패배다, 파울루스.”
최후의 일격과 함께 서로를 스쳐 지나간 녹스터는 금이 가버린 검을 손에 든 채 조용히 뒤를 돌아보며 그렇게 말했다.
[툭- 투둑-]왼쪽 눈을 베여버린 파울루스는 손으로 상처를 억누르며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녹스터를 노려보았다. 그러자 그와 동시에 녹스터의 검이 부러지며 저 멀리서 솟구치고 있던 빛줄기가 낮을 밤으로 뒤바꾸며 끝없이 펼쳐지는 은하수를 하늘에 비췄다.
[털썩-]이미 한계에 달해있던 몸과 함께, 녹스터는 아름답기 그지 없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쓰러졌다.
마치 자신의 역할은 이것으로 전부 끝났다고 말하듯이.
그렇게, 인류의 반역자는 웃으며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