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Part-Timer Raises a Half-Elf RAW novel - Chapter (244)
알바생이 하프 엘프를 키우는 법-244화(244/245)
244
일상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원래대로 되돌아왔다.
소드 마스터들의 습격도, 엉망이 되어버렸던 길거리도, 마치 처음부터 아무일도 없었다는 것 처럼 되돌아왔고, 그 어느 뉴스에서도 관련된 소식을 찾을 수 없었다.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있는 것은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뿐. 하지만 직접 겪었던 그들에게 있어서도, 그날의 일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았음에도 마치 오래 전의 일 처럼 금방 잊혀져갔다.
그나마 그날 이후로 집에 달라진 점이 있다고 한다면 그건…
“음냐아아~”
“우우웅…”
…혼자서 잘만 자던 애들이 이렇게 밤마다 안방에 슬그머니 기어들어와 잠자리를 불편하게 만들기 시작했다는 점 뿐.
“….”
아침에 일어나 보니 상체 위에 하나, 그리고 다리 위에 하나 들러붙어있는 수정이와 세리의 모습을 본 이한성은 퀭한 눈과 함께 잠을 자느니만도 못할 정도로 수면의 질을 떨어뜨린 주범 2명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가뜩이나 몸이 찌뿌둥해 죽겠는데 말이지.
그날 있었던 전투의 후유증 때문일까. 가뜩이나 평소에도 좋지 못했던 관절들이 한층 더 삐그덕이는 느낌이다. 아직 20대 초반 밖에 되지 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벌써부터 몸에 성한 곳이 없다고 한탄하며, 이한성은 혹여나 아이들이 깰라 조심스럽게 침대에서 일어나 이불을 덮어주었다.
“으으음…”
딴에는 조심한다고 이불을 덮어주었지만 아이들만 신경쓴 나머지 미처 자고 있던 화연은 생각하지 못했다. 몸을 뒤척이며 조금 불편한 듯한 얼굴을 하기 시작한 화연의 자는 모습을 본 이한성은 그렇게 그녀가 깨지 않도록 숨쉬는 것 조차 참으며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
다행히도 화연은 그저 뒤척이기만 했을 뿐, 그녀가 일어날 낌새는 보이지 않았다. 그걸 확인한 이한성은 혹여나 그녀가 또 깰까 걱정하며 재빠르게 방에서 나왔고, 곧장 부엌으로 향해 컵에다가 물을 받아 목을 축였다.
“휴우… 정말이지, 아직도 꿈 처럼 밖에 안느껴지네.”
불과 일주일도 전에 그 많은 일들이 들이닥쳤었다는 사실이 아직도 믿겨지지가 않는다. 아이들이 납치될 뻔 하고, 해영이와 한스가 죽을 뻔 하고, 어쩌다 보니 초인을 상대로 결투까지 하여 마지막에는 신이라는 존재까지 만나고 돌아왔다.
현실감이 전혀 없는 경험들이었지만, 그날 있었던 일들은 전부 현실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기억만큼은 여전히 선명했으니.
“…내 인생은 이미 충분히 판타지스럽다고 생각했었는데 말이야.”
그동안 겪었던 것은 그저 맛보기에 불과했다. 그렇게 이한성은 쓴웃음과 함께 빈 컵을 싱크대 위에 내려놓고는 창 밖을 바라보았다.
창가에 비춰지던 새벽의 햇살은 참으로도 예뻤다. 그동안 항상 늦잠을 자왔던 탓에 볼 기회가 별로 없었던 새벽의 풍경을 눈에 담으며, 이한성은 조용히 소파에 앉았다.
[삑- 삑- 삑- 삐비빅-]“….?”
고요하게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햇살을 그저 말없이 바라보며 피곤함을 가라앉히던 그 순간, 갑작스럽게 현관문 소리가 들려와 이한성의 시선을 끌었다.
현재 시각은 새벽 5시. 누군가가 방문할 시간이 아니다. 아이들과 화연은 지금 방에서 자고 있으니 아닐테고, 그 외에 집 도어락의 비밀번호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해봐야 어머니와 해영이, 그리고 얹혀살고 있는 한스 뿐.
[슬금슬금-]아니나 다를까, 이한성이 예상했던대로 이 시간에 몰래 현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온 것은 다름이 아닌 이 집의 노비, 한스 마이어였다.
“….”
“….”
혹여라도 들킬까 아주 조심스럽게 기척을 죽이고 현관에 발을 들이던 그의 모습을 처음부터 빠짐없이 전부 지켜보고 이한성은 이윽고 그와 눈을 딱 마주쳤다.
“크, 크흠! 운동하고 나갔다 온 것 뿐이다. 오해하지 말도록.”
“어젯밤에 외출했을 때랑 똑같은 차림으로?”
이한성의 추궁에 한스는 조용히 시선을 피하려 들었다.
…저놈 저거, 해영이네 집에서 자고 왔구만.
한스의 반응으로 너무나도 뻔한 사실을 유추해낸 이한성은 조용히 혀를 차곤 못마땅하단 듯한 시선을 보냈다. 그러자 이에 한스는 도둑이 제발 저린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 얼굴을 지었고, 이내 아주 어색하게 말을 돌리기 시작했다.
“날씨가 아주 좋구만 그래. 뭐, 그렇다. 그렇군. 날씨가 아주 좋아.”
“그러게 말이다. 표정을 보아하니까 어젯밤도 날씨가 아주 참 좋았던 모양이다?”
“커헉-”
정곡을 찔려버린 한스가 순간적으로 각혈하며 휘청였다. 그러자 이한성은 그런 한스를 참으로 못미덥다는 듯이 바라보며 옆에 앉아보란 듯이 손짓하였다.
“….”
안 앉으면 협박이라도 하겠다는 의지가 강력하게 느껴지는 이한성의 말에 한스 마이어는 허리를 굽신거리며 조용히 시키는대로 옆에 앉았다.
“알지? 만약에 내 와이프가 이 사실을 알게되면 널 어떻게 처리할지.”
“…워, 원하는 게 뭐냐.”
“아니, 그냥 뭐 별 건 없고. 슬슬 계약서를 좀 갱신 해야되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야.”
이한성이 빛 바랜 종이 한장을 한스에게 내밀며 말했다. 그러자 한스 마이어는 그가 내민 종이를 한참 동안이나 뚫어져라 쳐다보고 나서야, 그것이 오래전 자신이 마지못해 서명했던 [맹약의 서] 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갱신이라고 하는 것은?”
이번에는 얼마나 더 무리한 사항을 추가하려고 이러는 것일까. 이러다가 생명으로서의 존중조차 받지 못하게 되는 건 아닐지 두려웠던 한스 마이어는 이한성의 눈치를 한가득 살피며 새파랗게 질린 표정으로 물었다.
“….”
한스의 질문에 이한성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그저 가만히 있던 그는, 이윽고 내밀었던 [맹약의 서]를 다시 거두더니 이내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찢어버렸다.
“뭐… 뭘 하는 거냐 네이놈!!”
“반응이 왜 그래? 왜, 평생동안 내 밑에서 노예처럼 구르고 싶냐?”
이한성의 대꾸에 한스는 순간적으로 할 말을 잃어버린 채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혹시나 그가 죽을 날이 다 된 것은 아닐까, 하고 의심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한성은 그러한 한스의 반응에 그렇게 의심할 것 없다는 듯이 피식 웃으며 나지막히 말해주었다.
“우리 애들 지켜준 답례라고 생각해.”
“….”
“왜, 설마 이 형님이 잘해줘서 감동먹었냐?”
“아니. 그런게 아니라 이왕 답례를 할거면 돈으로 지불해주는 것이 더…”
“화연아-”
“아니아니!! 고맙게 받도록 하지!!”
돈으로 답례를 해달라는 말에 곧장 화연을 부르려는 이한성을 본 한스는 다급하게 그를 말리며 울며 겨자먹기로 답례아닌 답례를 받아들였다.
“….”
“….”
서로 할 말은 전부 주고받았기 때문일까. 두 남자 사이에는 다시금 정적이 흐르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면 이 녀석이 얹혀살기 시작한 것도 엊그제의 일 같은데 말이지.
다짜고짜 칼을 들고 죽이려고 달려들었던 것이 첫만남이었는데 지금에 와서는 이놈에게 애들도 맡기고 가게도 맡기는 것이 아주 당연하게만 느껴질 정도다.
친구… 까지는 아니더라도 꽤 써먹을 만한 꼬봉이랄까.
이한성은 그렇게 옅은 미소를 지으며 한스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한스 또한 저도 모르게 머쓱한 웃음을 내비쳤고, 그렇게 둘은 쓴웃음과 함께 서로를 마주보았다.
“아, 그래. 미리 말해둬야겠지.”
“? 말하다니, 뭘?”
“다음주에 이사를 갈 예정이니 미리 알아두도록. 이 지긋지긋한 집구석하고도 이제는 안녕이겠군.”
“이사??”
이게 왠 갑자기 뚱딴지 같은 소리일까. 다짜고짜 이사를 가게 됐다는 한스의 말에 이한성은 벙 찐 얼굴로 그를 쳐다보며 황당함을 내비쳤다.
“아니, 니가 돈이 어딨다고 이사를 가?? 너 임마 요즘 시대에 집 구하는게 얼마나 힘든지 알기나 하냐??”
“돈 문제라면 상관 없다. 집주인이 돈 걱정은 하지 말라고 했으니.”
“….”
세상에 돈 걱정 하지 말라며 집을 공짜로 내주는 집주인이 어딨을까. 말도 안되는 소리를 지껄이는 한스의 모습에 어이가 없었던 이한성이었지만, 그는 금방 그것이 아주 말이 안되는 소리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야 잠깐만. 너 설마… 해영이네 집에서 얹혀살게??”
“크흠! 얹혀살다니, 말이 좀 심하군. 동거라는 표현이 더욱 어울린다만.”
…이놈보소? 뭐? 동거??
얼굴에 홍조를 띄우며 부끄럽다는 듯이 징그럽게 말하는 한스의 모습에 이한성은 본능적으로 오만상을 찌푸렸다.
“…너 말이야, 그 집 원래 집주인 따로 있는거 알고는 있냐?”
“? 그게 무슨 소리냐. 거기 살고있는 사람이 집주인이지. 주인이 따로 있기라도 한가?”
“….”
역시나. 이놈이거, 아무것도 모르고 있구만…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실상을 전혀 모르고 있는 한스의 모습에 이한성은 할 말을 잃은 채 참으로 가엽고 딱하다는 듯이 한스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런 이한성의 시선에 왜 그런 눈으로 쳐다보냐는 듯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던 한스였지만, 그랬던 그의 의문은 바로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 덕에 곧바로 해소될 수 있었다.
“그것 참 이상하네~ 새로운 세입자가 내 집에 들어올 예정이라는데, 왜 난 금시초문이지?”
“…!!”
싸늘하게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한스 마이어는 삐그덕거리는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그곳에는 한스가 이사하게 될 집의 집주인인 화연이 싸늘하기 그지없는 미소와 함께 서있었다.
“서, 설마… 집주인이라는게…”
“ㅎㅎ.”
한스의 물음에 화연은 전혀 웃고있는 것 같지 않은 미소로 대답하였다. 그러자 그렇게 대답한 그녀는, 이윽고 한스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는 금방이라도 고압전류를 흘려보낼 기세로 가득한 목소리와 함께 그의 귓가에다 말하였다.
“분명히 내가 잘못 들은게 아니라면 여자 하나 밖에 안사는 집에 남자가 기어들어가겠다는 소리처럼 들리는데, 내가 잘못 들은거겠지?”
“…에, 엘프. 일단은 진정 좀 하고 대화로…”
“대화?”
“…!!”
틀렸다. 또 고압전류로 지져지게 생겼다. 싸늘하기 그지 없는 화연의 얼굴을 보고는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은 한스 마이어는 이어서 전신을 감쌀 전기충격에 대비하여 눈을 바싹 감았다.
하지만 그가 예상했던 것과는 다르게 고압전류는 흐르지 않았다.
“…?”
평소 같았으면 진작에 온몸이 지져지고 볶아지고도 남았을 시간동안 본인이 멀쩡하게 앉아있다는 사실에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한 한스는 조용히 눈을 떠 화연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이에 그녀는 나지막히 한숨을 내쉬었고, 이내 나지막히 그의 어깨로 부터 손을 거두며 말했다.
“좋아. 지난번에 해영이와 아이들을 지켜줬던 걸 봐서 허락해 줄게.”
“그, 그 말은…?”
“둘이서 잘 해보라는거야.”
화연이 둘의 사이를 허락했다는 것은 장모로 부터 허락을 받은 것과 마찬가지. 그동안 이를 악 물고 둘 사이를 반대했던 그녀의 허락을 너무나도 쉽게 받아내버린 한스는 얼얼한 표정과 함께 멍하니 창 밖을 바라보았다.
‘감전사로 생을 마감하게 될 수도 있다는 각오까지 했건만…’
각오한 거에 비해 너무 쉽게 허락을 받아버려 긴장이 확 풀려버렸다. 그렇게 소파 위에 축 늘어져버린 한스는 아직도 실감이 안난다는 듯이 저 먼 곳을 바라보며 멍을 때렸다.
…짜식, 동거 하나 하게 된 것 가지고는 넋이 나갔구만.
이한성은 그런 한스를 바라보며 이제 막 남녀관계의 초보단계를 떼려는 그를 향해 가소롭다는 듯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우으응… 다들 거실에서 모하고 있써어…?”
“시끄러워어…”
그렇게 막 다시 주변에 잠잠해지던 그 순간, 방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수정이와 세리가 잔뜩 졸린 얼굴로 하품을 하며 거실로 나왔다.
아무래도 자다가 거실이 소란스러운 걸 느끼고는 잠에서 깬 모양이었다. 그렇게 이른 아침부터 반쯤 감긴 눈으로 비몽사몽한 걸음과 함께 소파로 다가와 옆에 꼭 앉는 두 아이의 모습을 본 이한성은 퍽 귀엽기 그지 없는 수정이와 세리를 눈에 담으며 별 것 아니라는 듯이 말해주었다.
“너네 삼촌이 이사한다길래 잠깐 얘기 좀 하고 있었지.”
“우응… 그러쿠나…”
“난 또 뭐라구…”
정말로 별 것 아니였다는 이한성의 대답에 수정이와 세리는 김이 팍 새버렸다는 듯이 졸린 눈을 비비며 연달아 하품을 내뱉었다.
그리고는 5초간의 딜레이 후에 눈을 휘동그랗게 뜨며 경악어린 표정을 지었다.
“삼촌 쫒겨나???”
“돈 없어서 쫒겨나는거야???”
“그런 거 아니야 이것들아…”
이사간다는 얘기를 쫒겨난다는 얘기로 잘못 알아들은 아이들의 반응에 이한성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이마를 탁 치며 그렇게 대답했다.
“그러면 왜 이사가는건데??”
“해영이랑 같이 살고싶댄다.”
“!! 그럼 삼촌 이모랑 결혼하는고야???”
“아니;; 거기까지 간 건 아니고.”
갑자기 너무 나간 수정이의 말에 이한성은 재빠르게 정정하며 아이들을 진정시켰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째 아이들의 반응은 영 반가운 기색이 아니었다. 아무래도 한스가 집을 나가는 것이 서운해서…
“치이… 삼촌이 없어지면 심심할텐데에…”
“앞으로 가지고 놀 사람이 없어진단 말야…”
…는 아닌 모양이고 그냥 샌드백 역할을 해주는 사람이 없어져서 아쉬운 것 뿐인 듯 했다.
‘저 악마같은 꼬맹이들 같으니라고… 그나마 정이 좀 들었나 했더니만 사람을 장난감 취급했던 것 뿐이었나.’
해도해도 너무한 아이들의 반응에 한스는 이 집에 정나미가 뚝 떨어지는 것을 느끼고는 해영이와 동거하기로 결정한 것이 매우 잘한 선택이었다는 것을 다시금 실감하였다.
“하는 수 없찌. 앞으로는 아빠한테 놀아달라고 해야지.”
“아빤 별론데…”
“….”
아쉽다는 듯이 중얼거리는 아이들의 대화를 들은 이한성은 순간 온몸에 소름이 끼치는 것을 느끼고는 본인이 샌드백 신세가 되는 미래를 엿보고 말았다.
“아니… 이놈들아, 쟤랑 다르게 난 툭 치면 억 하고 죽어버리는 개복치거든…? 니들 설마 내가 막 얼려지고 태워지고도 멀쩡히 살아있을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 아니야??”
혹시나 해서 해본 이한성의 물음에 수정이와 세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렇게 되물었다. 그러자 이에 이한성은 발끈하며 버럭 외쳤다.
“당연히 아니지!! 난 인간이라고 인간!!”
“아 그러쿠나.”
이한성의 외침에 깜빡하고 있었다는 듯이 손뼉을 치며 이해한 수정이와 세리. 따지고 보면 한스도 이한성과 같은 인간인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아이들에게 있어 한스는 인간이라기 보다는 샌드백이였기에 논외였다.
“치이, 그럼 소원 하나 들어주면은 봐줄께.”
수정이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짜고짜 봐준다는 말과 함께 제안을 건네왔다.
“…소원?”
수정이의 말에 이한성을 비롯한 그 자리에 있던 모두는 갑자게 웬 소원이냐는 듯이 수정이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이에 수정이는 보란듯이 어깨에 힘을 팍 주더니, 무슨 중대사항이라도 발표하는 것 마냥 거창하게 오바를 떨며 뜸을 들이기 시작했다.
“후후후, 내 소원은 말이지이~”
“….”
…뭔가 불길한 예감밖에 안드는데.
그동안 수정이가 소원이랍시고 말했던 것들 중에서 정상적인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수많은 경험으로 비롯에 데여봤던 이한성은 그저 불길하다는 생각과 함께 이어지는 수정이의 소원에 귀를 기울였다.
“-아빠랑 엄마랑 결혼식 하는 걸 사진으로 찍는거야!!”
“….”
“….”
참으로도 뜬끔없는 소원이었다. 갑자기 엄마와 아빠의 결혼식을 보고 싶다니 세상에 그런 소원을 비는 딸아이가 어디 있을까.
이한성과 화연은 생각치도 못한 소원을 고백한 수정이를 멍하니 바라보곤 잠시 서로 시선을 마주보았다.
“…갑자기 결혼식은 왜?”
“그야 결혼식에 가면 맛있는 걸 이~만큼 먹을 수 있다고 하나가 그랬거든~!”
지극히도 수정이 다운 이유였다. 다른 것도 아니고 결혼식장 뷔페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부모님의 결혼식을 보고싶다고 하는 수정이의 소원에 이한성과 화연은 그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모, 모야! 갑자기 왜 웃어~?!”
“아니, 그냥 너무 수정이 너다운 이유라서 말이야.”
…그래. 이 아이는 처음부터 줄곧 이런 아이였지.
늘 언제나 한결같았던 아이. 조금 바보같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조금 특별한 아이.
제대로 된 가족하나 없이 살아왔던 내게 찾아왔던 내 인생 처음으로 가져본 가족.
그런 못말리지만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가족인 저 아이의 소원 하나, 못 들어줄 것이 무엇이랴.
미소를 떼지 못한 채 이한성은 화연과 함께 서로 말없이 시선을 주고 받았다. 그리고는 이내 화목한 웃음을 입가에 머금은 채로 딸아이의 소원에 대한 답을 말해주었다.
“좋아. 그깟 결혼식, 이참에 해버리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