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Part-Timer Raises a Half-Elf RAW novel - Chapter (25)
알바생이 하프 엘프를 키우는 법-25화(25/245)
25
“어우, 진 빠져…”
대형마트 앞의 버스 정류장에서, 이한성의 기진맥진한 목소리가 힘없이 울려 퍼졌다.
아까 마트 안에서 수정이가 계란 한판을 전부 학살한 탓에 직원들에게 허리가 굽어져라 사과하랴, 미안한 마음에 또 닦는 것도 도와주랴, 거기에다가 계란 두 판 가격을 내랴, 덕분에 지금 이한성의 몸과 마음은 절전모드에 들어간 상태였다.
“괜찮으세요?”
“아, 예 뭐… 이런 일이 한 두 번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해영이 걱정스러운 말투로 안부를 묻자, 이한성은 이 정도는 별 것 아니라는 듯이 그렇게 대답했다.
수정이가 집에서 마법인지 초능력인지 모를 능력을 써대며 난장판을 만들어내는 것에 비하면 이정도는 아주 귀여운 수준이다.
이한성은 그렇게 어느 샌가 단련된 자신의 멘탈을 참 대견하다고 여기며 아까 마트에서 산 아기끈으로 자신의 가슴팍에 매달린 수정이를 내려다보았다.
‘역시 귀여운 애기는 자는 애기뿐이라는 말이 틀린 소리가 아니라니까.’
이렇게 자고 있을 때는 나름 귀엽고 사랑스럽게 보인다지만 정작 깨어나서 깽판을 치는 모습을 보면 그런 생각이 싹 사라진다.
“제발 집에 돌아갈 때 까지는 푹 자라.”
이한성이 곤히 자고 있는 수정이를 바라보며 간절히 당부했다. 그러자 그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고 있던 화연은 이내 옅은 미소를 지었고, 동시에 아기가 깨지 않을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이한성에게 말을 걸었다.
“육아 생활은 좀 어때요? 할 만 해요?”
“아뇨.”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대답이었다. 그렇게 화연의 질문에 즉답한 이한성은 지난날의 고생들을 하나 둘 씩 떠올리며 입으로 읊조리기 시작했다.
“치우고 먹이고 재우고, 또 치우고 먹이고 재우고, 그러다가 또 놀아줘야 되고…”
육아란 건 도저히 인간이 할 짓이 아니다. 아무리 익숙해지고 능숙해졌다고 한들, 힘들다는 사실은 조금도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그래도, 그만 두겠다고 생각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도 뭐… 힘들다고 죽을 정도는 아니라서 말입니다.”
“그렇다면 참 다행이네요.”
이한성의 대답에 화연은 피식 웃으며 바람에 흩날리는 자신의 금발을 뒤로 쓸어 넘겼다. 그리고는 이내 차분하고도 나긋한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다.
“솔직히 전 이한성 씨가 이 아이를 키우겠다고 마음 먹을 거라곤 기대도 안했어요.”
“지금 저 욕하는 겁니까?”
“아뇨. 칭찬을 반어법으로 하고 있는 거예요.”
“그게 욕이잖아.”
자신을 욕하고 있다는 걸 굳이 뱅뱅 돌려서 말하는 화연에게 이한성은 그렇게 항의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의 항의를 무시 한 채 또 다른 질문을 건넸다.
“아이를 키우겠다고 마음먹은 이유가 뭐에요?”
“…그런 걸 알아서 뭐하려고 묻는 겁니까?”
“그냥요. 전에는 못 키운다고 딱 못을 박으셨던 분이 마음을 바꾸게 된 계기가 뭔지 궁금해서요.”
이 사람, 보면 볼수록 은근히 웃으면서 말로 딜을 넣는다니까?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항상 꼭 부드러운 목소리 밑에 깔린 감정을 보면 가시가 숨겨져 있다. 그런 화연의 면모를 어렴풋이 눈치 채고 있던 이한성은 이내 본심을 숨기며 대답을 대충 얼버무렸다.
“나중에 커서 나 좀 부양하라고 키우는 겁니다. 늙어서 고독사 하긴 싫거든요.”
“아… 하긴, 앞으로 50년만 지나도 늙어버리실 테니까 얼마 안 남았네요.”
50년이 얼마 안 남은 건가…? 반 백년이면 충분히 많이 남은 거 아냐?
시간이란 원래 돌이켜 보면 짧지만. 마주볼 때는 길게 느껴지는 법이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아직 20살 밖에 되지 않은 이한성에게는 50년 뒤 라고 해봤자 아직 찾아오지도 않은 머나먼 미래일 뿐인 것이다.
“아무튼, 뭐 충분히 이해 가요. 확실히 고독사를 생각하면 앞날이 좀 무섭긴 하죠. 미리 준비해둬서 나쁠 것도 없네요.”
화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충분히 이해 한다는 듯이 그렇게 말했다.
‘…이 인간, 대체 뭐지? 그냥 변명으로 한 말을 왜 진지하게 납득하고 난리야…?’
세상 그 누가 먼 훗날에 고독사 하는 것이 두렵다고 애를 데려다가 키우겠는가. 차라리 그냥 고독사 하고야 말지.
이한성은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리며 이상한 사람 보는 눈빛으로 화연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이내 둘의 대화를 엿듣고 있던 해영이 재빠르게 다가와 황당해하는 이한성에게 귀띔해주었다.
“이, 이 언니가 봉사활동을 워낙 많이 해서 저래요. 막 노인 분들 집에 방문하다가 고독사 하신 분들도 보고 그랬거든요.”
“아…”
그래서 납득한 거였어? 어쩐지 좀 이상하더라 싶더니만…
고독사한 사람들을 직접 본 적도 있다니, 그런 경험이 있다면 충분히 방금 전의 성의 없는 변명을 듣고도 납득할 만하다.
“저기 버스 온다.”
화연이 도로 반대편에서 다가오는 시내버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자 그녀의 말을 들은 이한성은 이내 짐을 챙기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혹시나 수정이가 깰라 조심스럽게 움직이며 버스가 정차하기를 기다렸다.
[치이이익-]시내버스의 드럼 브레이크가 작동하는 것과 동시에 바람이 빠지는 소리가 주변에 울려 퍼졌다.
“그럼 다들 알아서들 조심히 가십쇼. 전 먼저 갑니다.”
“짐 무거울텐데, 혼자서 괜찮겠어요?”
“충분하죠. 이래봬도 내세울게 몸뚱아리밖에 없는 몸이라.”
집도 없고 직장도 없는 신세인데 몸까지 못써먹으면 이 야박한 세상에서 진즉에 도태되었을 것이다, 라고 이한성은 씁쓰름한 생각을 되뇌이며 그렇게 해영의 걱정에 대답하였다.
“수고 하세요. 다음에 또 봬요.”
해영의 인사에 이어서 이번에는 화연이 짤막하게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이한성은 하영의 인사에 대답했을 때와는 달리 꽤나 퉁명스러운 말투와 목소리로 다소 성의 없는 대답을 내놓았다.
“아, 예.”
‘최근들어 알게 된 사실이지만, 역시 저 사람은 뭔가 사람을 찜찜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단 말이지…’
예전에 같은 알바생 동료였을 때는 그저 사람 좋고 성실한 대학생이라고만 생각했지만, 뭔가 알면 알 수록 점점 더 속을 모르겠는 사람이라는 게 확실하게 와닿는다.
‘뭐, 어차피 자주 만날 사이도 아니니까 신경 안 써도 되겠지.’
이전까지는 같은 편의점에서 일하는 사이라 마주칠 일이 잦았지만, 한 달 전 부터 알바를 그만 둔 백수 신세이니 오늘처럼 우연이 닿지 않는 이상에야 마주칠 일은 거의 제로에 가까울 것이다.
이한성은 그렇게 다시 마주칠 일은 아마 없을 것이라 장담하며 버스 위에 올라탔다.
그것이 얼마나 큰 착각인지 전혀 깨닫지 못한 채.
–––––—
이한성이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기 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버스를 한 두 번 정도 갈아타고 걷기를 45분. 그가 마트에서 집까지 도착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1시간 좀 안 되는 시간이었고, 아직 시간은 오후 5시 정도로 그렇게 늦게 돌아온 것도 아니었다.
다만, 그럼에도 이한성의 몰골은 야근 직후에 퇴근하는 직장인들의 좀비상과 다를 게 없었다.
“하필이면 오는 도중에 스킬이 풀리냐…”
[행동제한] 스킬로 수정이의 초능력 내지 마법을 막을 수 있는 시간은 단 1시간. 외출 할 때는 거의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는 그 효과가, 그만 길거리에서 풀려버리고 말았던 것이었다.‘다행히도 버스 안에서 스킬이 풀린 게 아니라서 망정이지. 만약 그랬다가는…’
만약 그랬었다가는 픽션에서만 존재했던 하프엘프의 실채가 SNS를 타고 세상 널리 퍼져나갔을 것이다. 그리고 일이 그 지경까지 갔었더라면 밤에 웬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이 집에 찾아올지도 모르는 법이고 말이다.
“하여간에… 너를 진짜 어떡하면 좋냐…”
“아부부?”
수정이를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어본 이한성이었지만, 역시나 그의 고뇌가 해맑은 수정이의 영혼에 닿는 일은 없었다.
“….빨리 이유식이나 만들어서 먹여야지.”
쓸데없이 한숨을 쉴 시간에 어서 이유식이나 만들어보자.
어지간히도 퀘스트의 내용에 들어가 있던 [추가보상] 이라는 것의 정체가 궁금했던 이한성은 당장 부엌으로 향해 싱크대에서 손을 깨끗이 씻고는 마트에서 조달해온 식재료들을 하나씩 선벌하기 시작했다.
“일단은 무난하게 사과 이유식부터 만들어볼까?”
필요한건 사과와 쌀가루, 그리고 물. 그렇게 필요한 세 가지의 재료들을 모은 이한성은 곧바로 사과를 씻어 과도로 껍질을 깎기 시작했고, 이내 적당한 크기로 잘게 잘라내 없는 믹서기 대신에 마트에서 산 싸구려 강판에다가 마구 갈아냈다..
‘이대로 잘게 간 사과를 냄비에다가 물이랑 쌀가루와 함께 넣고 끓이면…’
이유식을 만드는 건 성인 식사 한 끼를 만드는 것 보다 무척이나 간단했다. 그저 재료들을 냄비에 넣고 적당하게 끓이면 그만. 신경 써야 할 것이라고는 오직 넣은 재료들이 냄비 밑에 눌러붙지 않게 신경 쓰는 것 뿐.
“봐봐. x나 쉽잖아.”
수정이에게 먹일 이유식인 사과미음을 아무런 어려움도 없이 완성한 이한성이 살짝 잘난척이 들어간 말투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이렇게 쉬운데 뭐가 그리 어렵다고 난리였던 거야?’
화연이 그랬었다. 아기한테 이유식을 먹이는 건 상당히 어려운 일이라고. 하지만 직접 이유식을 만들어 본 이한성의 입장에서는 그녀가 했던 말은 전혀 와닿지 않았다.
“암튼, 빨리 먹이고 추가 보상인지 뭔지나 확인 해봐야지.”
이한성은 자신이 만든 이유식의 맛과 온도를 확인하고는 꽤나 자신감이 섞인 목소리를 내뱉었다.
이정도 맛이면 아마 클리어 랭크가 A, 못해도 B+는 될 것이다. 이한성은 그렇게 장담하며 갓 만든 이유식을 그릇에다가 담고는 거실에서 바닥을 기어 다니며 놀고 있던 수정이에게로 가져갔다.
“욘석아. 밥 먹을 시간이다.”
“아우?”
이한성이 작은 스푼으로 이유식을 조금 떠다가 수정이에게 내밀었다. 그러자 수정이는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며 한때 쌀과 사과였던 물렁거리는 무언가를 가만히 주시했고, 이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옳지~ 먹어 먹어. 분유보다 맛있는 거야.”
“아웁-”
수정이는 이한성이 건네준 사과미음을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스푼까지 먹을 기세로 입에 넣었다.
‘이것봐, 잘만 먹잖아.’
술술 이유식을 입에다 넣는 수정이의 모습에 이한성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퀘스트가 말하던 추가보상이 무엇일지 잔뜩 기대하기 시작했다.
“이왕 받는 거, 돈이나 쓸 만한 스킬이면 좋겠-”
“뷉!”
…뷉?
가끔 식당에서 음식을 먹다가 고기랑 착각해가지고 생강을 씹어서 허겁지겁 입 안의 내용물을 뱉을 때 들을 수 있는 아주 익숙한 소리에, 이한성은 천천히 수정이를 내려다보았다.
그러자 아니나 다를까, 입에 넣었던 사과미음을 아무렇지도 않게 뱉어내는 수정이의 모습이 이한성의 눈가에 비춰졌다.
“야야야 그거 뱉지 말고 먹어 먹어. 먹는 거야 먹는거.”
“붸에…”
“아니, 뱉지 말라니까?!”
잘만 먹을 것 같았는데 갑자기 왜 멀쩡한 음식을 뱉으려고 하는 것일까.
‘입에 안 맞아서 그러나?’
그럴 수도 있다. 성인인 이한성으로써는 아기들의 입맞이 어떤지 전혀 알지 못하니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하지만 수정이가 이유식을 뱉은 이유는 그게 아니었다.
그저 지금까지 태어나서 분유밖에 먹지 않았던 수정이에게 있어선 사과미음이 음식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뿐이었다.
외국 사람들이 산 낙지를 먹는 것으로 취급하지 않는 것처럼, 평생 동안 이유식이란 걸 아직 먹어보지 못한 아기 또한 마찬가지로 이유식을 먹는 것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물론 아이마다 달라서 어떤 아이는 이유식을 처음 줘도 잘만 먹기도 하지만, 애석하게도 수정이는 그런 쉬운 타입의 아이가 아니었다.
“붸뷋.”
“….그래, 내가 열심히 만든 걸 뱉겠다 이거지?”
하지만 그런 지식이 전혀 없는 이한성에게 있어서, 멀쩡한 이유식을 뱉는 수정이의 모습은 그저 반찬투정을 부리는 철부지 아이에 지나지 않았다.
“좋아. 한번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 이것아.”
기필코 이 사과미음을 먹이고야 말겠다. 수정이가 이유식을 뱉은 것에 자존심의 상처를 입어버린 이한성은 그렇게 다짐하며 마치 중세시대의 기사마냥 숟가락을 수정이에게 건네며 엄포 늘어놓았다.
그것이 프랑스와 영국의 100년 전쟁에 버금갈 정도로 피로한 싸움을 불러오리라고는 전혀 예측하지 못한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