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Part-Timer Raises a Half-Elf RAW novel - Chapter (27)
알바생이 하프 엘프를 키우는 법-27화(27/245)
27
[대마법사 엘레인의 영상석: 엘프들의 최고 원로원이자 세기의 대마법사인 엘레인의 기록이 저장된 영상석. 본래는 엘레인의 최후와 함께 파괴되었으나, 다시 복원되어 본모습을 되찾았다.] [영상석에 저장된 기록을 열람하시겠습니까?] [리커버리] 스킬 덕분에 영상석이 본래의 모습을 되찾은 것과 동시에, 메시지 창이 눈앞에 떠오르며 이한성의 눈길을 자극했다.“대마법사 엘레인의 영상석?”
그러니까 뭐 현대로 치자면 유명한 대학 교수의 기록이 담긴 USB 같은건가?
영상석이라는 이름으로 미루어 볼 때 아마 이건 판타지 세계의 USB 같은 물건이 맞을 것이다. 판타지에 관한 지식이 빈약한 이한성은 그리 짐작하며 왜 이런 걸 히든 보상으로 줬는지 무척이나 의아해 했다.
“차라리 마법 주문서나 줄 것이지…”
생긴게 아무리 예뻐봤자 스킬들을 익힐 수 있는 마법 주문서에 비견될 정도는 아니다. 기본적으로 실용주의인 이한성은 딱 봐도 실생활에는 전혀 쓸모가 없어 보이는 영상석의 외견에 실망을 금치 못하며 한탄을 내뱉었다.
“뭐, 일단은 안에 뭐가 기록되어 있는지 확인이나 해볼까.”
쓸모없는 것과는 별개로 확실히 이 안에 뭐가 기록되어있는지 궁금하긴 궁금하다.
“[Yes]”
달리 영상석이 위험해 보이지도 않았기에 이한성은 주저없이 [Yes] 버튼을 눌러 영상석을 사용하였다.
[영상석이 활성화됩니다.]짧막한 메시지가 나타난 것과 동시에 영상석에서 밝은 빛이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새어나온 빛은 이내 사방으로 퍼져나가며 주변을 집어삼켰다.
“윽…”
눈부셔 죽는 줄 알았네. 갑자기 왜 눈뽕을 지르고 난리야?
누가 갑자기 플래쉬를 눈앞에다가 터뜨리면 이런 기분일까. 생각보다 더러운 기분에 속으로 짜증을 가득 내던 이한성은 서서히 시야가 돌아오는 걸 느끼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누굴 찾는거지?”
“으아악?!?!”
갑작스럽게 바로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놀란 이한성이 목청 떨어져라 소리를 내질렀다.
“누구, 누구세요?!”
“나의 이름은 엘레인. 이 영상석을 남긴 장본인이지. 정확히는 영상석에 새겨진 그의 의지라고 해야겠지만.”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허름한 백발의 노인이 차분한 목소리로 이한성의 질문에 대답했다.
“아무래도 궁금한 게 산더미인 눈치로군. 그럴 수밖에. 자네는 아직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있으니.”
“…글쎄요. 딱히 알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만.”
“과연 그럴까? 항상 궁금해 하지 않았나. 저 아이는 무엇이고, 시스템은 또 무엇이며, 이 모든 것의 이유가 무엇인지.”
“…..”
저 노인의 말이 맞다. 확실히 여태껏 궁금하긴 했다.
어느날 갑작스럽게 나타난 아기와 날 도와주는 정체불명의 시스템. 이 모든 것에는 반드시 이유가 숨어있을 것이다.
“…그러면 어르신은 제 궁금증에 대답해 주실 수 있습니까?”
“물론이네. 물어보게나.”
노인이 어서 말해보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체 이 아이가 저한테 오게 된 이유가 뭡니까?”
이한성이 거실 바닥에서 이리저리 기어 다니던 수정이를 가리키며 물었다. 그러자 이에 노인은 점잖게 품속에서 나뭇가지로 만들어진 지팡이를 꺼내들고는 끝부분으로 바닥을 가볍게 내리쳤다.
[탁-]평범했던 원룸의 거실 풍경이 순식간에 푸르른 숲 속으로 바뀌었다.
“나의 종족, 엘프들은 자네가 살고 있는 세상과는 다른 차원에 존재하는 세계, 테라리움의 주민이었네. 우리는 자연과 함께 공존하며 오랜 세월동안 숲을 지키는 관리자였지.”
“다른 차원의 세계라니, 그게 무슨…”
“말 그대로일세. 자네들에게 있어서 저 아이와 나는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이방인이지.”
“….”
설마 하기는 했는데 진짜로 수정이가 이세계의 존재였다니. 이렇게 직접 말로 들으니까 상당히 충격적이다.
“우리 엘프들은 오랜 시간 동안 세상 전체에 뿌리를 내린 세계수, 이그드라실을 보호하며 지켜왔지. 세계수의 힘이 악용되지 않도록.”
숲의 끝자락에서 하늘을 관통한 것처럼 보일 정도로 거대한 나무가 이한성의 시야를 자극했다.
“하지만 그렇게 세계수를 대대로 지켜온 지 5000년이 되는 세월이 흘렀을 때, 세상에는 갑작스럽게 이변이 생겨났다네.”
푸르던 하늘에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사방에는 번개가 내리치기 시작했고, 검은 그림자들이 대지를 조금씩 침식해갔다.
“유래 없는 자연재해에, 인간과 고블린을 비롯한 모든 종족들이 큰 피해를 입었네. 하지만 세계수의 보호를 받은 엘프들은 무사할 수 있었지.”
파괴된 성곽과 자연 앞에서 무력하게 목숨을 잃은 수많은 종족들의 모습과, 그에 대비되게 마치 거대한 우산처럼 엘프들로 부터 번개와 폭풍우를 가로막는 거목이 이한성의 눈에 비춰졌다.
“이에 인간들은 우리 엘프들에게 비난의 화살을 쏟았지. 우리가 세계수를 건들여서 자연재해가 일어난 것이 아닌가, 라고.”
거대한 함성소리들이 엘프들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그들을 매도하기 시작했다.
“전쟁의 명분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네. 인간들과 피해를 입은 대다수의 종족들은 하나로 뭉쳐 엘프들의 터전을 침략하고 나의 동족들을 학살하기 시작했지.”
머스킷과 대포, 주변을 아득하게 메우는 연기 속에서 철의 군대는 엘프들을 짓밟았다.
“그들의 목적은 정복이나 복수가 아니었어. 그들이 원하는 것은 엘프들의 멸족이었지. 세계수의 힘은 엘프들을 전부 죽여서라도 얻을 가치가 충분했으니.”
“…맞서 싸우지 않은 겁니까?”
이한성이 의아하다는 눈초리로 대마법사에게 물었다. 그러자 대마법사의 잔재는 그런 그의 의문에 쓴웃음을 지었다.
“확실히 엘프들은 그 어느 종족들 보다 마법에 능하기는 하지. 하지만… 개개인의 강함은 군대 앞에서는 무력하다네.”
아무리 마법에 능하다 한들, 아무리 다른 종족보다 뛰어나다 한들 칼과 쏟아지는 화살비, 그리고 머스킷의 총탄에 목숨을 잃는 건 당연한 일이다.
“엘프들은 저항했으나 이길 수 없었지. 그래서… 나는 동족들의 운명이 이런 식으로 끝을 맞이하게 되는 것을 막기 위해 내 모든 시간들을 연구에 쏟았지. 어떻게든 방법이 있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으며.”
마법진을 그리고 지우기를 반복한게 무려 수천만번. 대마법사 엘레인은 동족들을 구원하기 위해 셀 수도 없을 정도의 마법 수식을 고치고 또 고쳐왔다.
“난 차원이동 마법을 개발하기 위해 내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네. 엘프들을 위한 새 터전을 찾아내기 위해 말이야.”
테라리움은 더 이상 엘프들을 환영하지 않았다. 그랬기에 살기 위해서라면, 그들은 그들의 터전을 떠나야만 했다.
“하지만 마법 수식을 완성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부족했어. 내가 만들어낸 반쪽짜리 차원 이동 마법은 성공률이 50%에 미치지도 않았고, 몸집이 작은 어린 아이들만을 보낼 수밖에 없었지.”
하지만 엘레인은 그런 미완성 마법으로 만족해야만 했었다. 시간은 그의 편이 아니었기에.
“그랬기에 우리는 어린 아이들만을 골라 다른 차원으로 이주시키기로 결정했지. 그것만이 유일한 희망이었으니…”
“…그래서 육아 보조 시스템까지 함께 만든 겁니까?”
“그렇다네. 부모의 곁을 떠나게 된 아이들에게는 보호자가 필요했으니 말이야.”
차원이동 마법을 통과할 수 있는 건 오로지 아이들 뿐. 부모들은 제 자식과 함께 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전쟁에서 살아남은 300명의 아이들. 우리는… 그렇게 아이들을 미지의 차원 너머로 떠나보냈지. 그중 절반 정도만이 살아남을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잠깐만요, 300명이나 보냈다고요?”
300명. 그중 절반만이 마법을 성공적으로 통과했다고 하더라도 150명이다. 그런데 한 두명 이면 모를까, 그렇게 많은 수의 아이들이 지구로 넘어오게 되었는데 왜 세상에는 그런 일들이 알려지지 않은 것일까.
“내가 말했잖나. 나의 마법은 미완성이었다고.”
일레인이 이한성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이 대답했다.
“차원이동 마법을 통과한 아이들이 각기 지구의 다른 지역, 그리고 다른 시간대에 떨어질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지.”
엘레인이 손짓하자 차원이동 마법을 거쳐서 지구에 도착하는데 성공한 148명의 아이들이 이한성의 눈앞에 비춰지기 시작했다.
극저온의 빙산 위에서 얼어 죽은 아이. 수십억년 전의 지구에 떨어져 공룡들의 먹이가 되어버린 아이. 마녀사냥이 한창이었던 중세시대에서 화형으로 목숨을 잃은 아이.
각기 지구의 다른 시간, 다른 공간에 떨어진 아이들이었지만 그 아이들에겐 전부 하나의 공통점이 존재했다.
그 누구도 살아남지 못했다는 공통점이.
“현재 생존이 확인된 아이는… 자네가 거둔 저 아이가 유일하네. 그 외의 아이들은 전부 잃어버렸다고 봐야겠지.”
“….”
결국 300명의 아이들 중에 무사히 살아남은 건 오직 이 아이 뿐이다. 암담하기 그지 없는 사실을 알게 된 이한성은 아무것도 모른 채 해맑게 웃고 있는 수정이를 바라보며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이미 나는 망령에 가까운 존재이지만… 이 죄 많은 늙은이의 부탁 하나만 들어주게. 부디 엘프들의 마지막 혈육인 이 아이가… 행복한 삶을 보낼 수 있게 해주게나.”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해 정해진 운명으로 부터 동족을 구하고자 했으나, 결국 단 하나의 목숨밖에 구하지 못한 대마법사가 죄책감이 짙은 목소리로 간절하게 말했다.
“…바라는 거 한번 많으시네. 이 박복한 세상에서 애를 행복하게 살게 해주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데.”
“내 이기적인 부탁이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네. 그래도 내 죄책감을 조금이라도 덜고 갈 수 있게 발린 말이라도 좋으니 부디-”
“그럴 필요 없습니다. 굳이 영감님이 부탁하지 않으셔도 키우겠다고 마음먹은 이상 될 수 있는데 까지는 알아서 잘 키울 테니까요.”
이한성이 엘레인의 말을 자르며 바닥을 기어 다니고 있던 수정이를 안아들었다.
“그러니까 영감님은 가셔야 할 곳으로 어서 가시죠. 진짜 망령이라도 되기 전에.”
“…고맙네.”
비록 투덜거리는 감이 없잖아 들어있던 말투였지만 이한성의 진심이 전해지기는 충분했다. 거짓 하나 느껴지지 않는 청년의 약조를 받은 애처로운 노인은 씁쓸하지만 안도하는 미소와 함께 뒤를 돌아 조용히 자연의 순리에 따르려고 했다.
“아차, 가기 전에 깜빡한 것이 하나 있군.”
“아 또 뭡니까.”
가실 거면 미련 없이 가시지, 저러다가 지박령이라도 되시는 게 아닐까 모르겠네.
“그러고 보니 아직 듣지 못했군. 자네의 이름이 뭔가?”
“이한성입니다.”
“그래… 그럼 이한성이여. 자네에게 세계수의 가호가 함께하기를.”
엘레인의 목소리가 점점 더 희미해지더니, 이내 모습과 함께 메아리치듯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영상석 또한 빛으로 흩어져버렸고, 그렇게 이한성은 다시 원룸의 거실로 돌아왔다.
“이제야 좀 조용해졌네.”
너무 많은 걸 한꺼번에 알게 되어서 그런지 정신이 하나도 없다.
“들었어? 니가 엘프들의 마지막 혈육이래.”
“아우아?”
수정이가 이한성의 품에 안긴 채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자 그 모습을 본 이한성은 피식 웃으며 수정이의 등을 부드럽게 토닥거렸다.
“그래도 뭐, 너무 신경 쓰진 마라. 니가 하프엘프든 고블린이든, 남들 부럽게 잘 살고 잘 먹으면 그걸로 된 거니까.”
그래. 이 아이가 누구이던 간에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아무리 이 아이가 엘프들의 마지막 혈육이라 한들 누가 뭐래도 이 아이의 이름은 이수정이고, 이수정의 삶을 살 테니까.
수정이의 똘망한 에메랄드 색 눈동자를 바라보며, 이한성은 그렇게 속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