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Part-Timer Raises a Half-Elf RAW novel - Chapter (29)
알바생이 하프 엘프를 키우는 법-29화(29/245)
29
정신이 몽롱하다. 몸은 찌뿌둥하고, 피곤함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비몽사몽이란게 딱 이런 느낌이다. 현실 같지만 현실 같지 않은 느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꿈이라고 단정지을 수도 없는 애매한 느낌.
“여기가 어디야…?”
그런 애매모호한 감각 속에서, 이한성은 나지막히 주위를 돌아보았다.
눈에 비춰진 것은 화려한 화이트 카펫이 깔려져 있는 교회 비슷한 분위기가 감도는 공간이었다.
순백의 꽃들과 순백의 식탁보로 장신된 테이블들. 수많은 사람들이 다들 정장 같은 단정된 복장을 한 채 테이블에 앉아 있었고, 이한성은 그런 화사한 공간의 끝자락에서 멀뚱히 서있었다.
“…결혼식장?”
드라마나 TV에서 가끔 본 적이 있는 공간. 실제로는 단 한 번도 참석해 본 적이 없는 공간을 마주한 이한성은 심히 당황하며 자신의 복장을 살펴보았다.
깔끔한 정장. 이것 또한 그가 한 번도 입어본 적이 없는 복장이다. 그동안 원룸 알바생인 그에게 양복을 맞출 돈 따윈 없었기에 그가 양복을 입어본 적이 없는 건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아, 이거 꿈이네.’
현실 자신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공간. 평생 독신주의로 살고자 다짐했던 자신이 이런 공간에 서있다는 건, 이 모든 게 허상이라는 뜻이다.
꿈속에서 꿈을 꾸고 있다는 걸 자각하는 걸 보통 자각몽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세간에서 알려진 자각몽과는 달리, 이한성은 본인의 의지대로 움직일 수도, 꿈 속 세상을 입맛대로 바꿀 수도 없었다.
“아무래도 내가 신랑인 것 같은데…”
근데 왜 이런 꿈을 꾸고 있는 거지?
자신의 복장과 화이트 카펫의 끝자락에 서있는 자신의 위치로 그리 짐작한 이한성은 영문을 모르겠는 이 꿈을 무척이나 황당하다고 생각하며 일단은 꿈에서 깰 때 까지 기다리기로 하였다.
‘뭐… 꿈이니까 아무래도 좋지. 이왕 이런 꿈을 꾸게 된거, 신부가 누구인지나 한번 좀 보자.’
사람의 꿈은 무의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진다고 했다. 그러니, 이한성의 꿈 속에서 등장하는 신부를 보면, 그가 무의식적으로 누구에게 마음을 품고 있는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생각과 함께 이한성은 자신도 누구인지 모르는 자신의 신부의 정체를 내심 궁금해 하며 이어지는 결혼식 사회자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 ––, ––- –—.”
“….뭐래는거야?”
뭐라뭐라 잔뜩 말하고 있는 것 같긴 한데 뭐라는 건지는 하나도 모르겠다.
‘아, 혹시 내가 보통 결혼식 사회자가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본 적이 없어서 그런건가?’
아까도 말했듯이 꿈은 기억과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진다. 그러니, 겪어보지 못한 결혼식을 겪고 있는 이한성의 꿈은 말 그대로 여기저기에 구멍이 송송 뚫려있는 엉성한 세계인 것이다.
“그럼, 신부 입장!”
뭐라고 말하고 있는지 하나도 모르겠던 사회자의 목소리가 마치 음소거를 해제한 듯이 갑작스럽게 뚜렷하게 들려왔다.
신부 입장? 원래 신랑이 먼저 입장하는거 아닌가…?
드라마에서 가끔가다 본 장면들을 떠올린 이한성은 분명 결혼식의 순서는 신랑 입장이 먼저였다는 사실을 기억해 내고는 의문을 품었다.
하지만 그것도 아주 잠시. 이한성은 이내 자신이 꿈속에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자각하며 의문을 떨쳐냈다.
꿈속이라서 순서가 뒤죽박죽인건가? 뭐… 그럴 수도 있지.
신경 쓰면 지는 거다. 꿈속에서 고증 같은 걸 따져봤자 시간낭비일 뿐이니. 그러니 그럴 시간에 신부 얼굴이나 봐 두기로 하자.
이한성은 그렇게 납득하며 언제부터인가 자신의 곁에 서있던 하얀 베일로 얼굴을 감춘 신부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순백의 웨딩 드레스를 걸치고 부케를 들고 있던 망상 속 결혼식의 이름 모를 신부는 고개를 들어 화사한 미소로 이한성을 올려다보았다.
달빛같은 은빛이 감도는 머리칼, 그리고 보석을 새겨놓은 듯한 에메랄드 색 눈동자.
신부의 모습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될 정도로 아름다웠다. 이한성은 그렇게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그러자 그런 이한성의 속마음을 들여다봤을까, 신부는 보석 같은 두 눈으로 자신보다 조금 키가 큰 이한성을 올려다보며 미소와 함께 조용히 입을 열었다.
“어서 가요 아빠. 저기 제 신랑이 기다리잖아요.”
“….아빠?”
아빠라니? 누가?
자신을 보고 아빠라고 부르는 신부의 말에 이한성은 무척이나 황당스러운 표정을 지어냈다.
“저기요, 제가 왜 당신 아빠입니까?”
“아빠도 참, 제 결혼식에서 까지 농담하면 어떡해요.”
“아니 그러니까 농담이 아니고 내가 왜 그쪽 아빠냐고. 내가 아직 20살인데 나한테 나랑 거의 동갑인 딸내미가 있을 리가 없잖아.”
“진심이에요 아빠? 아빠가 아직 20대라고 진심으로 생각하시는 거예요?”
“그럼 당연하지. 아직 탈모도 안왔는데 내가 20대라는 걸 의심하는거야?”
“…정신 차리세요 아빠.”
신부가 질린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정색했다. 그리고는 이내 손거울을 꺼내 M자로 머리숱이 다 말라 비틀어져버린 이한성의 머리를 본인에게 보여주었다.
“아빠 머리는 이미 탈모 때문에 머리카락 농사가 흉년이라구요.”
––––––
“흐아아악!!!?!?”
날이 훤한 이른 점심부터, 이한성의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온 집안에 울려 퍼졌다.
방금 막 꿈에서 깬 이한성이 비명을 지른 이유는 지극히도 간단했다.
“방금 그건 대체 무슨 개꿈이냐…?”
아주 끔찍한 꿈이었다. 갑자기 왠 자신을 딸이라 부르는 여자의 결혼식에 신부 아빠로 참석하게 되질 않나, 멀쩡했던 머리숱이 죄다 빠져버리질 않나.
아직도 생생한 꿈속의 내용을 떠올린 이한성은 불현듯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더듬었다.
“…그럼 그렇지. 내가 탈모일리가 없지.”
순간 혹시나 진짜로 탈모가 온 건 아닐까 하고 쫄려서 죽는 줄 알았다.
“내 두피에 뿌리를 내려주고 있어서 참 고맙다 머리카락들아…”
꿈 속에서 M자 탈모가 와버린 자신의 모습이 어지간히도 충격적이었던 이한성은 아직 건재한 자신의 머리카락들에게 끝없는 감사를 표하며 핸드폰의 시간을 확인하였다.
“벌써 11시 반이네.”
아무래도 악몽 때문에 늦잠을 자버린 모양이다.
이한성은 아침을 못 먹어서 지금쯤 잔뜩 울고불고 난리가 났을 수정이의 모습을 상상하며 조용히 소파에서 일어났다.
[달그락-]“?”
접시가 부딪치는 소리. 그리고 누군가가 게걸스럽게 음식을 쩝쩝거리고 있는 소리.
평상시의 집에서는 들려오지 말아야 할 소리가 부엌으로 부터 들려오고 있었다.
“…누구지?”
지금 이 시간에 집에 있는 건 이한성과 수정이 단 둘 뿐이다. 하지만 이한성 본인은 현재 소파에서 막 일어난 참이고, 아직 어린 수정이는 저렇게 음식을 쩝쩝거리면서 먹을 수가 없다.
‘혹시 빈집털이범…?!’
결코 웃어넘길 수 없는 가능성이 이한성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이 낡은 건물의 원룸은 구시대적인 이중 잠금장치 밖에 없는 보안이 허술한 공간이다. 가끔가다 키를 잊어버렸을 때도 손잡이를 살짝 들어 올리고 힘을 주변 현관문이 아주 쉽게 열릴 정도이니 말이다.
‘어떡하지…? 경찰에 신고해야 하나? 아니면 그냥 때려 잡을까?’
전자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후자는 본인만 손해를 볼 가능성이 매우 높다.
‘괜히 때려잡았다가는 나만 폭행죄로 입건되는 거 아냐? 미치겠네 진짜…’
싸움에는 충분히 자신이 있음에도 빈집털이범 하나 속 시원하게 때려잡을 수 없는 대한민국의 현실에, 이한성은 하는 수 없이 소리의 근원이 정확히 무엇인지 확인하기 위해 조심스럽게 부엌에 다가갔다.
경계심과 함께 한걸음, 그리고 두 걸음. 최대한 발소리를 억제하며 부엌까지 다가간 이한성은 이내 경악을 금할 수가 없었다.
“이, 이게 대체 무슨…”
난장판이 되어버린 부엌, 그리고 그런 아수라장 한가운데에서 사놓고 깜빡 잊은 채 냉장고에 방치해 두었던 차디 찬 햄버거를 입에 물고 있는 사람의 그림자.
“응?”
이한성의 기척에 반응한 불청객이 고개를 홱 돌리며 그와 눈을 마주쳤다.
은빛이 맴도는 단발머리, 그리고 또롱또롱한 에메랄드 색 눈동자. 거기에다가 몸에 걸치고 있는 소매가 길쭉하고 사이즈가 안 맞는 티셔츠.
불청객의 정체는 빈집털이범도, 집안을 돌아다니는 쥐도 아니었다.
그저 어린 소녀였다.
“아빠!”
?????
게임하다가 어이없는 일을 겪을 때 나올 법한 수많은 물음표가 이한성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아빠. 아버지. 대드. 파더. 아들 혹은 딸이 남자 부모님을 부르는 호칭으로 자신을 부르는 소녀의 모습에, 이한성은 바보 같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누구세요?”
“누구? 나 수정이!”
“네???”
????????
이한성의 뇌가 작동을 정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사람의 뇌는 그리 쉽게 정지하는 물건이 아니었다.
‘진정해 이한성. 차분하게 상황을 정리해 보는 거야. 우선 지금 상황이 어떻지?’
웬 5살짜리 정도 되는 생판 남인 여자애가 자신이 수정이라고 말하며 실실 웃고 있는 중이다.
소녀의 인상착의는 은빛 머리카락에 녹색 눈동자. 확실히 수정이와 똑같은 색깔이다. 하지만…
“수정이는 이제 막 이유식을 뗐는데…?”
…하지만 이 아이는 지금 햄버거를 아주 맛나게 쩝쩝거리면서 먹고 있다.
뭐지? 대체 뭐지? 지금 설마 어제만 해도 쥐방울만하던 애가 하루아침에 요렇게 컸다는 건가?
이한성은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는 눈으로 자신을 수정이라 칭하는 소녀에게 [의심병자의 눈]을 사용했다.
[이름: 이수정] [나이: 생후 3개월] [신체나이: 5살] [종족: 하프엘프]“진짜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