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Part-Timer Raises a Half-Elf RAW novel - Chapter (30)
알바생이 하프 엘프를 키우는 법-30화(30/245)
30
[이름: 이수정] [나이: 생후 3개월] [신체나이: 5살] [종족: 하프엘프]이한성이 [의심병자의 눈]을 사용함과 동시에, 눈앞에 서있는 소녀의 스탯창이 그의 눈가에 들어왔다.
“진짜네.”
시스템은 눈앞의 저 아이가 틀림없는 이수정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한성이 알고 있는 한, 시스템은 거짓말을 하는 경우가 없다.
“그러니까… 니가 이수정이라고?”
“응!”
“어… 그렇구나. 그래.”
그렇구나는 개뿔. 아직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는데.
“혹시 밤새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해…?”
“밤새?”
“그러니까… 언제부터 그렇게 훅 커져버린 건지 기억하냐고.”
“응… 몰라!”
수정이가 매우 해맑은 미소로 당당하게 외쳤다. 그러자 잠시 그런 모습을 귀엽다고 생각하며 넘어갈 뻔한 이한성이었지만, 그는 빠르게 정신을 차리고는 5살짜리 애한테 항의했다.
“아니, 모르면 안 되지. 니가 모르면 누가 알아.”
“아빠가?”
“나도 모르겠으니까 물어보는 거 아냐 이것아.”
“왜 모르는데?”
“왜냐면 나도 모르니까!”
왜 서로 한국말로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말이 안 통하는 것 같을까.
이래서는 수정이가 아기였을 때와 별 다를 것이 없다. 이한성은 그렇게 답답한 마음을 뒤로 한 채 대화의 주제를 바꿔보았다.
“좋아. 일단 너도 모르고 나도 모른다고 치자. 근데 부엌은 왜 이렇게 된 건데?”
“배고파서!”
“아, 내 탓이구나.”
늦잠 자느라 밥을 안줘서 직접 먹을 걸 찾으려고 부엌을 헤집어 다닌 모양이다.
“그럼 그 옷은?”
“추워서 저~기 있는 거 입었어!”
수정이가 옷장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아마 몸이 갑자기 성장한 바람에 입을 옷이 없어서 옷장에서 아무거나 꺼내 걸쳤으리라. 이한성은 그리 짐작하며 나지막히 한숨을 내쉬었다.
“대체 어쩌다가 이렇게 된거야…”
이 상황에서 수정이가 갑자기 5살로 훌쩍 성장해버린 이유를 생각해봤자 짐작 가는 건 별로 없다.
‘스킬이 애한테 영향을 미친 건가? 하지만 성장의 축복은 성장을 가속시키는 거지, 무슨 디x몬 진화시키듯이 성장을 스킵하는 게 아니잖아.’
[성장의 축복] 만으로 수정이를 하루 아침만에 저렇게 성장시키는 건 불가능하다. 지난 몇 주 동안 스킬의 효과를 직접 지켜봐왔던 이한성은 분명 무슨 다른 요인이 있었을 것이라고 의심하며 잠에서 깬지 얼마 안 된 머리를 풀가동 시켰다.“잠깐만, 혹시… 세계수의 이슬 때문인가…?”
그러고 보니까 어제 사용할 때 시스템이 경고했었지. 정확히 뭐라고 경고했었더라?
이한성은 차분히 어제의 기억을 더듬었다.
[세계수의 이슬을 사용할 경우 아이에게 걸려있는 스킬의 효과가 덮어씌워질 수 있습니다. 정말로 사용하시겠습니까?]“설마 효과가 덮어씌워진다는 게… 이런 거야?”
만약 효과가 덮어씌워진다는 것이 기존에 걸려있던 스킬의 효과를 없애버리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효과에 효과를 더하는 식으로 덮어씌워버린다는 것이라면?
대상의 성장을 가속시키는 [성장의 축복], 그리고 대상을 회복시키는 것과 더불어 Hp와 Mp의 상한치를 상승시켜주는 [세계수의 이슬]. 이 두 가지가 합쳐져서 기존에 성장을 가속시키는 것에 불과했던 스킬의 효과가 성장을 한 번에 촉진시키게 된 것이라면 얼추 이해가 된다.
“…젠장. 경고를 그딴식으로 애매하게 하니까 사람 헷갈리잖아.”
자고로 경고는 간결하고 이유가 정확해야 하는 법이다. 하지만 어제 시스템이 이한성에게 했던 경고는 그냥 보면 경고라고 생각하기도 힘들 정도로 뭐가 위험한지에 대한 내용이 정확하게 담겨져 있지 않았다.
‘이제와서 항의한들 뭐하리… 이미 엎어진 물인데.’
아무리 친절하지 못한 시스템에게 클레임을 걸어봤자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일은 없다. 그랬기에 이한성은 하는 수 없이 현 사태에 순응하기로 하며 수정이가 먹고 있던 반쯤 남은 빅mac 햄버거를 가로챘다.
“아앗?!”
“뺏어먹으려는 거 아니니까 기다려 봐. 데워서 줄게.”
냉장고 안에 들어가 있던 거라서 차가운데 이걸 대체 무슨 맛으로 먹고 있던 건지 원.
이 차디 찬 햄버거를 잘도 먹고 있던 수정이를 참 대단하다는 눈빛으로 바라보며, 이한성은 햄버거를 그대로 전자레인지에다 넣고 1분 정도 데웠다.
[전자레인지에 뎁힌 빅mac: 유명 패스트푸드 체인점의 간판 햄버거. 본래는 탁월한 맛을 지니고 있지만 냉장고에 방치되어 있다가 전자레인지로 데웠기에 원본의 맛이 퇴색되었다.] [맛: B-] [건강: D-] [양: C-]“자 여기. 살짝 뜨거울 수도 있으니까 조심해서 먹어라.”
“응!”
햄버거를 받기 무섭게, 수정이는 살짝 뜨거워진 햄버거를 후후 불어대며 아주 복스럽게 먹기 시작했다.
“맛있냐?”
“맛있써!”
아무래도 패스트푸드가 수정이의 입맛에 딱 맞은 모양이다. 도토리를 볼살 속에 주워담는 다람쥐 마냥, 볼살이 터질 정도로 입에다 햄버거를 잔뜩 집어넣은 수정이의 모습을 본 이한성은 피식 웃으며 난장판이 된 부엌을 묵묵히 정리하기 시작했다.
“아니, 근데 뭐 이렇게 어질러놓은 게 많냐.”
정리할게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냄비 뚜껑부터 시작해서 각종 젓가락과 숟가락, 그리고 냉장고에서 튀어나온 게 분명한 케찹과 칠리소스, 그리고 각종 음료수 캔들.
대체 부엌에서 뭘 했었길래 이 난장판이 생겨난 것일까.
‘이걸 어느 세월에 다 치우지…?’
막상 치우려고 하니까 눈앞이 막막하다. 과장을 보태서 어림잡아도 반나절은 걸릴 것만 같은 부엌의 참상에 이한성은 무슨 다른 좋은 방법이 없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아, 잠깐만. 그게 있었지?”
뭐든지 말끔하게 고쳐주는 만능의 가사 도우미 스킬이 있지 않는가.
[리커버리]. 시간을 되돌려 망가진 물건을 고칠 수 있는 스킬. 만약 이 스킬을 하나의 물건에 사용하는 것이 아닌, 부엌이라는 공간 전체에다가 사용하면 되지 않을까.이론적으로 생각해 봤을 때 얼추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다. 그렇게 생각한 이한성은 시도해봐서 밑질 것도 없다며 바로 시험해보기로 했다.
“[리커버리].”
부엌의 공기가 한순간 무거워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난장판이었던 부엌의 물건들은 시간이 역행함에 따라 동영상을 역재생 하듯이 하나 둘 씩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와 대박.”
바닥에 쏟아진 소금들이 마법처럼 봉투 안으로 쏙 들어가고, 이곳저곳에 묻어 있던 케찹들은 마치 이 공간이 우주정거장인 것 마냥 공중 사이를 가로지르며 케찹통 안으로 되돌아간다.
말 그대로 영화 속에서만 볼 수 있는 장면. 이미 [리커버리]의 효과를 직접 눈으로 확인해 보았던 이한성이었지만 그는 여전히 이 믿기지 않는 광경에 놀라움을 자아낼 수 밖에 없었다.
‘이 스킬, 진짜 대박이라니까. 앞으로는 애가 집에다 무슨 짓을 하든 이 스킬 하나만 있으면 그냥 확…’
감탄이 절로 나오던 이한성의 속마음이 일순간 끊겨버렸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 까지 스킬에 의해 원래대로 돌아가버렸기 때문이었다.
수정이의 손에 들려져 있던 햄버거의 시간이 역행하며 포장지로 감싸진 채 차디 찬 냉장고 속으로 돌아가버렸다.
“앗.”
“….”
아무래도 부엌 전체의 시간을 되돌린다는 것이 햄버거의 시간 까지도 되돌려버린 모양이다. 이한성은 그렇게 눈앞의 사태를 빠르게 파악하며 방금 전 까지만 해도 햄버거를 손에 먹음직스럽게 쥐고 있던 수정이가 허망하게 손을 쥐락펴락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내 햄버거가 주거버려써…”
저게 어딜 봐서 5살짜리 애가 지을 법한 표정인가. 저건 흡사 수능을 망쳐버린 고3의 표정이 아닌가.
저 나이에 지어선 안 될 표정을 짓고 있는 수정이의 모습을 본 이한성은 재빠르게 냉장고의 문을 다시 열어 햄버거를 꺼냈다.
“우으으…”
“야야, 죽긴 뭐가 죽어. 아직 안 죽었어. 햄버거 여기 있으니까 울지 마.”
이한성이 햄버거의 포장지를 벗기고는 곧바로 수정이에게 건내주었다. 그러자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았던 수정이는 이내 그 허망했던 표정은 온데간데 없이 활짝 웃으며 다시 차가워져버린 햄버거를 맛있게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뭐, 맛있어 하면 됐지.”
원래 전자레인지에 돌려서 먹는게 더 맛있지만 본인이 차가운 것도 괜찮다는데, 굳이 말릴 이유는 없다.
그렇게 이한성은 저도 모르게 올라간 입꼬리와 함께 복스럽게 햄버거를 먹어치우는 수정이를 바라보며 잠시 식탁에 앉아 숨을 돌렸다.
‘그나저나 뭔가를 잊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드는데…’
간혹 그럴 때가 있다. 이제 막 쉴 시간이 생겨서 휴식을 만끽하려고 하는데 이상하게도 좀처럼 불안감이 사라지지 않는 순간이.
뭔가를 잊어버린 것 같지만 잊어버린게 무엇인지는 모르겠고, 그렇다고 또 그걸 떠올리자니 아까운 휴식시간을 낭비하는 것 같아서 귀찮고. 그러다가 결국 무시하고, 나중에 떠올리고 나서야 후회하게 되는 패턴.
지금이 딱 그런 순간이라고, 이한성의 예감은 그렇게 경고를 보내왔다.
[띵동-]좀처럼 기시감이 떠나가시질 않던 그 순간, 갑작스럽게 현관문의 초인종 소리가 이한성의 신경을 곤두세웠다.
“아, 맞다.”
오늘 점심에 약속이 있었지.
수정이의 출생신고를 하기 위해 오늘 점심 12시에 집으로 찾아오기로 했던 최민석 상담사의 방문. 어젯밤의 악몽도 그렇고 오늘 아침의 말도 안되는 판타지가 겹쳐지는 바람에 깜빡 잊고 있었다.
‘…아직 씻지도 않았는데.’
아침에 일어나서 씻을 시간 따위는 없었다. 그 탓에 현재 이한성의 몰골은 까치집을 머리 위에 얹고 있는 백수 그 자체였고, 이제와서 빠르게 머리를 정리할 시간 따윈 그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에라이 모르겠다. 어차피 중년 아저씨랑 만나는건데 외모에 굳이 신경쓰지 않아도 되겠지.
남의 앞에 이런 몰골로 서는 건 좀 부담스럽지만 상대가 친숙한 동네 아저씨 분위기의 상담사라면 그나마 괜찮다. 이성 앞에서 이런 몰골이면 모를까, 기본적으로 남자들은 상대방의 외견에 대해 그나마 관대한 편이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과 함께 이한성은 식탁에서 일어나 현관으로 향했고, 잠겨있던 낡은 현관문을 열어 손님을 맞이했다.
“죄송합니다 최 상담사 님, 제가 이제 막 일어나가지고 아직 못…”
문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손님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 그 순간, 이한성의 표정은 마치 유럽인들과 난생 처음으로 접촉했던 과거의 아메리카 원주민 마냥 놀라움과 경악으로 물들었다.
왜냐하면 문 앞에 서있던 건 최민석 상담사가 아닌, 화연이었기 때문이다.
“좋은 아침이에요.”
[쾅!]화연이 웃으며 인사하기 무섭게, 이한성은 현관문을 도로 닫았다.
“….잘못 본거겠지?”
암, 그렇고 말고. 저 사람이 내 집 앞에 서있을리가 없지.
아무래도 꿈자리도 사납고 아침에 겪은 소동 때문에 피곤해서 헛것을 본 모양이다. 이한성은 그렇게 방금 전 보았던 사람의 존재를 부정하며 조용히 핸드폰을 꺼내 최민석 상담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저기, 최 상담사 님. 이한성입니다만, 여쭤봐야 할게 생겨서 전화 드렸습니다.”
“그… 12시가 거의 다 됐는데 아직 안오신거 맞죠?”
[아이쿠야, 죄송합니다. 제가 바빠서 정신이 없다 보니 오늘 만나는 건 힘들다고 말씀드리는 걸 깜빡했군요.]그럼 그렇지.
최민석 상담사의 말에 이한성은 역시 방금 전 문 앞에서 보았던 화연의 모습은 헛것인게 틀림없다고 치부하며 자신이 최민석 상담사를 화연으로 잘못 본게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했다.
“아~ 역시 그랬군요. 그럼 오늘 못 오시는 거-”
[그래서 제가 저 대신 이한성 씨를 도와주실 분을 보냈으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네?”
그게 누군데.
“도와주실 분이라니…”
[아마 지금쯤이면 이미 도착하셨을 텐데… 혹시 아직 안 오셨습니까?]“….”
침묵과 함께 이한성은 잠시 현관문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 순간 마치 그의 시선을 문 너머로 느끼기라도 한듯, 초인종 소리가 집 안에 울려 퍼졌다.
[띵동-]“…설마 그 도와주실 분이라는 게 금발에 벽안인 여성분은 아니죠?”
[아, 예. 그 분 맞습니다.]“….”
환장하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