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Part-Timer Raises a Half-Elf RAW novel - Chapter (31)
알바생이 하프 엘프를 키우는 법-31화(31/245)
31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요, 죽고자 하면 살 것이다.
한반도 최고의 명장이며 성웅이신 이순신 장군께서 남기신 희대의 명언이다.
압도적인 수적 열세에 땅을 기던 병사들의 사기를 불태우게 만들었던 명언. 훗날 역사에 길히 남을 명언으로 기록된 이 말은, 어쩌면 세상 모든일에 적용되는 진리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늘 무언가를 장담하면, 그게 반대의 형태로 들이닥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월드컵에서 우리나라가 16강 까지는 쉽게 진출할 거라 장담 했다가 예선전에서 처참하게 탈락한다던가, 혹은 사놓은 주식이 상승세를 보인다며 기대에 젖어 있다가 본전도 못 찾고 죄다 날려버린다거나 하는 일들이 그 사실을 증명한다.
그리고 보란듯이 오늘도, 이순신 장군 님의 명언은 또 맞아 떨어졌다.
“…이래서 막 장담하고 그러면 안된다니까.”
저번주에 마트에서 화연과 마주쳤을 때, 이한성은 장담했었다. 아마 자신이 그녀와 다시 마주치게 될 일은 한없이 0%에 가까울 것이라고.
그런 이한성의 장담은 철저히 논리에 따른 결과물이었다.
예전에는 알바 동료였다지만 이한성이 알바를 그만 둔 지금 그와 그녀의 관계는 철저한 타인. 사는 곳도 다르고, 서로의 생활권 범위도 알지 못하며, 마주치려고 작정하지 않는 이상에야 저번 같은 우연이 반복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게다가 이한성 본인은 화연과 마주치는 것을 꺼려하는 편이기에 그녀와 만나고 싶은 마음이 1도 없었고, 화연 또한 특별한 이유가 없는 이상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이한성은 그렇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한성은 한가지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다.
자신이 마주치길 꺼려한다고 해서, 화연도 그럴거란 보장은 없다는 사실을.
[띵동-띵동-]현관문의 초인종 소리가 연달아 울려퍼졌다. 이한성은 마치 재촉하듯 울려퍼지는 그 소리에, 하는 수 없이 싫다는 마음이 팍팍 드러나는 표정으로 현관문을 살짝 열었다.
“안녕하세요 이한성 씨.”
“…여긴 대체 왜 온 겁니까?”
“최 상담사 님한테 아직 얘기 못 들으셨어요?”
“들었습니다만, 이해가 안되서요.”
왜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서 댁이 대신 오는겁니까? 이왕 올거면 해영 씨나 보내지. 그쪽이 더 편하고 안심되는데.
이한성은 목구멍 끝까지 올라온 본심을 가까스로 집어삼켰다. 그러나 그런 그의 행동이 우습게, 화연은 그의 속마음을 뚫어보기라도 한 듯 묻지도 않은 질문에 대답했다.
“해영이는 출생신고 하는 법을 모르거든요.”
“…안 물어봤는데요.”
“그냥 얼굴에 속마음이 드러나시길래 대답 해 드린 거에요.”
이 사람은 이래서 싫다니까. 무슨 독심술이 있는 것도 아니고 사람 얼굴만 보고 본심을 어떻게 알아보냐고.
화연과 마주치고 싶지 않은 수많은 이유들 중 가장 유력한 이유를 들이대며, 이한성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현관문에 체인은 좀 풀어주시면 안될까요? 밖이 쌀쌀해서 잠깐 안에 신세 좀 지고 싶은데.”
“….”
확실히 오늘 날씨가 쌀쌀하긴 쌀쌀한 모양이다. 이렇게 문 틈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차게 느껴지는 걸 보니.
이한성이 화연을 꺼려하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굳이 집까지 찾아온 사람을 찬바람이 쌩쌩부는 문 밖에다가 방치할 정도로 미워하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한성에겐 화연을 집 안에 들일 수 없는 말 못할 사정이 있다.
“아웁, 쩝쩝-”
“….”
그건 바로 이한성이 현관문을 두고 화연과 대치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좋아라 햄버거를 먹어치우고 있는 어린 소녀의 존재 때문이다.
‘…쟤를 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하냐고.’
하루 아침에 유년기에서 성숙기로 진화해 버린 저 하프엘프의 존재를 무슨 수로 설명할 수 있겠는가.
지금까지 수정이의 비정상적으로 빠른 성장 속도는 시스템의 효과로 추측되는 인식개변 덕에 주변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고 비밀로 지켜올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게 하루아침에 5년이라는 세월을 훌쩍 뛰어넘은 경우에도 통할지는 의문이다. 어쩌면 시스템의 인식개변이 통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화연은 이미 얼마 전에 마트에서 마주쳤을 때 한번 위화감을 느낀 적이 있다. 그때는 그래도 위화감만으로 끝났지만, 만약 지금 수정이의 모습을 보게 된다면 분명히 눈치채고도 남을 것이다.
“뒤에 뭐 있어요?”
“네? 아뇨? 아무도 없는데요.”
“전 뭐가 있냐고 물었지, 누가 있냐고는 안 물어봤는데요.”
“아니, 그러니까 아무것도 없다고요.”
뒤늦게 말실수를 정정해보는 이한성이었지만 이럴 때만 쓸데없이 눈치가 빠른 화연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아무것도 없는데 왜 그래요? 궁금하게.”
화연이 문 틈 사이로 고개를 들이댔다. 그러자 이한성은 심히 당황하며 몸으로 그녀의 시야를 가렸다.
“아 쫌 비켜봐요. 아무것도 없다면서요.”
“아무것도 없긴 한데 내 프라이버시는 지켜야 할 것 아냐 이 사람아!”
“깐깐하게 그러기에요? 대체 집 안에 뭐가 있길래 그러는건데요?”
“이 사람이 진짜…! 혼자사는 남정네 집 안에 뭐가 있는지 알아서 뭐할려고?!”
이한성이 필사적으로 화연의 시야를 차단하며 등 뒤에서 햄버거를 먹고 있는 수정이의 존재를 감추려고 했다.
하지만 그런 그의 노력이 우습게, 벌써 햄버거를 다 먹어치워버린 수정이는 아까부터 현관에서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이한성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아빠, 거기서 뭐해?”
“아빠…? 아빠라니, 방금 그거 누구에요?”
들어본 적 없는 소녀의 목소리에 화연이 아까보다 더욱 격하게 호기심을 내비치기 시작했다.
“TV! TV에서 나오는 소립니다!”
순 거짓말이다. 이한성의 집에 TV 따위의 고가치 물건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새빨간 이한성의 거짓말에, 뒤에서 두 남녀의 실랑이를 지켜보고 있던 수정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한성의 얄팍한 변명을 묵살시켰다.
“무슨 소리야 아빠. 우리 집에 그런거 없자나.”
“….”
“….”
순간 주위에 침묵이 맴돌기 시작했다. 이한성은 울컥해서 입을 다물었고, 화연은 갑자기 진동하는 짠내에 숙연한 표정으로 이한성을 바라보며 입을 다물었다.
….에라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지.
필사적으로 수정이를 감추려던 끝에, 결국 들켜버리고 만 이한성은 반쯤 자포자기 하며 자리를 비켰다.
이한성이 자리를 비키자 수정이와 화연은 서로 눈을 마주쳤다. 그러자 눈을 마주치기 무섭게 수정이는 재빠르게 이한성의 뒤로 숨어버렸고, 화연은 그런 수정이의 태도 때문인지, 아니면 모습 때문인지 모를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들킨건가?’
혹시나 모른다. 어쩌면 시스템의 인식개변 때문에 위화감을 느끼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거의 믿지도 않는 신에게 빌다 싶이 하며, 이한성은 긴장감에 심장이 미친듯이 뛰는 것을 느꼈다.
“…마지막까지 한번을 안 지셨네.”
“…?”
사뭇 아련한 감정에 젖은 화연의 목소리가 이한성의 귓가에 들려왔다.
한번을 안 졌다니, 그게 대체 무슨 소리일까.
무슨 말인지, 누구한테 하는 말인지도 모를 화연의 혼잣말에 이한성은 그녀를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것도 아주 잠시, 화연의 목소리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평상시로 되돌아왔다.
“아이 이름이 뭐였죠?”
아, 그러고 보니까 아직 이 사람 한테는 말 안했었나.
“이수정입니다.”
“수정이… 예쁜 이름이네요.”
화연이 옅은 미소와 함께 이름을 되뇌였다. 그리고는 이내 보육원 봉사자 답게 아이를 대하는 친숙한 목소리로 수정이에게 말을 걸었다.
“수정아 안녕?”
“….”
아무래도 타인에게는 아직 수줍은 모양인지 화연의 인사에도 불구하고 수정이는 이한성의 바짓자락을 꼬옥 붙잡은 채 경계심을 내비쳤다.
하지만 그런 아이의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화연은 전혀 개의치 않아하며 대화를 이어갔다.
“언니는 화연이라고 해.”
“하영…?”
“화연. 아직 너한테는 어려운 이름일지도 모르겠구나. 그냥 쉽게 연이 언니라고 불러줄래?”
“여니?”
“연이.”
“연이…”
확실히 애를 잘 다루긴 잘 다루는구만.
이한성이 순식간에 수정이에게 자신의 이름을 따라 부르게 한 화연을 바라보며 감탄했다.
‘그나저나 요게 진짜… 어제 내가 아빠라고 부르라고 별 짓을 다했을 땐 끝까지 입을 싹 씻더니만…’
결국에는 5살로 진화(?) 하고 나서야 날 아빠라고 불렀지. 하도 정신이 없다 보니까 별 감흥도 못 느꼈었네.
어째서인지 모를 질투심과 배신감에 이한성은 금새 친해지려고 하는 수정이와 화연을 슬쩍 째려보았다.
뭐, 어쨌든간에 안들킨 것 같으니까 다행인가…?
하루아침에 1살에서 5살이 된 수정이를 보고 분명 까무치며 기절하기라도 할 줄 알았는데, 그러기는 커녕 반응이 저렇게 평온하고 반가워보이니 아무래도 어찌저찌 넘어간 모양이다.
“연이!”
“그래. 연이 언니~ 라고 해봐.”
“연이야~!”
수정이가 언니라는 호칭을 생략하고 활짝 웃으며 화연의 애칭을 불렀다. 그러자 화연은 그런 해맑은 소녀의 표정에 언니라고 불리는 것을 가볍게 포기했고, 이내 이한성에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참 활발한 아이네요.”
“뭐… 애가 좀 시끄럽긴 하죠.”
“아이는 원래 시끄러워야 정상이에요. 조용하면 그게 더 문제죠.”
“….”
잠시 어렸을 적의 과거가 이한성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시끄러워야 정상, 인건가.’
발소리가 시끄럽다고, 쩝쩝거리는 소리가 시끄럽다고, 가만히 있는 것 조차 시끄럽다고 몸에 피멍이 들었던 적이 있었다.
이한성의 유년기는 그랬다. 시끄러운게 허용되지 않는 아이의 일상. 성인이 되어서도 그때의 습관은 여전히 그에게 남아있다.
“아빠~ 연이가 나 맛있는거 사준데써!”
“….”
하지만 그의 눈 앞에서 웃고있는 이 아이는 다르다. 순수하고, 시끄럽고, 때로는 울기도 하는, 그 나이의 또래와 다를 것이 없는 평범한 아이다.
“…그래. 정상이란 말이지.”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을 이제서야 깨우친 이한성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아빠?”
“아냐, 아무것도 아냐. 화연 씨가 밥 사준다고 했다고?”
“응! 나 햄버거 먹고시퍼!”
“야, 남이 밥 사준다는데 햄버거가 뭐냐 햄버거가. 그거 말고 더 맛있는 것도 많잖아.”
“햄버거 보다 마씼는게 있써?!”
“당연히 있지. 소고기도 있고, 삽겹살도 있고, 밖에 나가면 먹을 거 천진데.”
괜히 한국이 먹거리의 나라겠는가. 대한민국 만큼 다양한 먹거리 문화가 존재하는 나라는 또 없을 것이다.
이한성은 그렇게 반쯤 농담인 말을 내뱉으며 벌써부터 침을 흘리는 수정이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이내 둘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화연이 당혹스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저기요…? 이한성 씨?”
“아, 농담이니까 걱정 마시죠.”
당연히 진짜로 비싼 고기를 남에게 얻어먹을 생각은 없다. 공짜가 좋긴 좋지만 타인에게서 나오는 공짜는 나중에 암묵적으로 값아야 하는 빚이나 다름 없기 때문이다.
“아뇨, 그게 문제가 아니라…”
“?”
화연이 곤란하다는 목소리로 말끝을 흐렸다.
“…저, 아무래도 목이 문에 낀 것 같아요.”
“….”
머리를 집어넣을 땐 마음대로였지만, 뺄 때는 그러지 못하는 잠금체인의 길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