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Part-Timer Raises a Half-Elf RAW novel - Chapter (32)
알바생이 하프 엘프를 키우는 법-32화(3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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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쏴아아아-]“…개운하네.”
냉수로 빠르게 샤워를 끝마친 이한성이 수건으로 젖은 머리카락을 조심스레 털어내며 화장실에서 나왔다.
‘아침부터 이렇게 정신이 없어서야 원…’
사고가 터질 거면 한번에 하나씩 터지면 좋을 것을, 이런 식으로 동시다발로 터지면 스트레스 지수가 장난 아니게 상승하기 마련이다.
자고 일어났더니 난데없이 진화를 해버린 골칫덩이와, 예고도 없이 갑작스럽게 문 앞에 들이닥친 불청객 까지, 최근에 별에 별 일을 다 겪어온 이한성이었지만 오늘만큼 정신머리가 사나운 날은 또 없었다.
“아빠~! 이거 봐봐! 예쁘지?”
“응?”
화장실에서 나오기 무섭게 수정이가 어디서 났는지 모를 곰돌이 티셔츠를 뽐내며 자랑했다. 그런 귀엽기 그지 없는 딸내미의 모습에, 이한성은 입꼬리가 올라가려는 것을 가까스로 억제하며 부끄럼을 감추기 위해 일부러 퉁명스러운 말투를 내뱉었다.
“너 그 옷 어디서 난거야?”
“연이가 줬써!”
“화연 씨가?”
아니, 그 사람이 애들 옷을 가지고 있었다고?
여성들이 외출할 때 마다 항상 물티슈와 휴지, 그리고 간단한 화장품들을 챙긴다는 말은 들은 적이 있지만 애들 옷까지 챙긴다는 소리는 금시초문이다.
“보육원 애들이 하도 옷을 버리는 경우가 많아서 가지고 다니는게 습관이 됐거든요.”
“아.”
이제는 놀랍지도 않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내뱉지도 않은 속마음에 대답해주는 화연의 말에 이한성은 충분히 납득이 된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나갈 준비는 다 되신거죠?”
“네.”
화연의 물음에 이한성은 주머니 속에 챙겨둔 지갑을 확인하며 그렇게 짧막히 대답했다.
“그럼 슬슬 출발하죠. 출생신고 하러.”
“그러죠.”
벌써 거의 오후 1시가 다 됐다. 이왕 할거면 빠르게 끝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한성은 그렇게 생각하며 조용히 재킷을 몸에 걸쳤고, 딱 봐도 여름 옷차림을 하고 있는 수정이에게 여분의 코트를 입혀주었다.
“너 그렇게 나가면 얼어 죽으니까 이거 입어.”
“시러~! 난 더운거 시러!”
“사람이란게 원래 더울 땐 추운게 좋고, 추울 땐 더운걸 좋아하는 법이야. 나중에 춥다고 난리치지 말고 그냥 입어.”
“우응… 시른데.”
저항하던 수정이가 이한성의 설득에 마지못해 소매에다가 작은 팔을 쑥 집어넣었다.
‘…이러니까 꼭 롱코트를 입은 것 처럼 보이네.’
당연하지만 이한성의 재킷은 5살에 불과한 수정이에게는 너무 컸다. 하지만 그렇다고 당장 애들 사이즈에 맞는 재킷이 있던 것도 아니었기에, 이한성은 가는 길에 하나 사야겠다고 생각하며 현관을 나서려고 했다.
“잠깐만요 한성 씨.”
“왜요?”
“왜라니요, 설마 수정이를 맨발로 걷게 할 셈이에요?”
화연이 아기자기한 수정이의 뽀얀 발바닥을 가리키며 이한성을 황당하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아, 그러고 보니 신발도 없었네.’
없는 건 옷 뿐만이 아니었다. 옷 같은 건 사이즈가 안 맞는 옷이라도 어쩔 수 없이 입히면 그만이지만, 현대사회에서 인간이 이족보행을 하는데 필수적인 신발은 빼먹을래야 빼먹을 수가 없는 물건이다.
당장 이 쌀쌀한 가을 날의 콘크리트+아스팔트 바닥을 맨발로 걷는다고 생각해 보아라. 당연히 조금만 걸어도 발바닥이 얼어붙을 것이고, 그렇게 계속 맨발로 걷다 보면 발바닥에 물집이 터지고 온갖 박테리아들이 테크노 브레이크를 치고 난리도 아닐 것이다.
“아빠, 맨발로 나가면 안되는거야?”
“당연히 안되지. 나 경찰한테 잡히는거 보고싶냐?”
‘니가 맨발로 바깥을 활보한다면 사람들이 날 아동학대범으로 신고하고 난리도 아닐거란다.’
그 어떤 쓰레기 부모가 자식한테 신발도 안 신겨주고 외출을 시킨단 말인가. 상당한 쓰레기 부모였던 이한성의 아버지조차 신발까지 안 사줄 정도로 쓰레기는 아니었다.
“그럼 날면 되잖-”
“아니야.”
맨발로 걷는 게 안된다니까 바로 편하게 날아다니려고 드는 수정이. 다행히도 이한성은 그런 수정이의 얼토당토 않는 말이 화연의 귓가에 들어가기 전에 차단할 수 있었다.
“하는 수 없죠. 한성 씨가 업고 다니셔야겠네요.”
“쯧…”
지금 당장 1시간 거리에 있는 상점가에 가서 애들 신발을 사가지도 돌아올 수도 없는 법이다. 달리 방도가 없다는 걸 깨달은 이한성은 화연의 말에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히 혀를 찼다.
“등에 업혀.”
“앗싸아!”
이한성이 허리를 숙이기 무섭게, 수정이가 개구리처럼 폴짝 등 뒤에 올라탔다. 그러자 그와 동시에 이한성의 허리뼈는 내질러선 안될 비명을 내질렀다.
[우드득-]“앜-”
내뱉을 수 있었던 것은 오직 단말마의 비명 뿐. 그마저도 제대로 내뱉지 못한 이한성은 그대로 수정이를 등에 태운 채 바닥에 엎어졌다.
“…..이런 신발.”
…..한시라도 빨리 신발을 사서 신겨야겠다고 다짐한 이한성이었다.
–––––––-
“아이고 삭신이야…”
허리가 끊어질 것 같다.
집 밖으로 나온지 어느덧 30분 째. 그 중 25분 동안이나 수정이를 등에 업고 다녔던 이한성은 벽에 머리를 기댄 채 허리를 두드리며 탄식을 내뱉었다.
“쟨 대체 왜 저렇게 무거운거야…”
5살 짜리 애 정도는 별로 무리 없이 업고다닐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건 오만하기 그지 없는 생각이었다.
수정이의 몸무게는 대략 14kg 정도. 5살 여아의 평균 수준에 머물러 있는 몸무게다. 평범한 근력을 지닌 성인 남성도 어렵지 않게 들러올릴 수 있는 가벼운 무게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잠깐 들었다 놓았을 때의 기준이다.
14kg 짜리 쌀 포대기를 등에 업고 25분 동안이나 바깥을 걸어다닌다고 생각해 보아라.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힘들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게다가 가뜩이나 이한성의 허리 상태는 최근들어 계속되는 육아로 인해 악화된 상태. 그 지경에서 애를 업고 다니니 허리가 쑤셔오는 건 당연한 결과다.
“아빠! 아빠! 이거 봐봐!”
[뽀작-뽀작- 뽀작-]이한성이 허리의 고통을 삭히던 그 순간, 수정이가 깡총깡총 뛰며 다가왔다.
거의 국룰이다 싶은 어린이들의 빤짝빤짝 신발. 걸어다닐 때 마다 신기한 소리가 나는 것은 물론이요, 팬시하게 불빛까지 들어오는 옵션이 아닌 머스트 신발을 착용한 수정이는 아주 입이 찢어져라 활짝 웃으며 투명인간이랑 술래잡기라도 하는 듯 이한성의 눈앞에서 이리저리 뛰어댕기기 시작했다.
“거 되게 좋아하네.”
“그야 당연하죠. 애들끼리는 신발로 서열이 정해지고 막 그러거든요.”
어른들이 자동차나 시계 등등으로 우위를 가린다면, 아이들은 누가 더 빤짝거리는 신발을 신었느냐로 우위를 가린다. 보육원 아이들이 자기들 한테도 빤짝거리는 신발을 사달라고 여러번 떼를 썼던 기억을 떠올린 화연은 쓴웃음과 함께 수정이를 바라보았다.
“허리는 좀 괜찮으세요?”
“이게 괜찮아 보입니까?”
아까부터 허리가 제대로 안 서는 게 안보이는 모양이다.
보면 딱 견적이 나오는 질문을 굳이 물어보는 화연에게, 이한성은 신경질적인 눈초리를 보냈다.
“제가 허리 마사지 하는 법을 좀 아는데, 도와드릴까요?”
“그게 뭔데요.”
“그냥 마사지에요. 그 뭐냐, 한의학의 침술을 응용해서 효과가 꽤 좋거든요.”
“…지금 금속 흉기를 가지고 제 등에다가 꽃꽂이를 하겠다는 겁니까?”
“그런건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손만 사용할거에요.”
…영 못 믿겠는데.
과연 저 여자를 믿어도 될까. 마사지를 해주겠다는 화연의 권유에 이한성은 잠시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냥 세계수의 이슬을 쓸까? 아니, 그건 좀 아니지. 허리 하나 아프다고 누가 100만원을 써.’
확실히 후x딘이나 파스의 상위호환 격인 세계수의 이슬을 사용한다면 이런 통증 쯤이야 금방 날아가고 허리도 말끔하게 본래의 기능을 되찾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엔 이한성의 절약 정신이 그걸 용납하지 않는다.
“…괜히 악화되면 고소할겁니다.”
“저 못 믿으세요?”
“네.”
화연의 물음에 이한성은 고민할 것도 없이 즉답을 내놓았다. 그러자 화연은 좀 섭섭하다는 표정과 함께 한숨을 내쉬고는 곧바로 이한성의 등 뒤로 이동해 손가락으로 척추뼈 마디 사이 사이를 짚기 시작했다.
“휴… 알겠어요. 잘못 되면 고소해도 좋으니까 일단 허리에 힘 좀 빼보세요.”
이한성은 그녀의 지시에 따라 허리에 최대한 힘을 뺐다. 그러자 그와 동시에 화연의 엄지가 이한성의 뼈와 근육 사이를 파고들었다.
[우드득-]“아 잠깐 타임타임.”
“네~”
[뿌드득-]“아니, 진짜 아픜?!”
“네~ 원래 아파요~”
[빠각-]“그아아악?!”
이한성의 비명소리에 주변 사람들이 일제히 그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고통에 의해 의식이 혼미한 이한성에게는 민망함이나 부끄러움을 느낄 틈이 전혀 없었다.
무협지에서 점혈인가 뭐시기에 당하는 주인공의 기분이 이런 느낌일까.
온갖 비명이란 비명은 다 질러대고 벤치 위에 축 늘어져버린 이한성은 정신이 혼미한 와중에도 그런 실없는 생각을 속으로 늘어놓았다.
“아빠~ 살아있어?”
“…아니.”
고개를 갸웃거리며 제 보호자의 생사를 확인하는 질문을 던지는 5살 짜리 소녀의 질문에, 이한성은 쇳소리가 나는 목소리로 그리 대답했다. 그러자 그런 이한성의 말을 들은 화연은 마치 엄살부리지 말라는 듯이 그를 바라보았다.
“다 됐으니까. 한번 똑바로 일어나 보세요.”
‘잘도 그렇게 말하시네. 방금 허리가 아작나는 소리가 실시간 라이브로 울려퍼졌는데 그게 가능할리가…’
….
……
……..
“…있네?”
하나도 안아프다. 허리를 똑바로 세운 것도 모자라 반대방향으로 스트레칭을 해도 뻐근함 하나 느껴지지 않는다.
“제가 말했죠? 효과가 꽤 좋다고.”
화연이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으며 소소하게 자랑했다. 그리고 이한성은 그런 그녀의 태도에 뭐라 반박할 말이 없었다.
“그럼 수정이 신발도 샀고, 이한성 씨 허리도 고쳤으니까 이제 빨리 가죠. 2시에 만나기로 했거든요.”
“만나다니, 누구를요?”
“누구긴요. 수정이를 이한성 씨의 법적 따님으로 만들어 줄 사람이죠.”
“….”
기분 탓인가? 왠지 수정이가 내 친딸이 아니라는 걸 알고서 말하는 것 같은데.
실제로 수정이가 이한성의 친딸이 아닌 건 이한성 본인 부터가 아주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얼마 전 까지만 했어도 수정이가 이한성의 딸이라고 아주 찰떡같이 믿어왔던 화연이 저런 식으로 말을 하니, 이한성의 눈에는 이상하게 비춰질 수 밖에 없었다.
‘지금와서 그걸 눈치 채 버리면 그건 또 그것대로 골치가 아픈데 말이지…’
꼭 아니라고 부정할 때는 귓등으로도 안듣더니, 왜 딸이라고 인정하고 키우겠다니까 저렇게 의미심장한 소리를 하는걸까.
‘…그냥 내가 너무 예민한거겠지.’
괜히 저 말 하나 가지고 쓸데없는 드라마 찍지 말자. 이한성은 그렇게 스스로를 진정시키며 무의식적으로 수정이의 손을 붙들었다.
그러자 그런 이한성의 행동을 오해했는지, 수정이는 활짝 웃으며 마치 안아달라는 듯이 양 팔을 내밀었다.
“헤헤.”
“뭐야, 왜. 갑자기 불안하게 왜 웃어.”
“업어죠.”
“안돼. 싫어. 너 진짜 내 허리가 반으로 접히는 꼴 보고싶냐?”
“치이.”
수정이가 찐빵같은 볼따귀를 부풀리며 토라졌다.
그리고 그런 수정이의 반항은 효과가 상당히 굉장했다.
“….딱 5분 만이야.”
“앗싸아~!”
태세전환 한번 오지네.
참으로 귀엽지만 영악한 아이다. 아까 그 토라진 표정이 연기였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한성은 수정이의 부탁을 뿌리칠 수가 없었다.
뿌리치기에는, 너무 해맑은 미소였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