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Part-Timer Raises a Half-Elf RAW novel - Chapter (33)
알바생이 하프 엘프를 키우는 법-33화(33/245)
33
“야, 이수정.”
“왜에?”
“…그 빤짝빤짝 거리는 신발 3만 5천원 주고 샀으니까 이제 좀 걷지 그래?”
5분만 업어준다는게 벌써 15분을 넘겨버렸다. 아까 지옥의 마사지로 겨우 통증이 가셨던 허리가 다시 슬슬 뻐근해지는 걸 느낀 이한성은 자신의 등에 업힌 채 호기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주변을 두리번 거리는 수정이를 바라보았다.
“응!”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수정이는 순순히 이한성의 말을 따랐다. 아무래도 계속 업혀있기만 하던게 지루해졌던 모양이었다.
“허리가 또 뻐근해지신 것 같은데, 다시 마사지 해드릴까요?”
“아뇨. 싫어요. 꺼져요.”
마사지 얘기가 나오기 무섭게 이한성은 그 고통을 떠올리며 진절머리를 냈다.
바늘 가지고 척추 뼈에다가 무슨 세공 같은 걸 하는 것만 같은 그 감각을 또 맛보고 싶은 사람은 아마 사람 중에는 없을 것이다.
“그럼 할 수 없죠. 어차피 거의 다 왔으니까 다음에 마음이 바뀌시면 얘기해 주세요.”
“됐습니다.”
그럴 바엔 차라리 허리를 못 쓰게 되는게 더 나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나저나 거의 다 왔다고요? 확실합니까?”
주위를 눈 씻고 찾아봐도 시청이나 동사무소 같은 건물은 보이지 않는다. 이 주변에 있는 건물이라고 해봐야 저기 길건너 보이는 큼지막한 법원 뿐.
“네. 저기 보이잖아요.”
“…저건 법원인뎁쇼.”
“저도 알아요. 오늘 이한성 씨를 도와주실 분이 저곳에서 일하시는 분이거든요.”
“아니, 애 출생신고 하나 하겠다는데 왜 법원에서 일하는 분의 도움이 필요합니까…?”
아무리 이한성이 육아에 대한 지식이 없다고는 하나, 출생신고나 주민등록번호를 보통 어디서 받는지 정도는 알고 있다.
그런 이한성의 의문을 알아챘는지, 화연은 조용히 횡단보도의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며 가을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바로잡았다.
“왜냐하면 이한성 씨 같은 경우는 특이 케이스이기 때문이에요.”
“특이…?”
뭐가 특이 케이스라는걸까.
혹시 수정이의 정체에 대해 눈치 챈걸까. 화연의 말에 이한성은 그런 의심을 거두지 못하며 순간 그녀의 눈치를 살펴보았다.
“이한성 씨 같은 미혼부들이 자녀의 출생신고를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친모의 증명서가 필요해요.”
“아~”
그런 얘기였구나. 순간 들킨 줄 알고 식겁했네. 그나저나 출생신고가 친모가 있어야만 가능한거였다니, 그것 참…
….
….
“이해가 안되는데.”
아니 왜 친모가 없으면 출생신고가 안되는건데? 애 엄마가 낳자마자 죽을 수도 있고, 혼전임신이라서 낳고 도망칠 수도 있는거잖아. 실제로 그런 일이 한두번 있는 것도 아니고 빈번한데, 그럼 애는 어쩌라는거야? 태어났다는 사실도 인정을 못 받는다는거야?
대체 법을 어따구로 만들었길래 그런 말도 안되는 일이 가능하다는걸까.
이 나라가 대단하다는 건 진작에 알고 있었지만 이정도로 어메이징 할 줄은 몰랐다. 이한성은 그런 생각과 함께 어이가 없다는 듯이 헛웃음을 지었다.
“그래도 비교적 최근에 법이 바껴서 이제는 절차가 좀 복잡하긴 하지만 미혼부들도 출생신고를 할 수 있게 됐어요.”
“그게 최근에야 바꼈다는게 더 놀랍습니다만.”
항상 꼭 뒤늦게 법을 고친다니까. 진작에 고치면 어디가 좀 덧나나.
“…잠깐만요, 방금 법이 바껴서 미혼부도 출생신고를 할 수 있다고 했죠?”
“네 맞아요.”
“그럼 왜 굳이 법원까지 온겁니까?”
“그야 아까도 말했잖아요. 이한성 씨의 경우는 특이 케이스라고.”
“…?”
화연이 의미심장한 표정과 함께 이한성을 바라보았다. 반투명하게 비춰지는 그녀의 푸른 눈동자는 반짝이는 신발을 가지고 놀고 있던 수정이를 슬쩍 흘겨보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한성 씨는 수정이의 친부가 아니잖아요.”
“…!!”
숨이 딱 멎는 듯한 느낌. 심장이 가슴에서 지면으로 자유낙하를 하는 듯한 느낌과 함께, 이한성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말을 더듬었다.
“아니, 얼마 전 까지만 해도 내 말을 귓등으로도 안들었으면서 갑자기 무슨…”
“그야 그때는 몰랐으니까요. 솔직히 제가 살면서 이한성 씨 처럼 애를 가지고도 자기 애 아니라고 하는 부모들을 너무 많이 봤기도 했고요.”
화연이 그때는 미안했다고 속으로 생각하며 민망함에 잠시 시선을 회피했다.
“…그럼 언제부터 알게 된 겁니까?”
“비밀이에요. 오늘 아침까지만 했어도 의심이었다는 것만 알려드릴게요.”
“하하, 하하하…”
몸 안의 피가 삐쩍 마르는 것만 같은 기분이다.
‘…언제부터 들킨거지? 어떻게 들킨거야? 아니, 그것보다 대체 어디까지 들킨거지?’
오만가지의 불안한 생각들이 이한성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식은땀이 물줄기 처럼 흘러내리는 감각을 느끼며, 이한성은 습관적으로 챙겨온 젖병을 꺼내서 마셨다.
“어… 입맛이 굉장히 독특 하시나 보네요.”
“이거 진정제입니다.”
안에 들어있는 건 분유가 맞지만.
젖병을 진정제 취급 하는 이한성의 정신나간 모습에 화연은 마치 신인류를 보는 듯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미 젖병 덕에 진정을 되찾은 이한성은 그녀가 그런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던 말던 신경쓰지 않은 채, 냉정하게 상황을 정리했다.
‘냉정하게 생각해 보자. 수정이가 내 친딸이 아니라고만 했지, 그 이상은 말하지 않았어. 그러니까 괜히 넘겨짚지 말자.’
설마 수정이가 하프엘프 같은 판타지 속에서나 나오는 존재라고 까지 생각했을 리는 없다. 이한성은 그렇게 최대한 상식적으로 상황을 판단하며 화연을 따라 수정이와 함께 신호가 바뀐 횡단보도를 건넜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말을 억지로 자각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다한 채.
–––––—
법원. 이름 그대로 법과 관련된 일들을 다루는 장소. 최근 드라마에서 단골소재로 사용되며, 꼭 변호사와 검사가 서로 피터지게 상대방을 엿먹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무서운 장소가 바로 이곳이다.
“…생각보다 되게 조용한 곳이네.”
드라마에서 봤을 때는 아주 그냥 주인공과 악역들이 목청이 터져라 소리를 질러대길래 현실에서도 꽤나 시끄러운 곳인 줄 알았는데.
상상했던 것과는 많이 다른 법원의 조용하고 평범한 이미지에, 이한성은 역시 드라마랑 현실은 완전 딴판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우치며 수정이와 동기화된 로봇마냥 똑같이 주위를 두리번 거리기 시작했다.
“풉…”
“?”
“아뇨, 그냥 둘이 부녀긴 부녀구나, 싶어서요.”
화연이 미소를 감추며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손을 저었다. 그러자 이한성과 수정이는 잠시 서로를 바라보았고, 이내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다는 듯이 말했다.
“닮은 구석이 1도 없는데.”
“맞아! 아빠보다 내가 더 예뻐!”
한쪽은 흑발흑안이고, 다른 한쪽은 은발녹안이다. 거기에다가 수정이가 무해한 새끼 사묘예드를 연상케 하는 얼굴상이라면, 이한성은 다가가기만 해도 난리발광을 쳐댈 사나운 도베르만 상이다.
“그렇게 말하셔도 지금 둘의 행동이 완전 똑같은 건 알고 계세요?”
“?”
“모르시면 됐어요. 나중에 싫어도 알게 되실테니까.”
화연이 복도 끝자락에 위치하던 사무실 문에 노크를 했다.
[똑똑-]“네, 들어오세요.”
노크하기 무섭게 문 너머로 연륜이 느껴지는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화연은 목소리가 주저없이 말한대로 문을 열고 사무실에 들어갔다.
화연의 뒤를 따라 들어간 사무실은 딱 봐도 사람 냄새가 폴폴 풍기는 풍경을 지니고 있었다.
정돈이 안되어있는 책장과 각종 종이와 파일들이 널브려져 있는 지저분한 책상. 손님들 앉으라고 놔둔 것 같은 작은 소파와 작은 테이블, 그리고 그 위에 올려져 있는 말라붙은 티백이 들어있는 컵.
만약 누군가가 이곳이 법원의 사무실이 아니라 대학 교수의 서재라고 해도 충분히 믿을 법한 풍경이었다.
“미안해요. 조금 늦었어요.”
“늦었다니요, 5분 밖에 안지났는데.”
예정보다 조금 늦게 도착 했다고 반듯이 사과하는 화연에게, 방 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이름모를 중년은 널널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맞이했다.
“오랜만이에요 송강욱 판사 님. 그새 또 많이 늙으셨네요.”
“허허… 나이는 못 속이는 법이지요. 그러는 화연 씨는 저와 다르게 여전히 고우십니다.”
“또 또 그런 말 하신다.”
송강욱 판사라고 불린 중년 남성의 칭찬에, 화연은 민망한 표정을 지으며 살짝 화를 냈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화에도 송강욱 판사는 그저 널널하게 웃으며 추억에 젖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
“소개 드릴게요. 이분은 송강욱 판사 님이세요. 법조인 생활만 올해로 벌써 32년차 이신 대단한 분이시죠.”
“아, 이한성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판사 님.”
갑작스러운 소개에 이한성은 살짝 당황하며 조금 딱딱하게 느껴지는 목소리로 자기소개를 내뱉었다.
“얘기는 화연 씨로 부터 익히 들었습니다. 아버지로써의 책임감이 아주 강인하신 분이라고.”
“예?”
누가 그랬다고요?
순간 이한성이 믿지 못하겠다는 눈빛으로 화연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바라보기 무섭게 그녀는 모르는 일이라는 듯이 시선을 회피할 뿐이었다.
“허허허. 두분께서 사이가 좋아보이셔서 참 다행입니다.”
“아, 예…”
사실 사이라고 할 것도 없는 사이입니다만.
이한성은 그렇게 말하고 싶은 마음을 꾹 참으며 송강욱 판사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그러자 나이 많은 판사는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화연과 이한성, 그리고 수정이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이거 참… 어제 급하게 전화하셔서 무슨일인가 싶었더니, 이 아이 때문이었군요.”
송강욱 판사가 할아버지의 미소로 수정이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런 나이 많은 할아버지의 시선을 느낀 수정이는 금새 이한성의 등 뒤로 숨어버렸고, 고개만 반쯤 쏙 내민 채 그를 경계했다.
“그나저나 사실 좀 놀랐습니다 화연 씨.”
송강욱 판사가 자신을 경계하는 수정이의 반응에 살짝 시무룩해 하더니, 이내 다시 널널한 웃음으로 화연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리도 결혼 할 생각 없다고 고집을 부리시더니, 결국 이렇게 어여쁜 따님을 두게 되셨군요.”
“뭐?”
순간 화연이 반말을 내뱉었다. 아무래도 그만큼 송강욱 판사의 말이 황당했던 모양이었다.
“이 남성 분이랑 결혼하신거 아니십니까? 아무래도 아이가 두 분의 외모를 골고루 물려받은 것 같은데…”
아, 나 이런 말 어디에서 들은 적 있는 것 같은데, 어디에서였지?
왠지 모를 데자뷰에 이한성은 조용히 기억을 더듬었다. 하지만 그가 기억하기도 전에, 화연의 정색한 목소리가 주변에 울려퍼졌다.
“이보게, 그 해도 될 말이 있고 안될 말이있지. 내가 미쳐버린게 아니고서야 혼사도 치루기 전에 거사를 치웠을리가 없지 않는가.”
….? 갑자기 웬 사극 말투?
갑자기 드라마에서나 들을 법한 조선시대의 향기가 폴폴 나는 화연의 말투에 이한성은 말이 아닌 표정으로 그녀의 행동을 지적했다.
그러자 그런 이한성의 표정만 보고도 그가 속으로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깨달은 화연은 금방 말투를 사극에서 현대물로 업데이트시키고는 바로 해명에 나섰다.
“아… 그, 제가 한국말을 사극 드라마로 배워서… 아하하하.”
“신경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흥분하면 자주 이러시니.”
송강욱 판사가 화연의 해명에 힘을 보탰다. 그러자 이한성은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일단은 둘의 해명을 받아들였다.
“예 뭐… 일단 그건 그렇다 치고, 그래서 출생 신고는 어떻게 진행할지 좀 알려주셨으면 합니다만.”
당장 중요한 것은 수정이의 출생신고다. 그것 하나 때문에 오늘 이렇게 난생 와 본 적이 없는 법원까지 찾지 않았는가.
“아, 그거라면 이미 제가 준비해뒀습니다. 아마 오늘 안으로 바로 해결해 드릴 수 있을 겁니다.”
“그렇군요.”
그렇구나. 오늘 안으로 바로 해결이 되는구나.
송강욱 판사의 말에 이한성은 이해했다는 듯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가 무언가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깨닫기 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잠깐만요, 뭐라고요? 오늘 안으로 해결이 가능하다고요?”
“예. 그렇습니다.”
“???”
출생신고가 그렇게 간단하게 끝나도 되는겁니까???
이한성이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송강욱 판사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나이 많은 판사는 대답하는 것 대신 그저 널널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그… 막 위법적이거나 그런 식으로 준비하신 건 아니죠…?”
“허허허.”
“아니, 웃지 말고 대답을 해달라고요.”
“허허허. 알고 싶으십니까?”
“….”
왠지 물어봐선 안될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이미 대답한 것이나 다름없는 송강욱 판사의 널널한 미소를 바라보며, 이한성은 그렇게 입을 다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