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Part-Timer Raises a Half-Elf RAW novel - Chapter (34)
알바생이 하프 엘프를 키우는 법-34화(34/245)
34
“자, 됐습니다.”
“….”
송강욱 판사가 반듯하게 프린트 된 A4용지를 내밀었다.
종이 안에 들어있는 내용물은 다름아닌 오늘 이곳에 온 주 목적인 수정이의 출생증명서. 본래 이한성 같은 미혼부들은 복잡한 과정을 통해서 겨우겨우 얻을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서류다.
하지만 누가 알았을까. 이 출생증명서를 받기 까지 불과 30분도 채 걸리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저… 이거 합법적인거 맞죠? 막 위조하거나 그런건…”
“허허허. 서류는 완전히 합법입니다.”
“….”
그렇게 말하시면 꼭 발급 과정은 합법이 아니었다는 것 처럼 들립니다만.
이한성은 속을 알 수 없는 연세가 있는 판사의 미소를 바라보며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보냈다. 하지만 그러던 순간, 갑작스럽게 수정이가 끼어들며 호기심이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빠, 그게 뭐야?”
“니 동아줄.”
이거 없으면 넌 법적으로 태어나지도 않았던게 되거든.
출생신고 없이는 학교에도 가지 못하고, 나라에서 각종 지원도 받지 못하며, 심하면 예방접종이나 의료보험까지 들지 못한다.
즉, 이거 없이 이 나라에서 제대로 된 삶을 살아가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다.
‘…생각해보니까 궁금하네. 그 인간은 대체 내 출생신고를 어떻게 처리한거야?’
지금의 이한성이 이리 되었듯이, 그의 아버지 또한 그와 비슷한 미혼부 신세였다. 사정은 좀 많이 다르지만 어쨌거나 이한성의 아버지 또한 출생신고를 하는데 있어서 큰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상상도 안된단 말이지.”
그 인간이 그 고생을 들여가며 내 출생신고를 했을거라고는 말이야.
복잡한 서류작업을 할 시간에 술이라도 한병 더 비워낼 인간이다. 그 인간이 늘 그렇게 아나꼽게만 대하던 자신을 위해 그런 고생을 들였었다니, 도저히 믿겨지지가 않는다.
“상상도 안된다니, 뭐가요?”
순간 화연이 얼굴을 불쑥 들이대며 물었다. 그러자 이한성은 출생신고서를 방패삼아 그녀의 얼굴을 밀어내며 말을 얼버무렸다.
“댁들이 일을 이렇게 빨리 처리한 것 말입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괜히 나중에 법적으로 꼬이는게 아닐까 무서워 죽겠습니다.”
“그러시면 또 도와드릴게요. 물론, 도와주는건 제가 아니라 송강욱 판사 님이시겠지만.”
“허허허, 전 한가하니까 언제든지 찾아오셔도 됩니다.”
판사가 한가해도 되는겁니까?
이한성이 황당스러운 눈빛으로 화연과 송강욱 판사를 번갈아가 보았다. 하지만 둘은 그저 부녀지간이라도 되는 듯 똑같은 미소로 웃을 뿐이었다.
[띠링-]“?”
[히든 퀘스트: 내가 니 아비다 (을)를 클리어 하셨습니다.] [클리어 조건: 아이의 법적 보호자가 되십시요.]갑작스럽게 메시지 창이 떠오르며 익숙한 효과음을 귓가에 퍼뜨렸다.
[클리어 보상이 주어집니다.] [+1억 4천만 골드/ +3000 Exp / +스킬: 긴급출동] [타인의 도움을 받았기에 클리어 보상의 50%가 차감됩니다.] [타이틀: 정식 보호자 (을)를 획득하셨습니다.]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상점 메뉴에 새로운 아이템들이 추가됩니다.]“홀리 쒯…”
“쒰?”
빵빵한 보상에 너무 놀란 나머지 입 밖으로 튀어나와버린 이한성의 욕설을 수정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따라했다.
아, 나 이런 장면 영화에서 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아빠~ 쒰이 뭐야?”
“어… 그냥 영어로 똥이라는 뜻이야.”
“그럼 홀리는?”
“그건… 성스럽다는 뜻이지 아마…?”
이한성은 영어에 무지 약하다. 오죽하면 그가 알고있는 대부분의 영단어는 죄다 영화 속에서 주워들은 욕설일 정도이다.
“성쓰러운 똥?”
수정이가 잘 모르겠다는 듯이 되뇌였다. 아무래도 똥이 뭔지는 알지만 성스럽다의 의미는 아직 알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뭐… 대충 그런거지.”
지금 중요한 건 그런게 아니라고.
이한성이 수정이의 물음에 애매한 답변을 내놓으며 아직도 믿겨지지 않는 메세지 창의 내용들을 다시 한번 읽어내렸다.
‘1억 4천만의 절반이니까 7천만 골드… 7천만… 7억원…’
이런 시발. 그게 대체 얼마야.
조금 과장을 보태서 말한다면 예전처럼 알바를 뛰며 평생 모아도 손에 쥐는 것 조차 불가능할 금액이다.
그런 현실과는 거리가 먼 금액을 지금 이 순간에 손에 넣게 된 이한성은 식은땀을 줄줄히 흘리며 갑자기 공황장애가 닥쳐오는 듯한 기분을 경험했다.
‘지금 모아뒀던게 거의 3억, 거기에다가 오늘 보상으로 받은 7억까지 합하면 총 10억… 이런 미친.’
그정도 금액이면 집값이 미쳐 날뛰고 있는 그 강남에서 집을 구하는 것도 꿈이 아닌데, 그런 거액이 자신의 품 속에 있다고 하니 긴장되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한 것이다.
“이한성 씨? 괜찮으세요? 안색이 무슨 빚쟁이들 몰래 로또라도 당첨 된 사람마냥 창백하신데.”
“잠깐만요.”
이상하게 촉이 좋은 화연의 걱정에 이한성은 허둥지둥 품 속에서 젖병을 꺼내 남아있던 분유를 한방울도 남기지 않고 전부 들이켰다.
“후… 이제 좀 진정이 되네.”
“….”
빈 젖병을 무슨 담배갑 마냥 주머니 속에 집어넣는 이한성의 모습에 화연은 침묵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고, 이내 수정이에게 딱하고 안타까운 목소리로 말했다.
“수정아. 너네 아빠가 좀 많이 아프셔서 저런거야. 넌 이해하렴.”
“저기요. 지금 애한테 뭔 소립니까.”
“다 큰 사람이 젖병을 쪽쪽대는 건 정상이 아니라는 걸 가르치려는 것 뿐이에요.”
“….”
이한성은 달리 반박할 말을 찾지 못했다. 실제로 젖병의 효과를 모르는 사람들의 눈에는 자신의 행동이 미친놈 그 자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아무튼, 도와주셔서 고맙습니다.”
“고마우시면 밥이나 한번 사주세요.”
화연이 기지개를 쭉 피며 그렇게 말했다. 정작 서류 작업을 해놓은 건 그녀가 아닌 송강욱 판사임에도 생색을 내는 그녀의 모습에, 이한성은 황당스러워 하면서도 나지막히 웃으며 그녀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그러죠 뭐.”
어차피 저 사람 연줄 덕에 판사님의 도움을 받은건데. 밥 한끼 정도도 안 사면 그건 완전 빈대지 빈대.
제아무리 깐깐한 이한성이라지만 그는 그렇게 까지 돈을 아낄정도로 자린고비는 아니다.
“뭐 드실래요? 비싼 곳도 괜찮은데.”
“네…? 아니, 방금 그건 그냥 농담이였는데요…”
화연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표정을 지으며 당황했다.
“농담?”
“네. 그러니까 막 답례랍시고 저한테 뭐 사주시려고 하지 마세요. 아마… 앞으로 많이 힘드실테니까요.”
“아니 뭐, 딱히 그렇지도 않은데…”
화연에게 있어서 이한성은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알바로 연명하던 돈이 궁한 가여운 청년이였다. 당연하게도 그녀는 그가 최근에 시스템의 보조로 10억이라는 거액을 벌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럼 이렇게 하죠. 같이 밥 먹는 대신에 더치 페이로 계산하기로.”
“뭐… 그쪽이 괜찮으시다면야.”
이미 이쪽이 밥 사겠다고 했는데 거절한건 저쪽이다.
‘나야 돈 한푼이라도 아끼면 좋지.’
이한성은 그렇게 속으로 돈이 굳었다고 좋아하며 흔쾌히 화연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러자 그 순간 흐뭇한 표정으로 곁에서 둘의 모습을 지켜보던 송강욱 판사가 널브려져 있던 책상 위에서 전단지 하나를 꺼내 두 남녀에게 건내줬다.
“밥 드실거면 이 식당으로 가시는게 어떠십니까? 이 근처에 있는 맛집인데 곱창 맛이 아주 기가 막힙니다.”
“곱창이요?”
곱창이라고 하면 돈이 궁했던 이한성과는 거리가 먼 음식이다. 실제로 그가 유일하게 곱창을 맛볼 수 있던 때는 예전에 잠깐 곱창집에서 알바를 뛰었을 때 뿐이었고, 돈을 내고 사먹은 적은 아예 없었다.
‘뭐… 지금은 돈이 충분히 있으니까 곱창도 괜찮긴 한데…”
이한성이 살짝 꺼린 눈치를 보인 것은 곱창이 비싸서 먹기 싫어서가 아니었다.
그가 곱창 소리를 듣고 머뭇거리는 이유는 다름아닌, 지금 이 순간에도 송강욱 판사가 건내 준 광고지 속에 들어가버릴 기세로 곱창 사진을 보고 있는 화연의 존재 때문이었다.
‘…괜찮으려나?’
저 금발에 벽안을 지닌 외국 처자가 과연 곱창을 좋아할까?
화연은 한국에 온지 얼마 안된 외국 교환학생. 한국말이 한국인 뺨칠 정도로 유창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문화까지 완전 한국인인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그녀가 소 내장으로 만든 음식을 보고 까무쳐 놀랄 가능성은 충분히 높다는 뜻이다.
“괜찮겠어요…?”
“네?”
이한성이 걱정스러운 말투로 묻자 화연이 근심하나 없는 깨끗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러니까 곱창집에서 먹어도 괜찮겠냐, 이말입니다.”
“당연하죠? 문제될게 뭐 있어요?”
…아무래도 사진 속 저 음식이 뭘로 만들어졌는지 전혀 모르고 있는 것 같은데.
잡티하나 없이 해맑은 화연의 대답에 이한성은 그리 짐작하며 굳이 진실을 입 밖으로 내뱉지 않기로 하였다.
‘뭘로 만들어졌는지 모르고 먹는다면 맛있게 먹겠지 뭐.’
음식이라는게 원래 다 그렇지 않겠는가. 뭔지 모르고 먹을 때는 맛있다가도, 그 음식의 재료에 무엇이 들어가는지 알게되면 왠지 모르게 꺼려지는 그런 거.
“아빠~”
“왜?”
“곱창이 뭐야?”
“어… 소고기로 만든 음식이야.”
소 내장도 일단 소고기니까 틀린 말은 아니지.
이 자리에 곱창이 뭔지 모르고 있는 사람이 하나 더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이한성은 그렇게 수정이의 물음에 거짓말이지만 거짓말은 아닌 거짓말을 대답으로 내뱉었다.
“소고기? 소고기가 무슨 맛인데?”
“니가 아까 먹었던 햄버거 안에 들어있던 고기가 소고기야.”
“!!”
순간 수정이가 무언가를 깨달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나도 곱창 먹을래!”
“그래그래.”
하루아침에 아기에서 5살로 훌쩍 커버린 수정이가 가장 처음으로 먹은 음식은 햄버거. 그러니 햄버거 외에는 아직 다른 음식을 먹어본 적이 없는 수정이가 곱창이든 햄버거든 둘 다 소고기로 만들어졌으니 맛도 똑같을거라는 생각을 하는게 딱히 이상한 건 아니다.
‘햄버거랑 완전 다른 맛이긴 한데… 일단 먹여보고 싫어하면 다른 메뉴로 주문하면 되겠지.’
이한성 본인은 곱창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편이지만 곱창이라는게 워낙 먹는 사람은 먹고 안먹는 사람은 안먹는다고들 하는 음식이기 때문이기에 수정이도 곱창을 좋아할 거라는 보장은 없다. 더군다나 곱창이라는게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음식도 아니고.
하지만 무슨 음식이든 일단 먹어보고 판단해야 하는 법이다.
그런 일종의 신념 비스무리한 것을 가지고 있던 이한성은 오늘부터 정식으로 자신의 법적 가족이 된 수정이에게도 그런 자신의 신념을 가르쳐줘야겠다고 생각하며 그 누구도 듣지 못할 목소리로 혼잣말을 내뱉었다.
“그동안 이유식 가린다고 날 귀찮게 했던거, 오늘 복수해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