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Part-Timer Raises a Half-Elf RAW novel - Chapter (37)
알바생이 하프 엘프를 키우는 법-37화(37/245)
37
불타는 숲과 피비린내가 섞인 바람. 저 멀리서 들려오는 함성 소리와 금속음.
너무 오래 전의 일이라 기억나는 것은 거의 없다. 기억나는 것이라고는 마지막으로 보았던 고향의 모습이 지옥 그 자체였다는 것 뿐.
이미 600년도 더 지난 일이다. 이름도, 얼굴도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 부모님을 뒤로 한 채 마법진을 타고 외딴 세계로 오게되었던 것은.
-마법진을 타고 넘어가면 널 돌봐줄 사람이 있을거란다. 부디… 행복하렴.
화연의 부모님이 그녀에게 마지막으로 남겼던 말이다. 그때의 그녀는 아직 7살도 되지 않았던 아이였던지라 그 뜻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어쨌든 부모님과 다시는 만날 수 없다는 사실쯤은 본능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빛이 바랜듯이 이미 풍화되어 희미해진 기억이지만, 어머니가 억지로 붙잡으려던 손을 떼어내며 눈물을 흘리던 그 순간만큼은, 여전히 그녀의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하지만 선명한건 딱 그 순간 뿐이다. 그 일이 있었던 직후, 마법진이 발동하여 그녀는 어머니와 영원히 헤어지고 말았고, 이름조차 알지 못하는 세계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지금부터의 이야기는 누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는 낯선 세상에 떨어져 환영받지 못했던 소녀의 이야기.
그리고 600살이나 되어서야 누구에겐가 털어놓을 수 있게된 한 여자의 지루한 푸념이다.
–––––––
“추워….”
재인지 눈인지 구분이 안가는 새하얀 산 속에서, 소녀는 추위에 떨었다.
신발하나 없이 맨발로 눈길을 걸었던 탓에 소녀의 발은 이미 새빨갛게 부어올라 있었다. 이미 발의 감각은 떠나간지 오래였고, 그녀가 지닌 것이라고는 몸에 걸치고 있는 누더기가 전부였다.
“…배고파.”
마법진을 타고 건너온지도 어느덧 이틀째. 그동안 계속 인적이 있는 곳을 향해 걷기만 했던 소녀가 먹은 것이라고는 마법으로 눈을 녹여 만든 물 뿐이었다.
[저벅-저벅-]멀리서 발자국이 눈을 짓밟는 소리가 들려왔다. 틀림없는 인기척에 소녀는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았다.
“자네 그 말 들었나? 새 왕이 즉위했다던데.”
“하! 즉위하긴 무슨. 보나마나 이성계 그자가 허수아비로 내세운 거겠지. 군사까지 돌려서 제 나랏님을 끌어내리지 않았는가.”
“그래도 왕은 왕이지 않나. 아무리 이성계가 대단하다 한들 무신일 뿐인데.”
“무신이던 문신이던 권력 잡은 놈이 갑이지. 내 장담하건데, 이성계 그자는 결국 왕의 자리까지 노릴걸세.”
소녀의 눈에 들어온 것은 살면서 단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옷차림을 한 두 사내였다. 그들은 소녀가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로 대화를 나누며 서서히 다가왔고, 소녀는 안도와 함께 두 사내에게 도움을 청하려고 다가갔다.
“저기 저 앞에 누가 있는 것 같네만?”
“정말이로군. 보아하니 아이 같은데…”
두 사내가 경계심과 함께 소녀와 마주쳤다. 이 한겨울에 아이 혼자서 산길을 걷고 있으니, 어딘가가 이상하게 느껴지는 건 당연했다.
“애야, 이 추운 산길에서 대체 무엇을….”
비단 옷을 입은 사내가 소녀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소녀의 금발과 벽안, 그리고 뾰족한 귀를 본 사내는 이내 귀신이라도 본 듯이 놀라며 뒷걸음질쳤다.
“요, 요괴!!”
“으아아악!!”
두 사내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그대로 왔던길을 되돌아 도망가버렸다.
“….마을이 어딨는지 물어보고 싶었는데.”
소녀가 이미 멀리 사라져버린 사내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쓸쓸하게 중얼거렸다.
“혹시 내 옷이 지저분해서 그러는걸까?”
소녀는 알지 못했다. 자신의 외모가 이 세상에서는 아주 이질적이다는 것을.
도움을 청할 만한 사람이 그렇게 도망쳐버리자, 소녀는 다시 눈길을 하염없이 걷기 시작했다. 이미 반나절이나 걸었던 터라 발길은 무거웠지만, 소녀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마을을 찾을 때 까지 끈임없이 걷는 것 뿐이었다.
“분명… 마을을 찾으면 날 돌봐줄 사람이 있을거야….”
소녀는 어머니의 마지막 말을 되뇌이며 지친 몸을 다독였다. 그리고는 목적지조차 알지 못한 채 계속해서 걸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날이 저물며 하늘이 노을로 물들었던 그때, 소녀는 마침내 저 멀리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마을을 찾을 수 있었다.
“조금만 더 가면 돼…”
조금만 더. 아주 조금만 더 걸으면 사람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어머니가 말하셨던 자신을 돌봐줄 사람도 찾을 수 있다. 소녀는 그런 희망에 의지한채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마침 마을에서 장터가 열렸는지 마을의 분위기는 매우 소란스러웠다. 소녀는 그런 소란스러움을 해치고 장터를 지나려 했지만, 그러기엔 어쩐지 주변인들의 시선이 조금 이상했다.
사람들은 저마다 소녀를 바라보며 술렁이더니, 이내 하나 둘 씩 자리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던 소녀는 무슨 일인지 전혀 알지 못한 채 그저 멀뚱히 서있을 뿐이었다.
‘…다들 왜 날 피하려는걸까?’
어머니는 말했다. 분명 이 세계의 어딘가에 자신을 돌봐줄 사람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하지만 마을 사람들의 태도는, 7살에 불과했던 소녀가 보기에도 환영적이지 못했다.
모두가 자신을 피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어떤 사람은 자신을 두려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요괴를 잡아라!!”
순간 건장한 남성들이 소녀를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소녀는 알아듣지 못했지만, 그들의 손에 들린 낫과 도끼가 매우 적대적이라는 사실 쯤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도망가야 돼…!!’
위협을 느낀 소녀는 그대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러자 날붙이들을 든 정장들은 그녀를 재빠르게 추적해오기 시작했고, 소녀는 다시 험난한 산기슭에 뛰어들 수 밖에 없었다.
날이 저물고 있었던 건 어쩌면 행운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두컴컴한 산 속으로 도망간 소녀를 본 남성들은 결국 추적을 포기했다.
하지만 소녀는 사람들을 따돌렸다는 사실도 알지 못한 채 계속해서 뛰었다. 눈길 위에 생겨난 소녀의 작은 발자국에는 발바닥이 쓸려 생겨난 핏자국이 섞여 있었지만, 겁에 질려있던 소녀에겐 그런 걸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어두워… 여기가 어디지…?’
한겨울의 밤은 무척 어두웠다. 한치의 앞도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아마 산 속이었으니 더욱 평소보다 어둡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런 어둠 속에서, 소녀는 오로지 이따금 나무들 사이로 비춰지는 달빛에만 의지한 채 가파른 비탈길을 조심스럽게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밤중의 산속은, 어린 소녀에게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우지끈!]“앗?!”
소녀가 버팀목으로 붙잡고 있던 나뭇가지가 마른 소리와 함께 부러졌다. 소녀는 단마디 비명을 내지르며 어떻게든 중심을 잡으려고 했지만, 그러기엔 비탈길이 너무 가파랐다.
소녀는 그렇게 제 몸도 제대로 갸누지 못하며 비탈길에서 굴러 떨어졌다.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성인이라 할지라도 사망에 이렀을테지만, 엘프인 소녀의 몸은 인간보다는 조금 더 튼튼했다.
‘아파…’
뼈는 부러지고, 이마는 찢어졌으며, 불에 타는 듯한 고통만이 가득하다.
주변에는 오로지 눈과 적막함 뿐이었다. 낯선 세상에 떨어진 처지를 대변하듯, 소녀의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엄… 마…”
몸이 점점 차갑게 식어가는 감각 속에서, 소녀는 고향에 두고 온 엄마를 불렀다.
자신의 목소리가 닿지 못할 걸 알면서도.
“거기 누구 있소?”
“…?”
희미해져가는 의식 속에서, 낯선 목소리가 소녀의 귓가에 들려왔다.
누굴까. 아까 쫓아오던 그 사람들일까? 아니면 그냥 잘못 들은 것일까.
어느쪽이던 좋았다. 이미 지칠대로 지친 소녀에게 있어선 아무래도 좋았다. 그럼에도, 소녀는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흐려져 가는 시야 속에 들어온건 더북해 보이는 수염을 지닌 한 남성의 모습이었다. 거친 인상과 때를 탄 옷차림을 하고 있던 남성은 조심스럽게 소녀에게 다가가 상태를 살폈다.
“쯧, 어린 것이 심하게도 굴렀구만. 살긴 글렀어.”
이름모를 남자는 소녀가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평범한 사람이 보기에는 소녀의 상처는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엄마…”
“…불쌍한 것.”
하지만 소녀의 숨은 아직도 붙어 있었다. 조그만한 것이 끈질기게도 숨을 쉬며 무언가를 중얼거리는 모습을 본 남성은 저도 모르게 안타까운 탄식을 내뱉었다.
“…숨은 붙어 있으니 어떻게든 살릴 수는 있겠지.”
남성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쓰러져 있던 소녀를 조심스럽게 안아 들었다.
그리고 그것이, 소녀가 두번째 가족을 만나게 된 순간이었다.
––––––––—
“이름이 무엇이냐?”
“…..”
“부모님은?”
“…..”
남자가 소녀를 집까지 데리고 온지도 어느덧 일주일. 그동안 산속을 뒤져가며 온갖 약초란 약초는 전부 찾아 달여준 덕에 소녀는 눈에 띄게 회복되었다.
다만 상처의 후유증 때문인지, 아니면 그냥 낯을 가리는 건지 무엇을 물어봐도 소녀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야 이것아. 무슨 말이라도 해야 내가 널 니 애미 애비한테 데려다 줄 것 아니느냐!”
“힉!”
답답한 나머지 남자가 소리를 지르자, 소녀는 흠칫하며 겁을 먹은 채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그러자 그런 소녀의 모습을 본 남자는 당황한 기색을 보이며 소녀를 달랬다.
“아이고, 그래그래. 소리쳐서 미안하다.”
“…..”
“그나저나 딱 봐도 생긴 것이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정체가 무엇이냐?”
“…뭐라는지 하나도 모르겠어요.”
계속되는 남자의 질문에 소녀는 남자가 알아듣지 못할 언어로 그렇게 대답했다. 그러자 그제서야 남자는 현 상황의 문제점을 깨달았다.
“벙어리가 아니라 말이 문제였구만. 설마 고려말을 못할 줄이야, 그럼 우선 말 부터 가르쳐야겠군.”
“….?”
소녀와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제서야 알아 챈 남자는 그날부터 쭉 쉴새없이 소녀에게 말하는 법과 글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자, 따라해보거라.”
“자, 따라해보거라.”
“아니, 이걸 따라하라는게 아니라…”
“아니, 이걸 따라하라는게 아니라.”
“요 호랑이 똥만한 것아! 지금 어른을 놀리려 드는게냐?!”
“요 호랑이 똥만한 것아… 가 무슨 뜻이야?”
“…..”
말도 통하지 않는 아이에게 말을 가르친다는 것은 꽤나 험난한 일이었다. 하지만 소녀에게 재능이 있었는지, 아니면 남자에게 재능이 있던 것인지 소녀가 말과 글을 깨우치기 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래서, 부모님은 어딘지도 모르는 먼 곳에 계시고, 너보고 이곳에 돌봐줄 사람이 있다고 하고 널 보냈다 이말이냐?”
[끄덕-]“안봐도 무슨 사정인지 뻔하구만… 쯧, 그래. 어차피 그동안 제집처럼 이곳을 쑤시고 다녔으니 앞으로도 그러거라.”
글과 말을 가르치기 까지 걸린 시간이 1년. 짧지만 짧지 않은 그 시간동안 소녀와 한집에서 함께한 남자는 소녀의 사정을 알게 되었고, 계속해서 소녀를 곁에 두기로 하며 그녀에게 이름을 붙여주었다.
“화연. 계집애 이름으로는 썩 나쁘진 않은 것 같은데, 어떠냐?”
화연. 이미 소녀에게는 부모님이 지어준 이름이 따로 있었지만, 소녀는 새로 받게 된 그 이름도 좋았다.
꽃처럼 아름다운. 글자로 해석하면 다소 유치한 이름이지만 입에 착착 감기는 이름.
“아저씨의 이름은 뭐에요?”
“최가 유복이다.”
남자는 자신을 최유복이라고 불렀다. 다만, 종종 집에 찾아오는 그의 친구들은 그를 윤복이라고만 불렀고, 그에 따라 소녀도 자연스럽게 그를 윤복 아저씨라고 부르게 되었다.
최유복은 주변 마을에도 잘 알려진 능숙한 사냥꾼이었다. 그의 집 곳간에 자리잡고 있는 거대한 호랑이 가죽이 그 사실을 증명하듯, 그가 사냥감을 놓치는 날은 단 하루도 없었고, 그덕에 매일매일의 식사에는 늘 고기가 들어가 있었다.
그래서일까, 최유복과 함께 살게 된 소녀는 자연스럽게 그로 부터 사냥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호랑이는 어떻게 찾아요?”
“꿈도 꾸지 마라 이것아. 이 주변에 호랑이가 어딨다고.”
“하지만 저기 곳간에 호랑이 가죽도 있던데요.”
“그놈이 마지막 놈이었어. 나머진 다 팔아먹었거든.”
“…..”
활을 쏘는 법, 덫을 설치하는 법, 산짐승들이 다니는 골목을 찾아내는 법, 다친 사냥감을 추적하는 법, 세자고 하면 셀 수가 없을 정도로 소녀가 사냥꾼으로 부터 배운 것들은 무척이나 다양했다.
그렇게 배우고 또 배워가며 피한방울 섞이지 않은 새로운 가족과 함께하기를 하루, 이틀, 보름, 그리고 일년.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갔고 그렇게 세월이 지나갔다.
그럼에도 사냥꾼은 소녀를 딸이라 부르지 않았고, 소녀 또한 사냥꾼을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았지만, 둘의 관계는 누가 보아도 부녀나 다름 없을 정도로 가까워져 있었다.
아마 그래서 였을 것이다. 함께 지내기 시작한지 10년이 되었던 어느날, 소녀와 사냥꾼이 크게 다투었던 것은.
세상에서 가족만큼이나 사소한 일로 자주 다투는 존재는 없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