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Part-Timer Raises a Half-Elf RAW novel - Chapter (38)
알바생이 하프 엘프를 키우는 법-38화(38/245)
38
한집에서 서로 가족처럼 살아온게 10년. 강산도 바뀐다는 그 세월동안 부녀지간과 다름없는 사이로 지낸 덕에, 화연은 최유복이라는 남자가 어떤 사람인지 그 누구보다도 잘 알게 되었다.
인상과 같이 노는 거칠고 더러운 성격. 하지만 그러면서도 또 정은 많은 성격.
매일같이 어디서 가져온지 모를 술을 퍼마시며 요상한 노래를 흥얼거리고, 밤만 되면 집앞에 걸터앉아 활을 들고 술에 취한 채 보름달을 지겹도록 지긋하게 바라보는 괴상한 취미.
항상 무슨 사고라도 생기면 박박 잔소리를 늘어놓으며 화를 내곤 하지만, 그러면서도 또 내심 챙겨줄 건 다 챙겨주는 사람.
자상하다는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그녀가 봐온 최유복이라는 남자는 아버지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는 단 하나뿐인 가족이었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10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어도 여전히 그녀는 최유복을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았다.
이유는 그녀 본인도 알지 못했다.
고향에 두고 온 부모님의 얼굴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피를 나눈 가족이 아니여서인지, 혹은 그냥 아버지라고 부르는게 오그라들어서 그런 것인지.
한가지 확실했던 것은 당시 그녀는 딱히 최유복을 아버지라고 불러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었고, 최유복 또한 그녀를 딸이라고 부르는 일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일까, 부녀지만 부녀가 아닌 둘의 사이는 어쩔때는 가족같았고, 또 어쩔때는 친한 이웃처럼도 보였다.
거친 성격의 최유복과 당시에는 반항스러웠던 화연의 성격. 그런 둘이 한집에서 사니 하루하루가 조용하지 않았던게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아저씨!! 저번에 제가 캐온 산삼, 그거 드셨어요?!”
“어 그래. 안주로 먹으니까 달달~ 하더구만.”
남의 걸 뺏어먹은 걸로 다투거나,
“야 이것아!! 너 여깄던 술독 어쨌냐?!”
“저기 아랫마을의 돌석이네 줬는데요.”
…..남의 걸 뺏어먹은 걸로 다투거나.
“내 꿩 안주 어디갔어?!”
“제 약초 어따 팔아먹었어요?!”
…….또 남의 걸 뺏어먹은 걸로 다투거나.
그런 사소한 일들로 부녀지만 부녀가 아닌 둘은 늘 서로 다투고는 했다. 하지만 그렇게 다투면서도 날이 밝았다 싶으면 또 언제 다퉜냐는 듯이 또 사이가 좋아지곤 했었고, 그런 날들은 계속해서 반복되었다.
10번째 겨울이 찾아오기 전 까지는.
그날도 여느날과 다른게 없는 평범한 아침이었다.
“저 한양에 가볼려구요.”
“뭬야?”
항상 그랬듯이, 화연은 다소 뜬끔없는 말을 꺼냈었고, 최유복은 그런 그녀의 말에 황당하기 그지 없는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바라보았었다.
“갑자기 한양은 왜?”
“저번에 산길을 지나가던 어떤 나으리에게 들었거든요. 한양에서 어떤 특이한 머리색을 지닌 사람을 봤었다고.”
당시의 그녀는 평화로운 삶을 살고 있었지만, 그녀의 가슴 속 한켠에는 늘 사라지지 않는 한 감정이 서려 있었다.
외로움.
살면 살아갈 수록, 자신이 다른 이들과는 다르다는 사실에서 묻어나오는 외로움.
금을 녹인 듯한 머리칼도, 하늘색과 같은 눈동자도, 뾰족한 귀도, 그녀의 모든 것들이 전부 남들과는 달랐다.
인간들 사이에 섞여 살아가야만 했던 엘프 소녀. 이 세상에 자기 혼자 밖에 없다는 생각에 이따금 사무칠 정도로 홀로 울어왔던 소녀.
그랬던 그녀에게 있어서 자신과 똑같이 이 세계에 떨어졌을 동족들의 존재는 실마리 같은 소식만으로도 무척이나 반가운 존재들이었다.
“그러니까 한번 가서 찾아볼려구요. 저랑 똑같은 사람이 거기에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그랬기에 그녀는 간절한 희망과 함께 한양으로 길을 떠나려고 했었다. 최유복이 반대할 것이라는 생각은 별로 하지 않은 채.
어차피 영영 떠나는 것도 아니고 잠깐 다녀오는 것 뿐. 가서 못 찾으면 못 찾는 것이니 그냥 여행 좀 했다고 생각하고 돌아오면 그만.
화연의 생각은 가벼웠다. 하지만 최유복의 반응은 그녀가 예상했던 것 보다 더욱 거셌다.
“찾아보긴 뭘 찾아봐 이것아. 한양에 가는 것만 해도 보름인데, 지금 겨울이다 이년아. 지랄하지 말고 가서 먹을거나 좀 잡아와.”
“그런 건 알아서 잡으시고요, 말리셔도 전 한양에 무조건 갈거에요.”
“…안돼.”
“말리셔도 갈거라니까요?”
“그러니까 안된다고 이것아!!”
평소였다면 그냥 궁시렁 궁시렁 거리다가 그냥 맘대로 하라면서 신경을 껐을 것이다.
“하, 왜요. 저 없으면 밥 차리고 냇가에 가서 빨래도 해야되고 그러니까요?”
“……그래. 그러니까 나 굶어죽는 꼴 보기 싫으면 가서 사냥감이나 좀 잡아와라.”
“…..어이가 없어서 진짜.”
마찬가지로, 평소였다면 그녀 또한 못마땅한 혼잣말을 내뱉으며 마지못해 해달라는 대로 해줬을 것이다.
그러나 그날, 둘은 서로 평소처럼 행동하지 못했었다.
“그래요. 그럼 굶어 죽으시던가요.”
“뭐? 너 방금 뭐라 했어.”
“굶어 죽으시라구요. 이딴 산골짜기 집구석, 어차피 나갈 때 됐으니까 나갈게요.”
“야 이년아! 너 거기 안서?!”
둘은 가족이었지만, 가족이 아니었다.
둘은 서로를 잘 알고 있었지만, 그런만큼 서로에 대해 모르는 것도 있었다.
당시의 그는 알지 못했다. 인간이 아닌 그녀가 끝없는 외로움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것을.
당시의 그녀는 알지 못했다. 인간인 그가 딸아이를 미치도록 걱정하고 있었다는 것을.
가족이었기에 솔직하지 못했고, 가족이 아니었기에 쉽게 헤어질 수 있었다. 그날 그렇게 화연은 집을 나와 한양으로 떠나버렸고, 오랜 세월동안 집을 찾지 않았다.
처음에는 괜찮았다. 당시의 17살이면 혼례를 치루고도 남을 나이였고, 비록 처자 홀로 산을 넘어 한양까지 간다는게 험난 일이긴 하였으나 몸도 정신도 강인한 그녀에게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집을 떠난지 보름 하고도 하루가 지나던 날, 화연은 별 탈 없이 한양에 도착할 수 있었고, 쉴 틈도 없이 막연하게 자신과 같은 처지의 엘프들을 찾아 다녔었다.
시간은 많았다. 영생과도 같은 삶을 사는 엘프인 그녀에게는 서두를 것이 없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걸어보는 한양 땅에서 그녀는 많은 것을 보았고, 많은 것을 겪었으며, 또 많은 곳을 가보았다.
그렇게 동족을 찾아다니며 한양 곳곳을 돌아다니기를 1년. 그 1년 동안 사람에게 사기도 당하고, 요괴로 오해받아 쫒기기도 했던 그녀였지만 소득은 전혀 없었다.
한양에는 동족이 없다는 걸 확신하게 되기 까지 걸린 시간이 1년. 그렇게 고생만 고생대로 하고 1년이 지나가버리자, 그녀는 한양을 떠나 전국 팔도를 전부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때로는 떠도는 소문을 따라서, 어쩔 때는 발길이 닿는 대로, 그녀는 동족을 찾고 또 찾았다.
정처없이 떠도는 삶은 고난하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
인적이 드문 산길에선 산적들의 습격을 받는 일도 빈번했고, 어떤 마을에선 요물이라고 박대 당하며 돌을 맞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잘 곳이 마땅치 않아 장맛비에 추위로 떨며 밤을 지새는 건 일상이었고, 한여름의 열기에 지쳐 쓰러지는 건 거의 습관이나 다름 없었다.
그런 고생을 해가면서 동족을 찾기라도 했었다면 그나마 위안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아무리 고생해도, 아무리 노력해도, 그녀는 그 누구 하나 찾을 수 없었다. 찾으려고 하면 할 수록, 점점 더 혼자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게 될 뿐이었다.
찾다 보니 흘러가버린 세월은 1년에서 10년으로, 10년에서 또 20년으로, 그렇게 정처없이 흘러만 갔다.
그러다가 집에서 뛰쳐나온지 30년째가 되던 어느날, 지칠대로 지쳐버린 그녀는 문득 산골짜기 한구석에 있는 작고 초라한 고향집을 떠올렸다.
뚜렸했던 목표는 이미 반쯤 포기한지 오래였다. 그녀는 잠시 쉬고 싶었고, 집이라고 떠올릴 수 있을만한 곳은 오로지 예전 그곳 뿐이었다.
그녀는 지친 발걸음을 옮기며 산을 넘고, 또 넘어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곳으로 향했다.
30년 만의 귀향이었다.
––––––––––
“…돌고 돌아서 다시 이곳이네.”
새하얀 눈밭. 내뱉는 숨결이 구름처럼 얼어붙는 추위.
아직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 추위와 배고픔에 허덕이며 맨발로 이 길을 하염없이 걸었던 그날을, 그녀는 아직도 기억한다.
“…..그때는 정말 죽는 줄 알았지.”
까칠하기 그지 없는 사냥꾼과 만났던 곳도, 바로 이곳이었다. 세월이 흐르고 나서 바라봐도 여전히 가파른 비탈길을 바라보며, 화연은 눈꽃이 휘날리는 나무들 사이를 거닐었다.
그날과 똑같이 날은 이미 저문지 오래였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화연은 그때처럼 달빛에만 의지한 채 산을 올랐다.
눈에 덮혀 길이 보이지 않아도, 그녀의 발걸음은 여전히 길을 기억하고 있었다.
남동쪽으로 백보. 눈에 띄는 거목이 자리잡은 오르막길을 오르면 보이는 허름한 집 한채. 그리고 늘 언제나와 같이 마루에 걸터앉아 술로 목을 축이며 훤한 보름달을 올려다 보는 나이먹은 어르신 한분.
30년 만에 다시 만난 최유복의 머리카락은 신선처럼 희게 새버린지 오래였다. 그의 얼굴에는 예전보다 주름이 더 많아져 있었고, 예전보다 조금 더 야위어 있었다.
강산이 서너번이나 변할 세월만에 다시 만나게 된 두 부녀였지만, 둘에게 인사는 필요하지 않았다.
“달을 그렇게 쳐다보면 떡이라도 떨어진답니까?”
화연이 최유복의 옆에 나란히 걸터앉으며 물었다. 그러자 나이를 먹어버린 그는 픽 웃으며 술을 한모금 들이켰다.
“떡은 안 떨어지지만 술맛이 좋아지기는 하지.”
“뭐 있는 척 풍류를 즐기는건 눈꼴시리다고 하셨으면서.”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이것아.”
최유복은 조용히 술잔을 내려놓았다. 텅 빈 술잔을 본 화연은, 조용히 술을 따랐다.
“많이 늙으셨네요.”
“그러는 넌 여전하구나.”
“저에겐 고작 30년이었으니까요.”
“끌끌… 자랑해봤자 하나도 안부럽다.”
최유복은 화연이 따라준 술을 들이키며 자랑아닌 그녀의 자랑을 무시했다.
“한양은 살만 하더냐?”
“아뇨. 사람이 너무 많아서 피곤하더라구요. 양반들도 차고 넘쳐서 꼴보기 싫고.”
“내 그럴 줄 알았다.”
“…..”
최유복의 말에 화연은 쓴웃음을 지었다.
“특별히 보름달만 이렇게 쳐다보시는 이유라도 따로 있어요?”
화연이 최유복에게 물었다. 돌이켜 보면, 그는 늘 보름달이 뜰 때만 저렇게 밖에 나와 술을 마시곤 했었다.
“…해는 너무 밝아 쳐다볼 것이 못 되지 않느냐. 그러니 보름달이라도 편히 바라봐야지.”
“하긴… 듣고보니 그렇네요.”
화연은 최유복의 말 속에 담겨진 속뜻이 무엇인지 알았지만, 구태여 입에 담지 않았다.
대신, 그녀가 입에 담았던 것은 그간 단 한번도 불러본 적이 없는 호칭이었다.
“…아버지.”
“아버지는 무슨, 손발이 다 오그라든다 이것아.”
“그냥… 한번 이렇게 불러보고 싶었어요.”
“….”
최유복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담담한 표정으로 계속해서 보름달을 올려다 볼 뿐이었다.
“동족을 찾는 일은 어떻게 됐느냐?”
“한명도 못 찾았어요. 30년을 찾아봤는데… 힘들어서 아무래도 그냥 포기할까봐요.”
“그야 당연히 힘들겠지. 누가 너처럼 30년 동안이나 쉬지도 않고 전국 팔도를 쏘다닌다더냐 이 미련한 것아.”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못 찾을 테니까요.”
혀를 차며 나무라는 최유복의 말에, 화연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그리 대답했다.
“인연이라는건 찾을려고 해서 찾아지는 것이 아니라, 그냥 어느날 들이닥치는게다. 그러니 괜히 힘들여가며 애쓰지 말고, 삶을 즐기며 기다려 보거라.”
“…상당히 무책임한 말씀이시네요. 대단한 확신이라도 있으신가봐요?”
“확신은 무슨. 나야 모르지. 인연이 너를 찾아올지, 아니면 계속해서 비껴나갈지, 난들 어떻게 알겠느냐. 내가 무슨 천지신명도 아니고.”
“….”
“하지만 너에게 시간은 많지 않느냐. 그러니 한번 차분히 기다려 보거라. 100년이고 200년이고 기다리다 보면 언젠가 한번쯤은 인연이 닿겠지. 정 원한다면 내기 해도 좋다.”
“…웬일로 좋은 말씀을 다 해주시네.”
“딸아이 한테 이런 좋은 말을 한번 쯤은 해줘도 되겠다고 생각한 것 뿐이다 이것아.”
“….”
씁쓸하던 화연의 미소가 점점 더 무너져갔다. 겨울이라 그런지, 아니면 막연한 감정 때문인지 눈가가 시렸다.
“…아깐 손발이 다 오그라드신다더니.”
화연은 조용히 고개를 떨구며 반쯤 잠긴 목소리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
“….아버지?”
시답지않은 변명이라도 늘어놓으실 줄 알았는데,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눈과 달빛만이 눈물로 일그러진 가운데, 화연은 조용히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아버지는 대들보에 머리를 기댄 채 마치 주무시는 것 처럼 눈을 감고 계셨다.
인간의 삶은 덧 없을 정도로 짧았다. 그녀에겐 고작 30년이었던 세월이, 그에게 있어선 길고 길었던 30년이었다.
“….편히 주무세요.”
그녀는 온기가 식어가는 노인의 손을 붙잡으며 속삭였다. 하늘에서 떨어진 눈송이가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데 어찌 그리 짠 것인지, 그녀는 알 수가 없었다.
달빛이 만들어낸 두 부녀의 그림자가 잔잔하게 마루를 비췄다. 애잔한 겨울눈이 떨어지는 꽃잎처럼 주변을 에워쌌다.
그리고 그렇게… 그녀는 두번째 가족을 떠나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