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Part-Timer Raises a Half-Elf RAW novel - Chapter (39)
알바생이 하프 엘프를 키우는 법-39화(39/245)
39
두번째 가족을 잃고 나서야 그녀는 깨달을 수 있었다. 엘프로써 인간들 사이에 섞여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세월은 계속 흘러가지만, 그녀는 하염없이 그대로다. 세상은 변하고 사람들은 떠나가지만, 그녀는 늘 그대로였다.
오랑캐의 침략에 나라가 불길에 휩싸였을 때도,
매국노들에게 나라가 팔려나갔을 때도,
같은 민족끼리의 전쟁으로 모든 것이 무너졌을 때도, 그녀는 늘 그 자리에 있었다.
그런 많고 많은 세월 속에서 이따금 사람이 그리워 정을 준 존재들이 몇몇 있었지만, 그들 중 그 누구도 그녀와 함께할 수는 없었다. 끝끝내 그녀는 늘 혼자였으니.
아버지의 마지막 유언대로 한번 살아보겠다고 다짐은 했던 그녀였지만, 사실 큰 기대는 없었다. 그저 유언을 무시하는게 내키지 않았을 뿐.
그랬기에 그녀는 기약도 없는 인연을 기다리며 세월 속을 떠돌았다.
한 곳에 오래 머무를 수 없었던 그녀였기에 삶이 지루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살기 바쁜 삶을 살다보니 그녀는 더 이상 인연을 기다리지 않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사람들을 만나며 평범한 일상을 보냈다.
하지만 그녀의 아버지가 말했듯, 하염없이 살다 보면 언젠가는 인연이 찾아오기 마련이었다.
아주 갑작스럽게.
-화연 씨! 분유가 어딨죠?!
어느밤에 갑자기 어디서 났는지 모를 아기를 데리고 가게에 들이닥친 동료 알바생.
처음에 그녀는 큰 신경을 쓰지 않았다. 요즘 시대에도, 예전 시대에도 사고를 쳐서 애를 가지게 된 젊은 부모들이 한둘이 아니었으니.
그랬기에 그녀는 이한성과 수정이가 세상에 흔하디 흔한 그런 부모와 자식이라고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녀의 예상과는 달리 시간이 흐르면 흐를 수록, 위화감이 그녀의 가슴 속에 쌓이기 시작했다.
변명이라고만 생각하기에는 상당히 억울해 보이던 이한성의 태도, 그리고 평범한 아기라고 생각하기에는 어딘가 좀 많이 이질감이 드는 수정이.
우연인지, 아니면 필연인지 그녀는 계속해서 두 부녀와 마주치게 되었고, 그렇게 마주칠 때 마다 위화감은 계속해서 쌓이고 또 쌓였다.
그리고 그렇게 위화감이 쌓이다 못해 확신으로 변해가던 어느날, 그녀는 깨달았다.
어딘가 좀 특별하다고만 생각하던 아이에게, 자신과 같은 피가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너에게 시간은 많지 않느냐. 그러니 한번 차분히 기다려 보거라. 100년이고 200년이고 기다리다 보면 언젠가 한번쯤은 인연이 닿겠지. 정 원한다면 내기 해도 좋다
수줍음이 많은지 아빠의 등 뒤로 쏙 숨어버렸던 은발의 소녀. 처음이자,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동족의 소녀와 마주쳤던 그 순간, 이미 오래 전에 잊어버렸던 그분의 유언이 화연의 귓가를 스치고 지나갔다.
“…마지막까지 한번을 안 지셨네.”
참으로 오랜 세월이었다. 기약없는 만남을 기다리며, 목적도 없이 그저 살기만 하던 나날들이 참 길었다.
그럼에도 길고 긴 기다림 끝에 인연은 결국 그녀를 찾아왔다.
지쳐있던 그녀에겐, 충분한 보상이었다.
––––––—
“…그랬던 거에요.”
한적한 카페 안에서, 화연이 이야기가 길어지는 바람에 다 식어버린 에스프레소 컵을 조용히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마치 오랜 짐덩이를 내려놓은 사람 처럼, 그녀의 표정은 매우 후련해 보였다. 건 600년 동안이나 홀로 썩혀온 이야기를 처음으로 전부 털어놓은 그녀는 뒤늦게 몰려오는 부끄러움과 함께 마주편에 앉아있던 이한성의 눈치를 살폈다.
아니, 정확히는 살펴보려고 했다.
“…이한성 씨?”
“…..”
이야기가 길어졌던 탓일까, 아니면 오늘따라 많이 피곤해서 일까, 화연의 마주편에 앉은 이한성은 바로 옆자리에 앉힌 수정이와 함께 나란히 사이좋게 테이블에 머리를 박고 조용히 코를 골고 있었다.
“…저기요 이한성 씨.”
“……”
“…수정이 아버님.”
“컼-에? 예?”
이름으로 부를 때는 반응도 없더니, 수정이 아버님이라고 부르기 무섭게 이한성은 벌떡 고개를 들어올리며 자다 깬 반쯤 감긴 눈으로 안 자고 있던 척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아… 예, 그랬군요. 이야기 잘 들었습니다.”
“자고 계셨잖아요. 이제와서 안 자고 있었던 척 해도 늦었어요.”
화연이 뾰루퉁한 얼굴로 이한성을 쏘아보며 살짝 항의했다. 그러자 그는 그런 그녀의 항의하는 눈빛을 스리슬쩍 피하며 변명했다.
“아니… 솔직히 썰이 너무 길잖습니까. 무슨 고전 소설 읽어주는 것도 아니고…”
자고로 뭐든지 이야기 같은 것들은 5분 내로 딱딱 끝내주는 것이 바로 남자들끼리의 불문율이다. 정확히는, 친구라고 부를 사람이 거의 없는 이한성 개인의 불문율이지만 말이다.
‘얘기가 좀 길어지겠다곤 했지만 막 1시간 동안이나 주구절절 이어질 줄은 몰랐지. 너무 TMI였다고. 솔직히 그냥 한국에서 고려 말기 부터 지금까지 쭉 살아온 600살 엘프입니다-한마디면 충분하잖아.’
이한성은 그렇게 속으로 어쩔수 없다는 듯 불평을 늘어놓으며 조는 사이에 생긴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미적지근해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모금 들이켰다.
“뭐… 듣고보니 제가 너무 길게 얘기한 것 같긴 하네요. 죄송해요. 이런 얘기를 나눌만한 사람은 이제껏 이한성 씨가 처음이었거든요.”
“사과할 것 까진 아닙니다만…”
화연의 사과에 이한성은 졸았던 자신도 어느정도 잘못이 있다는 걸 속으로 인정하며 얼굴을 긁적였다.
“그럼 제 긴 이야기를 들어주셨으니 이젠 이한성 씨 차례네요. 뭐 말하고 싶으신 거나 물어보고 싶으신게 있으면 지금 얼마든지 하셔도 돼요.”
“아무거나요?”
“물론이죠. 너무 프라이버시를 침범하는 질문만 아니라면 얼마든지요.”
“그럼…”
뭐든지 물어보라는 화연의 자신만만함에 이한성은 잠시 뜸을 들이며 옆에서 깨물어주고 싶을 정도로 귀엽게 잠들어 있던 수정이를 흘끔 바라보았다.
“…하프엘프에 대해서 뭐 알고 계신거 있습니까?”
“많지는 않지만 어렸을 때 들었던 지식은 조금 기억하고 있어요. 정확히 무엇을 알고 싶으신가요?”
“하프엘프들의 체질에 관해서 알고 싶습니다.”
시스템의 설명에 따르면 섞이지 말아야 할 두가지 종족의 피가 섞인 비운의 존재들. 엘프들의 피를 견디지 못해 대부분 일찍 단명하게 된다는 운명을 타고난게 바로 하프엘프들이라고 했다.
“체질이라… 그렇다면 마력폭주에 관련된 걸 알고싶으신거군요?”
“네. 뭐 해결법이라던가 그런 건 없습니까?”
“음… 사실 해결법은 간단해요.”
“해결법-은?”
꼭 문제는 해결법이 아니라고 말하는 듯한 느낌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어지는 화연의 대답은 이한성의 예상대로였다.
“해결법이야 아이의 마력을 흡수하거나 특정한 방법으로 소모시키게 하면 그만이에요. 하지만 문제는 현실적으로는 그게 불가능에 가깝다는거죠.”
“어째서요?”
“그야 타인의 마력을 흡수하는 건 매우 위험한 일이거든요. 이해하기 쉽게 말하자면… 눈을 가린 채 페트병 속의 물이 바닥날랑 말랑 아슬아슬하게 비워내야 하는 작업이라고 해야할까…”
“…페트병 속의 물을 실수로 전부 비워내면 어떻게 되는 건데요?”
“그야 죽죠. 저희에게 있어서 마력이란 건 생명력이나 다름없거든요.”
“….”
꼭 피 빠지면 죽어요-하고 말하는 듯한 느낌이다.
별거 아니라는 듯 간결하고 이해하기 쉬운 화연의 대답에 이한성은 새삼 이제서야 눈앞의 여자가 600살 먹은 엘프라는 사실을 실감했다.
“그럼 특정한 방법으로 소모시킨다는 건 어떤 겁니까?”
“그것도 간단해요. 이를테면 아이가 마법을 난사하게 만드는거죠. 살을 빼려면 운동을 해야 하는 것 처럼요. 물론 문제는-”
“-갓난아기들한테 그런 걸 시킬 방법이 없다, 이건가…”
걸음마도 안뗀 아기들한테 마법을 가르친다는 건 불가능하다. 이미 그 나이때의 아기들과의 의사소통이 불가능하다는 걸 진작에 경험해 본 이한성은 아주 잘 안다는 듯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이한성 씨도 참 대단하시네요. 수정이도 다른 하프엘프 아이들 처럼 마력폭주를 겪어왔을텐데… 대체 어떻게 대처하신 거에요?”
“돈으로요.”
“…네?”
Mp와 Hp의 상한치를 올려주는 사기적인 아이템, [세계수의 이슬]. 시스템의 상점 메뉴에서 판매하는 그 아이템의 가격은 무려 10만 골드. 한화로 100만원 짜리의 가치를 지닌 창렬한 가격의 약이다.
하지만 너무 어린 시절에 지구로 온 탓에 시스템이니 뭐니 하는 것에 대해 거의 아는게 없다시피 한 엘프인 화연에게 그런 세세한 지식이 있을리가 없었다. 애초에 그녀는 엘프라기 보다는 그냥 오래 산 인간에 더 가까운 존재였다.
“설명하긴 길지만 뭐 그런게 있습니다. 아무튼, 중요한건 요녀석의 체질을 해결하기 위해선 우선 마법을 가르쳐야 한다, 이 말이죠?”
“예… 뭐 그렇죠.”
아무 걱정도 없이 세상 평화롭게 자고 있는 수정이를 바라보며 이한성이 묻자, 화연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그러자 이에 이한성은 근심이 폭발하는 표정으로 생각에 잠겼다.
‘…어떡하지? 마법을 가르쳐야 한다니… 지구에 무슨 마법과외하는 선생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대치동에 가도 온통 수학이나 국사 과외 뿐이지, 마법 같은 판타지 감성이 넘치는 학문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게 당연하다.
‘애초에 그런 곳이 있다면 대한민국은 교육열 넘치는 학부모들 덕에 개나 소나 다 마법사들로 차고 넘쳐났을테지.’
외국에 유학가면 피아노 치는 애들이 많이 없다는데, 반에서 열댓 이상은 전부 다 한번씩 피아노 학원을 다녀본 경험이 있는게 바로 대한민국이다. 물론 이한성 본인은 꼬여버린 가족 사정 때문에 학원은 커녕 공부조차 제대로 해볼 환경이 아니었지만 말이다.
이한성은 쓴웃음과 함께 늘 한가하기만 했던 학창시절을 떠올리며 속으로 자조했다. 그러자 그 순간, 화연의 목소리가 그의 회상 속을 비집고 들어왔다.
“저기요, 이한성 씨. 보니까 수정이 문제로 고민하고 계신 것 같은데… 지금 앞에 앉아있는게 누군지 잊으신 건 아니죠?”
“…아.”
맞다. 저 사람, 엘프였지?
그새 또 깜빡 잊고 있었던 사실을 떠올린 이한성은 손뼉을 딱 치며 눈앞의 고려대 아닌 찐 고려 출신의 엘프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사실을 깨닫기 무섭게, 그는 각설도 없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시급 만 원. 어떻습니까?”
“네?”
서론이 짧다 못해 아예 생략된 이한성의 물음에 화연이 순간 당황한건지 황당한건지 모를 목소리로 되물었다.
“너무 적다는 겁니까? 그럼 만 오천 원?”
“아, 아니, 그게 아니라 갑자기 왜 돈 얘기를 하시는…”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시급 2만원 드리겠습니다.”
“네. 뭔진 모르겠지만 할게요.”
시급 2만원. 무슨 이야기인지 아직 이해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 600살의 지혜로운 엘프는 단돈 2만원에 자신을 팔아넘겼다.
600년을 산 엘프에게 있어서도 시급 2만원은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