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Part-Timer Raises a Half-Elf RAW novel - Chapter (4)
알바생이 하프 엘프를 키우는 법-4화(4/245)
04
…젖병?
말랑말랑한 고무재질로 이루어진 뚜껑. 과학실험에 쓰는 플라스크 마냥 눈금이 새겨져 있는 게 보통이고 수유의 불편함을 조금이나마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도구.
당연하게도, 독신의 남성이 가지고 있을 법한 물건은 절대로 아니다.
“저… 화연 씨. 혹시 우리 편의점에 젖병도 팔던가요?”
“젖병이요? 없어요.”
확신이 충분하다 못해 넘쳐나는 대답이었다. 그런 화연의 대답을 들은 이한성은 분유를 타기 시작하기도 전에 좌절하고 말았고, 이내 속으로 말도 안 되는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아니, 상식적으로 분유를 팔 거면 젖병도 같이 세트로 팔아야 되는 거 아니야? 왜 따로따로 파는건 데?’
분유를 사기 전에 미리 젖병을 사두는 것은 상식이다. 다만 그건 어디까지나 정상적인 부모들에게나 해당되는 법이고, 비정상적으로 하루아침에 부모가 되어버린 이한성이 그런 부모들의 상식을 알고 있을리가 없었다.
‘미쳐버리겠네 진짜… 분유는 지금 당장 먹여야 하는데 젖병이 없고, 그냥 일회용 컵에다가 타서 먹일까?’
[띠링-]“?”
점점 초조해져가는 마음으로 잔뜩 고민하던 그 순간, 익숙한 소리와 함께 메시지 창이 이한성의 눈앞에 나타났다.
[상점 기능이 해금되었습니다. 이용하시겠습니까?]“상점?”
이건 또 뭐야.
매점도 아니고 편의점도 아니고 상점이라니, 게임 속에서나 볼 법한 단어를 보게 된 이한성은 영 미심쩍은 눈초리와 함께 조심스럽게 [YES] 버튼을 눌렀다.
[소지 골드: 0]그러자 가장 먼저 이한성의 눈앞에 나타난 것은 휑해도 너무 휑한 숫자, 그리고 초라하다는 말 밖에 나오지 않는 아이템들뿐이었다.
[싸구려 젖병: 150골드] [홈메이드 딸랑이: 350골드] [급조 기저귀: 500골드]상점이라 해서 뭐라도 쓸 만한 물건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메뉴에 있는 아이템은 고작 그 3개가 전부였다. 그리고 그마저도 현 소지 금액이 0인 탓에 얻을 수가 없는 물건들 뿐. 세상에 이보다도 쓸모없는 상점은 아마 없을 것이다.
“아니, 돈이라도 주고 상점을 해금해주던가 이게 대체 뭐하자는 거야.”
돈도 주지 않고 물건을 사라는 상점 메뉴를 본 이한성은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상점 메뉴를 닫으려고 했다. 그러나 그 순간 갑작스럽게 나타난 메시지 창이 깜빡거리며 그의 손길을 가로막았다.
[초회 한정으로 해당 아이템 중 하나를 무료로 지급 받을 수 있습니다.]3개 중 하나만 고르라니, 무슨 포x몬도 아니고…
이한성은 속으로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조용히 메뉴에서 싸구려 젖병을 선택했다.
[구입이 완료되었습니다.]순간 밝은 빛이 번쩍임과 동시에 메뉴에 그림으로만 존재했던 젖병이 실체화 되었다.
딱딱하고 거친 꼭지 부분과 나무로 만들어진 병. 현대 사회에서 만들어진 물건이 아니라는 걸 짐작케 하는 엉성함.
정말로 이름과 딱 들어맞는 젖병이다. 그런 생각과 함께 이한성은 눈앞에 뜬 메시지 창을 읽었다.
[싸구려 젖병: 엘프들의 숲에서 자라난 나무와 사슴의 가죽으로 만들어진 젖병. 거칠고 불편하지만, 위생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편의성: E-] [가성비: B+] [친환경: A-]“뭐… 위생에는 문제가 없다니까 이거면 되겠지.”
어차피 공짜로 얻은 물건이다. 사용하는데 지장만 없다면 성능이 어떻든 간에 아무 문제가 없으리라.
성능 보다는 가성비를 중요시하는 이한성은 메시지 창을 치우고는 분유통에 적혀있던 설명서대로 젖병에다 물을 따르고 전자레인지에 넣어 돌리기 시작했다.
“어디보자… 90초라고 했었지?”
1분 30초. 컵라면 끓이는 것의 절반 정도의 시간. 딴 생각을 하다 보면 금방 지나가고도 남을 시간이지만, 정작 기다리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렇게 짧지도 않은 정도의 시간이다.
[삐익-]설정해 두었던 타이머가 끝나며 전자레인지가 작동을 멈췄다. 그러자 이한성은 재빠르게 전자레인지를 열어 넣어두었던 젖병을 꺼냈고, 곧바로 분유 가루를 물에 타기 시작했다.
‘티스푼 3개 정도만 넣으라고 하긴 했었는데… 에라 모르겠다. 대충 눈대중으로 넣으면 되겠지.’
누가 라면을 끓일 때 설명서에 적혀있는 그대로 물을 정확하게 따르겠는가. 어차피 대충 어림잡아 끓여도 맛있는 것처럼, 분유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다 됐다.”
[대충 만든 분유: 설명서를 무시하고 가장 기본적인 틀만 지켜서 만들어낸 분유. 먹을 수는 있지만 딱 그 수준이다. 이게 분유냐.] [영양가: C] [맛: F+] [정성: N/A]메시지 창이 이한성의 눈앞에 떠오르며 그가 만든 분유에 대해 온갖 혹평을 자아냈다. 그러자 나름 고생해서 만들었다고 생각하던 그는 순간 욱 하며 눈살을 찌푸렸고, 이내 거칠게 메시지 창을 눈앞에서 치워버렸다.
“원하는 것도 많네. 분유 타줬으면 만족해야지, 뭘 더 바라는 거야.”
가뜩이나 2만 2천원이나 들여서 분유를 사다가 이렇게 손수 만들었는데 감사 인사는커녕 불평이라니. 양심은 휴지랑 같이 변기에 내리고 온 모양이다.
그렇게 속으로 시스템을 까내리며, 이한성은 분유가 담긴 젖병을 들고 계산대에서 기다리고 있던 아기에게로 향했다.
“어라? 젖병은 어디서 나셨어요?”
잠시 계산대에서 아기를 봐주고 있던 화연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한성에게 물었다. 딱 봐도 눈에 띄게 희한하게 생긴 젖병을 쳐다보는 그녀의 시선에, 이한성은 적당히 말을 둘러댔다.
“아… 집에 놓고 온 줄 알았는데 가져왔더라구요.”
“다행이네요. 근데 그 젖병 어디서 사신 거예요? 되게 신기하게 생겼네.”
보통 젖병이라고 하면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지기 마련이다. 환경 호르몬이 어쩌니 저쩌니 하는 논란이 많은 물질이긴 하지만, 플라스틱만큼이나 편리하고 유용한 재질은 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한성이 들고 있는 젖병은 나무와 가죽으로 만들어진 젖병이다. 조선시대나 중세시대라면 모를까, 현대시대에서 쉽게 볼 수는 없는 물건인 것이다.
“쿠, 쿠x에서 샀어요. 그… 나무 재질이라서 플라스틱 보다 애들한테 좋다고 하더라구요.”
“아~ 하긴, 플라스틱은 환경 호르몬 문제 때문에 좀 그렇긴 하죠.”
“아, 네네.”
스스로 생각해도 꽤나 그럴싸한 변명이었다. 다행히도 별 다른 의심 없이 넘어가는데 성공한 이한성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뱉으며 서둘러 울고 있던 아기한테 분유를 먹이기 시작했다.
“빨리 마시고 좀 자라. 나도 좀 쉬자.”
밤 10시에 편의점에 나와서 이게 대체 뭐하는 짓거리인지.
평소 1주일 전체를 알바시간으로 꽉꽉 채운 채 살고 있는 이한성에게 있어서 수면시간은 매우 중요하다. 하루 최소 10시간. 못해도 8시간. 매일 같이 그 정도의 수면을 취해야지 그나마 몸이 버텨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이한성의 사정을 꿈에도 이해하지 못하는 아기는 그저 건네받은 젖병을 입에 물고 안에 든 분유를 쪽쪽 빨아들이며 배를 채울 뿐이었다.
“우으으…”
아기가 분유를 마시다 말고 갑자기 불평이 가득한 얼굴로 이한성을 바라보았다.
“뭐. 또 왜.”
이번엔 또 무슨 불만이 있어서 저렇게 쳐다보는 걸까.
“분유가 맛이 없는 모양인데요?”
아기의 표정을 지켜보던 화연이 말했다. 그러자 그런 그녀의 말에 이한성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아기에게 항의했다.
“야 임마, 그거 2만 2천원짜리 분유야. 이게 알바생인 나한테 얼마나 비싼 건지 알기나 해?”
“우으앙!”
“됐고, 그거 빨리 다 마셔. 세상이 어디 불평한다고 누가 다 해결해주는 편리한 곳인 줄 알아? 아니거든. 정 먹기 싫으면 니가 직접 타서 마시던가 하라고.”
순 억지다. 아기에게 저런 말을 한다 한들 아무 짝에도 소용이 없는 헛수고다. 아직 자아라는 것이 발달되지도 않은 생물에게 아무리 잔소리를 한다고 해서 해결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한성 씨. 혹시 애가 그걸 알아들을 거라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죠?”
화연이 좀 모자란 사람 쳐다보는 듯한 눈빛으로 이한성을 바라보며 그렇게 물었다. 그러자 이에 이한성은 자신이 너무 흥분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는 조용히 숨을 내뱉었고, 그녀에게 사과했다.
“아, 죄송합니다. 제가 오늘따라 스트레스를 너무 받아가지고.”
평소에 밖에서는 자신의 꼬일대로 꼬이고 더러운 성격을 드러내지 않는 이한성이었지만 오늘의 그는 자신의 본모습을 숨기기에는 너무 말도 안되는 일을 많이 겪은 상태였다.
“하긴, 저도 애 아빠가 도망가서 혼자 애를 키워야 한다면 충분히 그럴 것 같아요.”
“…네?”
갑자기 무슨 소립니까? 그 현실에 진짜로 일어날 법 한 무서운 이야기는.
“사정은 잘 모르겠지만 전 한성 씨를 충분히 이해해요. 많이 힘드시겠죠. 알바도 뛰면서 자식을 키워야 한다니, 참…”
“아니아니, 잠깐만요. 지금 상당히 깊은 오해를-”
“아니요. 숨기지 않으셔도 돼요. 아무리 사회가 한성 씨 같은 사람들에 대해 수근거리더라도 당당해지셔야죠. 아버지가 되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니에요.”
“아니 그러니까 전 그런 게 아니-”
“이한성 씨! 한성 씨가 아버지인 걸 부정하면 이 애는 누가 지켜주나요!”
화연이 언성을 크게 높이며 이한성이 해명 할 기회를 끊어버렸다. 이에 아까부터 계속 발언권을 빼앗겼던 이한성은 참다못해 소리를 지르며 그녀에게 항의했다.
“아 쫌!! 내 말 좀 들어보라고 이 사람아!!”
“아 깜짝이야. 왜 갑자기 소리를 지르고 그래요…?”
“그쪽이 먼저 소리 질렀잖아요! 사람 말을 좀 끝까지 들으면 무슨 혓바늘이 팝핀댄스라도 칩니까? 사람이 말을 못하게 해 말을.”
“아니… 그럼 끝까지 하려던 말이 대체 뭔데요?”
흥분해도 단단히 흥분한 이한성의 모습에 화연은 뻘쭘거리며 그렇게 물었다.
“그러니까. 얜 제 딸이 아니라고요. 피도 안 이어졌고, 입양한 적도 없고, 그냥 오늘 퇴근하고 나니까…”
“나니까?”
“…생겼어요.”
순간 둘 사이에 정적이 흐르기 시작했다. 자신이 내뱉고도 별 신빙성이 없는 말이라는 걸 잘 자각하고 있던 이한성은 깊은 한숨과 함께 이내 해명하는 것을 포기했다.
“그냥 제 딸 맞다고 합시다 그래. 어우, 머리 아파…”
오해 하면 뭐 어떤가. 어차피 내일이면 보육원에 애를 보낼거고, 그러면 골치 아픈 거 없이 다 해결될 텐데.
굳이 해명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 이한성은 그렇게 스스로를 타이르며 다시 아기에게 분유를 먹이기 시작했다.
“우으응…”
처음에는 맛이 없다고 거부하던 아기였지만 그래도 배고픔을 이길 수는 없는 법이었다. 아기는 하는 수 없이 얌전히 분유를 전부 다 마셨고, 이한성은 그제서야 한시름을 놓을 수가 있었다.
[띠링-]“응?”
[돌발 퀘스트를 클리어 하셨습니다.] [클리어 랭크: E+] [클리어 보상이 지급됩니다.] [+1500골드] [보호자의 레벨이 상승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