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Part-Timer Raises a Half-Elf RAW novel - Chapter (44)
알바생이 하프 엘프를 키우는 법-44화(44/245)
44
핸드폰의 화연에 띄워진 9 뒤에 0이 8개나 붙어있는 숫자를 바라보며 이한성은 거의 침이 질질 흐를 정도로 입가에 미소를 띄웠다.
“어우, 사랑스러운 숫자들아. 어서오렴.”
결론부터 말하자면, 일은 아주 순조롭게 진행됐다.
구창식이 모든 증거들을 가지고 경찰서에 자진출두한지도 어느덧 2주. 그 사이에 법원은 화연이 예상했던대로 구창식에게 사기죄로 줄 수 있는 최대 형인 10년 징역에 더불어 재범인 것 까지 고려해 5년을 추가했고, 그렇게 양심의 가책도 없이 남의 돈을 꽁쳐먹어온 인간 쓰레기는 15년 동안이나 감옥에서 썩게 되었다.
게다가 구창식이 자수하는 과정에서 발견 된 증거들 덕에 경찰은 빠르게 구창식이 숨겨둔 계좌를 찾아낼 수 있었고, 바로 검찰에 증거를 넘겨 피해자들에게 돈이 돌아갈 수 있도록 조치를 취했다.
‘뭐, 아무래도 이렇게 일이 빠르게 해결된 걸 보면 송강욱 판사님이 입김을 좀 넣으신 것 같지만 말이야.’
법적으로 일이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보통은 일이 이렇게나 빠르게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 쯤은 대강 알 수 있다.
아무튼 그렇게 되서 똑같이 구창식에게 사기를 당한 피해자인 이한성에게도 피해금액이 되돌아오게 된 것이다.
비록 실제로 그가 금전적으로 피해를 보지는 않았었지만 말이다.
“시스템에 있는게 10억, 그리고 은행 계좌에 들어있는게 9억… 와 미쳤다 진짜.”
실제로 이한성은 계약금을 사기당하자 마자 시스템의 도움으로 돈을 되찾았었다. 하지만 시스템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경찰이 구창식의 숨겨진 계좌에서 갑자기 사라져버린 9억의 행방을 찾을 수 있을리는 만무했고, 그렇게 결국 구창식은 애당초 빼앗지도 못했던 9억을 고스란히 이한성에게 돌려줘야 했었던 것이었다.
“난 진짜 이상한데에서 머리가 잘 돌아간다니까.”
사기꾼에게 돈을 뜯기기는 커녕 도로 돈을 뜯어내는 잔머리. 이한성은 사기꾼 행세를 하지 않을 뿐, 자질은 충분하고도 남을 정도로 돈에 대해서는 그 무엇보다 머리가 잘 돌아가는 편이었다.
“아빠~ 뭐 보고 있어?”
소파에 앉아서 가만히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고 있던 이한성에게 은발머리의 수정이가 해맑은 미소와 함께 다가와 말을 걸었다.
“이번 달 월급.”
“월급? 아빠 백수자나.”
“어헛. 백수가 아니라 자택경비원이야.”
차마 백수라는 걸 인정하기는 싫었던 이한성은 그렇게 순진한 수정이를 속이려고 했다. 그러나 이윽고 까탈스러운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오며 이한성의 되도 않는 말을 가로막았다.
“지랄한다. 그게 백수지.”
“너무하시네… 애 앞에서 백수라고 인정하고 싶진 않거든요?”
“그럼 일자리나 좀 찾아보던가.”
집주인 아주머니가 까칠한 말투로 이한성을 구박했다. 정말 왠지 모르게 날이 가면 갈 수록 점점 더 잔소리가 늘어나기만 하는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이한성은 아주머니가 접시에 깎아오신 배 한조각을 입에 넣었다.
“일자리 보다는 이사 부터 해야죠. 돈도 되찾았고 했으니까.”
“어디로 이사 갈 생각인데?”
“전에 수정이가 마음에 들어했던 집이 있어요. 일단 거기를 한번 알아보고 나서 결정하려고요.”
“기왕 알아볼거면 이번에는 확실하게 알아봐. 괜히 또 계약사기 당하지 말고.”
격려해주시기는 못할 망정 또 잔소리시네. 들으면 들을 수록 점점 더 엄마가 있는 것 같아서 기분이 이상하다니깐.
“두번 속을 일은 없으니까 걱정 마세요.”
“하긴 뭐… 총각이 두번이나 당할 정도로 멍청이는 아니겠지.”
아주머니는 그렇게 피식 웃으시며 거실 한구석에 쌓여있는 박스들을 바라보셨다. 이사가 갑작스럽게 취소 되었던 탓에 어정쩡하게 공간만 차지하게 된 이삿짐들이었다.
“저걸 좀 치우지, 정신 사납게 왜 거실에다가 두고 난리야.”
“어차피 좀 있으면 이사갈건데요 뭐.”
좀 예정이 늦어진 것 뿐이지.
계약 사기니 뭐니 하는 일로 일정이 좀 꼬이기는 했지만 늦던 빠르던 이사를 갈 거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그랬기에 이한성은 굳이 미리 다 정리해둔 이삿짐을 죄다 풀어헤치는 것 보다는 그냥 당분간은 구석에다 방치해 두기로 한 것이다.
“하이고… 내가 봐준다 봐줘. 곧 이사갈 놈한테 잔소리 해봤자 무슨 쓸모가 있다고 쯧쯧…”
“쓸모야 있죠. 월세를 한번은 더 내고 가게 됐는데.”
“됐어. 있어봤자 얼마나 더 있는다고. 이번 달 월세는 안내도 되니까 가기 전에 집이나 싹 청소해놔.”
항상 월세에 대해선 깐깐하셨던 아주머니의 입에서 나왔다고는 전혀 믿을 수 없는 말이었다.
“…정말요? 이번 달 월세 안받으시게요?”
“내가 깐깐한 건 맞지만 집 사느라고 돈도 없을 젊은이한테 월세를 뜯어낼 정도로 냉혈한은 아니야. 어차피 총각이 나가도 세입자야 얼마든지 있고.”
마치 네 까짓게 주는 월세 따위엔 관심 없다고 말하시는 듯한 말투였다. 하지만 그런 겉으로는 까칠한 목소리 속에도 일말의 정이 담겨있다는 걸 느낀 이한성은 일부러 말을 까칠하게 하시는 아주머니를 바라보며 현관문까지 배웅해 드렸다.
“가시게요? 수정이 좀 더 보고 가시지.”
“은근 슬쩍 육아를 떠넘기려고 하지 말고 총각이 직접 놀아줘. 보니까 항상 아빠만 찾더구만.”
“놀아준다고 해도 뭘 어떻게 해야하는지 감이 안잡히는데요…”
“그냥 애가 해달라는거 해주고 먹고 싶다는 거 먹여주고 하면 되는거야. 총각도 그 정도는 알아서 잘 할 수 있겠지.”
아주머니는 그렇게 너무 고민하지 말라며 신발을 구겨 신고 현관문을 여셨다. 그러자 이내 문 열리는 소리를 듣고 달려온 수정이가 어디서 배웠는지 모를 90도의 배꼽인사를 올리며 아주머니를 배웅했다.
“할머니~! 조심히 가!”
“그래그래. 밖에 추우니까 나오진 말고.”
누가 보면 할머니와 손녀가 따로 없어보이는 장면이었다. 그렇게 이한성은 돈독하기 그지 없는 수정이와 아주머니를 바라보며 나지막히 인사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그려.”
아주머니가 무신경한 말투로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런 무뚝뚝하게 인사를 받으신 아주머니는 그대로 현관문을 닫고 금새 가버리셨고, 이에 이한성은 필시 낯을 가려서 저러시는 거리랴 짐작하며 홍삼 캔디를 쭉쭉 빨고 있는 수정이를 바라보았다.
“또 사탕 받았어?”
“응! 할머니가 줬써!”
수정이가 빨고 있던 사탕을 뱉어서 보여주려고 했다. 그러자 이한성은 급히 수정이를 말렸다.
“알아알아. 알고 있으니까 안 보여줘도 돼.”
“아빤 사탕 시러해?”
“응. 딴건 몰라도 그 사탕은 싫어해.”
민트초코와 같이 홍삼 캔디 또한 호불호가 극심하게 갈리는 음식 중 하나다. 좋아하는 사람은 잘만 즐겨먹지만, 싫어하는 사람은 거들떠도 보지 않는다.
“근데 수정이 너, 왜 자꾸 아줌마를 할머니라고 부르는거야?”
“그야 할머니니까?”
“아니, 아무리 봐도 할머니라고 부를 정도로 늙으시진 않았잖아.”
“아니야아 할머니는 할머니야.”
수정이가 뭐가 잘못 됐냐고 묻듯이 대답했다. 그러자 이한성은 한숨을 내쉬며 수정이에게 말했다.
“잘 들어. 할머니는 머리가 하얗게 변했을 정도로 나이가 많으신 여성 분들이나 부모님의 부모님을 부를 때만 쓰는거야.”
“부모님의 부모님?”
“그래. 예를 들어서 아빠의 엄마라던가.”
“그럼 할머니 맞자나.”
“아니지. 아줌마가 잔소리를 많이 하시긴 해도, 아빠의 엄마는 아니야.”
애초에 어머니의 얼굴은 본 적도 없다. 부모라고 해봤자 이한성에게는 부모같지도 않은 아버지 뿐. 태어나자마자 자식을 버렸던 어머니 쪽은 부모였던 적 조차 없다.
“우으… 그치만 할머니는 할머니인걸…”
수정이가 풀이 죽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앞으로도 아주머니를 꼭 할머니라고 부르고 싶은 모양이었다.
“됐다, 그래 니 마음대로 불러. 아줌마도 별로 신경 안 쓰시는 것 같으니까 괜찮겠지 뭐.”
애초에 할머니라고 불리는 게 싫다면 진작에 알아서 귀뜸을 해주셨겠지.
수정이가 할머니라고 부르고 싶다고 하고, 아주머니 본인도 별 말이 없으시니 냅둬도 아마 별 문제 없을 것이다. 그렇게 이한성은 풀이 죽은 수정이를 달래며 거실로 향했다.
[띵동-]“?”
거실의 소파에 편안하게 앉아서 쉬려던 그 순간, 갑작스런 초인종 소리가 이한성의 발걸음을 멈춰세웠다.
…누구지?
알고 있는 지인 중에서 이 집 주소를 알고 있는 사람은 몇 없다. 인간관계의 폭이 소갈딱지 마냥 좁은 이한성은 문을 열어보지도 않고 방문객이 누구인지 어렵지 않게 추려낼 수 있었다.
“화연 씨?”
아니나 다를까, 반쯤 확신과 함께 문을 열어보니 대한민국에서 보기 드문 금발이 한눈에 이한성의 시야를 가렸다.
“안녕하세요 이한성 씨.”
“…갑자기 어쩐 일이십니까?”
지난 2주 동안 연락도 없더니만. 갑자기 왜 찾아온걸까.
이한성이 최근에 마지막으로 화연을 봤던 것은 2주 전, 구창식이 경찰에 자수했던 날 밤의 경찰서 앞에서였다.
그날 그녀가 괜히 나이에 맞지 않은 귀여움을 보였던 탓에 서로 민망해져서 그 별 대화 없이 자연스럽게 헤어졌었고, 그 뒤로는 구창식의 재판에 증인으로 불려나가고 하느라 정신이 없었던지라 연락을 나눌 틈이 없었다.
“그야 이한성 씨가 연락을 먼저 안 해주시니까 이렇게 직접 찾아왔죠.”
“아니… 연락이 없으면 그쪽이 저한테 먼저 연락을 걸면 되는 거 아닙니까?”
“저 이한성 씨 전화번호도 모르는데요.”
“….”
그러고 보니까 나도 저 사람 전화번호 모르네 참.
알고 지낸지가 언젠데 아직 연락처 교환도 한번 안해봤다. 그도 그럴 것이 이한성과 화연은 서로 알바생 동료였던 시절부터 늘 임 사장이나 최 상담사 같은 제3자를 통해 연락을 주고 받았었기에 딱히 연락처를 주고받을 필요를 양쪽 다 느끼지 못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서로 남들이랑 연락같은 걸 잘 안하는 타입이었던 것도 있었지만 말이다.
“아무튼, 일단 집 안으로 좀 들여보내주면 안될까요? 밖이 꽤 추운데…”
“아 네, 들어오시죠.”
정말로 추워서 벌벌 떨고 있는 화연의 모습에 이한성은 바로 그녀를 집 안으로 들였다. 그러자 이내 현관에서 누가 왔는지 눈치를 살피고 있던 수정이가 활짝 웃으며 그녀를 반겼다.
“연이야!!”
“야, 이수정. 인사부터 해야지.”
이한성이 보자마자 강아지 처럼 화연에게 달려드려는 수정이를 제지하며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수정이는 이내 곧바로 이마를 땅에 박을 기세로 고개를 푹 숙이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여! 연이야~!”
하지만 그것도 아주 잠시, 예의바르게 인사를 하기 무섭게 수정이는 곧바로 화연에게 달려들어 그녀의 다리품을 꼬옥 안았다.
“수정아. 나 보고 싶었어?”
“응!”
“그래. 그럼 다음부턴 나 보고 싶을 때 아빠한테 막 떼를 쓰면 될거야.”
“저기요. 애한테 이상한 거 가르치지 마시죠.”
안그래도 가뜩이나 집주인 아줌마 한테서 별별 이상한 말을 배우고 있는데 여기서 더 이상해졌다간 나만 피곤해진다고.
이한성이 은근슬쩍 자신의 일상을 더욱 피곤하게 만드려는 화연을 곧바로 제지했다. 그리고는 아직 듣지 못한 그녀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러자 화연은 이내 이한성의 생각을 읽은 것 마냥 미소를 띄우며 바로 대답했다.
“지난번에 수정이한테 마법을 가르쳐 주겠다고 해놓고는 사기꾼 일 때문에 못했잖아요.”
아 맞다. 그랬었지.
하도 정신이 없었던 지라 그것 까지 깜빡 잊고 있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이한성은 애를 돌보겠다고 마음 먹었으면서도 애의 목숨과 관련된 일을 깜빡하고 있었던 스스로를 까내렸다.
‘잘하는 짓이다 이한성. 돈에 눈이 팔려서 그런 중요한 걸 까먹냐? 이 수전노 새끼야.’
“너무 자책하지는 마세요. 정신이 없다 보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으니까.”
화연이 또 이한성의 속마음을 들여다 보았는지 잠잠하던 그에게 위로의 말을 건냈다. 그러자 수정이 또한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마자마자! 할머니가 그랬는데 원래 나이가 들면 이것저것 까먹는대써!”
“그건 아줌마 처럼 나이 많으신 분들이나 그런거고.”
난 아직 그렇게 안늙었다 이것아.
아직 창창한 스무 살인 이한성은 건망증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수정이에게 그렇게 대꾸했다. 그러자 이내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화연이 들리지 않을 목소리로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내가 요즘 이것저것 막 까먹는게 건망증이라서 그런건가…?”
…..수정이의 말을 결코 흘려들을 수가 없는 600살 먹은 엘프 여자의 근심어린 혼잣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