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Part-Timer Raises a Half-Elf RAW novel - Chapter (51)
알바생이 하프 엘프를 키우는 법-51화(51/245)
51
“텃밭?”
누군가가 관리하던 흔적이 남아있는 흙이 눈에 띄었다. 벌써 초겨울이기도 하고 관리가 안되서인지 보이는 것은 듬성듬성 자라나 있는 말라죽은 잡초 뿐이었지만, 한때 누군가가 저곳을 텃밭으로 가꿨던 흔적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어머니께서 가꾸시던 텃밭입니다. 깻잎이나 고추 같은 걸 심어서 따다가 택배로 항상 보내주셨었죠.”
다니엘이 그립다는 듯이 웃으며 텃밭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 순간 수정이가 방방 뛰며 벌써부터 기대가 가득 찬 눈빛으로 이한성에게 물었다.
“아빠, 우리 뭐 키울거야?”
“글쎄다. 이왕 키울거면 손이 덜 가는 걸 키울 것 같은데.”
너무 귀찮은 건 사양이다. 어느정도 널널하게 돌봐도 혼자 잘만 자라는 작물을 심는게 좋겠지.
“바나나는 안돼?”
“안되는게 아니라 못해. 바나나를 여기서 어떻게 키우냐.”
“왜 못 키우는데?”
“바나나는 더운 곳에서만 자라거든.”
아무리 요즘들어 한국에서 열대화가 진행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 바나나를 키울 수 있을 정도는 아니다. 기껏해야 제주도 정도로 후덥지근 해야 겨우 키우는 게 가능할 정도니.
“그럼 홍삼나무는?”
“그건 비싸서 안돼. 키우는 법도 모르고.”
정확히는 인삼이겠지만 그냥 홍삼나무라고 해 두자.
“치, 다 안된대.”
“다 안되는게 아니라 네가 원하는 게 죄다 무리수라서 그런거겠지.”
누가 뒷마당에다가 바나나나 홍삼나무를 심으려고 하겠는가. 보통 상추나 깻잎 아니면 방울 토마토 같은 소박한 걸 심지.
아직 어려서 마당에다가 무엇이든지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수정이를 바라보며, 이한성은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러자 이내 화연이 불쑥 대화에 끼어들며 말했다.
“인삼이라면 저 키우는 법 아는데, 나중에 도와드릴까요?”
“…키워본 적 있어요?”
“네. 산삼도 캐 본 적이 있는걸요 뭘.”
“….”
뭘 캐봐? 산삼? 그거 전래동화 속에서나 나오는 유니콘 급 환상종 아니었어?
산삼이 하도 희귀한 탓에 여태껏 허상 속의 식물이라고만 생각했던 이한성이 경악스러운 얼굴로 화연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그녀는 별 것 아니라는 듯이 그저 미소로 대답 할 뿐이었다.
“아빠, 산삼이 뭐야?”
“홍삼이 진화한거.”
“그럼 홍삼보다 좋아?”
“비교도 안되지. 산삼이 훨씬 비싸.”
어떻게 홍삼 따위와 산삼을 비교하겠는가. 가격부터가 국산차랑 Fe라리를 비교하는 것과 다를 게 없는데.
순수한 수정이의 질문에 이한성은 본능적으로 산삼과 홍삼의 금전적인 가치의 차이를 알려주었다. 그러자 수정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그럼 산삼 캔디는 더 맛있겠네?”
“어… 글쎄다. 맛은 더 쓸 것 같은데.”
물론 진짜 산삼 캔디라는 게 있다면 말이야.
이한성은 수정이의 질문에 동심을 지켜주기 위해 그런 두루뭉술 한 대답을 내놓았다. 그러자 이내 두 부녀의 대화를 감상하던 다니엘이 널널한 미소와 함께 가수 저리 가라 할 정도의 성량으로 웃으며 말했다.
“아하하! 두 사람 다 텃밭이 마음에 드신 것 같아 다행입니다. 사실 부모님이 애지중지 하시던 거라 마음에 걸렸는데 잘 됐군요!”
“뭐, 일단 이것저것 키워 볼 의향은 있어서 말입니다.”
식물을 키우는 거야 뭐 물만 제때제때 주면 그만이니 키워서 나쁠 건 없다. 적어도 동물을 기르는 것 처럼 똥도 치우고 밥도 주고 씻겨주기도 해야 하는 것만 아니면 다 괜찮다는 마인드인 이한성은 그랬다.
“그나저나 지하실도 한번 둘러봤으면 좋겠는데, 괜찮겠습니까?”
2층의 구조가 1층과 별로 다를 게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이한성이 다니엘에게 물었다. 그러자 다니엘은 물론이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모두를 지하실로 안내했다.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지하실은 아직 리모델링이 안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좀 분위기가 스산하죠.”
[탁-]다니엘이 계단 옆에 붙어있던 스위치를 눌러 어두컴컴한 지하실의 불을 켰다. 그러자 그 순간 분위기가 스산하다는 다니엘의 말을 증명하려는 듯, 바닥 이곳 저곳이 헐어 있고 거미줄과 쓰레기가 잔뜩 쌓여있는 흡사 귀신의 집 비스무리 한 광경이 눈앞에 나타났다.
“어우야, 지하실은 관리를 따로 안하신겁니까?”
“예. 아버지랑 어머니가 살아계셨을 때도 지하실을 방치하셨던지라 한번 치우기 시작하면 끝도 없어서 진작에 포기했습니다.”
잘 쳐줘도 먼지구더기. 좀 박하게 말하자면 쓰레기장. 뭣하면 할로윈 때 귀신의 집으로 써도 될 정도의 음산한 분위기다. 그렇게 말끔한 1층과 2층과는 완전히 대비되는 지하실을 본 이한성은 나중에 치우려면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겠다고 속으로 한탄하며 사방에 흩날리는 먼지들을 바라보았다.
“엣취!”
“?”
갑자기 코맹맹이 소리가 나는 귀여운 재채기 소리가 울려퍼졌다. 범인은 다름아닌 수정이었다.
“아빠 나 콧물나와써.”
“아니, 그걸 뭘 또 보여주려고 하냐…”
수정이가 콧물 범벅이 되어있을 손바닥을 내밀자 이한성은 질색하며 피하려고 했다.
그러나, 수정이의 손바닥에 묻어있던 건 콧물 같은 것이 전혀 아니었다.
차갑게 빛나는 얼음 덩어리였다.
“????!”
이한성이 액체질소 속에 들어갔다 나오기라도 한 듯 얼음 덩어리가 되어버린 수정이의 손바닥을 바라보고는 무언의 비명을 내질렀다. 그리고는 이내 재빠르게 수정이를 안아들고는 다급히 외치며 잠시 자리를 비웠다.
“잠깐 화장실 좀 빌리겠습니다!”
“아, 예 물론이죠.”
다니엘이 고개를 끄덕이기도 전에 이한성은 수정이를 데리고 1층으로 다시 올라가 화장실 안으로 달려들어갔다.
[철컥-]“아빠, 나 쉬 안마려운데?”
화장실 문이 잠기는 소리와 동시에 수정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왜 그러냐는 듯이 물었다. 그러자 이한성은 재빠르게 수도꼭지를 왼쪽으로 비틀고는 흘러나오는 온수로 수정이의 얼어붙은 손을 녹이며 대답했다.
“쉬 때문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 앞에서 손이 이렇게 됐으니까 그러지!”
“응? 그치만 콧물이 자꾸만 나오는 걸.”
“이게 얼음이지, 콧물이냐? 니 눈에는 이게 콧물로 보이디?”
“응. 재채기 할때 나오는 건 콧물이라고 연이가 알려줬써.”
수정이가 자랑하듯이 확신하며 콧대를 세웠다. 이에 이한성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혹시나 동상을 입지는 않았는지 확인하기 위해 수정이의 손을 살펴보았다.
“휴… 손은 멀쩡하네.”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아마 동상으로 끝나진 않았었겠지.
수정이가 냉기에 대해 면역이라서 참 다행이다. 이한성은 그렇게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수정이에게 당부했다.
“수정아. 내가 늘 말했었지만 다른 사람 앞에서 이런 걸 보여주면 절대로 안돼.”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콧물 흘리면 안되는거야?”
“아니, 콧물이 문제가 아니라… 사람들 앞에서 마법을 쓰면 안된다는거야. 일부러든, 실수로든.”
“….왜 안되는데?”
수정이가 살짝 풀이 죽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이한성은 자세를 낮춰 수정이와 눈높이를 맞추며 수건으로 손의 물기를 닦아주었다.
“….다르니까.”
이한성의 목소리에는 살짝 미안함과 씁쓸함이 담겨져 있었다.
“넌 다른 사람들이랑은 조금 다르니까. 그래서 안되는거야.”
“매직큐어의 정체가 비밀인 것 처럼?”
“…그래.”
이한성이 거짓말로 대답했다.
고향을 떠나 낯선 세계로 떨어져 버린 아이. 인간과는 다른 시간을 살아가지만, 같은 공간에서 살아야만 하는 운명을 지닌 아이.
하지만 이 아이는 아직 모르겠지. 자신이 그런 특별한 존재라는 사실을.
하지만 언젠가는 알게 될 날이 올 것이다. 자신이 남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살아가는 시간이 다르다는 것을.
그리고 그때가 온다면… 나는 네게 뭘 해줄 수 있을까.
이한성의 눈가에 미처 숨기지 못한 씁쓸한 감정이 드러났다. 자신에게 있어선 아직 먼 미래를 아는 그는, 스스로에게 되뇌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적다는 건 필연적인 일이다. 인간의 수명은 고작해야 한세기. 앞으로도 몇 세기고 긴 인생을 살아갈 저 아이에 비하면 기껏해야 해가 뜨고 지는 하루에 불과한 시간이다.
진실은 때로는 아는 것 만도 못한 경우가 많아서 영원히 몰랐으면 좋겠지만, 그런 말도 안되는 억지를 바랄 수는 없다.
그저, 이 아이가 조금이라도 진실을 늦게 깨달았으면이라고 바랄 뿐.
[꼬르륵-]“…..”
순간 거창하게 울려퍼진 배꼽시계 소리가 잠잠하던 분위기를 깨며 이한성의 귓가에 맴돌았다.
“아빠. 얘가 배고프데.”
“배고픈 건 너겠지.”
자신의 배를 통통 두드리며 남 일이라는 듯이 말하는 수정이의 뻔뻔함에 이한성은 픽 웃으며 그렇게 대꾸했다.
…그래. 안나오는 답을 찾으려고 머리를 싸매봤자 뭐해? 당장 뭘 해줄 수 있느냐가 중요하지.
아직 다가오지도 않은 미래를 고민해봤자 머리만 아플 뿐이다. 그렇게 이한성은 고민부터 하고 보는 스스로를 나무라며 오지 않은 미래보다는 당장 배가 고픈 현재로 눈을 돌렸다.
“그러고 보니 점심을 아직 안먹었네. 뭐 먹고 싶어?”
“헤헤. 나 곱창 먹고시퍼!”
“거 비싼 것만 고른다… 곱창은 저번에 먹었으니까 오늘은 딴 거 먹자.”
“어떤거?”
“짬뽕.”
–––––––—
….근데 이걸 예상 못했네.
근처에 있던 중화식당의 앞에서, 이한성은 자신의 뒤를 따라 줄줄히 따라오고 있는 일행을 바라보며 그렇게 속으로 귀찮음에 찌들은 한탄을 내뱉었다.
“오, 분위기가 딱 맛집이다. 괜찮겠는데요?”
“짜장면이 한그릇에 4500원이라니, 라떼는 말이야 엉? 막 한그릇에 500원 밖에 안했었어.”
“짜장면이라… 마지막으로 먹어본게 벌써 5년 전이군요.”
아주 자연스럽게 따라온 화연과 아주머니, 그리고 다니엘이 저마다 중화식당의 유리창에 붙어있는 메뉴판을 바라보며 한마디 씩 내뱉었다. 그러자 이에 이한성은 모두를 바라보며 나지막히 항의했다.
“저기요들. 이렇게 꼭 우르르 몰려와서 밥을 먹어야 합니까?”
만약 이 세상이 전염병 때문에 글로벌 판데믹이라도 선언 된 어딘가의 평행세계였다면 분명 사회적 거리두기 안지킨다고 쌍욕을 먹었을 거다.
그런 실없는 생각과 함께 이한성은 각자들 알아서 먹으면 어디가 덧나냐고 묻는 듯한 눈빛으로 모두를 바라보았다.
“한국인이라면 다같이 먹는게 국룰이죠.”
“…..그런 외모로 그렇게 말하셔도 전혀 설득력이 없습니다만.”
누가봐도 외국인 처럼 생긴 화연이 그렇게 말하자 이한성은 전혀 공감이 안된다는 표정으로 대꾸했다. 그러자 아주머니는 그런 이한성의 대답에 곧바로 반론하셨다.
“원래 밥은 다 같이 오순도순 모여서 먹어야 맛있는 법이야 총각.”
“초면이신 분도 계신데 굳이 왜 그래야 되냐고요. 다니엘 씨가 불편해 하시면 어쩌려고…”
가뜩이나 다니엘은 외국에서 오래 살다 왔으니 굳이 다 같이 모여서 식사하려는 한국인의 본능에 익숙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짐작한 이한성은 다니엘을 핑계삼아 자신의 아싸기질을 감추었다.
그러나 다니엘은 아싸가 아닌 인싸였다.
“노노, 노 프라블럼. 저 사람들이랑 같이 먹는 거 아주 좋아합니다. 대학 풋볼 클럽 다닐 때 항상 친구들이랑 몰려 다니면서 같이 밥먹는게 취미였죠.”
“……”
역시 떡대가 그냥 큰게 아니었군. 진짜 왕년에 운동 좀 하던 사람이었어.
해외에서 오래 살았다 했으니 분명 그 기본 체격부터가 다른 서양인들 사이에서 치고박고 굴렀다는 뜻이다. 그러니 저리 덩치가 크고 우락부락해질 수 밖에 없었으리라.
“다니엘 씨가 괜찮으시다면 뭐…”
당사자가 괜찮다고 하는 바람에 핑곗거리가 사라져버린 이한성은 하는 수 없다는 듯이 그렇게 중얼거리며 모두와 함께 중식점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오세요~ 총 몇 분이신가요?”
“5명 입니다.”
가게 안에 발을 들이기 무섭게 들려온 점원의 인사에, 이한성은 아주 간결하게 대답했다. 그러자 직원은 바로 능숙하게 모두를 테이블로 안내했고, 다들 점심을 안먹어서 허기가 져있었는지 자리에 앉기 무섭게 메뉴판도 보지 않고 각자 바로 주문하기 시작했다.
“삼선짬뽕 곱빼기 부탁드릴게요.”
가장 먼저 주문을 올린 건 다름아닌 화연이었다. 한치의 고민도 없이 바로 주문한게 놀라웠는지, 아니면 겉보기엔 말할 것도 없이 외국인인 그녀가 짬뽕을 시킨 게 놀라웠는지, 점원은 잠시 멍을 때리더니 이내 정신을 차리고는 능숙하게 옵션을 물었다.
“얼마나 맵게 해드릴까요? 1부터 시작해서 10단계 까지 있는데.”
“10단계로 해주세요.”
“네…? 괘, 괜찮으시겠어요? 그거 응급실에 실려갈 정도로 매운건데…”
“괜찮아요. 제가 생긴 것 보단 매운 걸 아주 잘 먹는 편이거든요.”
화연이 싱긋 웃으며 걱정 할 필요 없다는 듯이 당황한 점원을 진정시켰다. 그러나 점원은 그런 그녀의 말이 영 못미더웠는지 걱정스러운 표정을 가득 드러내며 마지못해 주문을 종이에 적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아주 매운 삼선짬뽕 곱빼기 하나랑…”
점원이 화연의 바로 옆에 앉아있던 이한성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그녀와 똑같이 매운맛 매니아였던 그는 손을 살짝 들어올리며 뜸들일 것도 없이 Ctrl CV를 시전했다.
“저도 똑같은 걸로 부탁드립니다.”
“아, 네. 그럼 자녀분은….”
2번째 주문이 예상보다 빨리 끝나자 점원은 이한성의 옆에 착 달라붙어 앉아있던 수정이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러자 수정이는 앞선 이한성을 따라하듯 손을 번쩍 들어올리며 당돌하게 외쳤다.
“나도 아빠랑 똑같은거!”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