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Part-Timer Raises a Half-Elf RAW novel - Chapter (52)
알바생이 하프 엘프를 키우는 법-52화(52/245)
52
“나도 아빠랑 똑같은거!”
…뭐???
순간 주변에 있던 모두가 일제히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수정이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이에 매워서 울고 불고 난리도 아닐 뻔한 미래를 내다 본 이한성은 보호자로써 수정이의 주문을 바로 수정했다.
“얘껀 매운맛을 1로 해주세요.”
“시러! 나도 10으로 할거야!”
“안돼. 너 그거 매워서 못먹어.”
“아니야! 나도 먹을 수 있써!”
“너 예전에 곱창전골도 맵다고 물에 씻어서 먹었잖아. 이건 그거보다 훨씬 매운거야.”
“…..”
전에 먹었던 곱창전골보다 맵다는 이한성의 말에 겁을 먹긴 먹었는지, 수정이가 잠시 망설이는 표정을 지으며 주춤거렸다.
하지만 그것도 아주 잠시, 망설임 끝에 수정이는 용감한건지 무모한건지 모를 당돌한 목소리로 외쳤다.
“으으…. 그, 그래도 먹을거야!”
…얘가 갑자기 왜 이래? 평소에는 김치도 맵다고 안먹으려 들던게 왜 짬뽕을 고집하고 난리야?
갓난아기 시절보다야 말이 잘 통하지만 여전히 가끔가다 이렇게 수정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감을 못잡을 때가 꼭 있다.
“아니, 왜? 대체 왜 그러냐? 매운 짬뽕이 그렇게 먹고싶어?”
“응. 아빠랑 똑같은 걸로 먹고시퍼.”
…이렇게 까지 고집을 부리는데 하는 수 없지. 한번 데여봐야 학습하는 법이니까.
“그래. 대신 남기면 안된다.”
“응!”
“항상 대답은 잘하지…”
저래놓고 아마 분명 나중에 맵다고 울고불고 난리를 칠거다. 이한성은 안봐도 비디오인 미래를 어렵지 않게 내다보며 수정이 몰래 점원에게 눈빛을 보냈다. 그러자 눈치 백단인 점원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종이에다 순한맛 짬뽕을 적었다.
그 순한맛 마저도 수정이에게는 너무 매울 것이라는 사실을 미처 생각하지 못한 채.
–––––––
[휘적-]“…..”
주문한 메뉴들이 전부 나온지도 벌써 5분째.
하지만 수정이는 여전히 새빨간 짬뽕을 포크로 휘적이며 세심하게 면이 퍼져가는 경과를 관찰하고 있다.
“빨리 먹어. 면 다 불겠다.”
“우으으…”
이한성의 재촉에 수정이는 무슨 번지점프를 앞두고 있는 고소공포증 환자라도 되는 듯 오만상을 찌푸리며 포크로 면을 집었다.
“아, 아빠… 이거 매워?”
“맵기야 맵지.”
이한성이 매운맛 10점 짜리 삼선짬뽕의 국물을 한숟갈 마시며 대답했다. 매운맛을 좋아하는 그에게 있어서도 매운맛을 넘어 고통으로 느껴질 정도로 매운맛이었다.
다만, 문제라면 매워도 맛있다는 것.
매운맛이라는 건 마치 마약과도 같아서, 한번 맛보게 되면 고통에 몸부림치면서도 끊임없이 매운맛을 찾게 되는 법이다.
더 이상 입 안의 감각이 사라지고 밤에 피똥을 싸게 될 지경이 될 때 까지 말이다.
“…..”
수정이가 맵다면서 아주 맛있다는 듯이 짬뽕을 흡입하는 이한성을 보고는 조심스럽게 면발을 포크로 집어 입에 넣었다.
그리고 그것과 동시에, 스코빌 척도 3000에 달하는 매운맛을 지닌 캡사이신이 수정이의 미숙한 혓바닥을 기습했다.
“….!!!!”
폭발하는 화산처럼 붉게 달궈진 얼굴. 립스틱이라도 바른 것 마냥 부어오른 입술. 얼마나 매웠는지 수정이는 그런 얼굴로 닭똥같은 눈물을 펑펑 쏟아내며 도움을 요청했다.
“매워!! 아빠, 매워!! 물! 물! 119 불러야 돼!”
“119를 왜 불러. 자 여기 물.”
이한성이 예상했다는 듯이 미리 준비해둔 물컵을 수정이에게 건내주었다. 그러자 수정이는 그대로 물을 입안에 털어부어 혀를 함락시킨 캡사이신 분자들을 세척했고, 이내 울상을 지으며 짬뽕 그릇을 밀어냈다.
“나 이거 안 먹을래. 아픈거 시러.”
“내 그럴 줄 알았다… 그러 게 사람 말 좀 듣지.”
꼭 하지 말라고 해도 말을 안들어요. 하지 말라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건데.
이한성이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혀를 찼다. 하지만 수정이는 이한성이 혀를 차던 말던 전혀 관심을 주지 않은 채 짬뽕을 거부할 뿐이었다.
“아빠. 나 딴 거 먹으면 안돼?”
“안돼. 아까 남기지 않겠다고 약속했잖아.”
“그치만… 이거 사람이 못 먹는거란 말이야.”
“아빠랑 화연 언니는 잘만 먹고 있잖아.”
이한성이 자신과 같은 메뉴인 매운맛 10점 짜리 삼선짬뽕을 시원하게 국물까지 통째로 들이키는 화연을 가리켰다. 그러자 이에 수정이는 잠시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이 이한성을 빤히 쳐다보더니, 이내 나지막히 입을 열었다.
“그럼 아빠랑 연이는 사람이 아닌거야?!”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반은 맞지만 반은 틀린 수정이의 추론에 이한성은 어이가 없다는 듯한 말투로 그렇게 대꾸했다.
저쪽은 사람이 아니라 엘프지만, 이쪽은 의심할 것도 없이 순수 100% 사람이다. 이한성은 그렇게 속으로 의심할 여지가 없는 자신의 정체성을 확신하며 수정이가 밀어낸 짬뽕 그릇을 다시 원위치로 되돌렸다.
“아무튼, 너 이거 다 먹어. 자기가 직접 한 말은 책임 져야지.”
“으으….”
제아무리 5살 밖에 안된 수정이라고 해도 한번 한 약속을 깨뜨리면 나쁜 거라는 것 쯤은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약속을 지키기에는 매운맛에 대한 공포감이 어린 수정이에게 있어서는 너무 컸다.
“으으으….”
다시 포크를 집어 든 수정이의 손이 마치 정지화면 속이라도 되는 듯 그릇 바로 앞에서 멈춰섰다. 아무래도 처음 맛본 짬뽕의 맛이 상상 이상으로 매웠던 모양이었다.
일단 어떻게든 먹어보려고 본능과 싸우는 것만 해도 충분히 대견한 일이다. 그렇게 짬뽕과 기싸움을 하는 수정이의 모습이 귀여우면서도 가상했던 이한성은 처음이니 한번은 넘어가주기로 하며 나지막히 입을 열었다.
“됐다, 이번 한번은 그냥 남겨-”
[스윽-]순간 수정이의 바로 앞에 놓여져 있던 새빨간 짬뽕 그릇이 거무룩한 색상을 지닌 짜장면 그릇으로 교체되었다.
“할머니꺼 줄테니까 그거 먹어.”
수정이와 그릇을 바꾼건 다름아닌 집주인 아주머니셨다. 아주 자연스럽게 그릇을 바꾸신 아주머니는 이내 태연히 짬뽕을 드시기 시작하셨고, 수정이는 난생 태어나서 처음 보는 짜장면을 슬쩍 살펴보더니 이내 경계하며 조심스레 면을 입에 넘겼다.
“맛있써! 아빠, 이거 뭐야?”
“짜장면.”
“짜증면? 짜증날 때 먹는거야?”
“뭔소리야. 이게 무슨 소주인 줄 알아?”
짜장면을 짜증면이라고 잘못 알아들은 수정이의 질문에 이한성은 황당스러워 하며 그렇게 대꾸했다. 하지만 수정이는 자기가 물어놓고도 대답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은 채 입가에 짜장 소스가 수염처럼 덕지덕지 붙을 지경으로 면을 말 그대로 흡입 할 뿐이었다.
“천천히 좀 먹어. 그러다 목에 걸리면 어쩌려고.”
“헤헤.”
이한성이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던 물티슈로 수정이의 입가를 닦아주었다. 예전의 그였다면 스스로 생각해도 낯간지럽다고 정색을 했을 행동이었지만, 지금의 그는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이렇게 무의식적으로 손이 먼저 가게 될 지경이 되어버린지 오래였다.
이야, 이한성. 아빠 다 됐네. 언제는 그렇게 애 돌보기 귀찮다고 욕 하기 바쁘더니.
대체 언제부터 이런 생활에 익숙해진 것일까. 수정이가 하루아침에 훌쩍 커버린 후 부터? 아니면 그보다 전에 수정이가 고열 때문에 병원에 실려갔던 때 부터?
변화란 것은 자각하기에는 너무 미세해서, 본인은 절대로 스스로 깨달을 수가 없는 단어다.
분명 내가 느끼기엔 어제나 내일이나 다를 게 없는데, 그렇게 일주일이고 한달이고 지나가고 보면 항상 무언가가 달라져 있다. 내가 생각해도 스스로가 너무 보수적이라서 입맛하나 변하지 않는다고 자신을 해도, 결국에는 어느날 문득 깨닫고야 마는 것이다.
아, 내가 옛날에는 대체 왜 그따구로 살았던 걸까, 하고.
새록새록 스쳐지나가는 지난 날들을 떠올리며, 이한성은 저도 모르게 살짝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히끅-”
?
순간 갑작스럽게 딸꾹질 소리가 울려퍼졌다.
“괜찮으세요 아줌마?”
“히끅-”
딸꾹질 소리를 내신 건 다름아닌 집주인 아주머니. 아무래도 수정이 것과 바꿔드셨던 짬뽕이 생각보다 매우셨던 모양이다.
뭐… 수정이 때문에 순한맛으로 주문하긴 했지만 그래도 메뉴 이름부터가 [아주 매운 삼선짬뽕] 이었으니 충분히 매워하실 만도 하지.
“그러게 매운 것도 잘 못 드실거면서 왜 바꾸셨어요?”
“히끅-그럼 애가 위궤양 걸리는 걸 가만히 두고 보라고 총각?”
“위궤양 걱정해야 하는 건 아줌마겠죠.”
나이가 몇이신데. 매운거 함부로 드셨다간 바로 응급실에 실려가셔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다.
“나 건강해 이놈아. 나 아직 40대야.”
“예? 50대 아니셨어요?”
생각보다 노안이셨네?
순간 이한성이 내뱉은 한마디에 아주머니의 이마 주름살이 늘어났다. 아무리 나이를 먹었다고는 해도 보기보다 늙어보인다는 뉘앙스의 말은 결코 듣기 좋은 말이 아니었다.
“총각이 한번 나 처럼 살아봐. 얼굴이 팍팍 삭을테니까.”
“아줌마 처럼 살면 성공한거죠. 이래봐도 건물주이신데.”
“….”
나름 꺼내본 이한성의 칭찬에 아주머니는 쓴웃음을 지으셨다.
“….성공하기는 염병. 가진거라곤 낡아빠진 건물뿐인데.”
“그 낡아빠진 건물조차도 없는 사람들이 어디 한둘이에요? 있는 것만 해도 어디야.”
“하, 낡은 건물보다는 말동무나 있었으면 좋겄다.”
아주머니가 물을 원샷에 들이키시며 이한성의 말을 받아쳤다. 아무래도 저 나이에 가족 한분도 없어서 많이 외로움을 타시는 모양이었다.
….분명 나랑 수정이한테 잘 대해주시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겠지.
한창 외로움을 타실 나이실테니 충분히 이해가 간다. 다른 가족이나 자녀분들도 따로 없으신 것 같은데, 그나마 사람들이랑 말 섞는 재미로 외로움을 달래고 계신거겠지.
‘뭐… 나야 기억도 안나는 엄마가 생긴 것 같은 느낌이라 가끔 쫌 기분이 거시기하지만 말이야.’
만일 내 인생에 평범한 어머니가 계셨더라면 이런 느낌이지 않았을까. 손녀랑 잘 놀아주시고, 반찬도 꼬박꼬박 과할 정도로 챙겨주시고 항상 끊임없이 잔소리를 늘어놓으시는…
“….짬뽕이 너무 매웠나, 별 생각이 다 드네.”
망상에 가까운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자 이한성은 아무도 듣지 못할 목소리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이한성이 살면서 부모라고 부를 만한 인간은 태어나서 부터 단 한명도 없었다. 아버지라는 인간은 그저 생물학적 부모일 뿐인 알콜 중독자였고, 어머니 쪽은 이름도 뭣도 아는게 하나도 없는 투명인간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랬기에 누가 항상 아빠가 더 좋냐, 아니면 엄마가 더 좋냐 물어볼 때 이한성은 고민 할 필요가 없었다.
있으니 만도 못했던 아버지 쪽 보다는 아예 처음부터 없었던 어머니 쪽이 훨씬 더 나앗으니.
물론 그나마 데리고 키우기라도 한 그 인간 보다 낳자마자 도망가버린 어머니 쪽이 더 글러먹은 인성을 지닌 사람일 가능성이 높지만 말이다.
“….역시 생각보다 맵네.”
10점짜리 매운맛 짬뽕보다도 맵게만 느껴지는 현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