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Part-Timer Raises a Half-Elf RAW novel - Chapter (53)
알바생이 하프 엘프를 키우는 법-53화(53/245)
53
그렇게 다함께 중식집에서 점심을 먹고 각자 더치페이를 한 후 집 계약은 별다른 장애물 없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매매 가격은 총 13억. 원래 가격의 절반정도 밖에 되지 않는 집값을 더 줄이려고 흥정할 정도로 이한성은 궁핍하지 않았고, 집이 짐덩어리가 다름 없었던 다니엘 또한 괜히 집값을 뒤늦게 올릴 정도로 돈에 집착하는 남자가 아니었다.
-아하하! 나중에 시간 한번 나시면 캐나다로 놀러 오시죠? 이곳저곳 구경 시켜드리겠습니다.
집을 헐값에 팔아놓고도 다니엘은 자기 집에 언제 한번 놀러오라고 권유할 정도로 대인배 적인 면모를 타고 난 남자였다. 너무 오랜만에 한국에 와서 그런지 놀고싶은 생각이 가득 드러났던 그였지만, 그는 결국 아내의 독기어린 전화가 걸려온 탓에 바로 비행기 표를 끊어야만 했다. 아마 출장나갔다는 거짓말이 들통난 것이리랴.
‘….그러게 왜 굳이 거짓말을 하고 오셔가지고는.’
아무튼 그렇게 다니엘은 캐나다로 돌아가기 전에 이한성과 함께 서로 서류에다 도장을 찍고 이런저런 복잡한 절차들을 전부 끝마쳤고, 덕분에 지난 20년 동안 집 한채 없었던 이한성은 이제서야 드디어 내집마련의 꿈을 이룰 수가 있었다.
즉, 지긋지긋하던 월세집 생활도 이제 내일이면 끝이라는 뜻이다.
“왠지 현실감이 영 안느껴지네.”
가구도 물건도 하나 없이 텅 비어버린 낡은 원룸을 되돌아보며, 이한성은 자신의 혼잣말이 집안 곳곳에 울리는 소리를 들었다.
이사할 준비야 계약사기 당했을 때 부터 이미 전부 끝내둔 상태였기 때문에 이한성이 해야 하는 건 오직 이삿짐 센터에다가 전화를 거는 것 뿐이었다.
어차피 남자 하나에 애 하나 밖에 안 살던 집이었으니 옮길 물건도 없고 그래서 이사를 끝마치는데에는 총 2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직 이한성이 이 원룸에 남아있는 이유는, 단순히 추억이라고 부르기에도 무안한 이 원룸과 함께했던 지난 날들의 기억들 때문이었다.
“얏호~!”
“아 깜짝이야.”
언제 옆에 왔는지 모를 수정이가 두 손을 모아 갑작스레 함성을 내질렀다.
“아빠! 신기하지? 소리가 막 울려!”
“메아리 땜에 그렇겠지. 옆집 사람들 시끄러워 하니까 그만해.”
이한성이 그새 또 한번 더 함성을 지르려던 수정이를 말리며 그렇게 대답했다. 그러자 수정이는 무척이나 불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는 텅 비어버린 집 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니기 시작했고, 이한성은 그런 수정이의 모습을 바라보며 집안 곳곳에 깃들은 악연들을 하나 둘씩 떠올렸다.
물을 틀 때 마다 항상 사방으로 튀는 싱크대. 가끔가다 비가 새서 곰팡이가 자라난 적도 몇 번 있는 천장. 고장나서 문을 살짝 들어올리면서 열어야만 열리는 현관문. 오직 이 원룸과 1년을 함께한 이한성 만이 알고있는 것들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 마자 집을 나와, 그동안 학교를 결석하면서 까지 모아두었던 알바비로 얻었던 원룸. 이 주변에서 제일 싼 집으로 골랐었기에 장점보다는 단점이 수두룩하게 많은 곳이었지만, 되돌이켜 보니 그리 나쁘지만도 않은 곳이었다.
아무리 단점이 많다고 한들, 이 원룸은 그가 처음으로 집이라고 부를 수 있었던 장소이니 말이다.
“이삿짐 트럭은 벌써 출발 했는데 여기서 뭐해?”
집주인 아주머니가 열려있던 현관문을 지나 집 안으로 들어오시며 말을 걸었다. 그러자 이에 이한성은 잠시 이삿짐을 나르느라 뻐근해진 어깨를 빙빙 돌리며 대답했다.
“…그냥 마지막으로 좀 돌아보려고요.”
“괜히 쓸데없는 감수성에 젖어있지 말고 새 집에서 애나 잘 챙겨.”
“거 되게 박하게 구시네. 이래뵈도 저 한번도 월세 늦게 낸 적 없는 모범 입세자거든요?”
“당연한 걸 가지고 당당하게 굴지 마.”
이한성의 소소한 자랑에 아주머니는 픽 웃으시며 그렇게 받아치셨다. 그리고는 이내 집안 곳곳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수정이를 바라보시며 나지막히 입을 여셨다.
“…..수정이, 참 착한 애야.”
“쟤가요?”
자는 사람 옷 속에다가 얼음 덩어리를 집어넣을 정도로 사악한 쟤가 착하다고?
대뜸 수정이를 보고 착하다고 하는 아무저니의 말에 이한성은 귀신 씨나락 까는 모습을 바라보는 눈빛을 아주머니께 보냈다.
“대체 어디가요…? 뭐 얼굴이 착하다던가 그런 건 아니죠?”
“얼굴도 착하고 다 착하지. 엄마가 없어서 내심 외로울텐데도, 한번도 엄마를 찾은 적이 없잖아.”
“아….”
그러고 보니 수정이가 엄마에 관한 얘기를 꺼낸 적은 여태껏 한번도 없다. 분명 한번쯤은 꼭 물어볼만한 질문인데도 말이다.
“뭐, 아빠인 총각이 재밌게 잘 놀아줘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지만.”
“….전 딱히 놀아준 기억이 없는데요.”
“애가 장난치는거 받아주는게 노는거지 뭐. 그것도 못해주는 부모들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지 총각은 아마 모를 걸?”
한순간이지만 아주머니의 목소리에서 왜인지 모를 쓸쓸함이 느껴졌다. 마치 그런 부모를 아주 잘 알고있다는 것 처럼.
그리고 그 모습에, 이한성은 저도 모르게 지금껏 구태여 입 밖으로 내지 않았던 의문을 꺼냈다.
“….그러고 보니까 여태껏 궁금했던게 하나 있는데요.”
“뭐가.”
“저희한테… 왜 그렇게 잘 대해주신 겁니까?”
“….”
아주머니가 저 멀리 창문 바깥의 풍경을 바라보시며 잠시 입을 다물으셨다. 그리고는 이내 무언가를 말하려고 하셨지만, 정작 내뱉으신 건 짧디 짧은 단 한마디였다.
“…모범 세입자라서.”
그 짧은 대답과 함께, 아주머니는 뒤를 돌아 현관문으로 향하셨다.
“아, 그래. 가기 전에 잠깐 1층에 내 방에 들리도록 해 총각. 장아찌 한게 좀 많으니까.”
“아뇨. 저번에 주신 장조림 아직 남아있으니까 그러실 필요-”
[탁!]이한성이 거절하기도 채 전에 아주머니는 현관문을 닫고 나가버리셨다. 그러자 이한성은 하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며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내 질문에는 제대로 대답 안하셨으면서 이쪽 대답은 듣지도 않으시네.”
별로 대답하기 싫으시다면야 어쩔 수 없는거지만 일방적으로 손해를 본 것 같아 기분이 영 그렇다.
…물론 공짜로 반찬 준다는데 안받을 생각은 없지만 말이야.
–––––––-
“저왔어요.”
이한성이 1층 복도 끝에 열려있는 아주머니 집의 현관문을 열었다.
늘 문이 열려 있는 아주머니의 집. 요즘 같이 빈집털이가 잦은 세상이 무섭지도 않으신지 외출하실 때든 언제든 항상 문을 열어두신다. 이유는 항상 꼭 열쇠를 깜빡 하고 외출하셔서 그렇다고.
“거 빨리도 온다. 말하면 바로바로 내려와서 가져갈 것이지.”
집주인 아주머니가 기다리셨다는 듯이 거실에서 나오며 이한성을 맞이하셨다. 그러자 이한성은 그런 아주머니의 핀잔에 능숙히 대처하며 현관문을 닫았다.
“바로 오란 적 없으셨잖아요.”
“그럴 꼭 말 해야지 알아?”
“네.”
아주머니의 잔소리를 받아치며 이한성은 조용히 현관 앞에 선 채 아주머니가 반찬을 가져오시기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거기 서있지 말고 들어와. 반찬 꺼내다 담으려면 시간이 좀 걸리니까.”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그러죠 뭐.”
집주인이 들어오라는 데 굳이 마다 할 필요는 없지.
이한성은 아주머니의 호의를 거리낌없이 받아들이고는 바로 신발을 벗고 마루바닥에 발을 들였다.
“너무 많이 주진 마세요. 그거 다 들고 걸어가야 하니까.”
“힘 뒀다가 뭐하게. 그냥 주는대로 받아가.”
“아 진짜… 못 들고 갈 정도로 많으면 그냥 두고 갈 거예요.”
저번처럼 장조림을 막 거대한 냄비에다가 전부 가득 담아서 주면 큰일이다. 이삿짐은 이미 전부 다 옮겼지만, 아직 차가 없는 이한성은 새집까지 버스타고 걸어서 가야하는 처지이니 말이다.
그런 그의 사정을 잘 알고 계신 아주머니는 농담이였다는 듯이 피식 웃으시며 냉장고에서 이런저런 것들을 꺼내셨다. 그러자 이한성은 기다리는 참에 자연스럽게 아주머니의 집 안을 대강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까 집 안까지 직접 들어와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지?
그간 집주인 아주머니의 집을 찾아올 일이라고 해봤자 잠깐 수정이 좀 맡기러 오거나 월세를 내는 날 뿐 이었으니 당연하다. 그렇게 이한성은 소소한 사실을 깨달으며 딱 봐도 낡아보이는 TV와 그 옆에 놓여진 이런저런 잡동사니들을 바라보았다.
이미 긁은 복권, 리모컨, 낡은 수첩, 그리고…
“사진?”
별로 볼 품 없는 잡동사니들 가운데 살짝 빛이 바랜 액자 속 사진 하나가 왠지 모르게 눈에 띄었다. 저도 모르게 사진에 이끌린 이한성은 가까이 다가가 좀 더 자세히 액자를 살펴보았다.
사진 속에 있던 것은 어디 공원에서 찍은 듯한 20대 쯤 되어보이는 여자의 사진이었다. 아마 아주머니가 젊으셨을 때 찍었던 사진이리랴.
“그럼 옆에 있는 남자는 남편 분이신가?”
아주머니의 젊었을 때 모습 외에도 같이 어깨동무를 하고 서있는 젊은 남자의 모습이 이한성의 눈에 비춰졌다.
….뭐지? 이 남자, 묘하게 얼굴이 익숙한데.
갈색 머리에 마냥 인상 좋은 얼굴. 그리고 이마 쪽에 나있는 흉터 자국…
….잠깐만, 흉터라고?
무언가에 긁힌 듯한 흉터. 왼쪽 이마 위부터 시작해서 눈썹을 살짝 스치고 지나가는 굉장히 눈에 띄는 흉터.
이한성은 그런 흉터를 지닌 사람을 딱 한명 알고 있다.
“……”
아, 그런거였구나.
날 리가 없는 술냄새가 잠시 코끝을 스치고 지나갔다. 소리가 닿지 않을 저 어딘가에서 유리병이 산산히 깨져 흩어지는 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근데 수정이 너, 왜 자꾸 아줌마를 할머니라고 부르는거야?
-그야 할머니니까?
언젠가 들었던 수정이의 이해못할 대답. 어린아이의 착각에 불과했을 그 대답이 지금 이 순간에 문득 떠오른 것은 우연일까, 아니면 필연일까.
몇번이고 이상하다고는 생각 했었다.
집주인과 세입자의 관계에서는 절대로 나올 수 없었던 과분한 호의. 늘 항상 마주칠 때 마다 얼핏 보였던 감춰진 후회. 내가 과대망상증에 걸린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이따금 느꼈던 이유모를 그리움.
우연. 착각, 억측. 위화감이 들 때 마다 머릿속으로 그런 단어들을 내세우며 잠재웠던 의문들.
…..죽을 때 까지 마주칠 일이 절대 없을거라고 생각했는데.
항상 궁금하긴 했었다. 만약 어머니와 마주치게 된다면 무슨 기분이 들지.
날 버렸다고 원망을 하게 될까? 아니면 늦게라도 만나게 되서 조금이라도 반갑다는 기분이 들까.
하지만 진실은 어느쪽도 아니었다.
왜냐하면 정말 신기할 정도로 아무런 감정이 들지 않았으니.
….처음부터 부모였던 적이 없으니 어쩌면 당연한 걸지도 모르지.
태어나자 마자 자식을 버렸던 사람. 폭언도, 폭력도 없이 곁에 머무르는 것 조차 하지 않았던 사람. 자식에게 이름도, 얼굴도 비춰본 적이 없는 사람.
술에 취해 항상 술병을 휘둘러대던 아버지 쪽이 부모라는 이름의 쓰레기였다면, 애초에 어머니 쪽은 부모였던 적 조차 없었다.
그러니 이제와서 새삼스레 아무런 감정도 들지 않는 것은 당연한 것이리라.
“총각, 반찬 다 준비 됐으니까 와서 가져…”
부엌에서 들려온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끝을 맺지 못한 채 흩어졌다. TV 옆의 액자 속에 들어있는 사진을 가만히 바라보던 이한성의 모습을 본 아주머니의 표정은 마치 숨겨왔던 치부를 들킨 죄인과도 같았다.
“아줌마. 그동안 잘 대해주셔서 감사했어요.”
“……”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고요한 목소리. 마치 떠나기 전 마지막 인사를 고하듯, 이한성은 자리에서 일어서며 아주머니께 고개를 숙였다.
시큼한 장아찌 냄새가 이한성의 코를 찔렀다. 식탁 위에 올려진 통에 가득 담긴 매실 장아찌를 본 그는 부드러우면서도 무서우리만큼 적막한 목소리로 옅은 미소를 지어내며 입을 열었다.
“반찬은 두고 갈게요.”
“….그래.”
이한성의 옅은 미소를 본 아주머니는 아무것도 묻지 않으셨다. 서로 해야 할 말을 알았음에도, 그 누구도 그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그렇게 무거운 침묵을 뒤로 한 채 이한성은 현관문을 나와 계단을 올라가 수정이가 기다리고 있을 원룸으로 향했다.
[끼익-]“아빠! 할머니가 뭐 줬어?”
계단을 올라 원룸의 현관문을 열기 무섭게 텅 빈 거실에서 기다리고 있던 수정이가 뛰쳐나오며 이한성에게 매달렸다. 하지만 가득 차오른 수정이의 기대감과는 달리, 이한성의 손에는 그 무엇도 들려있지 않았다.
“뭐야~! 왜 빈손이야? 할머니가 반찬 준다고 했자나!”
“…놓고 왔어.”
“왜에~!”
수정이가 실망스럽다는 눈치를 팍팍 주며 볼을 부풀렸다. 그러자 이한성은 4리터 짜리 통에 꽉꽉 채워져 있던 매실장아찌를 떠올리며 나지막히 대답했다.
“너무 무거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