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Part-Timer Raises a Half-Elf RAW novel - Chapter (56)
알바생이 하프 엘프를 키우는 법-56화(56/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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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온도는 약 영하 15도. 현재 적설량은 약 50cm.
이런 정신나간 날씨에 밖에서 놀자고 한 것은 명백히 실수였다.
“이런 날씨에 밖에서 놀자고 한 내가 미친놈이지…”
회색 하늘에서 두툼한 눈송이가 끈임없이 내리는 모습을 바라보며, 이한성은 마치 어느 유명한 짤의 기자가 된 몰골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눈이 얼마나 많이 내리고 있는지 거의 허리 높이 까지 쌓였다. 분명 이 시각 나라를 지키고 있을 장병 분들은 하나 같이 다 쌍욕을 퍼부으며 하늘을 저주하고 있겠지.
비록 미필이지만 나중에 마당에 쌓인 이 많은 눈들을 다 치워야 하는 신세가 된 이한성은 지금 이 순간에도 삽을 들고 중노동을 하고 있을 위인들의 심정에 극히 공감하며 바로 옆에서 눈토끼 마냥 구덩이를 파고 있는 수정이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의 시선을 느낀 수정이는 곧바로 무슨 직장 상사마냥 이한성을 귀엽게 갈구었다.
“아빠~! 쉬면 안되지! 나 이글루 만드는 거 도와주기로 했자나!”
“야, 넌 지금 내가 얼어죽기 직전인 거 안보이냐?”
장갑없이 맨손으로 눈을 아무리 만져대도 동상에 면역인 수정이와는 달리 이한성은 한낯 나약한 인간에 불과하다. 아무리 더운 것 보다는 추운 게 더 좋은 이한성이라고 해도, 영하 15도의 추위는 견딜 만한 것이 아니었다.
“칫, 아빠는 너무 나약해.”
“말 한번 예쁘게도 한다. 내가 나약한 게 아니라 니가 비정상적인거야.”
아빠한테 못 하는 말이 없는 수정이의 말에 이한성은 그렇게 투덜거리며 이미 축축해질 대로 축축해진 장갑을 벗었다. 방수 장갑도 아닌 면장갑이었으니 이 날씨에 눈을 그렇게나 만져대고도 얼어붙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한 법이었다.
근데 내가 대체 왜 이 날씨에 밖에 나와서 중노동 건설현장 알바를 뛰고 있는거지? 분명 얘랑 놀아주려고 밖에 나온 거 아니었나?
애초에 멀쩡한 집이 바로 옆에 있는데 왜 굳이 이글루를 지을려고 이 고생을 해야 되는건지 본격적으로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이한성은 이러다가 일일 퀘스트고 뭐고 한겨울에 동사하게 생겼다고 생각하며 수정이에게 말을 걸었다.
“…수정아. 우리 이글루 말고 딴 거 만들자.”
“딴 거 어떤거?”
“얼음성.”
다짜고짜 이글루를 만들다 말고 얼음성을 만들자는 이한성의 말에 수정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 얼음 없자나.”
“만들면 되지. 너 오늘 아직 마법 훈련 안했지?”
마력이 너무 차고 넘쳐나서 폭주하는 체질을 타고 난 수정이는 매일마다 주기적으로 마법 훈련을 통해 마력을 소비해야만 한다. 몸이 안좋은 사람이 주기적으로 운동을 해야 하는 것 처럼 말이다.
물론, 당장 이한성이 마법 훈련 얘기를 꺼낸 건 중노동을 피하기 위한 변명에 불과했지만.
이한성의 물음에 수정이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이내 이상하다는 듯이 입을 삐쭉거리며 이한성에게 물었다.
“그치만 아빠가 전에 밖에서는 마법 사용하면 안된다고 했었자나.”
“다른 사람 앞에서 사용하면 안된다고 했었지. 근데 지금은 우리 둘 뿐이잖아.”
밖에서 마법을 쓰지 말라고 했던 건 어디까지나 수정이의 정체를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사람이라고는 수정이의 보호자인 이한성 뿐이고, 바깥이라고는 해도 마당에 나온 것이니 지금 여기서 마법을 사용한다고 해도 다른 사람들에게 들킬 걱정은 없다시피 했다.
“그럼 나 지금 마법 써도 되는거야?”
“어. 써도 돼.”
이한성의 허락이 떨어지자 수정이의 얼굴에 즐거움이 약 300% 정도 증가했다. 노는데 마법을 못 써서 몸이 근질근질했던 모양이었다.
담장 때문에 바깥 사람들이 볼 일은 없고, 뭐 얼음성을 만든다 해도 조그만 이글루 정도의 크기일테니 괜찮겠지. 중노동도 피할 수 있는데다가 하루치 마력훈련도 겸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나 다름없고.
이제야 좀 쉴 수 있겠다는 생각에 이한성은 눈을 쿠션삼아 그대로 바닥에 드러누웠다. 춥다는 것만 빼면 어느 유명 침대 브랜드 부럽지 않은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이었다.
“아… 편하다. 이제 좀 살 것 같-”
[쿵!]…..?
방금 뭔가 되게 묵직한게 떨어지는 소리가… 눈이 너무 많이와서 근처 이웃집 지붕이 무너지기라도 한 건가?
심상치 않은 소리에 이한성은 조용히 몸을 일으켜 앞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그와 동시에 할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거의 건물 2층 높이의 동화 속 얼음성이 눈앞에 떡하니 세워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우야. 이거 저작권에 걸리는 거 아냐…?”
성 디자인이 누가봐도 빼도박도 못한 저작권에 민감한 그 회사 건데? 아니, 그것보다 뭐가 이렇게 커…?
얼음성이라고 해봤자 그냥 애들 장난으로 적당히 만든 이글루에 불과할 줄 알았는데 거의 집채만한 구조물이 떡하니 마당에 생겨버렸다. 생각치도 못한 사태에 이한성은 저 여러모로 다른 의미로 위험한 외관을 지닌 얼음성을 지은 꼬마 건축가를 바라보았다.
“아빠~ 어때? 나 대단하지!”
“…..”
저런 눈에 띄는 걸 마당에다 대놓고 만들어놓고도 그저 자랑하기 바쁜 수정이의 모습에 기가 막힌 이한성은 이내 침묵 끝에 나지막히 입을 열었다.
“아니, 대단하긴 대단한데… 너 이거 어떻게 치울거야?”
“앗.”
응. 그럴 줄 알았어. 딱 봐도 거기까진 생각 안했나보네.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기 시작한 수정이의 안절부절 못한 시선을 바라보며 이한성은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마음 같아서는 잔소리를 있는대로 늘어놓고 싶었던 그였지만, 마법을 사용해도 된다고 허락했던 건 다름아닌 자기 자신이었기에 뭐라고 쓴소리를 하기에도 난처한 상황이었다.
[리커버리]를 써서 없앨 수 있으려나… 아니, 아마 안 될 것 같은데. [리커버리] 스킬은 어디까지나 물건이 고장났다는 전제 하에 사용할 수 있는 스킬이다. 그러나 지금 이한성의 눈앞에 있는 얼음성은 고장난 구석이 전혀 보이지 않는 새 건축물이었다.“화연 씨를 불러야 하나…”
아직 얼음 속성마법 하나 밖에 쓸 줄 모르는 수정이와는 달리 화연은 식탁 하나를 탄소가루들로 소각시킬 수 있을 정도의 다양한 마법을 지니고 있다. 분명 그녀라면 이 여러모로 위험한 얼음성 하나는 손짓 한번으로 녹여버릴 수 있을 것이다.
주말에 갑작스럽게 전화해서 불러내는 게 다소 미안하긴 하지만 상황이 어쩔 수 없었던 이한성은 하는 수 없이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화면을 켰다.
이 추운 날씨에 꽤나 오랫동안 밖에 있었어서 그런지 핸드폰의 배터리는 11%로 바닥을 기고 있었다. 그러나 전화 한통 걸기에는 충분한 양이었다.
이한성은 얼어붙은 손으로 연락처에 [고려인] 이라고 저장되어 있는 화연의 번호로 전화를걸었다.
[뚜루루루-뚜루루루- 연결이 되지 않아 삐-소리 후…]“…왜 안 받지?”
주말인데다가 이제 막 점심시간이니 딱히 바쁜 일은 없을 것이다. 샤워라도 하고 있는 걸까?
한가할 시간에도 전화를 받지 않는 걸 이상하게 생각한 이한성은 한숨과 함께 핸드폰을 다시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뭐… 그냥 얼음성이니까 당분간은 냅둬도 괜찮겠지…?
디자인이 디자인인데다가 크기도 커서 지나가는 사람들 시선을 안 끌고는 못 배기겠지만 딱히 인간의 힘으로 만드는 게 불가능한 것도 아니니 사람들 눈에는 그냥 신기하게만 비춰질 것이다.
….아마도.
지금 당장은 어떻게 저 건축물을 철거 할 방법이 없다고 결론을 지은 이한성은 얼어붙은 두 손을 조금이라도 데우기 위해 비비며 몇번 째인지도 모를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그렇게 계속해서 이어지는 이한성의 한숨소리에 잔뜩 위축되어 있던 수정이는 이내 두 손을 꼼지락 거리며 아주 조심스러운 말투로 이한성에게 말을 걸어왔다.
“아빠…. 혹시 화났써…?”
“아니. 안 났는데.”
화가 난 건 아니다. 단지 조금 난처한 것 뿐.
“다음부턴 저렇게 큰 건 만들지 마. 동네방네 소문이 쫙 퍼질테니까.”
“그럼… 작은 건 만들어도 괜찮은거야?”
“그래. 얼음 눈사람 같은 아기자기 한 것들은 얼마든지 만들어도 돼.”
살아서 움직이지만 않는다면 말이지.
유명 애니메이션 속의 마스코트 눈사람을 떠올리며, 이한성은 속으로 그렇게 말을 덧붙였다.
[일일 퀘스트: 노는 게 제일 좋아(을) 를 클리어 하셨습니다.] [클리어 랭크: B+] [보상이 지급됩니다.] [+인챈트 스크롤: 보온(II)]익숙한 알람음과 함께 메세지 창이 나타나며 퀘스트 클리어를 이한성에게 알렸다. 바깥에서 중노동을 하나 보니 어느새 3시간이나 지났다는 사실을 깨달은 이한성은 이내 인벤토리를 열어 보상으로 받은 아이템의 자세한 설명을 읽었다.
[인챈트 스크롤: 보온(II) – 보온의 인챈트 마법이 담겨진 마법스크롤. 사용 시 착용중인 의류에다가 대마법을 제외한 모든 환경으로 부터 착용자의 체온을 유지시키는 수준의 보온 인챈트를 부여할 수 있다. 효과는 의류의 종류에 상관 없이 단 한번만 적용되며, 해당 의류가 파괴될 때 까지 영구적으로 지속된다.]이 시스템 새끼가 사람이 얼어 죽을 뻔 한 건 아나 보네.
이 춥디 추운 겨울에 수정이와 놀아주기 위해서는 매우 필수적인 아이템이다. 그런 필수템을 보상으로 받은 이한성은 역시 시스템에게 따로 지능 같은 게 있는 건 아닌지, 다시 한번 합리적인 의심을 해보며 스크롤을 실체화 해 주저없이 바로 사용하려고 했다.
[한번 부여 된 인챈트는 되돌릴 수 없습니다. 정말 사용하시겠습니까?]순간 인챈트 스크롤을 사용하려고 하기 무섭게 경고 메세지가 출력되며 이한성을 멈칫하게 만들었다.
….잠시만 기다려 봐. 굳이 지금 사용 할 필요가 있나?
현재 이한성이 입고 있는 재킷은 3년 전에 근처 벼룩시장에서 단돈 만원을 주고 산 무명 브랜드의 싸구려 방한복이다. 샀을 때 당시에는 상태가 꽤 좋은 편이었지만, 매년 겨울마다 걸칠 게 이거 하나 밖에 없었던 지라 현재는 지퍼도 자주 고장나고 주머니에도 쥐구멍이 훤히 뚫려있어서 영 상태지 좋지 못하다.
그런데 딱 한번 쓸 수 있다는 보온 스크롤을 이런 헌옷에다가 쓸 필요가 있을까. 차라리 명품 브랜드 걸로 하나 새로 사서 사용하는 게 훨씬 이득일텐데.
예전 같았으면 꿈도 못 꿨을 건 100만원을 들락날락하는 캐나다 거위 브랜드 패딩도 이제는 여유롭게 구매가 가능할 정도로 돈이 많다. 물론 아직 금전감각이 완전히 업데이트가 된 게 아니라 고작 패딩 하나 사겠다고 100만원을 쓴다는 게 마음에 걸리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래. 일단은 보류하자.”
어차피 좀 있다가 나가서 장을 볼 생각이었으니 추워도 조금만 참자. 그렇게 이한성은 하마터면 귀한 인챈트 스크롤을 날릴 뻔한 자신을 나무라며 인챈트 스크롤을 도로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아빠아빠, 우리 밥 언제 먹을거야?”
3시간 동안 밖에서 신나게 노느라 배가 고파진 수정이가 꼬르륵 거리는 배꼽을 붙잡으며 물어왔다.
“지금 집에 먹을 게 없어서 장 부터 봐야 돼.”
“오래걸려?
“좀 오래 걸릴거야. 못 참겠어?”
“음… 아냐. 나 참을 수 있어.”
수정이가 고개를 저으며 그렇게 대답했다. 하지만 대답과는 다르게 수정이의 배는 여전히 요란하게 밥을 요구하고 있었다.
[꼬르륵-]“…..”
가면서 뭐라도 하나 사줘야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