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Part-Timer Raises a Half-Elf RAW novel - Chapter (57)
알바생이 하프 엘프를 키우는 법-57화(57/245)
57
폭설이 내려앉은 길거리는 인기척이 없이 무척이나 조용했다.
제설차가 이미 한번 눈을 치워났었는지 사람이 지나다니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굳이 바깥에 나올 정도로 좋은 날씨도 아니었으니 당연하다.
조용하고 한산한 길거리를 걷고 있는 건 오직 이한성과 수정이 둘 뿐이었다. 도로의 차들은 폭설 때문에 거의 지나다니지 않았고 평소에는 각종 길거리 노점들이 들어서 있는 길거리 또한 폭설로 인해 이른 낮부터 장사를 접은 상태였다.
[꼬르륵~]“….아빠는 거짓말쟁이.”
허기진 배꼽시계 소리와 함께 수정이가 뚱한 얼굴로 이한성을 비난했다.
“가면서 먹을 거 사준다고 했자나.”
가면서 무슨 어묵꼬치라도 파는 노점이 하나쯤은 남아 있을거라고 생각했는데 눈이 하도 많이 온 탓에 현재 길거리는 거의 텅텅 비다 싶이 한 상황. 덕분에 꼼짝없이 수정이에게 거짓말쟁이로 낙인이 찍히게 생긴 이한성은 어물쩡한 말투로 미안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아니… 벌써부터 다 문을 닫았을 줄은 몰랐지.”
“흥!”
수정이가 고개를 홱 돌리며 이한성을 무시했다. 아무래도 배고픔과 배신감 때문에 단단히 삐진 모양이었다.
“야, 그래도 장은 빠르게 다 봤으니까 집에 가면 바로 맛있는 거 해줄 게.”
그래도 매장이나 가게에 사람들이 거의 없었던 덕분에 장보기는 생각보다 훨씬 일찍 끝났다. 이한성은 그렇게 삐진 수정이를 달래며 방금 전 매장에서 난생 처음 사 본 명품 브랜드 패딩이 든 종이가방을 고쳐들었다.
차도 빨리 알아봐야지. 이걸 다 들고 다니려니까 무거워 죽겠네…
각종 과일에 야채, 거기에다가 삼겹살과 생닭. 그 외에도 필요한 생필품 등을 가득 산 탓에 이한성은 현재 비어있는 손이 없었다.
이 추운 날씨에 눈 때문에 걷기도 불편한데, 짐까지 이렇게 잔뜩 들어야 한다는 건 생각보다 무척 힘든 일이다. 그나마 같이 들어 줄 사람이라도 있었다면 좀 고생이 덜 했겠지만, 그렇다고 수정이에게 이 무거운 봉투들을 들라고 맡길 수도 없는 법이었다.
“잠깐만. 그게 있었지?”
슬슬 뻐근해지는 팔 때문에 속으로 궁시렁거리며 온갖 불평을 늘어놓던 그 순간, 뻔하디 뻔한 아이디어 하나가 이한성의 발걸음을 잠시 멈추게 만들었다.
시스템에 인벤토리가 있잖아. 그걸 사용하면 아무것도 들 필요가 없어지는 거 아냐? 그 왜 현판 소설 속에서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다 그러던데.
이미 클리셰가 되다 못해 복사하고 불어넣기가 되다 싶이 한 아이디어를 왜 지금껏 생각도 안하고 있었을까. 이한성은 그렇게 너무 날씨가 추운 나머지 잘 돌아가지 않았던 머리를 탓하며 바로 짐을 내려놓고 인벤토리 창을 열었다.
[소지중인 물건을 인벤토리 창에 넣으시겠습니까?]“[Yes].”
[삐빅-중량 허용치를 초과하였습니다.]“….”
교통카드를 찍었는데 잔액이 부족할 때 나오는 소리와 함께 메세지 창이 이한성의 앞을 가로막았다.
“아니, 이게 다 합쳐서 얼마나 된다고…”
다 합쳐서 10kg도 안나오는데 중량 허용치를 초과한다는 게 뭔 말이야. 아니, 애초에 인벤토리에 왜 중량 허용치가 있는건데?
쓸데없이 붙어있는 리얼리즘에 어이가 없어진 이한성은 인벤토리 창 아래부분에 적혀져 있던 중량 허용치를 확인했다.
[1.3kg/1.5kg]고작 1.5kg. 핸드폰 5개가 겨우 들어갈 정도의 무게.
“지금 장난하나.”
딸랑 1.5kg 밖에 못 넣게 만들거면 대체 인벤토리를 왜 만들어 넣은거야? 엘레인 그 영감님, 정말 대마법사였던 거 맞아? 어떻게 뭐 하나같이 다 제대로 만든 게 없는 것 같냐.
아주 쓸모없는 인벤토리의 성능을 확인한 이한성은 실망감을 금치 못하며 시스템의 개발자인 일레인의 능력을 근본부터 의심해 보았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이미 죽은 사람을 의심해 봤자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어쩌겠어. 빨리 차를 한 대 사야지.
어떤 차가 좋을까, 가족들이 쓰기 딱 좋은 SUV? 아님 승용차?
내려놓았던 짐들을 다시 손으로 들어올리며, 이한성은 잘 알지 못하는 차 종류들을 하나 씩 떠올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러던 와중, 수정이가 갑자기 이한성의 옷소매를 툭툭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툭툭-]“?”
“아빠. 저거 뭐야?”
수정이가 손가락으로 저 앞에 있는 무언가를 가리켰다.
낡은 푸드트럭 한 대와 시린 바람을 타고 날아오는 은은하고 고소한 향기. 이런 날씨에도 장사를 여태껏 안접고 묵묵히 눈을 뒤집어 써가며 밀가루 반죽을 틀에 붓는 주인 아저씨.
그렇다. 겨울철에 흔하게 볼 수 있는 붕어빵 가게였다.
“….붕어빵이네.”
“붕어빵?”
“물고기 처럼 생긴 팥빵이야.”
여태껏 태어나서 붕어빵을 먹어 본 적도, 쳐다본 적도 없는 수정이의 물음에 이한성은 무심한 말투로 그렇게 짧막히 대답했다. 그러자 수정이는 이내 군침을 질질 흘리며 붕어빵 가게를 빤히 쳐다보기 시작했다.
“아빠, 저거 맛있써?”
“….”
“아빠?”
“…어? 어. 맛있긴 하지.”
맛있게 먹은 기억은 없지만.
가끔씩 주변 어른들에게 받은 용돈으로 혼자 사먹었던 붕어빵. 추운 겨울에 혼자 놀이터 구석에 앉아서 먹었던 붕어빵은 눅눅하고 퍽퍽해서 전혀 맛있다고 할 수가 없었다.
잠시 옛날 생각에 잠긴 탓에 한눈을 팔고 있던 이한성은 이어지는 뒷마디를 도로 삼켰다. 그리고는 이내 먹고 싶다는 마음이 겉으로 잔뜩 드러난 수정이를 바라보며 나지막히 물었다.
“….저거 먹고싶어?”
“응! 냄새가 햄버거 처럼 엄~청 맛있어!”
“알았어 알았어. 흥분하지 말고 진정해. 바로 사줄테니까.”
괜히 흥분해서 사고치기 전에 바로 사주는 게 좋겠지. 아까 먹을 거 사주겠다고 약속하기도 했었고.
그렇게 이한성은 수정이를 진정시키고는 새하얀 눈밭에 발자국을 남기며 붕어빵 가게 앞에 다가갔다. 그러자 조용히 붕어빵을 굽고 계시던 널널한 인상을 지닌 중년 아저씨가 둘을 반기며 인사를 건내왔다.
“안녕하십쇼~! 거 날도 추운데, 무슨 일로 나오셨습니까?”
“장을 깜빡하고 미리 안봤어요. 팥이랑 슈크림이랑 각각 하나씩 주세요.”
넉살 좋으신 아저씨의 물음을 가볍게 받아치며, 이한성은 자연스럽게 수정이와 자신이 먹을 걸 하나씩 시켰다. 그러자 이에 아저씨는 능숙하신 손놀림으로 반죽과 슈크림, 그리고 팥을 틀에 부어 붕어빵을 굽기 시작하셨다.
“그 옆에 여자애는 딸이에요?”
“네. 아직 점심을 못 먹여서 배가 고프다고 난리였어요.”
“그 나이 때 애들은 잘 먹고 많이 먹어야지. 옛다, 한봉지 더 드릴테니까 따님이랑 잘 나눠 드세유.”
“아, 아뇨. 바로 집에가서 밥 차려 먹을거라 그러실 필요는…”
이한성이 채 호의를 거부하기도 전에 붕어빵 아저씨는 갓 구운 붕어빵을 각각 두개 씩 봉지에다 담아 그에게 떠넘겼다.
“아유, 어차피 오늘 장사 망해가지고 남는 거 다 버려야 돼요. 그냥 가져가서 먹어유.”
“…감사합니다.”
당사자야 농담으로 말했지만 이렇게 노점을 운영하는 사람들의 고난을 어느정도 잘 아는 이한성은 웃을 수가 없었다. 그저 웃음이 아닌 쓴웃음으로 정중히 호의를 받아드릴 뿐.
“자, 여기 슈크림 맛. 뜨거우니까 조심해라.”
“우왕!!”
이한성이 봉투 속에서 갓 구운 슈크림 맛 붕어빵을 꺼내 수정이에게 건내주었다. 그러자 배가 고팠던 수정이는 이한성의 충고를 무시한 채 맨손으로 그대로 붕어빵을 붙잡았고, 이내 꽥 소리를 지르며 붕어빵을 내던졌다.
“앗뜨거!!!”
“야야!! 조심-”
[위험이 감지되었습니다.] [10초 동안 시간이 느려집니다.]“…하라니까.”
정지에 가깝게 느려진 시간 속에서, 수정이가 내던진 붕어빵이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마냥 천천히 공중제비를 돌았다. 이미 [위기감지]의 스킬에 익숙해진 이한성은 나지막히 한숨을 내쉬고는 공중에 뜬 붕어빵을 그대로 휴지로 감싸 아주 쉽게 낚아챘다.
[툭-]붕어빵을 낚아챈 것과 동시에 시간의 흐름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남들이 보기엔 국가대표 급 반사신경으로 붕어빵을 캐치한 이한성이었지만, 정작 본인 한테는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내가 뜨거우니까 조심하라 했지. 손 괜찮아?”
이한성이 살짝 부어오른 수정이의 손바닥을 붙잡고는 쓴소리와 함께 조심스럽게 살펴보며 물었다. 그러자 수정이는 눈물이 똘망하게 맺힌 눈으로 이한성을 바라보며 요상한 표정과 함께 티가 잔뜩 나는 태연한 척을 연기했다.
“하, 하나도 안 뜨거운데! 나 괜찮은데!”
“퍽이나 그러겠다.”
안 뜨겁다는 애가 멀쩡한 붕어빵을 내던질까. 본인 입으로 뜨겁다고 소리까지 쳤으면서.
대체 저 이해하기 힘든 고집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본인이 원인이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 이한성은 그렇게 속으로 의문을 품으며 뜨겁지 않게 붕어빵을 휴지로 두텁게 감싸서 수정이에게 다시 한번 건내주었다.
“자. 또 던져버리면 이번엔 못 잡아주니까 조심해.”
“응!”
한번 데여 봤으니까 두번 데이지는 않겠지
기운 찬 대답과 함께 수정이는 슈크림 붕어빵을 손으로 붙잡아 데이지 않게 조심스럽게 종이포장을 뜯었다.
“우와아….”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갓 구운 붕어빵. 별로 잘생겼다고 하긴 힘은 실제 붕어와는 달리 아기자기 하고 컴팩트 한 것이 꽤 귀엽게 보이기도 하는 붕어빵을 본 수정이는 그렇게 감탄을 내뱉으며 먹는 건 뒷전으로 한 채 그저 관찰하듯 살펴보기만 했다.
“안 먹어?”
“으음… 음… 먹으면 붕어빵이 아파하지 않을까…?.”
“머리부터 먹으면 안 아파 해.”
즉사하거든.
애초에 붕어빵이 통각 같은 걸 느낄리가 없지만, 이한성은 수정이의 말에 장단을 맞춰주기로 하며 그렇게 대답했다.
“아~ 그렇구나.”
수정이가 알겠다는 듯이 붕어빵의 머리를 덥썩 베어물었다. 그러자 안에 든 슈크림이 잘려나간 머리로 부터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고, 이에 수정이는 처음 맛보는 슈크림의 달콤한 맛에 눈을 번쩍 뜨며 감탄했다.
“아빠아빠! 이거 맛있어!”
“그래그래. 알겠으니까 슈크림 다 흘리지 않게 조심해서 먹어.”
이한성이 떨러질랑 말랑 아슬아슬하게 새어나오는 슈크림을 휴지로 살짝 닦아내며 수정이에게 당부했다. 하지만 이미 붕어빵의 달달한 맛에 푹 빠진 수정이는 그런 걸 신경 쓸 겨를이 조금도 남아있지 않았다.
….되게 맛있게 먹네.
팥을 싫어할 것 같아서 일부러 슈크림 맛으로 줬는데 좋아하니 다행이다. 그런 생각과 함께 이한성은 조용히 팥 붕어빵을 봉투에서 꺼내 한입 베어물었다.
“….괜찮네.”
어렸을 때 부터 붕어빵을 그닥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는데, 오늘은 왠지 모르게 평소보다 붕어빵이 맛있게 느껴지는 건 기분 탓일까.
오랜만에 먹어봐서 맛있게 느껴지는 걸지도 모른다. 어쩌면 모르는 사이에 붕어빵에 감미료가 더 추가된 것일 수도 있고.
어렸을 때는 사줄 사람이 없어서 먹지 못했고, 성인이 된 이후에는 딱히 먹을 이유가 없어서 먹지 않았다. 붕어빵 말고도 길거리에 먹을 건 많았으니.
“넌 다행인 줄 알아라. 붕어빵 사줄 사람이 있어서.”
“?”
이한성이 수정이의 은발을 쓰다듬으며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입가에 슈크림을 잔뜩 묻히고 있던 수정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붕어빵을 다 먹고 남은 종이껍질을 이한성에게 자연스럽게 떠맡겼다.
“아빠, 나 하나 더 먹을래.”
“안돼. 집 가서 밥 먹을거니까 참아.”
“왜에에~! 밥도 먹고 붕어빵도 먹으면 되자나!”
“너 저번에도 과자 먹고 밥 안먹는다고 고집피웠잖아. 전과가 있으니까 안돼.”
“헙… 어, 어떻게 알았써…? 몰래 먹었는데…”
“몰래는 개뿔. 들키고 싶지 않았으면 증거인멸을 제대로 했었어야지.”
쓰레기 통에다가 과자 봉투를 대놓고 버려놓고는 들키지 않기를 바라는 게 더 이상하다. 아직 5살이기에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한 수정이를 바라보며, 이한성은 휴지로 수정이의 입가를 닦았다.
[위이이잉-]“?”
주머니 속 핸드폰이 요란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갑작스럽게 걸려온 전화에 이한성은 들고 있던 짐들을 잠시 내려놓고 핸드폰을 꺼내 발신자를 확인했다.
[고려인]화연 씨네? 아까 점심 때 전화했던 걸 이제야 확인한건가.
바빠서 이제야 부재중 통화 기록을 확인했던 모양이라고 짐작하며, 이한성은 통화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저, 이한성 씨. 죄송한데…]“아뇨, 이제는 괜찮으니까 신경쓰지 않아도-”
[잠깐 뉴스 좀 보셔야 할 것 같아요.]“…네? 뉴스?”
갑자기 왠 뉴스? 뭐야, 아까 전화 못 받아서 미안하다고 말하려던 거 아니었어?
전화로 생뚱맞게 다짜고짜 뉴스를 확인하라는 화연의 말에 이한성은 어리둥절 하며 일단 핸드폰으로 뉴스 기사를 확인해 보았다.
“…..이게 뭐시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