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Part-Timer Raises a Half-Elf RAW novel - Chapter (60)
알바생이 하프 엘프를 키우는 법-60화(60/245)
60
한모금 정도 남아있던 우유를 전부 들이키며, 해영은 조용히 컵을 식탁에 내려놓았다.
“그러니까… 언니가 사실은 엘프다, 이거야?”
“…응.”
“그것도 600년을 살아온?”
“…응.”
마치 추궁하는 것만 같은 해영의 질문에 화연은 마치 대역죄인이라도 된 듯 마냥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왜 지금까지 나한테 말 안했어?”
“그거야… 난 네가 진작에 알고 있었을거라…”
“뭐?”
순간 해영의 눈빛이 지금까지 단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절대영도의 온도로 싸늘하게 식었다. 그냥 순진하고 넉살이 좋은 줄만 알았던 그녀가 그런 표정을 짓자, 둘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던 제3자인 이한성은 혼자 이미 진작에 비어버린 컵을 홀짝이며 침묵을 지켰다.
역시 평소에는 웃던 사람이 한번 화를 내면 무섭다니까…
“…죄송합니다.”
600살이나 된 주제에 19살 짜리 동생 앞에서 쩔쩔 매던 화연은 이내 싸늘해진 해영의 눈빛을 피하며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죄했다.
“그래. 죄송해야지. 내가 그동안 언니 때문에 얼마나 가슴을 졸였는지 알아? 며칠전에 언니가 함경도가 어쩌니 저쩌니 했을 때는 진짜 간첩신고라도 해야 하나, 싶었다고.”
간첩으로 의심당할 만도 하다. 겉보기에는 20대인 사람이 “내가 함경도에서 살아봤는데” 라고 썰을 풀기 시작한다면 아마 다들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보내겠지.
“아무튼… 언니는 엘프라 그렇다 치고, 그럼 수정이는 뭔데?”
해영이 이한성의 옆에 앉아서 과자를 우물거리고 있던 수정이를 바라보며 물었다.
….왜 안 물어보나 했네.
수정이에 대해서는 말이 없길래 이상하다 싶었더니, 역시 그냥 넘어가지는 않는건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아까 마당에서 수정이가 얼음성을 박살내는 모습을 보았을텐데, 그걸 보고도 가만히 넘어간다는 건 말이 안된다.
“…..”
화연이 이한성의 눈초리를 살피며 말해도 되겠냐고 눈빛을 보냈다. 그러자 이에 이한성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고, 동의를 받은 화연은 나지막히 입을 열어 대답했다.
“수정이는… 하프엘프야.”
“하프엘프? 그 뭐야, 인간+엘프?”
“응. 나랑 똑같이 이세계에서 왔어. 지금은 알다시피 이한성 씨가 보호자고.”
“음… 수정이가 사실 언니 딸이라거나 그런 건 아니지?”
“아니야.”
화연이 정색과 함께 단칼에 해영의 의문을 부정했다. 하지만 해영은 이미 그걸 알고 있다는 듯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알아. 예전에 버스남 씨가 아니라고 극구 부정을 하면서 말해 줬었어.”
“…그랬었어?”
“응. 자기랑 화연 씨는 그런 사이가 1도 아니고 앞으로도 엮이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다고.”
“…..”
순간 왠지 모르게 화연의 표정이 어두워진 건 기분 탓일까.뭔가 되게 서운한 눈빛으로 이쪽을 바라보는 화연의 시선을 느끼며, 이한성은 속으로 궁시렁 거리기 시작했다.
아니, 정색 했을 때는 언제고 왜 또 선을 그으니까 배신이라도 당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건데. 뭐 어쩌자는거야.
늘 느낀거지만 여자의 마음은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다. 오늘도 그렇고 부탁하면 대부분 들어주는 걸로 봐서 그래도 서로 호의는 어느정도 느끼고 있는 것 같긴 한데… 대체 우린 무슨 관계지?
친구? 아니, 그정도는 아니다. 아직도 서로 꼬박꼬박 존댓말을 쓰는데.
그럼 그냥 아는 사람? 아니, 그것도 아니다. 그냥 아는 사람이었다면 오늘 처럼 주말에 굳이 도와주러 오지도 않았겠지.
친분이 있는 지인. 그래. 이게 지금의 그녀와 나를 설명하는 가장 적절한 관계겠지. 부탁 좀 하면 들어주지만, 사생활에는 서로 관여하지 않는, 딱 그 뿐인 관계.
….애초에 종족부터가 다른 데 당연한 거 아닐까. 저쪽 눈에는 내가 완전 응애로 보일 거 아냐. 20대 응애.
단순 나이 차이만 해도 580년. 아무리 현대 의학이 발전해서 인간의 평균 수명이 100년으로 늘어났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5명이 태어나고 죽고를 반복 할 정도로 긴 시간이다.
즉, 이한성에게 있어서 화연은 고려시대의 살아있는 화석이고, 화연에게 있어서 이한성은 세대차이가 아득하게 벌어진 후손이라는 뜻이다.
“저기요. 저 이래뵈도 적응이 빨라서 세대차이가 그렇게 나는 편도 아니거든요?”
…이젠 아주 그냥 대놓고 독심술을 쓰시네.
입 밖으로 아무말도 내뱉지도 않았는데 사람의 속마음을 들여다 보고는 항의하는 화연의 당당한 모습에, 이한성은 참 대단하다는 듯이 그녀를 바라보며 그녀의 항의를 받아쳤다.
“그럼 알고 있는 노래 아무거나 하나 불러봐요.”
“….”
이한성의 질문에 화연은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는 이내 머리를 굴리더니, 쓸데없이 좋은 목소리로 알고있는 노래 한소절을 불렀다.
“호랑나비! 한마리가-”
“됐어요. 거기 까지만 합니다.”
대체 언젯적 노래를 부르고 있는거야. 국민학교 출신이세요?”
“다, 다른 노래도 있어요!”
“어떤거요?”
“그… 킬리만자로의…”
“……”
이한성은 아무 말도 없이 뻔뻔하기 그지 없는 화연을 지긋이 쳐다보았다. 그러자 그녀는 일말의 양심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었는지 조용히 입을 다물었고, 이에 그녀의 뻔뻔함을 지켜보고 있던 해영이 끼어들며 그녀를 나무라기 시작했다.
“언니. 요즘 세대인 척을 하려면 적어도 방탄은 알아야 하지 않을까?”
“…방탄? 그게 뭔데??”
어우, 이건 좀 심각한데.
한국에 살면서 방탄이라는 말을 듣고도 그게 뭔지 모른다면 그사람은 필시 간첩이거나 이민자일 것이다. 아이돌이니 뭐니 하는 것에 관심이 일절 없는 이한성 조차도 방탄을 모를리가 없을 정도이니.
이한성과 똑같이 심각하다는 눈빛과 함께, 해영은 화연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제 이건 더 이상 세대차이의 문제 같은 게 아니었다.
“어떻게 방탄을 모를 수가 있어…? 언니 매국노야…??”
“야, 매국노라니… 나 관순이하고 같이 국밥도 먹고 그랬던 사이거든?”
“관순이라니, 그게 누군데?”
“유관순.”
…..아니, 누가 위인전에 나오는 사람을 저렇게 친근하게 이름으로 불러? 관순이? 난 또 무슨 옆집 복돌이네 동생이라도 되는 줄 알았잖아.
위인들의 이름은 항상 풀네임으로 들었던 탓에 잠깐 관순이가 누구인지 아리송했던 이한성과 해영은 이내 멍한 눈빛으로 화연을 바라보았다.
“…언니. 언니 대학 생활 잘 하고 있는 거 맞아?”
아는 노래가 무슨 70년도 80년도 대중가요인데다가 유관순을 관순이라고 부르는데, 젊은이들이 모여있는 대학교에서 적응하는 게 가능하기나 한 소리일까.
생각했던 것 보다 심각한 화연의 상태에 걱정 된 해영이 근심이 가득한 목소리로 그녀에게 물었다. 그러자 화연은 아무런 문제도 없다는 듯이 대답했다.
“야, 나 학교생활 아~주 잘 하고 있어. 강의에 지각도 안하고, 과제도 꼬박꼬박 제출하고, 조별과제 할 때도 내가 캐리? 인가 뭔가 한다고 다들 칭찬한다니까??”
“…..”
아, 이거 그거다. 학교생활은 잘 하는 데 사람들이랑은 담을 쌓고 지내서 남들 탈주하고 놀 때 혼자 조별과제를 원맨쇼로 해결하는 그거.
흔히들 말하는 조별과제 잔혹사. 고졸인 이한성 조차도 세간에 떠도는 여러 이야기를 들어 익히 알고 있는 대학생활의 가히 최종보스라고 할 수 있는 전설의 레전드.
다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화연은 자신이 그러한 상황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언니, 혹시 조원 중에 친척 장례식 있다고 빠지는 사람 있었어?”
“응. 있었어. 장례식 때문에 2주 내내 못 나왔어. 안그래도 과제 때문에 스트레스 받았을텐데 하필 조별과제 도중에 그런 일을 겪다니… 참 내가 다 미안하고 그러더라.”
아니다. 그거 백퍼 구라다. 부모님이나 할머니 할아버지라면 모를까, 조별과제 도중에 친척 분이 돌아가셨다면 하루 잠깐 참석하고 다시 과제에 집중하는 게 보통일텐데, 2주 동안이나 과제 참여를 못한다는 게 말이나 되는가.
“…그럼 열심히는 하는데 도움 안되는 사람은?”
“한명 있어. PPT를 맡겼는데 폰트가 엉망인거야. 성실하긴 성실한데 일을 영 못하니까 좀 안쓰럽더라.”
….600년 짬빠가 있는 엘프한테는 조원들의 트롤링이 그저 애교에 불과한 모양이네.
다른 사람 같았으면 화딱지가 터져서 고혈압으로 쓰러질 수도 있을 일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뭐가 문제인지도 모른 채 웃으면서 말하는 화연의 모습을 바라보며, 이한성은 그렇게 조용히 감탄을 내뱉었다.
“아무튼 나 학교생활 잘 하고 있으니까 걱정 마.”
“…..”
“…..”
걱정하지 말라는 화연의 말에 이한성과 해영은 할 말을 잃어버렸다. 자신이 조원들에게 속고만 살았다는 사실을 꿈에도 모르는 화연에게 진실을 말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나저나 참 의외네… 난 감쪽같이 해영 씨 쪽이 저렇게 휘둘리는 타입인 줄 알았는데 사실 똑 부러진 화연 씨 쪽이 그런 타입이었을 줄이야…
어쩌면 600년이라는 세월을 살아온 탓에 온갖 사회의 부조리란 부조리는 전부 겪었기에 조별과제 잔혹사를 경험하고도 저리 태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기야 학교에 자기보다 580년은 어린 20대 응애들 뿐일텐데 굳이 화를 낼 이유를 못느끼는 게 당연할 수도.
막상 생각해 보니 화연이 저렇게 개의치 않아 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가능한 수준이다. 그런 생각과 함께 이한성은 관순이랑 국밥까지 같이 먹었다던 애국자인 화연을 바라보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툭-]“?”
잠시 대화거리가 떨어져 식탁 위에 침묵이 감돌던 그 순간, 따스한 감촉이 갑작스럽게 이한성의 무릎 위에 닿았다.
앉아있던 그의 무릎 위에 떨어진 것은 다름아닌 그새 곤히 잠들어버린 수정이의 복슬거리는 은발머리였다.
하긴… 애한테는 슬슬 졸릴 시간이기도 하지.
밥 먹은 직후이기도 하고 어른 셋의 대화가 지루했던 탓에 금새 잠들어버린 것이리라.
이한성은 그렇게 얌전히 자신의 무릎을 베게 삼은 수정이를 내려다 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화연과 해영 또한 수정이가 잠들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서로 식탁 위의 그릇을 정리하며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고, 이내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우리 슬슬 가야겠다 해영아.”
“그러게. 수정이랑 좀 더 놀고싶었는데… 뭐, 하는 수 없지.”
수정이랑 더 친해지고 싶었던 해영은 새근새근 자고 있는 수정이를 흐뭇하게 바라보며, 오늘 아줌마에서 언니라고 호칭이 변한 것 만으로 만족하자고 스스로를 타일렀다.
이제 가려나 보네. 그래도 둘 다 우리집에 온 첫 손님이니까 현관문 앞까지는 바래다 줘야겠지.
슬슬 돌아가려는 해영과 화연의 눈치를 본 이한성은 수정이를 안아 소파에 조심스럽게 눕히고는 옷과 가방을 챙긴 두 사람… 이 아닌 엘프 한명과 사람 한명을 현관문까지 바래다 주었다.
“고마워요 이한성 씨. 밥 잘 먹었어요.”
“아. 네, 뭐…. 제가 요리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재료는 다 한성 씨가 산거잖아요. 얘는 요리만 했을 뿐이고.”
화연이 해영을 무슨 유치원생 대하듯 쓰다듬으며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해영은 화연의 손을 자신의 머리로 부터 밀어내고는 웃으면서 이한성에게 물었다.
“다음에 또 와도 되죠?”
“일주일에 한번 정도라면 뭐… 그러시던가.”
“앗싸! 고마워요 버스남 오빠!”
….저 사람은 대체 언제 쯤 날 이름으로 불러줄까.
버스남 씨에서 버스남 오빠로 승격된 이한성은 피곤함이 가득한 눈빛으로 해영을 바라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자신의 이름은 이한성이라고 그녀를 정정하는 것은, 이미 진작에 포기한지 오래였다.
“그럼 안녕히 계세요.”
해영와 화연은 그렇게 짧막한 인사와 함께 신발을 신고는 돌아가기 위해 현관문을 열었다.
아니, 정확히는 열려고 했다.
[철컥-]“….??”
손잡이를 잡고 돌렸는데도 문이 열리지 않았다. 혹시나 추위 때문에 문이 얼어버린 것은 아닌가, 싶었던 화연은 한번 문을 있는 힘껏 밀어보았다.
[뿌드드드득-]“….”
문을 힘껏 밀자 눈을 발로 밟는 듯한 소리가 바깥에서 연속적으로 들려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현관문은 약 25도 정도로 살짝 열렸고, 이윽고 대관령의 돌풍 저리 가라 할 매서운 찬바람이 실내로 들이닥치며 모두의 얼굴을 후려쳤다.
…..시벌 저게 뭐여.
얼얼해진 얼굴과 함께 살짝 열린 문 바깥의 풍경을 본 이한성은 순간 저도 모르게 속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50cm가 넘게 쌓인 눈더미가 문 앞을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폭설 때문에 지하철이랑 버스랑 다 운행 중단됐다는데요…?”
두텁게 쌓인 눈들을 보고는 핸드폰을 꺼내 일기예보를 확인한 해영이 화면을 보여주며 곤란함이 가득 담겨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그 소식을 들은 화연과 이한성은 서로 돌 처럼 굳은 표정을 지으며 바깥을 내다보았다.
“….ㅈ됐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