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Part-Timer Raises a Half-Elf RAW novel - Chapter (63)
알바생이 하프 엘프를 키우는 법-63화(63/245)
63
“아빠, 우리 지금 어디 가?”
달리는 버스 안에서, 주변 사람들의 웅성이는 소리만이 울려퍼지던 가운데 수정이가 바로 옆에서 조용히 창 밖을 내다보던 이한성에게 그렇게 물었다.
“….할아버지 보러.”
수정이의 물음에 이한성은 그렇게 짧막히 대답했다. 그러자 수정이는 이내 호기심이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들떠하기 시작했다.
“할아버지? 아빠의 아빠??”
“그래.”
마음 같아서는 그 인간이 자신의 아빠라는 걸 극구 부정하고 싶었던 이한성이었지만 할아버지를 보러 간다는 말에 무척이나 들뜬 수정이를 앞에두고 인간에 대한 험담을 할 수도 없는 법이었다.
….벌써 2년인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 마자 집을 나왔던게 바로 2년 전이었다.
당연히 작별인사나 통보 같은 건 일절 없었다. 졸업식이 있었던 그날의 새벽에, 이한성은 그동안 알바로 모은 돈을 가지고 짐을 싸서 집을 나왔고, 그날도 마찬가지로 거실에서 새벽까지 술에 절어있던 그의 아버지는 집에서 나가는 아들을 보고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 후로 이한성은 아버지에 대해 깨끗이 잊고 살아왔다. 이름만 아버지였던 그 인간을 기억하고 싶은 마음도, 여유도, 그에게는 없었다.
추억이라고는 술병으로 맞은 기억밖에 없는데 뭐가 좋아서 그런 알코올 중독자를 기억하려 들겠는가. 당연하게도 이한성이 아버지를 그리워 하는 일 따윈 없었고, 소식을 알고 싶은 마음조차도 없었다.
그건 지금 버스를 타고 병원으로 가고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마찬가지었다.
그러니 오늘 이렇게 그 인간을 만나러 밖에 나온 것은 그저 호기심 때문이다. 평생동안 한번도 아버지 노릇을 제대로 한 적이 없었던 그 인간이 갑작스럽게 자신을 찾는 이유에 대한 호기심.
딱 그 뿐이다.
창 밖으로 펼쳐진 도로 위의 진흙눈을 바라보며 이한성은 한껏 어두운 표정으로 스스로에게 그렇게 되뇌였다.
하지만 그렇게 진중한 분위기의 이한성과는 달리, 어째 주변의 분위기는 이상하리 만큼 밝고 시끌벅적했다.
“저 애 되게 귀엽지 않아?”
“와… 나 은발 처음 봐. 저 머리색이 자연적으로도 가능한거였구나…”
“옆에 있는 사람은 아빠야? 졸라 젊은데??”
“애는 귀여운데 아빠 쪽은 전혀 안그렇네. 애가 엄마를 닮았나 보다.”
“…..”
주변 사람들이 한마디 씩 수근대는 소리가 하나도 빠짐없이 이한성의 귓가에 들려왔다. 가뜩이나 아버지 일로 심란해져 있던 이한성이었지만, 주변의 분위기가 죄다 귀여운 수정이 덕에 무지개가 되어버린 탓에 방금 전 까지의 진중함은 태풍에 휘말린 신문지 마냥 싹 다 날아가 버린지 오래였다.
“아빠빠! 들었지? 나 완전 연예인이다?”
“연예인 같은 소리 한다. 귀엽다는 소리 좀 들은 것 가지고 기고만장 하지 마.”
하여간에 지가 잘난 건 알아가지고…. 꼭 저렇게 쓸데없이 자랑을 한다니까.
말은 삐딱하게 하는 이한성이었지만 그런 것 치고 그의 얼굴에는 흐뭇한 미소가 띄워져 있었다. 수정이가 남들에게 이쁨 받는 게 은근히 무의식적으로 좋았던 모양이었다.
“아빠. 나 커서 연예인 할까?”
“하이고, 꿈도 크다. 니 인생이니까 나한테 묻지 말고 니 마음대로 하세요.”
뭐, 얘정도 외모면 커서 연예인은 따놓은 당상이겠지. 지금도 외모가 이렇게 눈에 띄는데 나중에 크면 얼마나 더 눈에 띄겠어. 거의 세계 정상급 미인이 될 걸?
애기였을 땐 그렇게 못생겼었는데 그래도 엘프의 피가 절반이라고 이제는 당당하게 연예인이 되겠다는 말을 꺼내도 납득이 될 정도로 눈에 띄게 귀여워졌다.
물론, 여전히 저렇게 지 잘난 걸 자랑하는 모습을 보자니 부모로써 칭찬을 하고 싶은 마음이 싹 다 사라지지만 말이다.
가만히 자리에 앉아있기만 해도 사람들의 관심과 시선을 듬뿍 받는 수정이. 필시 커서 뭐가 되더라도 이 아이라면 분명히 성공할 것이다. 이한성은 그런 생각을 믿어 의심치 않으며 이윽고 울려퍼진 안내방송에 귀를 기울였다.
“다 왔다. 얼른 잠바 입어.”
“시러. 나 이거 안 입으면 안돼? 덥단 말이야.”
“니가 그걸 안입으면 사람들이 나한테 눈으로 욕 해 임마.”
지난번에 외출 했을 때는 지나가시던 아줌마 한분이 어떻게 이 추운 날씨에 애 옷을 이따위로 입혀놓냐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시며 아동학대로 경찰에 신고까지 하려고 했었지. 그런 일이 또 반복되는 건 사양이다.
타고 난 체질 때문에 추위를 전혀 타지 않는 수정이지만, 주변 사람들은 그 사실을 알 리가 없다. 수정이가 괜히 덥다고 옷을 얇게 입으면 보호자인 이한성만 나쁜 놈이 되는 것이다.
“치… 그럼 대신에 지퍼는 안 올릴래.”
“그래. 걸치고만 있어. 그거면 충분하니까.”
덥다는데 지퍼까지 단단히 올리면 좀 미안하다. 안그래도 추워서 잠바를 입는 게 아닌 수정이에게 옷을 억지로 입히는 것이 상당히 미안했던 이한성은 거기까진 자신이 양보하기로 하며 수정이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어느샌가 정차한 버스에서 내렸다.
정류장에서 내리자마자 이한성의 눈가에 한눈에 들어왔던 것은 다름아닌 바로 길 건너편에 서있는 병원의 모습이었다.
“병원이 정류장 바로 앞에 있어서 다행이네.”
쓸데없이 더 걷지 않아도 되서 다행이다. 이 추운 날씨에 밖에서 오래 걷기 싫었던 이한성은 그 사실에 조금 안도하며 곧장 주차장을 지나 대학병원 안에 발을 들였다.
“킁킁, 아빠. 여기서 이상한 냄새 나.”
“소독약 냄새야.”
병원 특유의 소독약 냄새가 신기하면서도 이상했던 수정이는 코를 킁킁 거리며 몇번이고 주변의 냄새를 들이켰다. 그러자 이한성은 그런 수정이의 반응을 귀엽다는 듯이 쳐다보고는 곧장 엘리베이터에 올라타 3층을 눌렀다.
대학병원답게 엘리베이터 안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타고 있었다. 그중에는 휠체어를 타고 있는 환자도 있었고, 흰 가운을 입고있는 의사도 있었으며, 사복을 입고 있는 방문객도 있었다.
“아유~ 애가 참 훤하게 생겼네. 총각 딸이야?”
휠체어에 타고 계시던 할머니 한 분이 주위를 두리번 거리던 수정이를 바라보시더니 이내 이한성에게 말을 걸었다.
“네. 일단은요.”
“아이구, 이쁜 딸 둬서 참 좋겠네 좋겠어. 근데 어째 애가 아빠랑 하나도 안 닮았대?”
“그런 소리 자주 들어요.”
그야 피가 전혀 안 이어져 있는데 당연하지. 이런 말에 계속 반박하는 것도 이제 지치는데, 그냥 웃어 넘기자.
“아가야. 할머니가 맛있는 거 줄까?”
할머니가 입고 계시던 환자복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내시며 수정이에게 물었다. 그러자 먹을 거에 단숨에 넘어간 수정이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기대로 가득 찬 표정을 지었다.
“응!”
“야. 주세요, 해야지.”
“주세Yo!”
이한성이 지적하기 무섭게 수정이는 TV에서 본 건 있어가지고 무슨 래퍼마냥 끝발음을 굴렸다. 그러자 이름 모를 할머니는 꿀이 뚝뚝 떨어지는 눈빛으로 수정이를 바라보시며 주머니에서 꺼낸 양갱을 건네주셨다.
“이게 모야??”
“양갱이란다. 달달~ 하고 부드러운 거야.”
….환자 분이 저런 걸 막 주머니에 가지고 다니셔도 되는건가? 그 왜 의드를 보면 의사들이 항상 저런거 몰래몰래 병원에 가져와서 드시는 환자 분 들 때문에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던데…
한입 베어물어도 당뇨 수치가 확 올라갈 것만 같은 양갱을 본 이한성은 그렇게 한번 의문을 품어보았지만 굳이 그걸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어차피 고생하는 건 자신이 아닌 의사들의 몫이었기에.
[덜컹-]일순간 느껴진 부유감과 함께 엘리베이터가 3층에 도착했다. 1분도 안되서 목적지에 도착한 이한성은 곧바로 할머니께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했고, 그대로 수정이의 손을 잡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그러자 수정이 또한 할머니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했고, 그렇게 엘리베이터의 문은 다시 닫혀버렸다.
“음… 아빠, 이거 먹는 거 맞아??”
“왜, 먹기 싫어? 싫으면 나 주던가.”
“그건 시러.”
수상쩍은 눈으로 양갱을 만지작 거리는 수정이였지만 그렇다고 남 주기는 아까운 모양이었다. 그렇게 한참이나 양갱을 조물딱 거리던 수정이는 이내 양갱을 좁쌀만큼 한입 베어먹었다.
“…..달아!”
그야 양갱이니까 당연히 달지.
한번 베어먹고 달다는 사실을 깨달은 수정이는 이내 한치의 주저도 없이 양갱을 한입에 꿀꺽 집어삼켰다. 역시 단맛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5살이었다.
“어디보자, 병실이…”
[이지훈]….여기있네.
복도 중간 쯤에 위치해 있는 5인실 문 앞에 써져있는 이름 중 하나가 눈에 띄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이한성의 발걸음 또한 그자리에 멈춰섰다.
“….그냥 돌아갈까.”
병실 앞까지 와서 이렇게 머뭇거리는 것도 참 웃긴 일이었다. 바닥이 덜 굳은 시멘트라도 되는지 착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기분과 함께, 이한성은 망설이는 마음을 뒤로 한 채 멈추었던 발걸음을 뗐다.
그래. 여기까지 와서 그냥 돌아가면 버스비가 아깝지. 얼굴이나 잠깐 보고 돌아가자.
나지막히 깊게 숨을 들이쉰다. 그러자 경직되었던 몸이 조금은 움직이는 듯 했다.
[드르륵-]이한성은 조용히 병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양갱에 정신이 팔려있던 수정이 또한 총총거리는 발걸음과 함께 그를 따라 병실 안에 발을 들였다.
5인실 답게 병실 안에는 여러 환자들이 병상에 누워 있었다.
남자 여자 나이를 불문하고 가릴 것도 없이 모여있는 환자들 사이에서, 이한성은 익숙한 얼굴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왼쪽 이마 위부터 시작해서 눈썹을 살짝 스치고 지나가는 흉터를 지닌 중년 남성. 수척해진 얼굴과 기억하는 것 보다 주름이 많아진 피부. 병실 침대 위에 누운 채 가만히 창 밖을 바라다 보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을 본 이한성은 이내 묵묵히 다가가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저 왔어요.”
“…..”
늙어서 그런건지, 아니면 몸이 안좋아서 그런건지, 이지훈의 반응은 한박자 반 정도로 느렸다. 늘 사소한 것 하나 가지고도 귀신같이 반응해 온갖 난동을 피워댔던 그 인간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오랜만이구나.”
2년만에 들어본 아버지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쉬어 있었다. 소리를 잘만 지르던 인간이 이제는 겨우 목소리를 모습을 보고 있자니 속이 시원하기는 커녕 어째서인지 기분이 나빠질 뿐이었다.
“….옆의 애는 네 자식이냐?”
“예.”
아버지의 물음에 이한성은 짧막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옆에서 가만히 서있던 수정이는 이내 시키지도 않았는데 예의바르게 허리를 숙여 자신의 할아버지 되는 사람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그래.”
반듯한 인사하는 수정이의 모습에 이지훈은 나지막히 고개를 끄덕였다. 결혼을 한건지, 아이의 이름은 무엇인지 물어볼 법도 했지만, 그는 그 이상 물어보지 않았다.
“절 부르셨다면서요.”
“….”
“할 말 있으면 지금 바로 하세요. 솔직히 오래 보고 싶은 마음 없으니까.”
“….”
말이 부자지간이지, 이한성과 이지훈은 얼굴을 마주보는 것 조차도 서로 불편한 사이였다.
한쪽은 가정폭력의 가해자이고, 다른 한쪽은 피해자였으니.
한시라도 빨리 병실을 나가고 싶다는 마음이 가득한 이한성의 재촉에 이지훈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내 조용히 말을 꺼냈다.
“…..요즘 생활은 좀 어떠냐.”
“그냥 그런데요.”
“….밥은 제대로 먹고 있고?”
“예.”
“…..아픈데는?”
“……”
사람 불러놓고 지금 이게 대체 뭐하자는거지.
대체 뭘 말하고 싶은 걸까 이 인간은. 다짜고짜 불러놓고서는 왜 안부 따위를 묻고 있는걸까. 우리가 정상적인 부자지간이라고 착각하고 있는건가?
건 18년 동안 안부는 커녕 허구한 날에 행패만 부려댔던 인간이 왜 이제와서 다정한 아버지라도 되는 척 이러는 건지 모르겠다. 이유는 모르겠고 그저 역겨울 뿐이다.
“하고 싶은 말이 뭔데요.”
“….”
“왜, 죽을 날 다 됐으니까 가기 전에 미안하다고 사과라도 하게? 교회도 안다니면서 지옥이 있을까봐 무서워요?”
“…..”
쏟아지는 이한성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이지훈은 아무런 변명도 하지 않았다. 예전 같았으면 어린놈이 어디서 어른한테 큰소리냐고 술병을 집어던지고 쌍욕을 퍼부으며 몸부림을 쳤을 인간이, 지금은 그저 침상 위에서 주름진 얼굴과 함께 쓰디 쓴 비난을 묵묵히 받아들일 뿐이었다.
“아니면, 병원비가 부족해서 부른거에요? 대신 좀 대 달라고? 그것도 아니면 간이 다 망가졌으니까 간 기증이라도 좀 해달라고 싹싹 빌려고?”
저 인간이 그저 같잖지도 않은 안부 하나 물으려고 자신을 여기까지 불렀을리가 없다. 그 사실 하나 만큼은 그 무엇보다도 확신할 수 있던 이한성은 그렇게 비난을 넘어선 폭언을 내뱉었다.
“뭐라고 말 좀 해보시죠. 소리 지르는 거 잘 하시잖아요.”
수정이 앞이라 최대한 참아 보려고 했는데 결국 이 꼴이다. 그간 인내심 좀 키웠다고 생각했는데 이 인간 앞에서는 분노를 억누르기는 커녕 고작 쌍욕을 퍼붓지 않는 게 최선이었다.
“…..”
이지훈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저 색이 바랜 눈빛으로 희미하게 이한성을 바라 볼 뿐이었다.
변명이라도 뻔뻔하게 내뱉었으면 그나마 말싸움이라도 시원하게 한바탕 하는건데, 이래서는 그저 일방적인 화풀이일 뿐이었다.
“아빠….”
수정이가 걱정스러운 표정과 함께 감정이 격양되어 있던 이한성의 손을 살포시 잡았다. 슬슬 병실 안에 있던 모두의 시선이 이끌리던 그 순간, 자신의 손을 붙잡은 수정이의 온기를 느낀 이한성은 가까스로 흥분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
“….가자 수정아.”
흥분은 가라앉았지만 형식적인 인사까지 할 정도로 냉정해진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이한성은 간신히 가라앉은 화와 함께 수정이의 손을 붙잡은 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병실을 나왔다.
….역시 저딴 인간을 만나러 오는 게 아니었다고 뒤늦게 후회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