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Part-Timer Raises a Half-Elf RAW novel - Chapter (64)
알바생이 하프 엘프를 키우는 법-64화(64/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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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독약 냄새가 가득한 병원의 복도에서, 이한성의 손을 꼭 잡은 채 짧은 발걸음으로 질질 끌려가다 싶이 하던 수정이가 나지막히 말을 걸었다.
“아빠.”
“….왜.”
“화났써?”
성난 표정을 짓고 있던 것도, 발걸음을 쿵쿵 거리고 있던 것도 아니었지만 수정이는 한눈에 봐도 지금 이한성이 화가 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화난 건 맞지만 너한테 화난 건 아니야.”
“음… 그럼 할아버지 때문에 화난거야?”
“….그래.”
수정이의 짐작은 정확했다. 아까 병실에서 그렇게 폭언을 퍼부었으니 제아무리 5살 짜리 애라고 해도 그 사실을 모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한성이 어째서 할아버지에게 화가 난 것인지 까지는 알지 못했다.
“아빠는 할아버지가 시러?”
“어. 싫어.”
“왜?”
“그 인간은… 잘못한게 너무 많거든.”
어두운 가정사를 말해주기에는 수정이는 아직 어렸다. 그랬기에 이한성은 어린 수정이를 위해 자세한 얘기는 꺼내지 않았다.
“어떤 걸 잘못했는데? 혹시 할아버지가 아빠 밥 뺏어먹었어??”
“…비슷하지.”
밥을 뺏어먹은 정도가 아니라 아예 밥을 안 줬었지.
4살인가 5살 때 부터, 집안일은 오로지 이한성의 몫이었다. 싱크대 까지 손도 잘 안닿는 나이에 그는 라면 끓이는 법을 홀로 배웠고, 굳은 살도 하나 나지 않은 작은 손으로 야채를 써는 법을 터득했었다.
다행히 늘 냉장고에 먹을 건 있었다. 그중 소주병이 절반이기는 했었지만.
다만 매일같이 라면을 끓여 먹을 수도 없는 법이었기에 어떨 때는 동네 친구네 집에 놀러가서 밥을 얻어 먹고는 했었다. 마을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 이한성의 가정환경이 어떤지 대충 다 알고 있었기에 동정심과 함께 호의를 베풀었으면 베풀었지, 문전박대하는 일은 없었다.
물론 이한성 본인은 그런 동정 어린 시선들이 불편해서 중학교 때 부터는 점심이든 저녁이든 혼자 다 알아서 해먹었지만 말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용캐도 영양실조에 안걸렸지. 이것저것 받아먹는 게 많아서 그랬나?
별로 웃을 수가 없는 옛날 일을 떠올리니 쓴웃음만이 나올 뿐이었다. 그렇게 수정이는 자신과 달리 그런 고생을 하지 않아도 되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이한성은 복도 끝에 위치한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눌렀다.
아니, 정확히는 누르려고 했다는 것이 올바른 표현일 것이다.
“실례 합니다. 혹시 이한성 씨 맞으십니까?”
“??”
순간 바로 뒤에서 낯설지만 어디서 한번 들어본 적이 있는 목소리가 말을 걸어왔다.
갑작스럽게 들려온 목소리에 멈칫한 이한성은 조용히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뒤돌아본 그곳에는 하얀 가운을 입고 있는 넉살 좋은 중년 남성이 서있었다.
“…누구시죠?”
“아, 죄송합니다. 어제 전화 드렸던 간담체외과의 강수철 교수입니다.”
자신을 강수철이라고 소개한 남자는 목에 걸치고 있던 카드를 보여주며 손에 들고 있던 커피를 살짝 흔들었다.
어디서 들은 목소리다 싶었더니…
확실히 어젯밤에 전화로 들었던 그 목소리였다. 꽤나 인상적인 낮은 중저음을 지닌 강추설의 목소리를 기억해낸 이한성은 이내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하고는 용건을 물었다.
“그런데 무슨 일이시죠?”
“별 거 아닙니다. 방금 전에 회진을 돌았는 데 이지훈 씨가 말하시기를 아드님이 방금 막 다녀가셨다고 해서 커피라도 한 잔 사드릴까, 이렇게 달려왔죠.”
“….?”
뭐지? 초면인 사람한테 커피 한잔 사려고 이렇게 달려왔다고? 아니, 의사들은 죄다 바빠서 죽어나가는 사람들 아니었어? 지금 여기서 이럴 시간이 있는건가??
“마침 엘리베이터도 왔네. 어서 타요. 여기 커피 맛있어요. 애들을 위한 핫초코도 맛있고.”
“네? 아니, 잠깐-”
뭐라뭐라 대꾸를 할 틈도 없이, 강수철 교수는 이한성을 때마침 열린 엘리베이터 안으로 떠밀었다. 그렇게 처음 보는 의사한테 반 강제로 커피를 얻어마시게 된 이한성은 떫떠름한 표정으로 수정이와 함께 엘리베이터에 올라탔고, 그와 동시에 강수철 교수는 바로 1층을 눌러 문을 닫았다.
“아이고, 1층을 눌렀는데 얘가 7층을 먼저 가려고 하네.”
먼저 버튼을 누른 사람이 있는지 엘리베이터는 3층에서 내려가지 않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한번 쯤은 다들 겪어 본 익숙한 일을 별로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넘긴 강수철 교수는 이내 정적을 깨고 자연스럽게 말을 꺼냈다.
“아버님이랑 친하지는 않으신가봐요.”
“….네. 그렇죠.”
“저도 똑같아요. 아버지랑은 벌써 30년 째 얼굴도 안보고 있어요. 괜히 아까운 시간 쪼개서 그 고지식한 인간이랑 스트레스 쌓기 게임을 하고 싶지는 않거든요.”
….거 참 말 한번 많으신 의사 분이네.
병원에 가 볼 일이 거의 없어서 의사를 만나본 적이 거의 없긴 하지만, 그래도 이정도로 말이 많은 의사는 아마 분명 보기 드물 것이다.
친근하게 대화를 이어나가려고 하는 강수철 교수의 모습에 이한성은 분명 그가 인싸 타입의 사람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으며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이한성과는 달리, 똑같은 생각을 한 수정이는 그걸 다이렉트로 내뱉었다.
“아빠. 저 아저씨 말 되게 많아.”
“야야, 쉿! 대놓고 그런 말 하는 거 아냐.”
그런 건 속으로만 생각해야지.
아직 어린 탓에 무엇이든 돌직구로 내뱉고 보는 수정이의 해맑음에 이한성은 당황하며 수정이의 말을 가로막았다.
하지만 강수철 교수는 그런 수정이의 돌직구에도 전혀 개의치 않아 하며 웃을 뿐이었다.
“아저씨가 원래 말 많은걸로 이 병원에서 제일이야. 대단하지?”
“그게 대단한거야??”
“그럼~ 얼마나 대단하면 간호사 분들이나 다른 애들이 나랑 10초 이상 같이 안 있으려고 그런다니까?”
….그거 백퍼 말을 너무 많이해서 피하는 거 같은데.
교수 정도 되는 사람이 말이 많은 데 그 어떤 간호사나 의사들이 “교수님 말이 너무 많아요. 좀 조용히 좀 해주세요.” 를 시전할 수 있을까. 그냥 일단 자리를 피하고 보는 게 상책이겠지..
“아빠, 저 아저씨 불쌍해. 친구 없나봐.”
“야야야. 그런 말 하는 거 아니라니까.”
이번에도 어김없이 튀어나온 수정이의 돌직구에 이한성은 다시 한번 수정이의 말을 가로막았다. 그럼에도 여전히 웃고 있는 강수철 교수였지만, 어째서인지 아까와는 다르게 눈가가 촉촉해진 기분이 들었다.
저러다 울겠네… 하여간에, 얘가 너무 솔직해서 탈이라니까…
웃고 있지만 금방이라도 울 것만 같은 강수철 교수의 얼굴에 이한성은 수정이가 또 쓸데없는 소리를 하는 일이 없도록 손으로 수정이의 입을 물리적으로 막아버렸다.
“아이가 참 밝네요. 하하하. 하하하하….”
“….죄송합니다.”
“아뇨, 아닙니다. 친구 없는 게 사실인걸요 뭐. 따님 분이 잘 봤네요.”
“…..”
농담이라고 저렇게 말하셨지만 웃을 수가 없다. 자고로 친구 없는 사람을 보고 웃으면 삼대가 망한다는 말이 있지 않는가.
너무 인싸인 탓에 직장에서 외톨이인 강수철 교수를 안쓰러운 눈빛으로 쳐다보며, 이한성은 그렇게 속으로 묵념했다.
“그나저나 오셨다는 소리를 들었을 땐 좀 놀랐습니다. 솔직히 안 오실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강수철 교수가 들고 있던 커피를 한모금 들이키고는 다시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러자 이에 이한성은 쓴 표정과 함께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러게요. 괜히 버스비까지 낭비하면서 오는 게 아니었는데.”
꼴에 저 인간이 아버지라고 얼굴을 비출 의리가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내가 오늘 여기에 왜 왔는지 모르겠다. 제아무리 변덕이였다지만 내가 생각해도 나 자신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자조스러운 이한성의 말에 강수철 교수는 쓴웃음을 지었다.
“이지훈 씨, 간암 말기에요. 남은 시간이 얼마 없으시니까 너무 그러진 마세요.”
“….살 수는 있답니까?”
“간 이식을 받으시면요. 그런데 아마 힘들 거예요. 알코올 중독이셔서 가족 분 이외에는 기증 받는 게 불가능하거든요. 받는다 해도 재발할 확률이 높고.”
….다행이네. 간 이식을 받아도 어차피 또 술 퍼질러 마시고 병원에 돌아올 인간인데. 적어도 다른 사람 간 까지 망칠 일은 없겠네.
누가 들으면 패륜이라고 기겁을 할 생각이었지만 이한성의 생각은 그저 그랬다. 그가 지금까지 지켜봐온 아버지라는 인간은 죽다 살아났다고 해서 바뀔 인간이 아니었기에.
그러나 그 뒤에 이어진 강수철 교수의 말은 그런 이한성의 확신을 일순간에 무너뜨려 버렸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지훈 씨 본인이 간 이식을 거부하시는게 크죠.”
“….네?”
내가 잘못 들은건가? 그 인간이 스스로 이식을 거부했다고?
이한성이 알고있는 이지훈이라는 이름의 인간은 본인 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자였다. 그는 항상 술을 입에 달고 살았고, 집안일에는 손끝 하나 대지도 않았으며, 뭐가 잘 안풀리면 늘 그랬듯이 애꿎은 밥상을 뒤엎고 술병을 집어던지기 마련이었다.
살고 싶어서 간 이식을 받는 게 아니라 술을 마시기 위해 간을 이식받을 술에 미친 인간. 아버지는 그런 인간이다. 자식 간이고 뭐고 신경도 안쓰고 이식하라고 난리를 치고 의사들의 멱살을 붙잡을 인간이다.
그런데 뭐? 그런 인간이 간 이식을 거부해? 왜, 하도 마시다 보니까 술이 질려서 세상에 미련이 없어지기라도 한건가?
도저히 믿을 수가 없는 강수철 교수의 말에 이한성은 살면서 그 어느때 보다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표정을 지으시는 걸 보니까 정말 의외라고 생각하시나 보네요.”
“….그야 그렇죠. 그 인간이 그런 말을 했다는 게 말이 안되니까.”
“하하하, 아버님이 원래 어떤 분이신지는 잘 모르겠지만 원래 암 말기이신 분들이 다 그러더라구요. 죽음을 앞두고 계셔서 그런지 갑자기 사람이 유해지고, 안 하던 행동을 하시고, 사람이라는 게 아무래도 다 비슷한 것 같아요.”
“…..다들 지옥이 무섭기라도 하나보죠.”
“그럴지도요. 의사로서 좀 궁금하긴 하네요. 죽음을 앞둔다는 게 무슨 느낌인지.”
강수철 교수가 씁쓰름한 미소와 함께 반쯤 농담인 말을 내뱉었다. 분명 그동안 자신의 손을 스쳐지나가 돌아오지 못한 환자들을 떠올리고 있으리라.
[띵-]잠깐의 대화 사이에 7층까지 올라간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며 사람들이 밀려들어왔다. 그러자 이런 일이 익숙한 강수철 교수는 자연스럽게 구석으로 몸을 내뺐지만, 그러지 못한 이한성과 수정이는 그대로 자리에서 밀려나 인파 사이에 끼어버리고 말았다.
“답답해…”
키가 작은 탓에 울창한 정글 속의 토끼 신세가 되어버린 수정이가 불평을 내뱉었다.
“조금만 참아. 금방 내릴거니까.”
“으으으…. 아빠, 그냥 아빠가 나 업어주면 안돼?”
“지금 너 업어줄 공간도 없어.”
목마를 태워준다면 모를까, 이런 비좁은 인파 사이에서 수정이를 안아드는 건 무리…. 가 아니라 그냥 목마를 태워주면 되겠네. 나 바본가?
아주 간단한 방법을 한박자 늦게 떠올린 이한성은 스스로를 무식한 놈이라고 나무라며 사람들 사이에 불편하게 낑겨있던 수정이를 조용히 들어올려 목 뒤에 태웠다. 그러자 평소보다도 눈높이가 자연스레 3배는 높아지게 된 수정이는 무척이나 신나하며 이한성의 머리카락을 말고삐 잡듯 붙잡았다.
“우와아~! 아빠빠! 여기서 내 키가 제일 커!”
“야야야 머리 잡아당기지 마! 탈모 와!”
이한성이 수정이가 머리카락을 잡아당기지 못하게 제지하려 들며 팔을 더듬거렸다. 그러자 이내 엘리베이터 안에 타고 있던 모두는 상당히 소란스럽게 들썩이고 있는 두 부녀를 바라보기 시작했고, 동시에 저마다 웃으며 흐뭇한 시선을 보내왔다.
스트레스가 많은 20대 청년으로써 이른 탈모가 걱정되는 이한성의 심정은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