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Part-Timer Raises a Half-Elf RAW novel - Chapter (65)
알바생이 하프 엘프를 키우는 법-65화(65/245)
65
병원의 1층에 위치한 오후의 카페는 무척이나 한산했다.
저마다 커피 한잔을 시킨 채 자리에 앉아있던 사람들은 대부분 사복을 입고 있는 방문객들이었고, 그중에 하얀 가운을 입고 있는 의사들은 아무도 없었다.
이한성의 바로 앞에 앉은 강추설 교수를 제외하고는.
“이 시간대가 원래 좀 조용해요. 다들 한창 바쁠 때라서.”
“….교수님은 안 바쁘신가 봅니다?”
“저야 교수니까요. 앵간한 것들은 다 4년차 레지던트랑 펠로우 쌤들이 저 대신 해줍니다.”
“…..”
역시 병원이든 대학이든간에 교수가 짱짱인 것 같다. 페이도 쎄고 이렇게 땡땡이도 치면서 일하는 걸 보니 말이다.
드라마에서 보았던 것과는 달리 대학병원의 교수 치고는 무척이나 한가해 보이는 강수철 교수를 바라보며, 이한성은 따뜻한 카푸치노를 한모금 들이켰다. 그러자 말 많고 붙임성 좋은 강수철 교수는 그 모습을 흥미롭다는 듯이 바라보며 물었다.
“그, 카푸치노는 맛이 좀 어때요?”
“맛이 어떠냐니… 그냥 카푸치노 맛입니다만.”
그냥 커피에다가 우유 좀 부은 맛인데, 몰라서 묻는거야? 아니면 그냥 대화 좀 나눠보려고 일부러 모른 척 묻는거야…?
“제가 카푸치노를 마셔 본 적이 없어서요. 의사들은 항상 블랙이거든요. 블랙 아니면 못 버텨요.”
“아….”
직업병 때문이었구나. 하기야, 잠 잘 시간도 거의 없는 게 의사들이라고 하니까 항상 직업상 카페인이 진하게 들어간 블랙을 마실 수 밖에 없겠지.
아마 세상에서 카페인을 가장 많이 섭취하는 직종은 트럭 기사 아니면 의사들일 것이다. 항상 잠이 부족해서 죽어나가고는 하는 의사들의 이야기를 여러 매체들을 통해 익히 들어보았던 이한성은 그렇게 속으로 근거없는 뇌피셜을 늘어놓으며 이어지는 강수철 교수의 수다에 귀를 기울였다.
“한밤중에도 덜컥 전화가 막 온다니까요. 덕분에 새벽에 막 병원에 불려나가고 그래요. 그래서 집 알아볼 때도 바로 병원 앞에 있는 집으로 골랐죠.”
“병원 앞이라면… 저기 저 아파트 단지 말이에요?”
“네. 거기요.”
분명 병원 앞의 그 아파트라면… 오는 길에 잠깐 봤던 그 낡아보이는 아파트잖아? 아니, 돈도 잘 버는 의사인데 집이 거기라고??
사람들이 의사라는 직종을 고르는 이유는 대게 3가지 중 하나다. 돈을 많이 벌고 싶거나, 공부를 잘하거나, 아니면 사람을 살린다는 신념이 강력하거나.
그 3가지 이유 중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이 아마 돈 때문일 것이다. 의사, 변호사, 이 두가지 직종은 각각 현대 사회에서 가장 알아주는 엘리트 직종이니 말이다.
그런데 그런 돈 많이 버는 엘리트이신 분이 저기 저 허름한 아파트에다가 집을 잡았다니, 그러면 굳이 공부를 치열하게 해서 돈 많이 버는 의사가 된 의미가 없지 않나…?
신념이니 뭐니 하는 것 보다도 돈을 제일 우선으로 생각하는 이한성은 참 존경스럽다는 듯한 눈빛으로 강수철 교수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런 이한성의 시선을 느낀 강수철 교수는 살짝 쑥쓰러워 하며 은근슬쩍 대화의 주제를 바꿨다.
“그나저나 따님 분 이름이 수정이라고 했었나? 애가 이렇게 이쁜 걸 보니까 아내분 외모가 상당하신가 보네요.”
“아…. 예, 뭐…. 그렇죠…?”
강수철 교수가 옆에 앉아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고 있는 핫초코를 앞둔 채 마시려다 말기를 반복하던 수정이를 바라보며 그렇게 말하자, 이한성은 그렇게 의문형인 대답을 내뱉었다.
내 아내가 예쁜지 안예쁜지 내가 어떻게 알아. 태어나서 여태껏 모태솔로였는데.
꼬일대로 꼬인 족보에 대해서 설명하기도, 그렇다고 수정이의 정체에 대해서 말할 수도 없었던 이한성은 그렇게 대답을 얼버무리며 강수철 교수의 시선을 피하듯 수정이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근데 수정아. 너 지금 뭐하냐?”
“너무 뜨거워서 식을 때 까지 기다리고 있써.”
수정이가 가만히 핫초코가 담긴 종이컵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이미 충분히 마실 수 있을 정도로 식었을텐데, 강아지 상인 주제에 고양이 혀를 가지고 있는 수정이에게는 아직도 뜨겁다고 느껴졌던 모양이었다.
“원래 핫초코는 뜨거울 때 마시는 거야.”
“하지만 난 쿨초코가 좋은 걸?”
“세상에 쿨초코 같은 게 어딨냐… 그럴거면 그냥 초코우유나 시켰어야지.”
어릴 때는 다들 환장하는 초코우유. 초등학교 때 우유급식을 받을 때 마다 한번씩은 다들 초코우유만 나왔으면 좋겠다고 단체로 선생님한테 항의하고는 했었지.
‘물론 나는 우유급식 신청해 줄 사람도 없어서 그럴 일이 전혀 없었지만.’
가끔가다 우유 마시기 싫어하는 반 친구의 우유를 대신 마셨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이한성은 못말린다는 미소와 함께 수정이에게 말했다.
“정 뜨거우면 호호 불어서 식혀봐. 그럼 좀 괜찮을거야.”
“아! 맞다! 그런 방법이 있었지?!”
이한성의 충고에 수정이는 손뼉을 딱 치며 목욕탕에서 뛰쳐나와 유레카를 외치던 아르키메데스가 지을 법한 표정을 지었다.
“후~ 후~”
더 말할 것도 없이 수정이는 곧바로 이한성의 충고대로 핫초코를 싹 다 증발시켜버릴 기세로 입바람을 불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런 수정이의 모습이 영락없이 먹물을 뿜어내는 문어와 겹쳐 보였던 이한성은 순간 터질뻔한 웃음을 참으며 조용히 휴대폰을 꺼내 수정이의 귀여우면서도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다.
[쩌적-]“?”
수정이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으려고 했던 그 순간, 갑자기 무언가가 갈라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핸드폰의 화면에 비정상적인 장면이 촬영되었다.
다름아니게도 불과 1초 전까지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던 핫초코가 순식간에 딱딱하게 얼어붙는 장면이었다.
[쾅!]예상치도 못한 장면에 이한성은 순간적으로 핸드폰을 그대로 테이블 위에 내리꽂았다. 그러자 깜짝 놀란 강수철 교수는 이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가, 갑자기 뭡니까? 왜 핸드폰을…”
“배터리가 얼마 없어서요.”
“예??? 아니, 배터리가 얼마 없다고 핸드폰을 그렇게…”
“모션충전입니다.”
이한성은 강수철 교수의 시선이 얼어붙은 핫초코로 가지 않게 상식을 뛰어넘은 뻔뻔함을 내비치며 그렇게 대답했다.
그런 이한성의 뻔뻔한 대답에 할 말을 잃어버린 강수철 교수는 그대로 커피잔과 함께 여러모로 어색해진 분위기를 삼켰다. 그렇게 잠시 정적이 든 틈을 타, 이한성은 얼어버린 수정이의 핫초코를 최대한 의식하지 않으려고 하며 대화의 주제를 돌렸다.
“그것보다….이제 슬슬 말씀하셔도 될 것 같은데요.”
“…!”
어쩌다 보니 말을 돌리는 모양새가 되어버렸지만, 꼭 해야 할 말이기도 했다. 강수철 교수가 그저 진짜로 커피 한잔 마시자고 없는 시간을 쪼개 자리를 마련한 것이 아니라는 걸 진작에 눈치채고 있었던 이한성은 그렇게 단도직입적으로 그에게 말했다.
“…..눈치가 빠르시군요.”
“눈칫밥만 먹으면서 살았으니까 말입니다.”
“하하… 죄송합니다. 본론으로 바로 들어가기가 좀 어려워서 쓸데없는 소리를 좀 많이 하고 말았네요.”
강수철 교수가 쓴웃음과 함께 양해를 구했다. 젊은 청년에게 자신의 속내를 간단하게 들켜버린 그는 이내 들고 있던 커피잔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으며 아까와는 전혀 다른 무거워진 목소리로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저는 살리고 싶습니다.”
“…..”
일순간 떠들썩하던 카페가 침묵으로 물드는 듯 했다. 무거워진 공기 속에서, 강수철 교수의 목소리를 제외한 다른 이들의 목소리는 이한성의 귓가에 조금도 닿지 못했다.
“저는 의사 입니다. 환자를 살리는게 제 일이죠. 환자의 과거가 어떻든간에.”
“…..”
“이한성 씨의 가정사에 대해서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제가 하는 말이 무리한 요구라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
“제3자인 제가 감히 참견할 문제가 아니지만…. 그래도 부디 한번만 아버님께 기회를 주세요.”
“……”
기회.
참으로 우스운 단어였다.
자신의 의지로 사고를 쳐서 애를 가지고, 자신의 의지로 폭력을 휘둘러 온갖 정이 떨어지게 만들고, 심지어 자신의 의지로 술을 퍼마셔 스스로 간을 망가뜨린 인간에게 기회라니, 정말이지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 말이었다.
아직도 몸 곳곳에 남아있는 크고 작은 흉터들이 시큰거리기 시작했다. 대부분은 깨진 술병에 베였던 상처들이었다.
그래. 망설일 것도, 같잖지도 않은 동정심을 느낄 것도 없었다.
이한성은 성경 속에서나 나오는 선한 사마리아인이 아니었고, 그런 선인이 되고 싶은 마음도 없었기에.
“거절하겠습니다.”
이한성의 대답이 날카롭게 울려퍼졌다.
“그 인간이 제 아버지인 건 맞지만, 제 부모는 아닙니다.”
“….”
낳아줬다고 해서 다 부모인 건 아니다. 고아원에 버리지 않았다고 해서 부모인 건 더더욱 아니다.
늘 집안 바닥을 뒹굴던 술병들. 그중 몇 개는 깨져서 발바닥에 박히고는 했던 유리 파편들.
바깥에 나가면 항상 수근거리던 동네사람들. 매달 월말이 가까워지면 술에 잔뜩 취한 채 다음날 아침에 들어와 미친듯이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고는 했던 아버지.
비가 온 다음 날에는 꼭 빠지지 않고 자라났던 곰팡이들과, 하루에 몇번이고 바닥을 기어다니던 바퀴벌레들.
함께 했던 모든 날들이 전부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들로 가득하다. 그래도 그중에서 좋은 기억이 몇 개 쯤은 존재할 법도 한데, 그 무엇하나 떠올릴 수가 없다.
그런데 어떻게 그 이름만 아버지일 뿐인 인간을 도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 수가 있을까? 빨리 삼도천이나 건너라고 저주하지 않는 것만 해도 다행이지.
만약 사람들이 그런 이한성의 속마음을 알게 된다면 누군가는 이한성의 결정을 이해할 것이라고 할테고, 다른 누군가는 그래도 아버지인데 기회조차도 주지 않는다고 비난할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뭐라 생각하던 이한성에게는 아무래도 좋았다. 늘 이유모를 폭력에 시달려야 했던 그에게는 아무리 고민하고 또 고민해도 아버지를 용서해야 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알겠습니다. 이런 부탁을 드려서 많이 언짢으셨을텐데, 죄송합니다.”
강수철 교수는 그 이상 이한성을 설득하려고 하지 않았다. 의사로서 환자를 살려야 한다는 마음은 여전했지만, 그렇다고 의사인 그가 환자의 보호자에게 억지를 강요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그럴 마음도 없었다.
강수철 교수가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숙이며 사과하자 이한성은 담담히 그의 사과를 받아들였다. 그리고는 이내 이어지던 침묵 끝에 의자에 걸쳐두었던 겉옷을 챙기며 수정이에게 말했다.
“수정아, 일어나. 집에 가자.”
“응.”
꽁꽁 얼어버린 핫초코를 아이스크림 먹듯이 할짝이고 있던 수정이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의자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그러자 이한성은 조용히 수정이의 작은 손을 잡은 채 강수철 교수에게 나지막히 인사를 건냈다.
“커피 사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수고하세요.”
“아닙니다. 저야말로 오늘 와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다음에 오시면 제대로 식당에서 밥 한번 사드릴테니까 꼭 오세요.”
“….”
진심어린 미안함이 섞인 강수철 교수의 말에, 이한성은 아무말도 없이 그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강수철 교수를 뒤로 한 채 수정이와 함께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마 자신이 이 병원에 다시 오게 되는 일은 없으리라 장담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