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Part-Timer Raises a Half-Elf RAW novel - Chapter (66)
알바생이 하프 엘프를 키우는 법-66화(66/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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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 다녀온지도 벌써 2주라는 시간이 지났다.
다행히도 그 후로 병원에서 또 연락이 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지난 2주 동안 이한성의 핸드폰이 울리는 일은 단 한번도 없었고, 그렇게 다시 수정이를 돌보며 일일 퀘스트나 클리어하는 일상만이 반복 되었을 뿐이었다.
다만 달라진 게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아빠~”
“…..”
“아빠~!”
“……”
“아빡!!!”
“….응?”
총 세번이나 부른 것도 모자라 소리까지 꽥꽥 질러대고 나서야 이한성은 반응을 내비쳤다. 그러자 수정이는 이에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손에 쥐고 있던 얼음으로 만들어진 마법 지팡이를 보여주며 자화자찬을 시작했다.
“이것봐라~ 나 잘 만들었지?”
“….어. 그래.”
평소라면 자만하지 말라고 딴죽을 걸어댔을 이한성이었지만, 평소와는 달리 그는 영혼없는 목소리로 마음에도 없는 칭찬을 내뱉었다. 그러자 이에 수정이는 입가를 삐죽거리더니 이내 고개를 홱 돌리며 삐져버렸다.
“아빠 미워.”
“뭐? 아니, 갑자기 왜? 칭찬해달라고 하는 거 아니었어? 그래서 칭찬해 준건데 뭐가 불만이야?”
“아니야! 아빠는 나한테 칭찬 같은 거 안 하자나! 아빠라면 막 요런 표정을 지으면서 [또 쓸데없는 거 만들었네] 이래야지!!”
“풉….”
수정이가 시큰둥한 이한성의 표정을 거의 100%로 재현해내며 흉내냈다. 그러자 이에 거실 한켠에서 둘을 지켜보고 있던 제3자는 그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아, 죄송해요. 너무 똑같아서 그만.”
웃음을 터뜨린 범인은 다름아닌 오늘도 여김없이 집에 찾아와 수정이에게 마법을 가르쳐 주고 있던 화연이었다. 이제는 아주 그냥 매일같이 집에 들리는 게 당연하게 된 그녀의 모습을 본 이한성은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그녀의 말을 부정했다.
“내가 언제 이런 표정을 지었다고….”
“항상 지으시잖아요. 봐봐, 지금도 딱 그 표정이시네.”
“…..”
화연의 지적에 이한성은 조용히 핸드폰을 꺼내들어 손거울 삼아 자신의 표정을 확인했다.
….뭐, 좀 닮은 구석이 있기는 하네.
조금이 아니라 거의 붕어빵 정도의 수준으로 똑같은 표정이었지만 이한성은 거기까지 인정하진 않았다. 어떤 사람이든 본인에 대해서는 객관적이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에 이한성도 예외는 아니었다.
“….근데 보통 칭찬하면 좋아해야 하는 거 아니냐? 넌 내가 그런 표정 지으면서 딴죽 거는게 좋아?”
“응!”
이한성의 물음에 수정이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거 취향 한번 되게 희안하네…. 보통 칭찬을 너무 안하면 애가 자신감이 없어진다고들 그러던데.
하지만 수정이는 자신감이 낮기는 커녕 넘쳐나서 문제인 아이다. 애니메이션 속에 나오는 마법 지팡이를 본따 만든 얼음조각으로 이런저런 포즈를 잡으며 이곳저곳 뛰어다니는 수정이의 모습을 본 이한성은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았다.
“최근들어서 수정이의 마법 조절 능력이 부쩍 늘었어요.”
화연이 이한성에게 다가와 얼음 마법 지팡이를 가지고 노는 수정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얼마 전 까지만 했어도 조절하는 걸 어려워 했는데, 이제는 집 전체를 냉동고로 만들지 않고도 마법을 쓸 수 있을 정도에요.”
“…..”
하긴, 어째 요즘들어 실내에서 마법 훈련을 해도 별로 춥지가 않더라.
마법 훈련을 했다고만 하면 집안이 영하 30도의 냉동고로 변해버리는 게 일상이었는데 최근 들어서는 그런 반강제 혹한기 훈련을 한 적이 없었다. 한눈에 봐도 눈에 띄는 수정이의 성장에 이한성은 정말 다행이라고 내심 안도하며 소파에 위에 앉았다.
[털썩-]“?”
이한성이 앉기 무섭게 화연도 그를 따라 소파에 나란히 함께 앉았다. 그러자 이한성은 미심쩍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집에 안 가세요?”
분명 오늘 과외는 끝났을텐데.
평일에는 대학이니 봉사활동이니 뭐니 하는 일들로 바쁜 화연인지라 과외가 끝나자마자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오늘의 그녀는 과외가 끝났는데도 당장 집에 돌아갈 마음이 없어보였다.
“오늘은 좀 한가한 날이라서요. 적당히 대화나 나누다가 돌아가려고요.”
“…..70년도 80년도 노래 밖에 모르는 분이랑 대화할게 뭐 있나 싶은뎁쇼.”
“아, 진짜…. 세대 차이가 나면 뭐 어때요. 얘기 좀 나눌 수도 있는거지.”
아픈 곳을 찔린 화연은 그렇게 반론하며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것도 아주 잠시, 그녀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표정을 풀었고, 이내 연륜이 느껴지는 미소와 함께 나지막히 말했다.
“고민거리를 털어놓는다던가, 하소연을 한다던가, 그런 건 세대 차이가 나도 할 수 있잖아요.”
“……”
이한성은 고개를 살짝 들어 화연을 바라보았다. 관심법인지 눈치가 좋은 건지 모를 그녀의 앞에서 속마음을 감추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궁예도 아니고, 진짜 관심법이라도 있는겁니까?”
“아뇨. 그냥 이한성 씨가 얼굴에 속마음이 드러나는 체질인 것 뿐이에요.”
화연은 그렇게 이한성의 농담아닌 의심을 웃어 넘겼다. 그리고는 조용히 조금 전 물었던 질문에 대한 이한성의 대답을 기다렸다.
“…..며칠 전에 아버지 일 때문에 병원에 갔었어요.”
“아버지께서 많이 편찮으신가요?”
“간암 이랍니다. 그것도 말기. 간 이식을 해도 재발할 가능성이 높다고 그러던데요.”
“……”
참 이상하지. 내가 원래 이렇게 남한테 하소연이나 하는 성격이 아닌데. 근데 왜 이렇게 구차하게 속마음이 술술 새어나오는 걸까.
“그래서 난 또 무슨 간이라도 떼어달라는 줄 알았죠. 뻔뻔하게 그러고도 남을 인간이었으니까.”
“……”
“그런데 불러놓고는 뭐? 밥은 잘 먹냐? 몸은 좀 괜찮냐? 요즘 생활은 좀 어떠냐? x발 어이가 없어가지고.”
“……”
“차라리 뻔뻔하게 간 떼달라고 했으면 여전하구나, 하고 넘어가기라도 했지. 근데 왜 사람 불러놓고 이제와서 안부를 묻는 건데? 죽기전에 자상한 아버지였던 척이라도 하고 싶었던거야 뭐야??”
이한성의 언성은 점점 더 거칠어져만 갔다. 자신이 어느새부턴가 화를 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는 뒤늦게 스스로를 진정시키며 화연에게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화연 씨 한테 화내려는 게 아니라 말하다 보니 그만 욱 해서.”
“아니에요. 충분히 그러실 수도 있죠. 가족 문제에 대해서 말할 때는 다들 그러니까.”
화연은 괜찮다는 듯이 웃으며 그렇게 대답했다. 그녀의 사파이어 같은 푸른 눈동자는 잠시 먼 허공을 바라보았고, 가끔씩 라디오 방송에서 흘러나올 것만 같은 부드럽고 잔잔한 목소리는 이내 이한성의 귓가에 속삭이듯이 울려퍼졌다.
“제가 이야기 하나 해드릴까요?”
“….이야기요?”
갑자기 무슨 이야기를 한다는 걸까.
이한성은 어리둥절한 눈빛으로 화연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녀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은 채 조용히 먼 과거의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예전에 제가 잠깐 살았던 마을에 기억에 남는 한 가족이 있었어요.”
“…..”
“애 엄마가 역병 때문에 먼저 가고, 애 아빠는 소작으로 하루 품삯을 겨우 벌어 자식 셋을 먹여살려야 하는 처지였죠.”
“…..”
“그런데 애 아빠 혼자서 쥐꼬리만한 품삯 가지고 애 셋을 먹여 살리는 게 어디 쉽나. 금방 노름판에 빠져서 애들을 돌보려고 하지도 않더라구요.”
나라에서 지원금 따위는 상상도 못했을 시절. 양반들의 땅을 빌려 소작농을 해가며 입에 풀칠만 겨우 하던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던 시절의 이야기.
벌써 400년이나 된 이야기지만 한번 뇌리에 박힌 기억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 법이었다.
“그집 애들 한테는 몸 성한데가 한군데도 없었어요. 길거리에서 구걸해서 한푼이라도 못 벌어오면 그 집 아비가 빗자루 가지고 아이들을 팼거든요.”
“….”
“애 아빠라는 인간이 벌어온 돈은 죄다 노름짓 하는데 탕진하고, 한판 따는 날에는 주막에서 쓰러질 때 까지 술을 마시고, 가관이었죠.”
예나 지금에나 그런 부모들은 어딜 가나 존재하는 법이었다. 인간이라는 게 다 거기서 거기이니.
“마을 사람들 모두가 그랬어요. 저 인간은 결국 저러다가 도박판에 자식들까지 노비로 팔아 넘길거라고.”
“…..”
“저도 그렇게 생각 했었죠.. 아, 저 사람은 변하지 않겠구나 하고.”
“…..”
“그래서 저런 아비 밑에서 고생하는 아이들이 안쓰러워서 예정했던 것 보다 마을에 조금 오랫동안 머무르면서 먹을 걸 갖다주고 다친 곳도 치료해주고 했죠.”
“……”
“그런데 그렇게 머무른지 한달이 지나니까, 갑자기 마을에 왜놈들이 칼이랑 조총을 들고 들이닥친거에요.”
“…..임진왜란?”
“네. 그땐 난리도 아니었죠.”
사방에 가득한 비명소리와 피비린내. 아녀자들과 아이들을 잡아가며 백성들을 도륙하던 왜놈들. 여느 전쟁이 다 그랬지만, 그 전쟁은 유독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잊혀지지 않는 전쟁이었다.
“아무튼 그 난리 속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빨리 마을에서 도망쳐야겠다, 싶어서 바로 그 집으로 달려갔는데….”
이어지던 화연의 목소리가 잠시 갈라졌다. 이한성은 그녀의 눈이 그때 그 순간을 되돌아보고 있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애 아빠가 애들을 감싼 채 죽어있더라구요.”
“…..”
한순간 이한성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그때 본 그 모습이 잊혀지지가 않아요. 사람이 더 참혹하게 죽는 것도 여러번 봤었는데, 이상하죠?”
피투성이가 된 채 칼에 살갖을 베이고 찔려가면서 까지 아이들을 온몸으로 감쌌던 아버지.
분명 애들을 버리고 도망칠 수도 있었을텐데, 항상 놀음판에 빠져서 자식들 걱정은 하지도 않던 인간이 어째서 그런 선택을 했던 것일까.
그저 옛날 이야기일 뿐인데 어째서인지 모를 불쾌감이 이한성의 마음 속 한켠에서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야기 속의 아버지를 자신의 아버지와 겹쳐 보았기 때문일까.
“….그래서, 지금 그 인간이 죄를 뇌우친 것 같으니까 용서하라고 말하고 싶은 겁니까?”
이한성이 살짝 가시가 돋힌 말투로 물었다. 그러자 화연은 나지막히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뇨. 전 그저 인간의 이중성에 대해서 아셨으면 하는 것 뿐이에요.”
사람이 컴퓨터도 아니고 어떻게 0과 1로 딱딱 나뉘겠는가. 누구에게나 0과 1이 섞여있기 마련인데.
“선인이 악행 하나 했다고 악인이 되는 것도, 악인이 선행 하나 했다고 선인이 되는 것도 아니잖아요.”
따스한 미소와 함께 화연은 이한성을 부드러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이한성 씨가 아버지를 원망하지만, 아버지가 죽기를 바라는 건 아닌 것 처럼요.”
“…..”
화연의 말에 정곡을 찔린 이한성은 아무런 반론도 내뱉을 수 없었다.
정말로 증오라는 감정밖에 남아있지 않았더라면 애초에 아버지를 만나러 병원에 찾아갔을리가 없다. 분명 애증, 미련, 동정, 그중 하나가 분명 미세하게 남아있기 때문에 이한성은 결코 아버지를 모른 척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다만, 이한성 본인이 그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 뿐.
“어때요? 제 얘기가 도움이 좀 됐나요?”
화연이 밝게 웃으며 이한성에게 물었다. 그러자 이한성은 그런 그녀의 모습이 영락없는 서당의 공자왈 맹자왈 하는 훈장님과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하며 속마음과는 다른 시큰둥한 표정으로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뭐…. 조금은요.”
“또또 그런 표정 지으신다. 그냥 솔직하게 굉장히 큰 도움이 됐다고 말하시면 되는데.”
“아니, 내 표정이 또 뭐 어떻다고….”
화연의 한숨에 이한성은 억울하다는 듯이 항의하며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만지작거렸다. 그러자 화연은 그런 이한성을 피식 웃으며 바라보더니, 이내 소파에서 일어나며 기지개를 쫙 폈다.
“으아아아앗차~”
티가 짧은 건지, 아니면 키가 커서 그런건지 기지개를 핀 것과 동시에 화연의 뱃살이 적나라 하게 드러났다. 그러자 그걸 본 이한성은 재빠르게 못 본 척 고개를 돌렸고, 동시에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하며 속으로 나지막히 한숨을 내쉬었다.
아, 깜짝이야. 진지한 얘기 하다가 갑자기 훅 들어오는 바람에 그대로 멍하니 쳐다 볼 뻔 했네.
아무리 상대가 600살이나 된 엘프 조상님이라지만 겉모습은 연예인 저리 가라 할 외모와 몸매를 지닌 대학생이 아닌가. 남자로써 눈길이 훅 들어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 더 늦으면 해영이가 잔소리 할 것 같아서요.”
“네? 아, 네. 신발 가져다드릴까요?”
“아뇨. 오늘은 텔레포트 없이 그냥 걸어서 돌아가려구요. 운동도 할 겸.”
“아…. 그, 그렇죠. 운동 중요하죠. 중요하고야 말고.”
“?”
운동을 하니까 배에 군살이 없는거겠지.
이상하게 시선을 피하며 말을 더듬는 이한성의 모습에 화연은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이한성은 그런 그녀의 의문을 모른 척 하며 거실 구석에서 혼자 놀고 있던 수정이를 불러왔다.
“야 수정아. 화연 씨 가니까 와서 인사해라.”
“응!”
이한성이 부르기 무섭게 수정이는 놀다가 말고 쪼르르 현관 앞까지 달려와 어디서 배웠는지도 모를 중세시대의 방식으로 입지도 않은 치맛자락을 들어올리며 인사했다.
“안녕히 가세요 레이디~”
“….뭐하냐?”
“아빠 바보야? 공주님 인사잖아.”
“아니, 그러니까 니가 공주님 인사를 왜 하냐고.”
“그야 난 공주니까?”
“니가???”
“응.”
수정이가 무슨 문제라도 있냐고 묻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이한성은 어이없는 눈빛으로 수정이를 바라보았고, 이를 함께 지켜보던 화연은 너무 귀여운 수정이의 행동에 그저 웃으며 똑같이 공주님 인사를 따라하며 수정이의 장단에 맞춰주었다.
허리를 살짝 숙여 자세를 낮추고, 기품있게 가슴 위에 얹은 오른손. 따라한 건 서양식 인사였지만, 순간 그녀가 한복을 입고 있는 것 처럼 보였던 건 기분탓이었을까.
“공주님도 안녕히 계세요~”
“응!”
입지 않은 치맛자락 대신 코트의 끝자락을 살짝 들어올려 인사한 화연은 그대로 현관문을 열고 집을 나갔다. 그러자 이한성은 그렇게 멀어져 가는 화연의 뒷모습을 현관에서 지켜보며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방금 그거, 사진으로 찍었어야 했는데.”
사심이 가득 담긴 목소리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