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Part-Timer Raises a Half-Elf RAW novel - Chapter (67)
알바생이 하프 엘프를 키우는 법-67화(67/245)
67
“….이래서 사람이 장담 같은 걸 쉽게 하면 안된다니까.”
다시는 오게 될 일이 없을 거라 장담했던 강북대학병원의 앞에 선 채, 이한성은 그렇게 자조스러운 혼잣말을 내뱉었다.
….막상 또 오니까 머뭇하게 되네.
찾아오는 것이 두번째라고 달라지는 건 없었다. 이한성은 본능적으로 발이 무거운 족쇄에 붙들린 것만 같은 기분을 느끼며 가만히 병원을 바라보았다.
화연의 충고 덕에 생각이 바뀌어서 일단 오긴 왔지만 여전히 이한성의 마음은 불확실 한 채로 복잡했다. 그의 마음은 여전히 아버지를 그 무엇보다도 증오에 가깝게 원망하고 있었고, 또 한편으로는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아버지를 동정하고 있었다.
쉽게 추스릴 수가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아버지를 용서하고 싶은 마음은 여전히 추호에도 없었지만, 그럼에도 그 인간이 죽는 것을 바라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또 그 인간을 살리자니, 용서를 하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이한성은 오늘 이렇게 마음에 결정을 내리기 위해 아버지가 입원해 있는 이 병원에 다시 한번 찾아왔다. 거부감이 미치도록 드는 건 어쩔 수가 없었지만, 그래도 마주본다면 조금이나마 생각이 정리될 것만 같아서.
….그리고, 그동안 늘 품어왔던 의문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서.
“아빠, 우리 안 들어갈거야?”
함께 온 수정이가 벙어리 장갑을 낀 손으로 이한성의 팔소매를 흔들었다. 그러자 이에 이한성은 무거워졌던 발걸음이 조금이나마 무게가 덜어진 것만 같은 기분을 느끼며 고개를 저었다.
“….아냐, 들어갈거야. 들어 가야지.”
그래. 똑바로 마주보자. 그 인간이 나한테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내가 그 인간에 대해서 어떤 결정을 내릴지, 똑바로 마주하고 끝내자. 결말이 어떻든간에 악연은 확실하게 끊어야 하니까.
수정이의 손길을 느낀 이한성은 스스로에게 그렇게 되뇌이며 조용히 병원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여전히 발걸음을 무거웠지만, 바닥에 달라붙어 움직이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저벅-저벅-]들어간 것과 동시에 다양한 사람들의 발소리가 귓가에 울려퍼졌다.
병원의 입구에서 진흙으로 잔뜩 더럽혀진 카펫과 그런 카펫을 청소하려는 청소부 아주머니, 방문객들을 안내하는 간호사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 있는 방문객들, 그리고 그런 공간 속에서 어렴풋이 느껴지는 소독약의 향기.
저번에 왔을 때와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었다. 익숙한 풍경에 데자뷰를 느낀 이한성이었지만, 그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은 채 조용히 수정이를 데리고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주말이라 그런지, 아니면 날이 추워서 그런건지 지난번에 왔을 때 처럼 엘리베이터가 사람들로 꽉꽉 채워져 있는 일은 없었다.
“아빠.”
“왜?”
“우리 지금 할아버지 보러 가는 거 맞지?”
“그래.”
이한성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이에 수정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한성에게 재차 물었다.
“아빠는 할아버지 시러하자나. 근데 왜 보러 가는거야?”
“….한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거든.”
“그게 뭔데?”
“비밀이야.”
이한성은 대답을 얼버무리며 수정이의 은빛 머리칼을 손바닥으로 쓰다듬어 헝클어 놓았다. 그리고는 이내 때마침 3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에서 나와 곧바로 병실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치이, 궁금한데.”
물어봐도 대답해주지 않는 이한성의 태도에 수정이는 볼을 부풀리며 불평을 내뱉었다. 그러나 그런 수정이의 모습이 눈에 귀엽게만 비춰졌던 이한성은 그저 옅은 미소를 지으며 어서 따라오라는 듯이 수정이에게 턱짓을 할 뿐이었다.
“빨리 나와. 엘리베이터 문 닫힌다.”
“으앗?!”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히려고 하자 수정이는 당황하며 후다닥 밖으로 뛰쳐나왔고, 재빠르게 먼저 가버린 이한성을 따라잡았다.
“휴우, 갇힐 뻔 했다….”
흘린 땀도 없으면서 이마를 쓱 닦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수정이의 모습에 이한성은 나지막히 웃음을 내뱉었다.
하여간에, 하는 짓이 엉뚱하게 귀여운 건 알아줘야 한다니까.
아마 세상에서 가장 귀여운 생명체 중 TOP 10 안에는 무조건 들어갈 것이다. 그렇게 이한성은 실없는 생각과 함께 이미 한번 지나가본 적이 있는 복도를 다시 한번 걷기 시작했다.
“분명 병실이 이쯤에 있었는데….”
2주 전의 기억을 더듬으며, 이한성은 병실 앞에 붙어있는 이름들을 하나씩 살펴보며 지나쳤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그 수많은 이름들 중에서 그가 찾는 이름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내가 병실을 지나친건가? 아니, 그럴리가. 병실 위치는 확실하게 이곳이 맞는데…. 왜 그 인간 이름이 안보이지?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 아버지의 이름에 이한성은 어리둥절 해 하며 병실 앞에 적혀진 이름들을 보고 또 다시 살펴보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없는 이름이 갑자기 나타나는 일은 없었다.
“어라? 이한성 씨?”
기껏 마음을 다잡고 찾아왔더니만 병실을 못찾아서 난감해졌던 그 순간, 귀에 익으면서도 살짝 유머스러움이 섞여든 목소리가 바로 뒤에서 들려왔다.
“아유, 오랜만입니다. 거의 2주 만인가? 잘 지내셨어요?”
목소리의 정체는 다름아닌 여느때와 같이 널널한 미소를 짓고 있던 강수철 교수였다. 이른 시간에 이렇게 연락도 없이 찾아온 이한성을 본 그는 무척이나 의외라는 듯한 눈빛을 지었고, 이에 이한성은 그의 인사를 받는 것도 깜빡한 채 병실 앞에서 사라져버린 아버지의 이름에 대해 물었다.
“혹시 그 인간, 병실을 다른 곳으로 옮겼나요?”
“아…. 이지훈 환자분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네. 며칠 전에 병실을 옮기셨어요.”
“어디로요?”
“….중환자실로요.”
강수철 교수는 살짝 머뭇거리는 말투로 그렇게 대답했다. 그리고는 이내 안경을 조용히 벗으며 무겁고도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지난 며칠 동안 몸상태가 급격히 안좋아지셨어요. 아마…. 오늘을 넘기지 못하실 수도 있습니다.”
“……”
오늘을 넘기지 못할 수도 있다. 그 말 한마디에 이한성은 무의식적으로 떨리는 주먹을 쥐었다.
“원래 이한성 씨에게 바로 연락드리려고 했지만, 이지훈 씨가 거절하셨어요. 그럴 필요 없다고.”
“…..”
이한성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입을 닫은 채 현실감이 전혀 와닿지 않는 눈빛으로 아버지의 이름이 사라진 병실 안쪽을 향해 바라볼 뿐이었다.
“아빠…?”
“…..”
수정이가 걱정스러운 눈빛과 함께 이한성의 손을 붙잡아 흔들었다.
…..암 말기라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 빨리 갈 줄은 몰랐는데.
그 인간이라면 암에 걸려도 잘만 끈질기게 연명할 줄만 알았다.
매일같이 밤늦게 술을 퍼질러 마시고 길거리에서 엎어져도 객사는 커녕 다음날 아침에 멀쩡하게 집에 돌아오던 인간이었으니까. 술에 취해 지나가던 차에 치여도 다리만 좀 삐고 멀쩡하던 인간이었으니까.
그랬기에 이번에도 어김없이 앞으로 1년은 문제없이 잘만 살아 있을거라고만 생각했다.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정도로 명이 질긴 인간이었으니까.
그런데 그랬던 그 인간이 오늘을 넘기지 못할지도 모른다. 지금 이 순간에도 중환자실에서 기계들에게 목숨을 의지 한 채 자신을 마중나온 시간의 끝을 가만히 기다리고 있다.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아서인지 현실감이 너무 없었다. 하지만 두말 할 것도 없이 이 모든 건 현실이었다.
이미 흘러간 것은 되돌릴 수 없는 현실이었다.
“…..”
무거운 공기만이 흐르는 침묵 속에서, 이한성은 조용히 자신의 손을 붙잡은 수정이를 바라보았다. 걱정이 가득 담긴 수정이의 녹색 눈동자를 본 이한성은 이윽고 깊게 드리워져 있던 침묵을 깨고 나지막히 입을 열었다.
“면회는…. 가능할까요?”
––––––––––—
[삐-삐- 삐-]일정한 간격으로 약하게 들려오는 심전도 소리. 로봇에 연결 된 전선처럼 환자를 중심으로 달라붙어 있는 기계들.
그리고 그런 기계들에게 목숨을 겨우 부지한 채 미동조차 없이 누워 죽을 때를 기다리고 있는 한 남자.
“….”
아버지지만 단 한번도 아버지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던 남자를 바라보며, 이한성은 조용히 그가 누워있는 중환자실 안에 발을 들였다.
다른 병실에 비해 면회가 제한되는 공간인 중환자실은 무척이나 조용했다. 수정이와 같이 함께 들어왔다면 이렇게 까지 조용하지는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만 14세 이하의 출입은 불가능 했던 탓에 병실에 들어올 수 있었던 건 오직 이한성 뿐이었다.
“….저 왔어요.”
“…..”
담담한 이한성의 목소리가 병실 안에 울려퍼졌다. 그러나 죽음을 앞두고 있는 이지훈은 하나뿐인 아들을 듣는 것도, 보는 것도 불가능했다.
“그렇게 누워있는거, 진짜 안 어울리네.”
조소가 담긴 목소리. 아무리 증오스럽다고는 하나 그래도 아버지인데 이한성의 목소리에는 슬픔 하나 묻어나지 않았다.
그저 저렇게 누워 있는 아버지의 모습에 인간으로서의 동정심이 조금 들었을 뿐.
“그러게 술 좀 작작 퍼마시지. 그런 꼴로 하직하면 속이 좀 편합니까?”
일방적인 대화. 아니, 대화조차도 아니다. 듣지도, 대답하지도 못하는 상대에게 이어지는 혼잣말에 불과하니.
“……”
이한성은 그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자신의 인생을 비틀어버린 장본인이 이렇게 미약하게 누워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아직 그에게는 해야 할 말이, 그리고 들어야 할 대답이 남아 있었기에.
[스킬: 루시드 드리머를 사용합니다.] [대상의 꿈 속에 개입하시겠습니까?]이한성이 조용히 손을 뻗자 시스템 창이 나타나며 그에게 물었다.
“….[Yes].”
창백해질대로 창백해진 아버지의 얼굴을 바라보며 이한성은 나지막히 결정을 내렸다. 그러자 그와 동시에 [루시드 드리머]가 발동되며 주변을 칠흑의 그림자들로 집어삼켰다.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을 헤매는 듯한 기분.
꿈이라기에는 현실 같고, 현실이라기에는 꿈 같은 공간 속에서 이한성은 조용히 기분이 닫는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시야는 여전히 어두웠지만 [루시드 드리머] 스킬을 보유한 그는 길이 어디인지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걸으면 걸을 수록 점점 더 현실감이 멀어져가기 시작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현실에서 주마등을 엿보고 있는 자의 꿈속을 향해 걷고 또 걸은 이한성은 길고도 짧았던 시간 끝에 한 점의 빛을 발견할 수 있었다.
분명 저기가 종점이겠지.
본능적으로 그 사실을 깨달은 이한성은 유일한 빛을 향해 나아갔다. 그러자 그가 한걸음을 내딛을 때 마다 주변을 에워싸고 있던 그림자들이 갈라지며 파편처럼 흩어졌고, 이윽고 풍경은 짙은 어둠에서 잔잔한 햇살이 비추는 푸른 색감의 풍경으로 바뀌었다.
구름 한 점 보이지 않는 여름 하늘의 아래. 반듯이 자라난 푸른 잔디밭과 그 위에 서있는 벤치 하나. 오래 전에 본 적이 있는 듯 하면서도 기억에는 없는 공원의 풍경 속에서, 이한성은 익숙한 뒷모습을 보았다.
공원의 분위기와는 동떨어진 환자복을 입은 채 벤치에 앉아 가만히 무언가를 지켜보고 있던 중년 남성의 뒷모습을,
삶의 마지막 순간 속에서 이 푸른 공원의 풍경을 감상하고 있는 그 인간의 뒷모습을,
세월이 흘러 기억하는 것 보다 많이 굽어진 아버지의 뒷모습을.
“…..”
저 인간이 원래 저렇게 작아 보였던가.
어렸을 적에 술병을 휘두를 때면 그렇게나 크고 무서웠었는데, 이제 보니까 그런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그렇게 느껴지는걸까?
예전과는 달리 작고 힘없는 사람으로 변해버린 아버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이한성은 그런 잡념들과 함께 조용히 그의 아버지가 앉아있던 벤치를 향해 다가가 말을 걸었다.
“저 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