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Part-Timer Raises a Half-Elf RAW novel - Chapter (68)
알바생이 하프 엘프를 키우는 법-68화(68/245)
68
“저 왔어요.”
“……”
고요한 공원 사이로 이한성의 목소리가 나지막히 울려퍼졌다.
벤치에 앉아있던 이한성의 아버지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저 멀리에 있는 무언가를 바라볼 뿐이었다.
-옳지! 옳지~! 그래!
이한성은 아버지가 바라보고 있던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풀밭에 쭈그려 앉은 채 밝게 웃으며 아기의 걸음마를 지켜보던 한 젊은 남자의 모습이 그의 눈가에 비춰졌다.
이한성과 비슷한 나이. 하지만 눈가의 난 흉터가 눈에 띄는 남자의 모습에 이한성은 본능적으로 그가 젊었을 적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알아 챌 수 있었다.
“….저 때만 했어도 나는 내가 혼자서도 널 돌볼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지.”
벤치에 앉아있던 이한성의 아버지가 조용히 입을 열어 말했다. 새치가 듬성듬성 난 머리카락과 함께, 그는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를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너는 기억 못하겠지만…. 저 때는 그래도 할 수 있는 만큼은 전부 했었다.”
아직 입에 술을 대기 전의 시절. 예기치 못하게 자식을 가져 아이의 아빠가 되어야만 했었던 오래 전의 이야기.
아이의 엄마가 떠나버리고 홀로 아이를 키워야만 했던 이지훈은 그때만 했어도 책임과 의욕이 넘치는 남자였다. 무슨 일이 있어도 아이를 꼭 훌륭하게 키워보겠다고, 가끔씩 TV에서 나오는 훈훈한 이야기들처럼 자신도 한번 그런 좋은 아버지가 되어보자고 그는 다짐했었다.
“….예전이 행복했었지.”
“…..”
여느 아버지처럼 웃으며 아이의 걸음마를 도와주는 이지훈과, 그 나이 때의 순수한 아기와 다를 것 없이 실실 웃으며 아빠에게 안겨들던 이한성. 지금은 눈 씻고 찾아볼 수가 없는 모습이지만, 한때는 둘에게도 그런 시절이 존재했었다.
비록 너무 어렸을 적의 일이라 이한성은 그때의 일들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지만, [루시드 드리머] 스킬을 지닌 지금의 그는 이 풍경이 아버지의 기억 그대로 재현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따스한 저 햇살도, 구름한 점 없이 푸른 저 하늘도, 더할나위 없이 사이가 좋아보이는 아이와 아버지도, 전부 한때 실재로 존재했던 것들이었다.
그래. 저런 순간도 있었구나.
“….확실히 그때는 행복했었을지도 모르죠.”
저 순간 만큼은 아버지도, 자신도 분명 행복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잖아요.”
이한성의 목소리가 화목한 목소리들을 집어삼키며 주변에 울려퍼졌다. 그러자 이내 행복함만이 가득했던 공간이 일그러지며 그림자가 하늘을 뒤덮기 시작했고, 그렇게 기억은 흘러가 풍경을 바꾸었다.
-너만 없었어도!! 내 인생이 이 꼴이 되진 않았을 거 아냐!!
[쨍그랑-]유리조각이 깨지는 소리가 사방을 뒤덮었다. 아까와는 전혀 다른 억울함과 분노에 사로잡힌 목소리가 주변을 가득 메우며 아직 아이에 불과한 소년에게 불합리한 폭력을 휘둘렀다.
“…..”
이지훈은 바뀐 풍경 속에서 군데군데 멍이 든 채 서있는 소년을 묵묵히 바라보았다. 과거의 자신이 과거의 아들에게 분노를 쏟아내는 모습을 지켜보며, 죄인처럼 고개를 숙였다.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 현실이 녹록하지가 않아서 그랬던 거겠지.
문제점 투성이인 이 나라에서 아버지 혼자 아이를 키운다는 게 어떤건지는 직접 겪어본 이한성도 잘 안다. 그 또한 시스템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그토록 증오하던 아버지와 똑같은 전철을 밟았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새벽 일찍 나가 밤 늦게까지 일을 하고, 쥐꼬리만한 생활비로 아이를 돌봐야 하는 고된 삶. 주말에는 피곤한 몸으로 쉬지도 못하고 자식을 돌와야만 했었고, 그렇게나 잘못 된 인식 탓에 주변 이웃들의 시선조차도 곱지 못했던 고난의 연속들.
불행하게도 이지훈은 TV에서 나오는 훈훈한 이야기 속의 아버지가 아니었다. 이한성이 초등학생이 되었을 때 그는 고작 스물 일곱이었고, 그의 충만하던 책임감과 의욕은 날이 갈 수록 서서히 고갈될 수 밖에 없었다.
의욕이 사라져버린 사람이 의지할 수 있는 건 오로지 술 뿐. 알코올에 의존해 배를 채우면 그나마 힘든 것들을 잠시만이라도 잊어버릴 수 있었으니.
바닥난 의지를 술로 겨우 채워가며 정신을 못차리고 살다 보니 사람이 망가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삶의 온갖 고난들을 전부 다 자식 탓을 하며 떠넘기는 게 어느샌가 당연한 것이 되었고, 그래도 풀리지 않는 화를 풀기 위해 술을 마시고 나면 늘 아들의 몸에는 피멍이 가득했었다.
“그거 아세요? 댁은 인간쓰레기였어요.”
“…..”
“매일매일이 시궁창 같았죠. 일주일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날은 댁이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날 뿐이었으니까.”
“…..”
“술병에 맞아서 머리가 찢어져도 병원 하나 못가고, 양치질도 제대로 못해서 이가 썩었는데도 치과 한번 못가고, 그거 때문에 또 아프다고 하니까 또 술병을 던지고. 기억은 합니까?”
“….다 기억한다.”
하나도 다 빠짐없이 전부 기억하는 자신의 모든 행동들을 되돌이키며, 이지훈은 그 어떠한 변명도 내뱉지 않았다. 그저 계속해서 이어질 아들의 비난을 묵묵히 받아들일 준비를 했을 뿐.
그러나 이한성은 그 이상 자신의 아버지를 비난하지 않았다. 그 이상 비난해봤자 감정만 더 격해질 뿐이라는 사실을 알았기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인간에게 분노를 표출해봤자 기분만 더 찜찜해질 뿐이라는 사실을 알았기에.
그랬기에 그는 비난하기를 그만 두었다. 그리고 그 대신 나지막히 질문을 하나 던졌다.
“한가지만 물어볼게요.”
“…..”
“왜 저를 진작에 고아원에다가 내다버리지 않은거에요?”
수정이와 함께 살기 시작했을 적 부터 끊이지 않고 머릿속을 맴돌던 의문.
충분히 고아원에 내다버릴 수도 있었다. 허울뿐인 아버지이기를 포기하고 아들을 내다버린 채 자신만의 인생을 도모할 수도 있었다.
기초수입자의 신분으로 자식을 키운다는 것은 도저히 혼자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국가의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미혼부의 신분으로는 더더욱.
이한성 조차도 처음 수정이를 맡게 되었을 때는 아이를 바로 보육원으로 보내버리려고 했었다. 시스템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자신의 처지로는 아이를 감당하지 못할 것이 당연했으니까.
하지만 그런 생각을 품었던 이한성과는 달리, 이지훈은 자신의 아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까지 데리고 살았다. 그토록 욕을 퍼붓고 폭력을 휘둘러 가면서 까지도 이한성을 집에서 내쫓지 않았다.
어째서일까.
“….다짐했으니까.”
계속되던 침묵 끝에 이지훈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여태껏 가만히 앉아있던 벤치에서 쇠약해진 몸을 일으킨 그는 그대로 뒤를 돌아 이제서야 이한성을 마주보며 대답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내 부모가 그랬던 것과는 달리, 나는 널 포기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으니까.”
“….”
자신의 과거를 자식에게 까지는 대물림 하지 않겠다는 강박증. 시간이 지나 점점 인생에 지쳐가면서 그 본질이 왜곡되고야 만 집념.
그게 이지훈이 이한성을 내치지 않았던 이유였다.
“나도 안다. 내 죄가 어떤 것인지.”
“….”
“이제와서 너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봤자 아무런 소용도 없다는 것 쯤이야 나도 안다. 그냥…. 가는 길에 마지막으로 얼굴이나 좀 보고 싶었을 뿐이다.”
이지훈의 목소리에는 깊은 허망함만이 담겨져 있었다. 죽기 직전이 되어서야 과거를 후회하게 된 그였지만, 그는 이제와서 그동안 잘해준 것 하나 없는 아들에게 뻔뻔하게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고 용서를 구할 정도로 염치가 없는 인간은 아니었다.
그저 담담한 시선과 함께 이지훈은 자신이 저질렀던 그 모든 죄들을 인정했다. 그러자 이한성은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차분하면서도 애증이 담긴 표정으로 바라보며 복잡하기만 했던 자신의 마음에 결정을 내렸다.
“전 용서할 생각 없어요. 미안하다는 말을 들어줄 생각도 없고.”
“….그래. 그것도 안다.”
아버지가 밉다. 원망스럽다. 얼굴조차 마주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증오스럽다. 이건 아무리 시간이 지난다 한들 사라지지 않을 감정들이다.
그러니 용서는 없다. 화해도 없다. 우리들의 관계는 오래 전 부터 그랬듯이 절대로 모든 게 행복했던 그 시절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그럼 이게 마지막 인사가 되겠네요. 아버지.”
“….그래. 이걸로 이제 마지막이겠구나.”
무려 15년 만에 다시 불러보는 호칭이었다. 그동안 어렸을 때를 제외하고 단 한번도 이지훈을 아버지라고 부르려 하지 않았던 이한성은 마지막으로 아버지라는 단어를 입에 담으며 어느새부턴가 먼지처럼 흩어지기 시작한 주변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이제 슬슬 돌아갈 시간인가.
스킬의 효과가 옅어지고 있다. 아마 조금 있으면 다시 현실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본능적으로 시간이 다 되었다는 사실을 눈치 챈 이한성은 그대로 조용히 뒤를 돌았다. 그리고는 이내 왔던 길을 향해 다시 발걸음을 되돌렸다.
“한성아.”
“….”
뒤에서 어렴풋이 들려온 아버지의 목소리에 이한성은 조용히 발걸음을 멈췄다. 그러자 이윽고 이지훈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빛이 바랜 목소리로 나지막히 말했다.
“그냥…. 한번 이름으로 불러보고 싶었다.”
“….하나도 안 어울리네요.”
조금도 어울리지 않는다. 저 인간한테 이름으로 불리니까 온 몸에 소름이 끼친다.
어색하기 그지 없는 아버지의 태도에 이한성은 떫은 미소와 함께 그대로 다시 발걸음을 내딛었다.
“….나도 똑같은 생각이다.”
멀어져 가는 아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이지훈은 그렇게 홀로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는 그렇게 무너져가는 세상 속에서 조용히 눈을 감으며 마지막을 맞이했다.
마지막에라도 이런 꿈을 꿀 수 있어서 참 다행이었다는 안도와 함께.
–––––––––
“–—씨.”
“……”
“–훈 씨.”
“……”
몽롱한 정신 속에서 이지훈은 한 남자의 목소리를 들은 듯 한 기분을 느꼈다.
“이지훈 씨. 괜찮으세요? 제 말 들리나요?”
“…..?”
희미하게 들려오던 목소리는 이윽고 선명하게 이지훈의 귓가에 울려퍼졌다. 몇차례나 남자의 부름을 듣고 난 후에야 정신을 차린 그는 조용히 감고 있던 눈을 떴다.
“여기는….”
“원래 계시던 일반 병실입니다. 꽤 오랫동안 혼수 상태이셨다가 깨어난거니까 조금 어지러우실 거에요.”
“….?”
깊은 잠에서 깼을 때의 뿌연 시야 너머로 강수철 교수의 얼굴을 본 이지훈은 무슨말인지 하나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자 강수철 교수는 이해 한다는 듯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혼란스러우시죠? 저도 그래요. 이런 경우는 처음이거든요.”
“대체…. 무슨 일이….”
“기적적으로 완치되셨어요. 축하드립니다.”
“….??”
순간 이지훈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그도 그럴것이 시한부 판정을 받은 암 환자였던 자신이 갑자기 자고 일어나니까 완치되었다는 소리를 듣는다면 누구라도 그런 반응을 내비칠 수 밖에 없었다.
“완치라니…. 농담이십니까?”
“아뇨. 농담이 아니니까 지금 이렇게 이지훈 씨랑 대화도 나눌 수 있는거겠죠.”
“….”
이 상황이 꿈이 아닌 현실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이지훈은 기가 막혀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세상에 진짜로 기적이란게 있다는 소리는 몇 번 들은 적이 있지만, 그런 기적이 이렇게 저지른 죄와 함께 죽어야만 했던 자신에게 찾아오리라고는 꿈에도 몰랐기 때문에.
“아 참, 잠드셨던 사이에 이한성 씨가 다녀가셨어요.”
“….네?”
죽다가 살아난 것 보다도 더 놀라운 소리에 이지훈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강수철 교수는 그런 자신의 환자의 반응이 참 재밌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그동안의 병원비는 전부 이한성 씨가 내고 가셨으니까 환자분은 이제 몸만 좀 추스르시다가 퇴원하시면 될 겁니다. 물론, 그 전까지는 이곳에서 지내셔야겠지만요.”
강수철 교수는 그렇게 유머스러운 말투로 희소식을 전하고는 곧바로 다른 할 일을 하기 위해 병실을 나갔다. 이에 병실에 홀로 남게 된 이지훈은 벙 찐 표정과 함께 병실 바깥을 바라보았고, 이내 나지막히 혼잣말을 내뱉었다.
“….분명 꿈이었을텐데.”
보통 꿈 속에서의 일이라면 그저 애매하게 단편적인 기억만이 남을 뿐인데, 어째서인지 꿈 속에서 아들과 나눴던 대화 하나 하나가 전부 선명하게 기억난다. 마치 실제로 있었던 일 처럼.
꿈이었지만 꿈이 아닌 것만 같은 혼란스러운 기분과 함께 이지훈은 뒤늦게 밀려오는 후회와 죄책감을 느끼며 갈 곳을 잃은 시선으로 저도 모르게 선반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 순간 선반 위에 올려져 있던 메모장 종이 하나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이건….”
노트에서 대충 뜯어낸 듯한 메모장 종이에는 삐뚤빼뚤한 글씨들이 짤막하게 적혀져 있었다.
[다신 보지 맙시다]“….하하.”
딱히 누가 썼다고 이름이 적혀져 있던 것도 아니었지만, 이지훈은 이 노트를 쓴 이가 누구인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하하. 하하하….”
헛웃음만이 가득하던 목소리에 씁쓸한 슬픔이 묻어나기 시작했다.
기적적으로 살아났기에 그는 웃었고, 하나뿐인 가족마저도 잃은 외톨이가 되었기에 그는 울었다.
결국 그가 치르게 된 죗값은 죽음이 아닌…. 고독한 여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