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Part-Timer Raises a Half-Elf RAW novel - Chapter (69)
알바생이 하프 엘프를 키우는 법-69화(69/245)
69
“휴우….”
갑갑한 공기로만 가득하던 중환자실에서 나오며, 이한성은 나지막히 한숨을 내쉬었다.
드디어 끝났네. 이 구질구질하던 악연도.
오랫동안 짊어져왔던 짐덩이를 덜어낸 듯한 기분이다. 이한성은 그렇게 왠지 모르게 개운해진 기분과 함께 텅 비어버린 유리병을 내려다 보았다.
“….내가 그나마 돈이 많아서 다행이지.”
하나에 백만원이나 하는 비약, [세계수의 이슬]. 그 어떠한 병이나 상처도 치유해준다는 효능을 지닌 액체가 들어있던 유리병을 본 이한성은 조용히 유리병을 근처에 있던 분리수거함에다 버렸다.
세계수의 이슬을 사는 데 100만원. 그동안 밀렸던 아버지의 병원비가 2천만원. 예전이라면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 액수였지만 지금의 이한성에게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금액이었다.
미울 뿐인 인간 하나 살린답시고 2천 백만원이나 써버린 이한성이지만 그는 조금도 후회하지 않았다. 오히려 밉기만 한 그 인간이 마땅한 죗값을 치르게 된 것만 같아 그저 상쾌할 뿐이었다.
“아빠!!”
그동안의 복잡했던 마음들이 정리되며 한숨이 트이던 그 순간, 중환자실 옆의 의자에 얌전히 앉아서 기다리고 있던 수정이가 벌떡 일어나 방금 막 나온 이한성을 향해 달려왔다.
“이것봐바! 사탕을 이~만큼이나 받았써!”
“….?”
수정이의 손바닥에는 온갖 사탕들이 한가득 담겨져 있었다.
홍삼 캔디는 물론이요, 청포도 맛 알사탕에다가 온갖 다양한 의 막대 사탕까지, 없는 게 없을 정도로 수정이의 손바닥 위에 수북히 쌓인 사탕들을 본 이한성은 잠시 표정을 찡그리더니, 이내 수정이에게 해명을 요구했다.
“너 이거 다 어디서 났어?”
“지나가던 할머니들이 준건데?”
“….할머니들?”
할머니도 아니고 할머니들이라니, 대체 할머니들이 얼마나 많이 지나가셨길래 사탕이 이렇게 쌓인거야?
할머니 한분 당 하나 씩 주고 가셨다고 가정해도 족히 스무 분은 넘는다. 분명 그냥 가만히 자리에 앉아있었을 텐데도 이렇게 사탕부자가 될 정도로 이름모를 할머니들의 관심을 듬뿍 받은 수정이의 인기에 이한성은 경악할 수 밖에 없었다.
“뭐…. 그래. 받은 거라면 괜찮은데…. 너 그거 지금 혼자서 다 먹을 생각은 아니지?”
“? 다 먹을건데?”
“야.”
이게 진짜 이빨이 다 썩어 봐야 정신을 차릴려고….
아주 해맑은 표정으로 저 설탕 덩어리들을 죄다 먹어치우겠다는 수정이의 태연하기 짝이 없는 선언에 이한성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자 딱 봐도 안된다고 말하려는 이한성의 표정을 본 수정이는 이내 우물쭈물 거리는 목소리로 동정심을 자극하며 물었다.
“…..안돼?”
“안 돼. 사탕은 무조건 하루에 하나씩이야.”
“왜~! 양치질도 하루에 세번 하고, 밥도 하루에 세번 먹는데 왜 사탕은 하루에 하나 뿐인데에~!!”
“또 또 이상한 논리를 들어대려 한다. 야, 밥먹는 거랑 사탕 먹는거랑 같냐? 그리고 너 하루에 양치질 두번 밖에 안하잖아.”
늘 하루에 세번은 하라고 잔소리를 하고 있긴 하지만 요 얍삽한 것은 칫솔에다 물만 살짝 묻혀놓고 양치질 했다고 뻔뻔하게 거짓말을 하는 것에 이미 도가 텄다. 최근들어 영 줄어들지 않는 딸기맛 치약이 바로 그 증거다.
“치이…. 하는 수 업지.”
수정이는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이내 잔뜩 쥐고 있던 사탕을 가지고 뒤를 돌아 어디론가 향하기 시작했다.
“? 너 어디가냐?”
“친구들한테 나눠주러.”
“친구? 너한테 친구가 있어?”
아직 유치원에도 안 들어갔고, 딱히 놀이터에서 같이 노는 친구들도 본 적이 없는 데 친구가 있다니, 혹시 그건가? 어렸을 적에는 다들 하나 쯤 있었다는 상상 속의 친구?
갑자기 왠 듣도보도 못한 친구들에게 사탕을 나눠주겠다는 수정이의 말에 이한성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그가 그러던 말던 수정이는 조금도 신경쓰지 않은 채 토끼처럼 깡총깡총 어디론가 향했다.
대체 어딜 가려고 저러는걸까, 도무지 영문을 모르겠던 이한성은 조용히 보호자 로서 수정이의 뒤를 따랐다.
“여기는….”
수정이가 향한 곳은 다름아닌 수많은 아이들이 환자복을 입은 채 몰려있던 소아병동이었다.
환자복을 입은 채 순수한 얼굴들로 각자의 부모님과 함께 자리에 앉아있던 아이들. 그중에는 수정이 또래의 나이인 아이들도 존재했고, 그보다 더 작은 아이들 또한 있었다.
“사탕먹을 사람~!”
잔잔하고 칙칙하기만 하던 분위기 속에서 힘찬 수정이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그러자 그 순간 모두가 다들 어리둥절한 눈빛으로 수정이를 바라보기 시작했고, 이애 수정이는 웃으며 아이들에게 다가가 사탕을 나눠주기 시작했다.
“아이고…. 저 애 착한 것 좀 봐….”
“애가 이쁜데 착하기까지 하니까 더 이쁘네.”
“저런 애들이 아프지 말고 무럭무럭 자라야 할텐데….”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사탕을 하나씩 돌리기 시작한 수정이의 모습에 주변 아이들의 부모님들은 저마다 수정이를 대견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웃기 시작했다. 덕분에 칙칙하기만 하던 병동의 분위기는 금새 먹구름이 걷힌 것 마냥 밝아졌고, 이한성은 그렇게 분위기를 순식간에 바꾼 장본인인 수정이를 바라보며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하여간에, 남한테 퍼주는 건 또 어디서 배운거야….”
말투는 삐딱한 이한성이었지만 그의 얼굴에는 옅은 미소가 드리워져 있었다. 그렇게 그는 흐뭇한 표정으로 그새 사탕을 아이들에게 전부 나눠주고 온 수정이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착한 일 하니까 기쁘냐?”
“응! 착한 일 많이 하면 산타 할아버지가 좋은 선물 준다고 연이가 그랬써!”
….왠지 되게 열심히 나눠준다 했다. 그냥 순수하게 호의를 베푸는 건 줄 알았더만은, 사심 때문이었구만.
“그래, 뭐…. 좋은 일 했으면 됐지. 근데 괜찮아?”
“응? 뭐가?”
“너 니가 먹을 사탕까지 전부 다른 애들한테 나눠줬잖아.”
“앗.”
수정이는 그제서야 텅텅 비어버린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 보았다. 그리고는 이내 허망함이 가득 담긴 표정으로 울상을 지으며 이한성을 올려다 보았다.
“깜빡했써….”
“으이그…. 까먹어도 그걸 까먹냐.”
남들에게 선의를 베푸는 건 좋지만 그것도 자신을 돌보면서 해야하기 마련이다. 이한성은 그런 것도 모르는 순수하기 그지 없는 수정이에게 한숨과 함께 나지막히 말을 꺼냈다.
“….그럼 우리 사탕 먹으러 가자.”
이한성의 얼굴에 잠시 쓴웃음이 드러났다. 어리둥절해 하는 수정이의 모습을 바라본 그는 이윽고 어딘가 아련한 눈빛과 함께 저 멀리에서 비춰지는 한 어머니와 아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조용히 수정이의 손을 잡았다.
“….할머니 집으로.”
–––––––––
[탁-탁- 탁-]크리스마스까지 며칠 남지도 않은 주말의 부엌에서, 이 낡은 빌라의 주인인 중년 여성은 조용히 한가득 모아둔 콩나물을 다듬었다.
주름진 손과 벌써부터 조금씩 희게 새기 시작한 머리카락. 젊었을 적에 고생한게 이만저만이 아니었던 탓에 40대 보다는 50대에 더 가까운 외모.
세입자들이 항상 아줌마, 또는 아주머니라고 부르는 그녀의 이름은 안서복. 몇주 후 마흔 다섯 살이 되기를 앞둔 채 가족하나 없이 하루하루를 집세받고 살고있는 쓸쓸한 사람이다.
“멸치육수 먼저 우려야겠다.”
보기보다 노안인 자신의 외모를 전혀 신경쓰지 않는 그녀는 조용히 홀로 중얼거리며 선반에서 냄비를 꺼내 물을 부어 끓이기 시작했다.
국을 끓여줄 자식도, 남편도 곁에 없지만 그녀는 남을 위해 요리하는 것에 무척이나 능숙했다. 작디 작은 냉장고가 늘 쓸데없이 많이 만들어놓은 반찬들로 차고 넘칠 정도였으니.
“멸치가 어딨더라….”
안서복은 냉장고 윗칸의 냉동칸을 열어 봉투에 담아둔 말린 멸치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저번에 국 끓일 때 다 쓰기라도 한 건지, 아무리 찾아도 말린 멸치는 보이지 않았다.
“에고에고, 빨리 나가서 사와야지.”
벌써 콩나물 뿌리를 다 떼 놨는데 이제와서 육수를 끓일 멸치가 없다고 그만 둘 수도 없는 법이다. 그렇게 안서복은 시큰거리는 무릎관절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띵동-]“?”
갑작스럽게 초인종 소리가 집안에 울려 퍼졌다.
“….누구야?”
이런 아침에 누군가가 집에 찾아오는 일은 최근들어 단 한번도 없었다. 아직 월세를 받을 날 까지는 며칠정도 남아 있었고, 신문배달이라 하더라도 안서복은 신문을 읽지 않는 사람이었다.
누군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는 초인종 소리에 안서복은 조용히 현관으로 향해 문을 살짝 열었다.
“……”
문 밖에 서있던 것은 세입자도, 신문 배달원도 아니었다.
값이 좀 나가보이는 겨울 코트에 결코 남들에게 뒤쳐지지 않는 반듯한 인상. 자신보다 훌쩍 큰 키와 살짝 날카로운 눈매.
자신이 포기했었던 아들이자, 자신에게 월세를 냈었던 세입자였으며, 이제는 아무 관계도 아니게 된 타인인 청년.
그렇다.
안서복이 바라본 그곳에는 다시는 만나지 못할거라 생각했던 이한성이 옅은 미소와 함께 서있었다.
“여긴 어쩐 일이야…. 총각?”
안서복이 떨리는 목소리를 필사적으로 감추며 이한성에게 물었다. 그러자 이에 이한성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며 평온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냥 지나가다 잠깐 들렸어요. 얘가 하도 난리를 쳐대서.”
“할머니!!”
이한성의 뒤에 숨어있던 수정이가 불쑥 튀어나오며 안서복에게 달려들었다. 건 한달 가까이 할머니를 만나지 못했던 수정이는 마치 귀여운 강아지처럼 제 할머니에게 딱 달라붙어 볼을 부비거리기 시작했고, 이에 당황한 안서복은 얼떨결에 수정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어리둥절한 눈으로 이한성을 바라보았다.
“뭐하시고 계셨어요?”
“….콩나물국을 끓이려던 참이었지.
그러나 그런 안서복의 시선에도 불구하고 이한성은 평범하기 그지 없는 대화를 계속 할 뿐이었다.
“아…. 맞다, 반찬이 좀 많이 남았는데….”
무슨 말을 해야할지 안서복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저 다시 보게 된 아들을 조금이라도 오래 보기 위해 어떻게든 대화거리를 쥐어짰을 뿐.
하지만 이한성에게는 오랫동안 대화를 끌 이유가 없었다.
“아뇨. 괜찮아요.”
“….그래. 괜찮다면 어쩔 수 없지.”
한치의 주저도 없이 선을 긋는 이한성의 태도에 안서복은 쓴웃음과 함께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 속에 남은 미련을 조금이라도 억누르기 위해서.
“할머니! 홍삼캔디 주세여!”
대화의 흐름이 잠시 끊긴 틈을 타 수정이가 끼어들며 해맑은 미소와 함께 손바닥을 내밀었다. 그러자 그런 귀엽기 그지 없는 소녀의 모습을 본 안서복은 온화함이 가득 담긴 미소와 함께 주머니에서 홍삼 캔디를 꺼내 수정이에게 군말없이 건네주었다.
“야 이수정. 뭐라고 해야지?”
“감사합니당!”
이한성이 눈치를 주자 수정이는 재빠르게 허리를 숙여 힘차게 감사인사를 건내고는 곧바로 홍삼캔디를 뜯어 입에 넣고 우물우물 빨기 시작했다.
“천천히 먹어. 그러다 목에 걸릴라.”
아이들이 복스럽게 먹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삶의 유일한 낙이 되어버린 나이의 안서복은 차분히 미소를 지으며 수정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면 쓸쓸했던 가슴이 조금이나마 나아질 것 같았기에.
“….오늘 어디 다녀오는 길이야?”
그렇게 안서복은 귀여운 수정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니 막막한 가슴이 조금 나아진 것만 같은 기분을 느끼며 이한성에게 나지막히 물었다.
“아버지를 만나고 왔어요.”
“….!!”
돌아온 이한성의 대답은 무척이나 담담했다. 잠시 차분하게 숨을 들이킨 그는 씁쓰름한 미소와 함께 말을 이어갔다.
“함께해서 더러웠으니까 서로 다시는 보지 말자고 통보했죠.”
“….그래. 그랬구나.”
안서복의 목소리에는 기운이 없었다. 지은 죄가 한가득인 아비 만큼이나 그녀 또한 지은 죄가 많았기에.
“사실 그 인간 때문에 마음이 좀 싱숭생숭 하긴 했는데, 이제는 좀 편해진 것 같아요.”
그토록 제자식을 때리고 굶기고 돌보지 않았던 그 인간도 결국에는 악마였던 것이 아니었다. 그저 좋은 아버지가 되기에는 너무 여유롭지 못했던 사람이었을 뿐.
그 사실을 인정하고 나니까 이한성은 자신의 부모에 대한 생각을 조금이나마 바꿀 수 있었다.
“그러니까…. 이제 그만 나머지 마음도 정리하려고요.”
“…..”
원망하지 않는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만약 어머니라는 존재가 곁에 있었더라면 시궁창 같기만 했던 나날들이 조금은 달랐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해보았던 것이 한두번이 아니다.
하지만 어쩌면, 저쩌면, 그랬더라면 같은 생각들은 전부 부질없는 고민에 불과하다. 어찌됐든간에 내 곁에 어머니는 없었고, 그렇기에 지금 이곳에 내가 서있으니까.
원망했던 만큼, 늘 곁에 없었던 어머니를 그리워 했었던 것도 사실이었으니까.
이한성은 조용히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리고 그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어머니의 눈을 똑바로 마주보았다.
“이제 그만 집에 돌아오세요 어머니. 방은 많으니까.”
“…..!”
아무런 말도 없이, 안서복은 고개를 숙인 채 굽은 등을 들썩였다. 마흔 다섯 살이 다 되어서 보는 눈이 많은데도 흐느끼기 시작한 어머니의 모습을 본 이한성은 그런 어머니를 담담하게 품에 안으며 시큰거리는 눈가를 감추기 위해 조용히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아, 쪽팔리게 이러면 안되는데….”
그게 다 부질없는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