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Part-Timer Raises a Half-Elf RAW novel - Chapter (71)
알바생이 하프 엘프를 키우는 법-71화(71/245)
71
“…..”
“…..”
조용히 침묵만이 흐르는 거실 속에서, 화연과 이한성은 서로에게 눈치를 주며 돌처럼 굳어버리신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아니, 어떻게 좀 해봐요. 마법 같은걸로 기억 못 지워요?”
“기억 지우는 게 어디 쉬운 일인 줄 알아요? 잘못하면 애꿎은 사람 치매 걸리게 할 수도 있다구요.”
급하게 재촉하는 이한성의 속삭임에 화연은 무리한 소리 하지 말라는 듯이 똑같이 속삭이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럼 어떡합니까?? 무슨 방법 없어요??”
“이, 일단은 한번 얼버무려보죠.”
“얼버무린다고? 이미 얼버무리고 뭐고 다 봤는데?”
“달리 방법이 없잖아요….!”
상황을 얼렁뚱땅 넘길거였으면 진작에 그랬어야 했다. 하지만 이미 서로 수근거리던 시점에서 얼버무리기에는 이미 너무 늦은 상황이었고, 그렇게 다 들리는 소리로 수근거리는 둘을 지켜보던 이한성의 어머니는 이내 조용히 입을 여셨다.
“한성아.”
“아니, 그러니까…. 예?”
“말 못할 사정이라면 말하지 않아도 된다.”
이한성이 수정이에 대해 무언가를 숨기고 있었다는 사실을, 어머니는 사실 예전부터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다만 그게 수정이의 비현실적인 능력에 대한 것이라고는 생각치도 못했을 뿐.
손에서 눈덩이를 쏙 만들어 폭죽처럼 터뜨리는 수정이의 모습을 눈앞에서 보았다.
이한성의 어머니는 그것이 마술 따위가 아니라는 것도, 그게 인간에게는 불가능한 일인 것도 아셨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 이상 알려고 하지 않으셨다. 이미 미안함만이 가득한 아들을 이 이상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기에.
“…..”
충분히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어보셔도 될 상황에서 선을 그으시며 아무것도 묻지 않으려고 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에 이한성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내가 등신이지. 사이가 다시 가까워지기를 바랬으면서 얼버무릴 생각부터 하다니.
한집에서 같이 살게 된 이상 어머니에게도 수정이의 정체에 대해 알 권리가 있다. 언제까지고 숨길 수는 없는 법이니.
“….아뇨, 말해드릴게요. 전부 다.”
무지했던 자신의 생각을 바꾼 채 마음을 굳힌 이한성은 이내 화연에게 시선을 보냈다. 그러자 그의 시선을 느낀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고, 그렇게 동의를 받은 이한성은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다 말하기 시작했다.
수정이를 얻게 된 경위, 수정이의 정체, 그리고 화연의 정체까지, 말로 설명하자면 너무 길었기에 어쩔 수 없이 생략해야 하는 부분도 있었지만 이한성은 어머니가 아셔야 할 건 모두 알려드렸다.
“그래…. 그렇게 된거였구나.”
자초지종을 전부 들으신 이한성의 어머니는 많이 놀라신 듯한 표정과 함께 그렇게 중얼거리셨다. 엘프니 하프엘프니 하는 터무니 없는 일들에 대해 알게 되셨으니 너무 놀라 패닉하지 않으신 것만 해도 다행이었다.
“잠깐만. 그럼 화연이의 나이가….”
“올해로 649살 이에요.”
어머니의 물음에 화연은 부끄럽다는 듯이 얼굴을 긁적이며 그렇게 대답했다. 그러자 눈앞의 젊은 처자가 사실은 자신의 조상뻘이었다는 사실을 알게되신 이한성의 어머니는 매우 어색한 표정과 함께 그녀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엘프 나이로는 아직 20대니까 그냥 지금까지 그랬던 것 처럼 편하게 대해주세요.”
“….정말 그래도 되겠어…?”
“그럼요. 아주머니가 저한테 존댓말 쓰시면 오히려 그게 더 불편해요.”
화연은 부디 그래달라는 듯이 이한성의 어머니께 부탁했다. 그러자 이에 이한성은 문득 한가지 의문을 떠올렸다.
잠깐만, 자기보다 600살은 더 젊은 사람한테 존댓말을 듣는 게 불편하다고? 그럼 왜 나한테는 그런 말을 한번도 한 적이 없는건데?
엘프나이로 20대라면 분명 나랑 동갑뻘이다. 그러니 분명 서로 반말을 해도 괜찮을텐데 왜 우리는 여태껏 서로 존댓말 밖에 안쓰고 있는거지?
생각해 보니까 이상하다. 여태껏 자각하지 못했던 사실을 깨달은 이한성은 혹시나 은연중에 화연이 자신과 거리를 두고 있던 것이 아닐까, 하는 합리적인 의심을 해보며 한번 확인해보기로 하였다.
“저기, 화연아.”
“….???”
혹시나 해서 한번 확인차 반말을 써본 것 뿐인데 순식간에 화연의 미간이 눈에 띄게 좁혀졌다. 갑작스러운 반말에 당혹스러웠거나, 아니면 머리 빡에 피도 안 마른 놈이 반말을 써서 순간 짜증이 났다거나 둘 중에 하나이리라.
“….아뇨, 아무것도 아닙니다. 잠시 말이 헛나와서.”
“아 뭐야…. 깜짝 놀랐잖아요.”
이한성이 말을 얼버무리자 화연의 얼굴은 다시 부드러운 미소를 되찾았다. 그러자 이한성은 아무래도 서로 말을 놓는 건 조금 더 미뤄야겠다고 생각하며 다시 본론으로 돌아왔다.
“아무튼, 일단 빨리 과외나 합시다. 이러다 시간 다 가겠네.”
아직 과외는 시작도 안했는데 벌써 설명하고 뭐 하느라고 한다고 30분이 금방 지나가버렸다. 시급 2만원의 월급을 정확하게 계산해서 지불해야 하는 입장인 이한성은 그렇게 화연을 재촉하며 사고를 쳐놓고 그새 또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수정이를 찾기 시작했다.
“쿠울….”
사라져버린 수정이를 찾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멀리 찾아볼 것도 없이 수정이는 소파 위에 누워서 침까지 흘려가며 자고 있었고, 그 모습을 본 이한성은 참 대단하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며 한탄을 내뱉었다.
“저게 증말…. 그새 잠들었네.”
“아직 애잖아요. 한창 낮잠 자는 거 좋아할 시간인데.”
화연이 괜히 깨우지 그냥 냅두라는 듯이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이에 이한성은 말 안해도 그럴 생각이었다는 듯이 조용히 틀어져 있던 TV를 리모컨으로 껐다.
아무래도 오늘 과외하기는 글렀다고 속으로 중얼거리며.
–––––––
여자들이란 수다를 위해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그래서 그 옆집 아저씨가 완전 아내 분한테 깨졌다니까요? 예정했던 것 보다 하루정도 빠르게 집에 돌아왔는데 남편이 생판 처음보는 여자랑 같이 있던거죠.”
“쯧. 역시 그런 인간들이 세상에 차고 널렸다니까. 대체 무슨 배짱이 있어서 내연녀를 아내 몰래 집에 들였었대?”
아까부터 거의 3시간 동안이나 쉬지 않고 계속해서 진행 된 어머니와 화연의 기나긴 대화 속에서, 기운이 다 빠질대로 빠져버린 이한성은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보며 나지막히 한탄했다.
어떻게 저렇게나 할 이야기가 넘쳐나는거지? 아니, 보통 한두가지 토픽으로 이야기 한번 나누고 나면 끝 아냐? 무슨 평소에 대화거리를 다 머릿속에 저장해놓고 다니기라도 하는건가?
30분만 대화를 나눠도 서로 지치기 마련인 남자들이지만 여자들, 특히나 그중에서도 아줌마들은 길게는 장정 반나절 동안이나 별 것도 아닌 것 가지고 수다를 떨 수 있다. 거의 토크쇼 저리 가라다.
“아, 맞다. 이번에 저희 보육원에서 크리스마스 파티를 열기로 했어요.”
“크리스마스 파티? 아, 그러고 다음주 월요일이 크리스마스지?”
이한성의 어머니가 깜빡 잊고 있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러자 화연은 이에 맞장구를 치며 한숨과 함께 대화를 이어나갔다.
“네. 그런데 애들 선물을 뭐로 해야할지가 걱정이더라구요…. 애들이 거의 40명이나 되는데 선물을 일일히 따로 준비할 수도 없고….”
보육원의 예산으로는 아이들의 선물을 일일히 맞춰주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러니 결국 게임기나 장난감 같은 비싼 선물은 엄두조차 못내고 초콜릿이나 과자 같은 값싼 선물을 준비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가능하면 최대한 좋은 선물을 준비하고 싶은데….”
“에휴, 그게 가능하면 얼마나 좋아. 아마 애들도 다 알거야. 힘들다는거.”
화연이 보육원 아이들에게 미안하다는 듯이 고개를 숙이자 이한성의 어머니는 그런 화연에게 위로의 말을 건냈다. 그러자 그 순간 둘의 대화를 거의 한쪽 귀로 듣고 다른 귀로 흘려보내다 싶이 하던 이한성의 귓가에 익숙한 효과음이 울려퍼졌다.
[띠링-]“….?”
[돌발 퀘스트가 발생했습니다.]….이거 또 이러네. 아무리 돌발적인 퀘스트라지만 왜 항상 이렇게 뜬금포도 없이 나타나는건데? 대체 퀘스트 발생 조건이 뭐야??
돌발 퀘스트니까 돌발적으로 발생하는 것이야 이해를 하겠지만 너무 엿장수 마음대로다. 이런식으로 늘 시스템에게 이리저리 휘둘려왔던 이한성은 이제는 익숙해져서 별로 놀랍지도 않다는 듯이 퀘스트 창을 확인했다.
[사실 산타는 없어: 아이를 위한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비하십시오. 선물에 대한 아이의 만족도가 S랭크에 달할 시 히든 보상이 주어집니다.] [클리어 보상: +5 육아 포인트/ +150만 골드/ +???(옵션)] [크리스마스의 기적: 보육원 아이들을 위한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비하십시오. 기간 내에 클리어 하지 못할 경우 <사실 산타는 없어> 퀘스트의 클리어 랭크가 한단계 하락합니다.] [클리어 보상: 인벤토리 최대 중량 증가/ 중급 인챈트 스크롤x1/ 칭호<자선사업가>]….뭐야, 하나만 뜬 줄 알았더니만 두개나 떴네?
일일 퀘스트도 아닌 돌발 퀘스트가 이런 식으로 동시에 2개나 나타난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다.
각기 비슷하지만 다른 내용의 퀘스트. 하나는 지극히도 평범하게 자녀에게 좋은 선물을 주라는 내용의 퀘스트고, 다른 하나는 영문도 모른 채 생판 타인인 아이들에게도 선물을 나눠주라는 내용의 이타심 넘치는 퀘스트다.
그러니까 히든 보상을 얻고 싶으면 자선사업가가 되라, 이 말이지? 나 원 참 어이가 없어서…. 이거 육아 보조 시스템 아니었어? 근데 왜 얼굴도 모르는 다른 애들까지 신경쓰라고 하는건데??
보육원 아이들의 선물을 준비하기 싫다는 게 아니다. 그저 어째서 시스템이 이런 선행을 베푸는 것을 퀘스트로 권유하는 것인지가 궁금할 뿐이다.
어차피 선택은 이한성 본인의 몫이다. 퀘스트를 둘 다 클리어 한다면 히든 보상이 주어진다고는 하나, 그건 어디까지나 옵션에 불과하다.
….분명 예전의 나였더라면 전자만 진행하고 후자는 무시했었겠지. 아니, 어쩌면 둘 다 무시했을지도.
수정이를 키우기 시작한 이후로 심정이 여러모로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고는 하나, 불과 지난주 까지만 했어도 이한성은 여전히 이타적이라기 보다는 이기적인 성향을 지닌 남자였다. 그리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럼에도 변화는 확실하게 존재했다. 이한성은 여전히 이기적이었지만, 부모님도 없이 변변찮은 크리스마스 선물조차도 제대로 기대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도와주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의 이타심은 생겼다는 것이 바로 그 증거다.
물론, 히든 보상이 무엇인지에 대한 호기심도 한 몫 하긴 했지만 말이다.
뭐…. 좋은 일도 하고 돈도 받고 하면 일석이조지. 까짓거 그냥 한번 둘 다 클리어 해 보자.
여유가 있어야 사람이 착해진다고들 하지 않는가. 지금의 나에게는 남을 도울 여유도, 도우고 싶다는 마음도 확실하게 있다. 돕지 않을 이유가 그닥 없다.
살기 바빠서 스스로를 먹여 살리는 것 조차 힘겨워 했던 자신이 이제는 이렇게 타인 생각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 참 신기하기 그지 없다고 생각하며, 이한성은 조용히 퀘스트 창을 닫았다.
“화연 씨. 보육원 애들 선물 준비하는 거, 도와줄까요?”
“…..”
“…..”
순간 바쁘게 수다를 떨고 있던 어머니와 화연의 목소리가 뚝 끊겼다.
“….갑자기 왜 다 말이 없어요?”
찬물을 끼얹은 것도 아닌데 갑자기 왜들 다 저러는걸까. 내가 뭐 이상한 말이라도 했나?
난데없이 시작된 불편한 침묵에 이한성은 어리둥절한 눈빛으로 화연과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화연과 어머니는 이내 매우 걱정스러운 표정과 함께 이한성에게 아주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
“어디 아프세요? 혹시 드시는 약 깜빡한 거 아니죠??”
“열나는 거 아니야? 잠깐 열 좀 재자.”
….이 사람들이 진짜.
선행 좀 하겠다니까 아픈사람 취급받는 이한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