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Part-Timer Raises a Half-Elf RAW novel - Chapter (72)
알바생이 하프 엘프를 키우는 법-72화(72/245)
72
해가 늦게 뜨는 겨울의 이른 아침은 꽤나 어두웠다.
현재시각 9시. 여름 같았으면 벌써 해가 뜨고 날이 더워지기 시작했을 시간이지만 지금은 크리스마스를 며칠 남기지 않은 한겨울이었다.
화창한 하늘은 없이 금방이라도 또 눈이 내릴 것만 같은 회색 하늘과 길거리 한쪽으로 치워져 있는 눈더미들.
길거리 곳곳에는 성탄절을 상징하는 크리스마스 트리를 비롯한 각종 장식들이 모습을 드러냈고 이따금 가게를 지나갈 때 마다 흥겨운 크리스마스 캐롤들이 울려퍼진다.
“우와아….”
수정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구경하는 크리스마스 시기의 길거리를 바라보며 감탄을 내뱉었다.
세상에서 중동이나 문명의 손이 잘 닿지 않은 오지 출신이 아니고서야 크리스마스를 겪어보지 않았을리가 없겠지만 수정이는 특이 케이스였다.
정신연령이나 신체나이는 5살이지만 실제 나이는 아직 1살도 제대로 되지 않는 수정이. [성장의 축복] 스킬과 [세계수의 이슬]의 효능이 겹쳐진 탓에 신생아에서 하루 아침만에 5살이 되어버렸으니 수정이가 아직 크리스마스에 대한 경험이 전무한건 당연한 일이다.
“아빠! 나 저 안에 들어가 봐도 돼???”
“안돼. 우리 지금 보육원에 가는 길이잖아.”
신나서 어쩔 줄을 몰라하며 크리스마스 장식이 보이는 가게 마다 일단 들어가고 보려는 수정이를 제지하며, 이한성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오늘은 아침부터 보육원에 가서 크리스마스 파티 준비를 돕겠다고 화연과 약속을 잡았다. 물론 어제 그 약속을 잡았을 때 같이 있던 화연을 포함한 어머니의 표정이 꼭 무슨 정신이 아픈 사람을 걱정하는 투의 기분이었지만 말이다.
….아니, 그나저나 내가 봉사활동 좀 한다는게 그렇게 놀랄 일이었나? 물론 나도 내가 막 남을 돕고 다니는 기브 앤 기브 체질이 아니라는 건 인정하지만, 그래도 그렇다고 내가 막 죽어도 나 밖에 모르는 이기주의 사이코패스 짠돌이는 아니잖아?? 이제는 부모이기도 하고 생활에 여유도 좀 생겼겠다, 남 도울 수도 있는거지. 그런데 대체 왜 다들 그런 눈으로 날 쳐다봤던건데??
보육원 하니 잠시 스치고 지나가는 어제의 기억을 떠올리며 이한성은 속으로 그 누구도 듣지 못할 항의를 래퍼마냥 줄줄히 늘어놓았다. 하지만 그가 그런 항의라는 이름의 랩을 속사로 퍼붓고 있다는 걸 알 리가 없던 수정이는 그저 실망스러운 목소리로 불평할 뿐이었다.
“치, 맨날 안된데.”
수정이가 입을 삐죽이며 투덜거렸다. 하지만 이렇게 안된다는 말을 듣는 것에 익숙해진 수정이는 그 이상 떼를 쓰거나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대신, 방금 막 이한성이 언급한 보육원에 대해 관심을 내비치며 물었다.
“그런데 아빠, 보육원이 뭐야??”
“보육원? 뭐…. 간단하게 그냥 곤란한 처지의 애들을 돌보는 곳이야.”
“곤란한 처지??”
“그래. 부모님이 사고로 돌아가셨다거나, 아니면 이런저런 사정으로 부모님이 없는 아이들을 대신 돌봐주는 곳이지.”
이한성의 간략한 설명에 수정이는 어렴풋이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이내 흠칫 하며 걸음을 멈췄고, 충격먹은 표정과 함께 이한성을 올려다보았다.
“? 갑자기 왜 그러냐?”
“아, 아빠, 혹시 나 버릴거야….??”
“뭐??”
이 말, 전에도 한번 들은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충격과 공포가 담긴 표정과 함께 자신을 바라보는 수정이의 모습에 데자뷰를 느끼며, 이한성은 황당함을 내비쳤다. 아무래도 수정이는 보육원에 가는 길이라는 말을 아빠가 자신을 버리러 간다는 의미로 어림짐작한 모양이었다.
“내가 널 왜 버려??”
“그, 그야 내가 지난번에 아빠가 숨겨둔 초콜릿을 몰래 머겄으니까….??”
수정이가 손가락을 꼼지락 거리며 이실직고를 털어놓았다. 그러자 뒷걸음질도 안했는데 의도치 않게 쥐를 잡게 된 이한성은 말없이 싸해진 표정으로 수정이를 바라보았다.
….어째 안보인다 했더니만 네 짓이었냐.
혼자 먹을려고 서랍장 안에 꽁꽁 숨겨뒀던 2만원 짜리 페x로 초콜릿. 아무리 찾아봐도 안보이길래 자신이 이미 먹어버린 걸 깜빡하고 있는게 아닌가, 싶었던 이한성이었지만 범인은 바로 눈앞에 있었다.
“…..”
“아, 아빠…. 화났써….?”
“아니. 화 안났는데.”
넌 내가 초콜릿 하나 훔쳐먹었다고 지x발광을 할 속좁은 인간으로 보이니? 천만에, 난 전혀 아무렇지도 않단다. 암 그래. 애가 초콜릿 하나 몰래 먹을 수도 있지. 있고야 말고. 비록 2만원 짜리에다가 크리스마스 날에 디저트로 먹을려고 땡기는 마음을 꾹 눌러가며 아껴둔 초콜릿이긴 하지만 뭐 어때. 또 사면 되는데. 이제는 돈이 부족한 것도 아니잖아.
조마조마한 표정으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수정이를 바라보며, 이한성은 그렇게 속으로 주구절절 혼잣말을 늘어놓았다. 이미 그렇게 혼잣말을 속으로 늘어놓는 시점부터가 속이 좁다는 증거라는 걸 전혀 자각하지 못한 채.
“지, 진짜 화 안난거지….? 나 보육원에 안 버릴꺼지….?”
“나 화 안났다니까. 그리고 내가 화가 났다 해도 그렇지, 내가 널 보육원에다가 왜 버려.”
….물론 그럴려고 했던 적이 없던 건 아니었지만 말이야.
불과 몇개월 전 까지만 했어도 당장 보육원에다가 맡기겠다느니 어쩌겠다느니 했던 스스로를 되돌이켜 보며, 이한성은 속으로 그렇게 양심이 담긴 혼잣말을 내뱉었다. 그때야 수정이가 그저 걸림돌이에 불과했었기에 이한성에게는 수정이를 보육원에 맡기겠다는 생각만 가득했었지만, 수정이에게 아빠라고 불리는 일상이 거의 당연하다 싶이 된 지금의 그에게는 죽어도 그럴 생각이 없다.
“정말??”
“그래.”
“휴우…. 다행이다.”
정말로 화도 안났고, 보육원에다 버리지도 않겠다는 이한성의 진심어린 대답에 수정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다시 밝은 미소를 되찾았다. 그러나 그 직후에 이어진 이한성의 한마디는 밝아졌던 수정이의 미소를 다시 절망으로 되돌려버렸다.
“대신 너 3일 동안은 간식 먹는 거 금지야.”
“!!!”
하루에 과자는 하나씩이라는 이한성의 끊임없는 잔소리에도 불구하고 늘 하루에 과자 세끼를 추구하는 수정이에게 있어서는 거의 무기징역 내지 사형에 가까운 처벌이었다. 그런 무거운 처벌을 받은 수정이는 마치 1심의 결과에 항소하려는 피고인의 심정으로 재판장인 이한성에게 항의했다.
“아빠는 거짓말쟁이! 화난 거 맞자나!”
“어허, 내가 진짜로 화났으면 3일이 아니라 일주일이었어 욘석아.”
“이, 일주일….?!”
3일도 아닌 일주일. 이것도 봐준거라는 이한성의 말에 수정이는 마치 미국 법원에서 500년 형이라도 선고받은 피고인이 지을 법한 충격적인 표정과 함께 공포가 섞인 목소리로 혼자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일주일이면 7일이고 하루가 24시간이니까 168시간…. 히익!”
“….?”
뭐야, 쟤 방금 그걸 전부 암산한거야? 5살인데?? 덧셈도 뭣도 아직 가르친 적이 없는데??
이한성이 수정이에게 가르친 것이라고는 간단하게 숫자를 세는 법 뿐. 아직 글 쓰는 법과 글을 읽는 법도 가르친 적이 없다. 마법 과외가 우선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나중에 유치원에 보내면 거기서 알아서 가르쳐 줄 거라고 생각했기에.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정이는 구구단보다 어려운 두자릿수와 한자릿수의 곱셈을 정확하게 뚝딱 암산했다. 다섯 자릿수 끼리의 곱셈도 계산기 마냥 정답을 찾는 세계 정상급의 천재 만큼 놀라운 일은 아니었지만, 구구단 이외에는 곱셈을 암산 하는 데 한나절이 걸리는 이한성에게는 놀랍기 그지 없는 일이었다.
….그러고 보니까 화연 씨가 그랬었지? 얘한테 대마법사의 재능이 있다고. 게다가 화연 씨 말로는 마법이 거의 뭐 수학이랑 종이 한 장 차이랬으니까…. 뭐야, 그럼 혹시 우리 애 천재인거 아니야??
충분히 킹능성 있는 생각이다. 그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한성은 살짝 기대 반 기쁨 반이 섞인 목소리로 수정이에게 뜬금없는 수학 문제를 내놓았다.
“수정아. 46823 곱하기 19835가 뭐지?”
“응??”
질문을 듣기 무섭게 수정이의 표정이 물음표로 가득 채워졌다. 아무래도 문제가 너무 어려웠던 모양이었다.
….그럼 그렇지. 우리 애가 똑똑한 건 몰라도 천재는 아니지. 24 곱하기 7이야 앵간한 수학 잘 하는 애들은 바로바로 암산하는 수준이잖아. 별 것도 아닌 것 가지고 괜히 김칫국 마실 뻔 했네.
자신을 멀뚱히 쳐다보는 수정이의 모습에 이한성은 아쉬움과 함께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이내 수정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나지막히 말했다.
“아냐, 모르면 됐-”
“아빠 바보야?”
뭐?
순간 수정이가 이한성의 말을 끊으며 찡그린 표정과 함께 물었다. 그러자 난데없이 딸한테 바보라는 소리를 들은 이한성은 이내 어이가 싹 사라진 표정으로 수정이를 바라보았고, 살짝 욱 할 뻔한 감정을 억누르며 질문으로 대답했다.
“바, 바보? 너 지금 나보고 바보라고 했냐??”
“응.”
“아니, 내가 왜 바본데???”
“그야 곱하기도 못하니까?”
수정이가 당연한 걸 왜 물어보냐고 말하는 듯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무래도 이한성이 갑자기 수학 문제를 낸 이유가 곱셈을 할 줄 몰라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야 내가 곱하기를 왜 못해?? 나 할 줄 알거든?”
“근데 왜 46823 곱하기 19835가 뭔지 물어보는거야?? 그것도 몰라??”
수학자도, 수능에서 만점 받은 것도 아닌 사람이 다섯 자릿수 암산을 못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전교 10등 안에 드는 수재들도 천의 자릿수를 암산하면 잘하는 편이라고들 하는데 전교 10등은 커녕 뒤에서 10등이었던 이한성이 만의 자릿수의 암산을 못한다고 해서 바보라고 불릴 이유는 전혀 없다는 뜻이다.
“야, 그럼 넌 답이 뭔지 아냐?”
“응. 구이팔칠삼사이공오잖아.”
“….뭐라고?”
대답을 무슨 전화번호 읆듯이 말하는 수정이의 모습에 이한성은 순간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어하며 귀를 의심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수정이는 다시 한번 전화번호 비슷한 숫자들을 읊을 뿐이었다.
“구이팔칠삼사이공오.”
“그러니까…. 928734205 라는게 9억 2천 8백 73만 4천2백 5를 말하는거야….?”
“응!”
아무래도 만 이상은 셀 줄을 몰라서 숫자들로만 대답했던 모양이다. 일단은 제대로 대답을 내놓은 수정이었지만, 이한성은 여전히 반신반의하며 조용히 걷다가 말고 핸드폰을 주머니에서 꺼내들었고, 이내 계산기 앱을 켜 46823 곱하기 19835를 입력해 답을 확인했다.
어디 한번 틀렸기만 해봐. 내가 죽을 때 까지 바보라고 놀려줄테니까.
[928, 734, 205]“…..”
진짜네.
숫자 하나 틀린 게 없는 아주 정확한 답이다. 이한성은 그렇게 계산기 뺨 칠 정도로 암산을 정확하게 해낸 수정이를 경악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며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우리 애가 다섯 자리수 곱셈을 암산으로 할 수 있다고….? 에이, 설마. 그냥 한번 대충 때려맞춘거 아니야??
불가능한 일이다. 다섯 자리수 곱셈 문제를 운으로 때려맞출 확률은 로또에 당첨될 확률과 다를 게 없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고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을 부정하며 수정이에게 바로 다음 문제를 냈다.
“15784×79485=?”
“1254591240.”
“98321×47951=?!
“4714590271.”
“파이의 값은?!!”
“? 파이가 뭐야?”
무식한 숫자들도 잘만 암산하던 수정이가 고개를 갑자기 갸웃거리며 물었다. 애초에 기초수학조차 아직 배우지 않은 수정이가 사칙연산을 이외의 수학적 지식에 대해 알고 있을리가 없으니 모르는 게 당연했지만, 이한성의 입장에서는 어려운 건 다 대답했으면서 정작 비교적 쉬운 것은 모르는 수정이의 모습이 그저 허당끼가 가득하게만 느껴질 뿐이었다.
….그만하자. 아직 유치원도 안 보낸 애를 상대로 이게 대체 뭐하는거야.
수정이의 허당끼 넘치는 모습에 정신을 되찾은 이한성은 괜히 흥분했던 스스로를 진정시키며 냉정을 되찾았다. 그리고는 이내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처럼 수학문제 콘테스트로 새어버린 대화의 흐름을 다시 되짚어 보았다.
“됐다, 그나저나 내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었더라…. 아, 그렇지. 암튼 너 3일 동안은 간식 금지야.”
“앗….”
자신의 암산 실력을 마음껏 뽐내느라고 정신이 없던 수정이의 표정이 다시 한번 절망으로 물들었다. 내심 이한성이 깜빡 잊어버리기를 바랬던 속마음이 훤히 드러나는 얼굴이었다.
“치…. 알았써.”
“그래. 그래야지.”
보나마나 어차피 또 몰래 먹겠지만 말이야. 그래도 적어도 당분간은 과자 먹는 걸 좀 줄일 수 있겠지.
애초에 수정이가 자신의 말에 순순히 따르는 것은 기대도 하지 않는다. 갓난아기였을 때 부터 수정이를 돌봐왔던 이한성은 수정이에게 약삭빠른 구석이 있다는 사실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고, 때문에 그가 바라는 것은 그저 수정이의 일간 과자 섭취량을 가능한 줄이는 것 뿐이었다.
“그나저나 말하다 보니까 벌써 도착했네.”
정신없이 수정이와 투닥거리다 보니 어느샌가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이한성은 조용히 그대로 발걸음을 멈춰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그가 바라본 그곳에는 살짝 오래된 분위기의 외관을 지닌 어린이집 정도 크기의 보육원이 초라한 크리스마스 장식과 함께 눈으로 덮여 있었다.
[사랑 보육원]2개월 만에 다시 보는 보육원의 모습이었다. 이한성이 마지막으로 이곳에 찾아왔던 건 10월 중순이었고, 그때도 지금과 똑같이 이렇게 수정이가 곁에 함께 있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곳을 찾아온 이유가 그때와는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으음….”
이한성이 쓴웃음과 함께 지난날을 되돌아보던 와중에 귀엽기 그지 없는 수정이의 고민소리가 주변에 울려퍼졌다.
“왜 그러냐?”
“….아빠, 나 예전에 여기 와 본 것 가타.”
수정이가 TV에서 봤던 꼬마 탐정 흉내를 내며 귀엽게 밖에 보이지 않는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이에 이한성은 도둑이 제 발 저린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 심정과 함께 흠칫하며 살짝 더듬는 말투로 말을 얼버무렸다.
“기, 기분 탓이겠지.”
….누가 천재 아니랄까봐, 걸음마도 못 뗐을 시절도 어렴풋이 기억이 나나 보네. 무서운 애야.
“일단은 빨리 들어가자. 춥다.”
혹시나 수정이가 그때 일을 떠올릴까 무서웠던 이한성은 재빠르게 수정이의 생각을 끊으며 추위를 핑계로 보육원 안으로 도망치듯 먼저 들어가버렸다.
아니, 정확히는 들어가려 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으아아아아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