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Part-Timer Raises a Half-Elf RAW novel - Chapter (75)
알바생이 하프 엘프를 키우는 법-75화(75/245)
75
“애들이 아까부터 계속 언니가 매직 큐어라고 하던데, 진짜야?”
“…..”
궁금증이 가득한 해영의 물음에 화연의 얼굴은 화강암보다도 단단하게 굳어졌다. 이제는 매직 큐어의 매-자만 들어도 진절머리가 나게 생긴 그녀는 마치 전기뱀장어 마냥 사방으로 정전기를 튀기기 시작했고, 그 모습을 본 이한성은 재빠르게 그녀를 진정시키며 말렸다.
“참아요 참아! 그러다 들키면 어쩌려고!”
“…..글쎄요. 그냥 싹 다 기억을 지워버리면 되지 않을까요.”
“아니, 그거 잘못 하면 치매 온다면서요!”
“생각해 보니까 남한테 치매가 오던 말던 저랑 뭔 상관인가 싶어서요.”
화연의 표정은 농담이라기에는 너무 진심같았다. 금방이라도 누구 머릿속을 깔끔하게 포맷할 기세로 검은 오오라를 사방에 풍기고 있는 그녀를 본 이한성은 진지하게 [행동제한] 스킬을 그녀에게 써야 하나 잠시나마 고민했다.
하지만 다행이도 그녀가 흑화해서 다른 이들의 머릿속을 포맷해 버리는 일은 없었다.
“쉬잇! 연이가 매직 큐어 인건 비밀이랬써!”
왜냐하면 수정이가 끼어들며 해영에게 말해줄 수 없다는 듯이 그렇게 충고했기 때문이었다.
“…..”
화연의 주변에서 자기장 마냥 튀던 정전기들이 잦아들기 시작했다. 금방이라도 흑화할 것만 같았던 그녀의 새까만 오오라는 이내 금방 사그라들었고, 그렇게 간신히 충동을 이겨낸 그녀는 귀여움이 충만하게 비밀이라고 당부하는 수정이의 모습을 바라보며 굳어있던 얼굴을 언제 그랬냐는 듯이 풀었다.
….근데 솔직히 말하자면 먼저 애들 앞에서 매직큐어니 뭐니라고 까발린 건 수정이었지 말입니다.
병주고 약주고라는 말은 바로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것이다. 화연이 흑화할 뻔 했던 원인이면서 동시에 흑화를 막은 해결책인 수정이의 태도는 거의 내로남불이다 다름 없었지만, 이한성은 굳이 그런 생각들을 입 밖으로 내지 않기로 했다.
“야, 수정아. 애들이랑 같이 노니까 재밌어?”
“응! 완전 재밌써! 나 여기서 살래!”
“아니 그건 안되지.”
멀쩡한 집 놔두고 보육원에서 살겠다고 하는 애는 이 세상에서 너 밖에 없을거다. 아무리 또래 아이들이랑 노는 게 재밌다고 해도 그렇지….
“왜 안되는데?”
“니가 여기서 살면 보육원 선생님들 한테 민폐니까.”
“아냐~! 나 말 잘 들을거야!”
“웃기고 있네. 니가 말을 잘 듣긴 뭘 잘 들어?”
항상 양치질 했다고 거짓말 치지, 사탕은 하나씩만 먹으라고 해도 꼭 두세 개 씩 입에 털어넣지, 브로콜리 편식하지 말라고 아무리 말을 해도 염동력으로 몰래 쓰레기통에다가 버리지, 평소 행동만 해도 이런데 대체 양심을 어따 팔아먹었길래 자기가 말을 잘 들을거라고 장담 할 수가 있는거지??
전과가 한두 개가 아니면서 뻔뻔하게 말을 잘 들을거라고 하는 수정이의 말에 이한성은 기가 찬다는 듯이 코웃음을 쳤다. 그러자 수정이는 언제나 그랬듯이 볼을 부풀리며 반항 모드에 들어가버렸고, 팔짱을 딱 끼며 고개를 홱 돌려버렸다.
“흥! 아빠 미워. 나 가출해서 여기서 살래.”
“저게 진짜….”
애가 아직 어려서 집이 편한 줄도 모르고 저런다. 보육원에서 산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유치한 고집을 부리고 있는 수정이를 본 이한성은 고래 힘줄 처럼 질긴 저 아이의 고집을 어떻게 해야 꺾을 수 있을 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보육원 애들 앞에서 보육원이 절대로 좋은 곳이 아니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대한민국에서 보육원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대체적으로 부정적인 편이다. 물론 요즘에는 언론들도 그렇고 인식이 나아지고 있어서 옛날보다는 조금 나아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부정적인 인식은 사람들의 심리 깊숙한 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보육원이라는 시설 자체가 부모를 잃은 아이들을 위해 세워진 곳이니 사람이라면 당연하게 저마다의 고정관념을 가지게 될 수 밖에 없다.
보육원에서 자란 아이들은 커서 비행 청소년이 된다느니, 보육원 아이들은 손버릇이 나쁘다느니, 아니면 보육원에서 지내는 아이들은 전부 다 불쌍하고 딱한 존재들이라느니, 하는 고정관념들.
이한성은 자신도 일부분 지니고 있는 그런 고정관념들을 수정이에게 심어주고 싶지 않았다. 보육원 아이들 앞에서 그런 자신의 고정관념을 드러내고 싶지도 않았다. 그랬기에 그에게는 수정이의 고집을 꺾을 수 있는 방법이 보호자의 신분을 내세워 소리치는 것 말고는 딱히 없었다.
“안돼. 넌 우리랑 같이 살면 안돼.”
“?”
수정이의 어린아이 다운 고집에 난감하기 그지 없던 그 순간, 수정이보다 한 살 많은 민서가 다가와 나지막히 입을 열었다.
“수정이 너는 아빠가 있자나. 그러니까 우리랑 살면 안돼.”
“아빠가 있으면 너희랑 같이 살면 안되는거야?”
“응. 안돼. 우리랑 같이 살면…. 볼행한 거니까.”
아직 6살 밖에 되지 않은 민서의 목소리에는 무척이나 슬프면서도 우울한 감정이 담겨져 있었다. 한창 웃으면서 뛰어놀고 아무런 걱정도 없이 부모 속을 썩이게 만들어야 할 나이에 그런 생각을 하는 민서의 한마디에 다른 아이들의 분위기는 한순간에 침울해졌고, 주변의 어른들은 모두 씁쓸한 표정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민서야…. 지금까지 계속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거야?”
화연이 민서와 눈높이를 맞추며 슬픈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민서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조용히 울기 시작했고, 화연은 그런 민서를 안아주며 달래려고 했지만, 그녀가 건낼 수 있는 위로의 말은 없었다.
그 어떠한 위로의 말도 민서에게는 도움을 주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그녀 스스로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에.
“야, 꼬맹아. 6살 주제에 그런 소리 하는 거 아니야. 하나도 안 어울리니까 어른인 척 하지 마.”
아무도 민서에게 위로의 말을 건내지 못하고 있던 그 순간, 이한성이 울고 있던 여자아이에게 다가가 삐딱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이에 당황한 화연은 갑자기 애한테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며 말릴려고 했다.
“….한성 씨? 지금 대체 무슨 말을-”
“너네가 불행하긴 뭐가 불행해? 내 눈에는 하나도 안 불행해 보이는데. 엄마 아빠 없는게 뭐 그리 대수냐? 부모님 없으면 무조건 불행하다던? 누가 그랬는데?”
하지만 이한성은 화연의 말을 끊은 채 계속해서 민서에게 삐딱하고도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그동안 주변의 숨막히는 시선만 받으며 자라왔던 여자아이가 한번도 듣지 못했던 말을 건네주었다.
“그래, 너희가 다른 애들이랑 사는 환경이 다른 건 맞아. 부모님이 사고로 돌아가셨을 수도 있고, 어쩌면 부모님이 너희들을 원하던 원치 않던 이곳에 맡긴 것일 수도 있지.”
이한성은 이 아이들의 사정을 알지 못한다. 어떤 일을 겪었고, 어떤 상처를 받아왔는지 자세하게 알지 못한다. 그렇기에 그는 지금 자신의 말이 무척이나 오만하기 짝이 없는 개소리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자각하고 있다.
그래도 그는 이 말 한마디는 꼭 해줘야겠다는 생각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렇다고 너희가 불행한건 아니야. 불쌍한 건 더더욱 아니고. 너희들이 이곳에 오게 된 건 그저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일어나서 그런 것 뿐이지.”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주변 어른들의 속삭임이 이 아이들의 자존감을 지금까지 얼마나 많이 갉아먹어 왔을까. 부모가 없어서 불쌍하다고, 부모가 없어서 불행하다고 얼마나 같잖지 않은 동정심을 보이며 아이들의 마음 속에 보이지 않는 상처들을 줬었을까.
동정심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다. 인간이라면 동정심을 느낄 수 밖에 없으니까. 하지만 그런 동정심이 아닌, 저 아이는 내 아이보다 불쌍하니 다르게 대해야 한다는 그 잘난 선민의식은 분명히 잘못 된 것이다.
이 아이들도 똑바로 말할 수 있고, 생각할 수 있고, 정할 수 있다. 단지 아직 어리기 때문에 어른의 도움이 필요한 것 뿐.
그러니 이한성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할 수 있다. 이 아이들은 결코 불쌍하고 불행한 존재가 아니라고. 남들의 동정 따윈 필요 하지 않은 당당한 아이들이라고.
“….훌쩍-”
조금의 의심도 없는 이한성의 확고한 목소리에 민서는 조용히 손으로 흘러내리던 눈물을 닦아냈다. 그러자 이한성은 그런 민서에게 까칠한 말투로 말했다.
“웃어. 울지 말고.”
“에헤헤….”
민서는 퉁퉁 부은 눈으로 밝은 미소를 지어보았다. 눈물이 아직 그치지 않았음에도 미소를 지어보는 민서의 당찬 모습을 본 이한성은 피식 웃으며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쯧, 쓸데없는 소리 하느라 라면 다 뿔었겠네.”
3분 동안 잠깐 애 좀 확인한다는 것이 어느샌가 15분이 되어버렸다. 통상 컵라면이 익는데 까지 걸리는 3분 보다 5배는 되는 시간이 지나갔다는 걸 깨달은 이한성은 그저 한숨을 내쉬며 지금쯤 다 식고 퉁퉁 뿔어버렸을 면빨의 모습을 말없이 상상해보았다.
[짝짝짝짝-]“?”
그러자 그런 생각을 하기 무섭게 갑자기 박수 소리가 주변에서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듣기만 해도 한두명이 아닌 박수소리에 놀란 이한성은 흠칫하며 뒤를 돌아보았고, 그와 동시에 문 밖에서 보육원 관계자들이 잔뜩 모인 채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야, 말 진짜 잘하시네. 멋지다 멋져.”
“젊은 사람이 참 생각이 깊다니까.”
“이한성 씨, 방금 그거 핸드폰으로 찍었는데, SNS에 올려도 되겠습니까?”
“…..”
x됐다.
대체 사람들이 언제부터 저기 문 뒤에 다 모여있었던 걸까. 무서워서 알고 싶지가 않은 의문을 품으며, 이한성은 안색이 새파랗게 변한 채로 옆에 있던 화연에게 다급하게 도움을 요청했다.
“화연 씨. 저 사람들 기억 좀 지웁시다. 지금 당장.”
“안되요. 잘못하면 치매 걸려요.”
“아 그게 저랑 뭔 상관인데요! 빨리 지워 줘요!”
“멋진 척 하다 걸린 게 뭐 그렇게 부끄럽다고 그래요? 그냥 참으세요.”
“…..”
하지만 아까 이한성에게 한번 당했었던 화연이 그를 도와주는 일은 없었다. 그렇다고 항의하기에는 인과응보였던지라 달리 대꾸할 말이 없었던 이한성은 쪽팔려서 죽을 것만 같은 기분과 함께 고개를 푹 숙였고, 이에 그런 아빠의 모습을 본 수정이가 다가와 그에게 말을 걸었다.
“아빠, 왜 그래?”
“저리가. 이게 다 너 때문이야.”
“?”
이한성은 애꿎은 수정이에게 탓을 돌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수정이는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그저 가만히 고개를 갸웃거렸고, 이를 본 해영은 수정이의 어깨를 토닥이며 나지막히 말했다.
“수정아. 오빠가 지금 많이 부끄러워서 그래. 완전 츤데레거든.”
“아니, 애한테 쓸데없는 소리 좀 제발….”
주변에 뭐 도움되는 사람이 한명도 없다. 안그래도 사람들 앞에서 폼 잡은 꼴이 되서 민망해 죽겠는데 괜히 사람을 더 심란하게 만드는 해영의 말에 이한성은 기운이 죄다 방전된 목소리로 항의하며 두통이 가득한 관자놀이를 주물렀다.
아…. 골 아프네. 아니, 애초에 왜 저 사람들은 옆방에서 점심 먹다가 말고 문 앞에 와가지고는 남이 애한테 연설하는 걸 보고 앉은 건데?? 다들 그렇게 할 일이 없나??
“아 몰라. 맘대로 하라지.”
그냥 깔끔하게 신경 끄고 싶다. 어차피 그렇게 부끄러운 모습을 들킨 것도 아니니 다른 사람들이 봤던 말던 무시하면 그만이다. 아까 최민석 상담사 님이 SNS에 올려도 되느냐니 어쩌니 말하셨던 것 같지만 그것도 아마 농담일테니 무시해도 상관 없을 것이다.
이한성은 그렇게 빨간불이 켜진 자신의 스트레스 관리를 위해 싹 다 무시하기로 하며 모두의 시선을 뒤로 한 채 다시 옆방으로 돌아갔다.
역시나 그새 다 불어 터져버린 컵라면으로 배를 채우기 위해.